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화 저주받은 지하 무덤 (4)
현재 이곳엔 함정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죽음 직전까지 간 탓인지 유저들의 신경이 굉장히 날카로웠다.
게다가 등장하는 몬스터, 던전의 구조 등 제대로 된 정보가 하나 없는 상황 속에서 통로 쪽에 있던 유저가 죽는 바람에 그런 면이 더욱 커졌고.
덕분에 유저들의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가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 PK가 일어나 버렸다.
그러다 보니 곤두서 있던 유저들의 신경이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누가 죽었어?”
“몬스터?”
“아니, PK다!”
“이 와중에 싸운다고? 미친거 아냐?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대체 누가 싸우는 거지?”
“그런데 저거 주호 아냐?”
“맞는 것 같은데?”
“뭐지? 이 상황은?”
의아함.
분명히 내 재치로 유저들이 이 함정을 이겨냈는데 이번에는 한쪽에서 싸우고 있으니 다들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이 시선은 나와 싸우고 있는 유저들에게 넘어갔다.
“쟤들 천상 아냐?”
“지금 주호 공격하는 것 맞지?”
“와, 진짜 …새끼들이네. 이럴 때는 좀 참으면 안 되나?”
“주호 덕분에 다 살았는데 정말 너무 하네.”
“천상 길드 해원이지?”
“맞음. 전에 주호가 없앴는데 또 기어 나옴.”
“아무리 그래도…… 상도덕도 없네.”
나와 천상 길드의 격돌에 주변 유저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내게 우호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단, 여기 있는 유저 대부분 내게 목숨 빚을 졌다.
직접적으로 갚지는 못한다고는 해도 이렇게 한 마디씩 거들어주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리고 원래 천상 길드의 평판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었고.
아니, 실제로는 상당히 나쁜 편에 속하지.
그런데 주변에서 천상 길드를 욕하기 시작하자 막상 나를 쫓아왔던 천상 길드의 유저들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외쳤다.
“…발! 우리가 죽고 있는 거 안 보여?”
“젠장, 죽은 사람은 다 우리라고!”
“아, 진짜! 니들 눈에는 저 괴물은 안 보이냐?”
“우리만 죽었고!”
은신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서 순식간에 두 명을 죽여 버린 내게 천상 유저들이 이것 좀 보라며, 말을 꺼냈지만 오히려 주변 유저들은 천상 길드원들을 나무랐다.
“거, 진짜 너무 하네. 우르르 몰려와서 한 명을 공격하면서 하는 소리 맞아?”
“완전 얼굴에 철판 깔았네?”
“세상에, 저 뻔뻔한 거 보소.”
“그러게 누가 주호한테 덤비래?”
그 말에 천상 유저들도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죽기는 자신들이 더 죽었는데 욕은 다 먹는 상황이라…….
지금은 뭐라고 말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건 생각보다 깔린 판이 괜찮은걸?
이제 대놓고 천상 길드를 공격해도 아마 유저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모양새였다.
반대로 천상 길드가 나를 포위라도 하는 날에는 욕이란 욕은 다 먹을 테고.
천상 길드가 아무리 대놓고 유저들을 씹는다고 해도 같이 있는 초월 길드나 가담한 또 다른 길드들은 또 그렇지 않았다.
각 프로팀 길드가 뒤에 달고 있는 기업들.
본격적으로 자신들을 알리면서 표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데 이런 평판은 결코 원하는 그림은 아닐 테니까.
일단, 유일 아이템 때문에 해원과 손은 잡았겠지만…….
유저들이 이런 식의 반응이라면.
그림이 나쁘지 않아.
그리고.
하던 일은 마저 해야겠지.
【 은신! 】
바로 이 자리에서 천상 길드의 쪽수를 최대한 줄여놓는 것.
내 모습이 다시 사라지자 천상 길드 유저들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
그리고 도망가는 것도 포기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어차피 도망가도 전에 달려 나간 녀석처럼 목을 꿰뚫려서 죽을 테니.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나타난 칼이 목에 정면으로 박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그리고 그때 굉장히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마치 블록을 쌓듯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하, 설마 저건 도망을 칠 수 없도록 막아주는 건가?
아마 유저들이 직접적으로 천상 길드와 싸우지는 않더라도 길막 정도는 해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려는 유저들의 모습에 속으로 뭔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났다.
