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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71화 (561/1,404)

#571화 저주받은 지하 무덤 (5)

도움?

이 상황에?

엔느가 이곳에 있다는 건 미르 길드 역시 떨어졌다는 말이다.

뭐, 나처럼 혼자 떨어졌을 확률도 있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고개를 살짝 흔들며 날려 버렸다.

혼자 떨어진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도움을 준다고 나타난 것을 보아 같이 떨어진 모양이다.

무덤 내 몬스터가 날뛰면서 만들어낸 폭음이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상황에도 여유와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것.

확인 사살이지만 무조건 뒤에 미르 길드가 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보다 의문은 왜 내게 접근한 거지?

일단, 미르 길드는 우리와 아무런 접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한 번 엿 먹인 상황.

물질적인 증거도 없지만, 오히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껄끄러운 상황 속에서 이런 접근이라…….

좋지 않은 시기.

좋은 않은 환경.

이러면 누가 접근해도 의심할 수밖에 없어.

특히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대놓고 말했으니.

이쪽 사정을 어느 정도 꿰뚫고 있다고 봐야 했다.

내게 다가와 묘한 제안을 한 엔느를 무심히 바라봤다.

“의외인가요?”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내 말에 엔느가 잠시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가 다시 내뱉었다.

“함정 같은 건 아니니까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리고 굳이 도움받을 필요도 없구요.”

함께하지 않겠다는 말을 대놓고 꺼냈다.

의도를 모른다면.

함께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이미 충분히 부담스러운 상황인데 여기서 위험 부담을 더 올리는 것은 사양이다.

내 단호한 거절에 표정 변화가 있는지 살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왔다는 거군.

“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곳에서 제대로 싸울 수가 있을까요?”

“도발입니까?”

“아뇨, 오히려 반대에요.”

그러면서 엔느가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아마 당신이라면 계속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정말 버티는 것만 한다면요.”

그 말에는 잠시 몸이 움찔했다.

이 여자.

생각보다 너무 예리한데…….

솔직히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 하나.

물약.

나에게 체력 흡수 옵션이 있다고는 하나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옵션이다.

물약을 대체 할 수 없는 옵션.

앞을 막아주는 전사 형이나 회복을 전담하는 막내별 같은 도움 없이는 더욱더.

혼자 공격과 방어를 전부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힘들어진다.

특히, 먼저 앞서나간 해원을 따라잡기 위해선 조금 무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물약 소비도 급격히 올라가게 될 것이다.

결국, 물약이 다 떨어지는 순간이 오겠지.

크리티컬을 무한으로 먹이면서 은신을 유지하는 방법도 있지만 앞으로 나올 몬스터가 다 저런 식이라면 그쪽도 쉽지는 않을 터.

가장 큰 문제는 은신만으로 지나갈 수 없는 곳이 나올 확률도 있고.

어떻게든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끼를 덥석 물기엔 너무 의심스럽다.

도무지 의도를 알 수가 없는데…….

내가 고민을 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엔느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했던 반응이네요. 좋아요. 우리가 있는 패를 다 까죠.”

엔느가 그 말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자 유저들 사이로 황금색 갑옷을 입고 있는 미르 길드의 길드장 황룡이 걸어 나왔다.

역시.

미르 길드가 이곳으로 떨어졌어.

“말해도 되죠?”

엔느의 말에 황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썩 그렇게 좋아하는 분위긴 아니었지만.

그러자 엔느가 바로 내게 말을 꺼냈다.

“유일 아이템. 이름은 고대 드워프 왕의 무기.”

그 말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유저가 알고 있는 건지.

“그것도 알고 있는 겁니까?”

“네, 우리도 다방면으로 정보를 알아냈거든요. 아마 당신이 알아낸 방법하고는 꽤 다른 방법일 거예요. 이쪽은 일단 영업상 비밀.”

“해원과도 다른 방법이겠군요.”

비밀이라.

어차피 우리도 얻은 방법을 알려주진 않을 거니까.

안다고 해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원은 돈으로 해결한 셈이고.

그런데 해원을 언급하자 엔느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해원은 절대 유일 아이템을 가지지 못할 거예요.”

“뭔가 알고 있는가 보네요.”

내 말에 엔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원이 유일 아이템까지 근접할 수는 있겠지만. 가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거예요.”

그 말을 듣자마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전신?”

“눈치가 빠르시네요.”

초월 길드인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해원도 욕심 하나는 끝…….”

내가 아는 해원은 일단 자기가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었다.

거기다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는 것을 즐기는 놈이기도 했다.

예전에 길드장들을 잔뜩 모아놓고 왕 노릇을 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터.

그런 해원이 유일 아이템을 전신에게 넘겨준다고?

해원은 아이템이 없지.

돈이 없진 않으니까.

“아뇨, 해원은 유일 아이템을 원해요. 다만, 집 안에 호랑이 하나를 들였을 뿐.”

“전신이 뺏을 거라는 말로 들리는군요.”

“네, 확신해요.”

확신이라…….

내부에 줄이라도 있는 건가?

혹은 심어놓은 누군가가 있거나.

아무튼 엔느는 이걸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저에게 도움을 줄 필요는 없을 텐데. 어차피 그쪽도 유일 아이템이 목적 아닌가요?”

해원이나 엔느나 어차피 유일 템을 원하는 것은 마찬가지.

굳이 내게 도움을 주면서 행동할 이유는 없다.

내 말에 잠시 황룡을 바라본 엔느가 다시 내게 말을 꺼냈다.

“유일 아이템은 그쪽이 가지세요.”

뭐?

방금 잘못 들은 건가?

“사실대로 말할게요. 어차피 우린 유일 아이템을 가질 수 없어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그게 없거든요.”

이건 ‘드워프 왕의 물건’을 말하는 거려나.

그렇다고 해도 이유로는 너무 약해.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엔느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못 믿으셔도 할 수 없는데, 이쪽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요. 아마 아시겠지만 암흑혈. 잘 아시죠?”

암흑혈이라는 말에 다시 속으로 놀랐다.

이 여자,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우린 그 암흑혈을 원해요. 유일 아이템이 아니라.”

암흑혈을?

듣기에 따라선 꽤 묘한 말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지?

무기를 제련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말은 들었는데.

혹시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건가?

“거기다 전신 그 사람이 유일 아이템을 가지는 건 더 싫거든요.”

그러면서 엔느가 정말 싫은 티를 확 내었다.

저건 아무래도 진심 같은데…….

“그건 제가 가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차라리 그쪽이 더 좋아요. 저한테는. 그리고 아마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전신이 반드시 유일 템과 암흑혈을 다 가지게 될 거예요. 그걸 원하시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다.

그런 엔느를 보면서 말했다.

“저와 손잡는 것만으로 유일템과 암흑혈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건가요?”

“네, 당신은 특별하니까. 그리고 초월 길드와 대항하기 위해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쪽에 그들을 상대할 에이스 유저가 많이 부족하거든요. 언제가 되어도 붙게 될 텐데 막상 붙기 시작하면 우리 쪽이 많이 밀릴 거예요.”

이쪽은 현실적인 문제인가.

확실히 프로 유저들이라면 실력 하나는 알아줄 테니.

내가 알기로 미르 길드는 일반 유저로 구성되어 있다.

질적인 차이가 분명히 존재할지도.

이로써 나를 원하는 이유는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임시지만, 팀의 에이스 역할.

“전투가 일어나면 녀석들을 잡는 역할인가요?”

“네, 왜 당신이 꼭 필요한지 아시겠죠? 녀석들을 눌러줄 확실한 카드가 필요해요. 거기다 불멸 님도. 당신을 포섭하면 불멸 님도 함께하겠죠.”

처음부터 해원 쪽 연합에 갔으면 됐을 텐데 전신과는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고.

그렇다고 다른 쪽과 힘을 합치자니 어중이떠중이로는 답이 안 나온다 이건가.

“잠시 이야기를 해보죠.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니까.”

“네, 편하신 대로.”

그러면서 엔느와 황룡이라는 길드장을 바라봤다.

과연 이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아니, 이 경우에는 믿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주호> 형, 미르 길드가 접촉해왔어요.

<불멸> 엔느?

<주호> 네, 이쪽도 정보가 만만치 않네요.

그러면서 이전에 엔느와 했던 이야기를 전부 풀어주었다.

<불멸> 흐음, 저쪽도 꽤 하잖아?

<주호> 정확히는 저와 형을 원하던데요?

<불멸> 초월 길드와 붙을 생각이라면. 엔느의 판단은 나쁘지 않아.

역시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가.

<불멸> 어차피 얻지 못하는 유일 아이템으로 협상을 한다? 역시 엔느, 머리 하나는 잘 굴려. 그림을 잘 그렸네.

<주호> 그 그림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고요.