다 같이 살려고 노력한 일이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이 모습에 천상 길드 유저들이 엄청나게 당황을 했고.
퇴로가 완전히 막혔으니까.
“젠장! 저 새끼가 저렇게 사라져서 우릴 죽인다고!”
“눈이 있으면 좀 봐라! 누가 피해잔지!”
“이런 짓을 하고 니들이 무사할 것 같아?”
“우린 천상 길드라고!”
“전에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버러지들이!”
“빨리 길 안 터?!”
당연하겠지만 유저들은 천상 길드에게 그 어떤 동정표를 내어주지 않았다.
가뜩이나 민감해 있는 유저들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것도 아니고.
“풉, 천상 길드 같은 소리 하네. 언제적 천상 길드냐.”
“와, 우리보고 버러지란다.”
“게임만 하다가 완전 정신나갔구만.”
“대박. 쟤들 신상 한번 털어보고 싶네.”
“진짜 대가리에 총 맞았냐?”
그렇게 포위 아닌 포위를 당한 녀석들이 당황하자 제일 앞에서 검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여기서 죽으면 리타이어.
다시 혼자서 여기로 뛰어내리는 짓을 하지 않는다면.
한동안 이곳에 얼씬거릴 수 없을 것이다.
이리저리 정신없이 휘두르는 녀석의 바로 옆에 서서 크게 휘두른 검에 몸이 휘청이는 순간을 포착하자마자 하이딩 블레이드로 녀석의 옆구리를 강하게 찔러 넣었다.
푸욱!
“크억!”
그리고 동시에 르아 카르테를 횡으로 크게 휘둘러 녀석의 목을 날려 버렸다.
목이 정확하게 두 동강 나면서 억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쫓아올 때는 신나더니 지금은 아니야?”
내 말에 뭔가 대꾸를 하려던 녀석이 크리티컬에 곧장 체력이 모두 빠져나가며 그 자리에서 죽음의 빛으로 사라졌다.
하나 같이 눈빛이 맘에 안 들어.
남을 죽일 각오를 했으면 죽을 때 저런 눈빛은 하지 말아야지.
뭐가 저렇게 억울한 눈빛인지 모르겠네.
【 은신! 】
다시 쿨이 돌아온 은신을 걸면서 또 다른 천상 유저의 뒤를 잡았다.
이번에도 역시 목이 날아가면서 그 자리에서 즉사.
“그 잘난 천상 길드 전부 불러와. 어떻게 되나.”
“너! 후회할…!
이것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죽으면서 저렇게 외치는 걸 보면.
“젠장! 본진에 알려!”
“이미 알렸어!”
“왜 안 와?!”
“……발. 우리끼리 해결하란다.”
“뭐?!”
“이미 떴다고. 다른 통로로. 여기 없어.”
“설마, 우릴 버린 거야?”
“최대한 시간 끌란다. 저 녀석 상대로.”
“미친 새끼.”
“돈 두 배로 준대.”
“싫어도 해야겠군.”
하, 해원.
진짜 골고루 하네.
아마 이 녀석들을 던져주고 다른 통로로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아니, 이 경우에는 도망간다는 것보다 내 발목을 잡아놓고 앞서나가겠다는 생각일 수도.
해원은 무덤덤했지만, 같이 있는 초월 길드나 다른 길드들이 문제였다.
칫,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해.
【 은신! 】
그런데 이번엔 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혼자만 동떨어져 있던 한 녀석에게 접근해 하이딩 블레이드로 옆구리에 검을 박아 넣는 순간.
녀석이 바로 무기를 버리고는 두 손으로 내 검날을 꽉 움켜쥐었다.
“큭! 잡았다!”
제법 머리를 쓰잖아?
애초에 방어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모양.
자신을 먹이 삼아 은신으로 잡을 수 없는 나를 잠시나마 멈추게 했다.
“지금이야! 공격해!”
【 비월참! 】
【 비월참! 】
【 비월참! 】
:
서로 거리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가장 빠른 스킬.
일곱 발의 비월참이 동시에 나와 이 녀석에게 날아들었다.
아예 이 녀석과 함께 죽이겠다는 건가?
내 검을 필사적으로 잡고 있는 녀석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어쭈? 웃어?! 넌 끝났어!”
“그러게. 시도는 좋은데 말이야… 넌 이거 뭔지 모르지?”
그리고 르아 카르테를 들어 올려 녀석에게 보여주었다.
검고 진득한 기운이 감싸고 있는 형태의 오러 블레이드.
그런 르아 카르테를 연속으로 휘둘러 제각각의 궤도로 날아오는 비월참을 그 자리에서 모두 소멸시켜 버렸다.
아주 깔끔하게.
“헉!”
“뭐야?!”
“비, 비월참이 전부 녹았어?”
웨폰 기술은 오러 블레이드를 이기지 못했다.
“어때? 이래도 끝난 것 같아?”
“……말도 안 돼.”
“말이 돼.”
그 말과 함께 녀석의 목을 르아 카르테로 바로 날려 버렸다.
“컥!”
그렇게 내 검을 잡고 있던 자세 그대로 한 줌의 빛으로 변해 사라지는 순간 다시 은신을 걸었다.
【 은신! 】
그 모습을 본 천상 길드원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자신들의 공격과 방어가 도저히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아예 서로를 등지면서 검을 사방으로 내밀었고.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는 건가?
정말 시간을 끄는 방법도 가지가지네.
일단, 마력은 방금 흡수해서 충분하고.
잔챙이들을 상대로 더 시간을 끌고 싶진 않아 바로 레비아탄 무기를 하나 꺼내 들어 스킬을 시전했다.
【 수룡탄! 】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강렬한 물 폭탄이 생성되어 녀석들을 그대로 휩쓸어 버렸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완전 깔끔하게.
저 녀석들한테는 이것도 아까워.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유저들이 바로 환호를 질렀다.
“대박, 혼자 몇 명을 잡은 거야?
“와, 천상 놈들 상대도 안 되는데?”
“역시 주호.”
“랭킹 1위 답네.”
“저 새끼들은 뭘 믿고 주호한테 덤볐어?”
압도적.
아니 그냥 상대 자체가 안 되었다.
제대로 된 교전도 없고.
그리고 녀석들이 죽어서 떨어뜨린 아이템들을 루팅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장비라도 좀 빵빵하게 차고 올 것이지.
돈 되는 건 거의 없네.
아쉬운 생각을 하면서 주변 유저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들이 잠시나마 블록을 만들어서 쉽게 잡았으니까.
아니었다면 사방팔방 도망가는 녀석 중 몇몇은 놓쳤을 것이다.
그런 내 인사에 유저들도 곧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정체불명의 몬스터에게로 옮겨갔다.
흐음…….
저걸 어쩐다.
출구들을 바라보다가 일단은 한 번 보고 가기로 했다.
앞으로 저런 녀석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고.
그렇게 유저들과 싸움을 벌이는 몬스터에게 다가갔다.
정체불명 몬스터의 공격 한 방에 사라지는 경우는 없지만….
탱커로 보이는 유저들이 앞으로 나서서 아이기스로 틀어막자 그나마 버티기는 했다.
문제는 한 번 맞부딪칠 때마다 미친 듯 힐 샤워가 들어가야 겨우 버틴다는 점.
저건…….
오러?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지.
분명히 휘두르는 대형 도끼에 희미하지만 오러가 실려 있었다.
테인 공작의 그것과는 좀 위력 차이가 있어 보이긴 해도.
분명히 오러였다.
하, 무슨 처음 등장하는 몬스터가 오러를 써?
아마도 지하로 많이 떨어지면서 몬스터들의 등급이 확 올라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몬스터의 형태도 어디에선가 많이 본 형태였다.
흡사 칼룬과 거의 흡사한…….
대전사 드워프?
아니, 생각해 보면 여기가 고대 드워프 왕의 무덤이니까.
그렇다는 말은 앞으로도 저런 녀석들이 바글바글하다는 말인가?
이거 다른 유저들은 정말 쉽지 않겠어.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내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다가와서 좋은 경우는 못 봤는데.
르아 카르테와 하이딩 블레이드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경계를 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엔느?”
“서로 반갑지 않은 곳에서 보네요?”
지금 이 시점에 이 사람이라…….
그리고 그런 내게 엔느가 하나의 제안을 했다.
“지금 혼자시죠?”
그 말에 잠시 몸이 움찔했다.
칫.
이 여자도 싸우러 온 건가?
적이 더 늘어나는 것은 불편한데.
그런 내게 엔느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마치 다 안다는 듯 미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마… 우리가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