<불멸> 아, 그리고 당분간 서로 만나지 못할 거다. 우리도 지금 움직이고 있거든.

<주호> 좋든 싫든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로 들리네요.

<불멸> 유일 아이템을 얻는 것만큼이나 네가 살아 있는 것도 중요하니까. 엔느 잠시 연결해 봐.

그러더니 재중이 형과 엔느가 한참을 뭔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엔느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내게 말했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에요.”

바로 내게 작은 손을 내밀자 나 역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럼, ‘무덤 안’에서 잘 부탁드립니다.”

“네, ‘무덤 안’에서 저도 잘 부탁해요.”

일시적인 동맹 성립.

엔느가 우리를 이용하듯.

우리 역시 엔느를 이용하면 된다.

이 무덤 안에서.

“슬슬 이동하지. 시간 없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니.”

협상이 끝나자마자 황룡이 바로 미르 길드원들을 불러들였다.

뒤로 우르르 나타나는 미르 길드원들을 보고 엔느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엔느를 보면서 물었다.

“저 드워프 대전사는?”

“그렇게 불리는 건가요? 『 저주받은 드워프 악령 』 이 아니라?”

“뭐, 전에 붙어본 경험이 있다고 해두죠.”

“역시 저건 오러겠죠?”

“모르는 게 없네요.”

“당신을 추적하면 다 나오거든요. 실제로도 많이 사용하셨던데.”

“저만 보고 살진 마세요.”

“캬약! 아니거든요!”

정말 일관된 성격이네.

엔느가 잠시 흥분했다가 곧 가라앉힌 뒤 내게 말했다.

“어차피 계속 만날 거잖아요. 괜히 다른 유저들하고 엮여봐야 시간만 날려요.”

“그렇게 하죠.”

“그리고 제가 전담으로 붙어서 도와드릴 거예요.”

이건 마법 지원이려나?

직접 몸으로 뛰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고.

뭐 그쪽이 내겐 더 편하다.

“그래서 왼쪽? 오른쪽?”

가운데 통로는 패스.

저쪽은 유저들이 많이 몰려 있기도 하고.

거기다 몬스터가 제일 먼저 튀어나온 것을 보면 썩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전신과 해원이 왼쪽으로 갔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이건 당연히 왼쪽으로 따라가자는 말이겠지.

그런데 엔느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갈 거예요.”

“이유는?”

“똑같은 길로 가면 확실하게 앞지를 수가 없으니까요. 가급적이면 다른 길일지라도 그들보다 먼저 도착하기를 원해요.”

“뭐 좋을 대로 하시죠.”

적어도 재중이 형을 만날 때까지는.

빠르게 가다 보면 분명히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오른쪽 통로 쪽으로 움직이자 엄청난 수의 유저가 우리 뒤를 따라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공동에 머물러 있던 유저들이 갑자기 이렇게 움직인다고?

“왜 이렇게 움직이죠?”

내 말에 엔느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본인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시나 봐요. 저 사람들. 다 주호 님만 보고 따라오는 거예요.”

“흐음…….”

이거 참.

부담되는데?

그 사이 선두에 있던 미르 길드원들이 하르 조각을 멀리 던지며 시야를 확보하는 모습이 보였다.

던지고 줍고.

어둠 속을 정찰하고.

모든 잡일을 미르 길드원들이 도맡아서 해주었다.

“계속 이렇게 가는 건가요?”

“네, 당분간요. 이 어둠 속에서 하르 조각만 한 게 없거든요.”

같이 손잡기 잘한 것 같은데?

저 작업을 혼자 했다면 통로를 전진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뭔가가 감각 속에 확 걸려드는 그 순간.

전방으로 바로 달려 나갔다.

【 오러 블레이드! 】

전방 정찰대를 앞지른 채, 르아 카르테와 하이딩 블레이드를 크게 휘둘러 어둠 속에서 날아온 뭔가를 강하게 쳐내었다.

카가가강!

큭!

뭐야 이건, 화살인가?

오러를 씌운 검이 부르르 떨릴 정도의 충격에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그리고 튕겨 나간 물체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창?!

하나를 쳐내긴 했지만, 연이어 수십 개의 단창이 내 주변을 스치듯 날아가 뒤에 있는 유저들을 꿰뚫기 시작했다.

무려 오러가 서린 단창이.

젠장.

유저들은 저걸 막을 수가 없어!

“전부 피해!”

그리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대체 저 안쪽에 무슨 괴물이 있는 거냐?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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