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62화 (552/1,404)

#562화 고대 왕의 흔적 (1)

재중이 형의 제자?

분명히 저것과 비슷한 말을 예전에 듣긴 했다.

하지만 딱 한 사람을 지목해서 언급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때, 막내별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그래서 제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

몽롱(?)한 표정과 터질 듯한 붉은 얼굴을 한 채 막내별이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모두의 시선이 재중이 형에게 향했다.

그리고 전사 형이 먼저 물었다.

“우왁, 부럽다. 완전 예쁘고 어리던데. 대체 몇 살 때……!”

“쿠엑!!”

당연히 나르샤 누나에게 옆구리를 맞은 채 그 자리에서 쓰러졌지만.

이 물음은 재중이 형에게서 한숨을 끌어내기엔 충분했다.

“하아, 오늘 다들 내게 왜 이래?”

“그거야 형이 제자와…….”

“아니라고!”

“눈빛이 다르던데요?”

“그건 걔가 원래 그래. 그리고 내가 원래 좀 잘 생겼잖아.”

“와, 재수 없음.”

나와 재중이 형의 대화에 이쁜소녀는 흘깃흘깃 재중이 형을 바라봤고, 챠밍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우리 둘을 바라봤다.

“진짜 아니라고!”

“전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흐음, 몇 년 전이면… 학생 아닌가요? 범죄……!”

이쁜소녀는 재중이 형의 시선을 피했고, 챠밍은 여전히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거기다 나도 함께 거들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저쪽은 상당히 생각이 있어 보이던데요?”

그런 나와 이쁜소녀, 챠밍을 보면서 재중이 형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여기 진짜 내 편은 하나도 없는 거냐?”

재중이 형의 절실한 말에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가 씨익 웃었다.

“아마도 없어요.”

“하아, 내가 얘들을 잘못 키웠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좀 쉴련다.”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은근슬쩍 이 자리를 벗어나 사장님 쪽으로 빠져나갔다.

당연히 그런 재중이 형을 그냥 두지는 않았고.

“어딜 갑니까? 도망가요?!”

도망가듯 재중이 형이 사라지자 제대로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나도 못 들었잖아?

재중이 형이 따로 가르칠 정도라면…….

* * * * *

경매 수익 중 일부는 항상 수고해 주시는 사장님께 드렸고, 그렇게 남은 돈은 전부 내 수중으로 들어왔다.

경매 수익 일부를 쥔 사장님의 표정은 완전히 밝았다.

“흐흐흐, 매번 고맙다. 어째 길드를 운영하면서 나오는 돈보다 이쪽이 더 짭짤하냐?”

“뭘요. 잘하는 분에게 맡기는 편이 저도 좋죠.”

“말은. 네 덕분에 오랜만에 집안이 화목하겠어.”

아, 전에 사모님이 한 소리했다고 들었는데…….

너무 게임에 빠져 있다 보니 정작 VRS 룸 일은 뒷전이라.

접속 제한 시간이 있지만, 풀로 접속을 할 정도면 일상생활을 거의 다 내려놓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만큼 접속하는 것 이상으로 이익이 나오니까 아직은 폭발하지 않고 사모님이 지켜보는 중이지만.

언제 폭발하셔도 이상하지 않지.

“아, 그러고 보니 연지는 어떻게 됐어요?”

사장님 딸.

예전엔 자주 봤지만, 요즘은 거의 얼굴 볼일이 없다.

“흠, 제한이 풀려서 이제 시작한다는데… 처음부터 하는 거라 쉽진 않겠지. 거기다 우리 마누라한테 등짝 몇 대 맞고는 일단 대학부터 가라고…….”

“쉽진 않네요.”

“어후, 우리 딸 소원 들어주면 내가 쫓겨날 판이라.”

그러면서 사장님이 머쓱하게 웃어 보이는데 딱히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생업이 이쪽이라 접속할 수 있는 거지 우리 수준으로 접속을 하려면 진짜 다른 생활을 놓아야 하니까.

사모님 입장에서 딸까지 게임에 접속하는 걸 결코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접속하는 것은 막지 않는다구나.”

“뭐 그 정도면 괜찮겠죠.”

그 이야기가 끝나자 사장님이 내게 물어왔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경계 너머 이야기하시는 거죠?”

“그래, 아무래도 이쪽은 너희가 없으면 올 스탑이니까.”

“작위 말이군요.”

“그렇지.”

현재 우리 연합에서 작위를 가지고 있는 유저는 나와 재중이 형, 챠밍.

경계 너머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셋 중 한 명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백작 작위 중 하나는 사장님에게 드릴 걸 그랬나 봐요.”

내 말에 사장님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어차피 네가 말한 대로 작위가 내려진다면 지금보단 값어치가 떨어질 테니까. 지금 파는 것이 좋지. 덕분에 나도 한몫 챙겼고.”

사장님껜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작위가 수여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사장님은 크게 욕심을 내진 않으셨다.

“일단, 자리 잡는 것을 목표로 하죠.”

그런데 그때 재중이 형이 옆으로 다가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번엔 쉽지 않을 거야.”

“그런가요?”

“어, 다들 목에 힘을 바짝 주고 시작할 거니까. 초반에 견제가 심상치 않을걸.”

“우리가 자리를 못 잡도록 막겠다 이거군요.”

“아무래도 그렇게 될 거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우릴 막지 못한다는 걸 제일 잘 알고 있으니.”

“확실히 생각 이상으로 조사를 많이 했더라고요. 연이라는 사람도 그렇고.”

아예 내 기록을 다 뒤져보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평가가 나왔다.

그건 그만큼 내 쪽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

지금 저쪽의 전력은 잘 모르는데 이쪽은 반대로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집중적인 타깃이 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걔들뿐만이 아니야. 다른 쪽 사정도 비슷할 거다.”

“이번엔 꽤 고생하겠네요.”

매번 1위를 차지하는 길드를 그냥 내버려 둘 만큼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길드의 견제를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할지도.

재중이 형이 잠시 팔짱을 끼고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내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이야기를 좀 틀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슨 말이죠?”

“아무리 봐도 이번에는 탐사의 성격이 강해 보인단 말이지.”

탐사?

경계 너머로 나가서 자리를 잡고 몬스터를 토벌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재중이 형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했다.

“마리아 가르시아가 이야기한 부분에 걸리는 것이 있더라고. 성과라는 부분.”

“영토를 늘리는 일을 이야기한 것 아닌가요?”

“물론 그것도 있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높은 점수를 쳐줄 일은 따로 있을지도 몰라.”

점수라…….

요새 방어전도 점수로 1위를 결정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형태로 흘러갈 수 있다는 건가?

“아마 수많은 길드가 자리 잡고, 서로 치고받을 거야. 거기에 귀족 NPC도 끼어 있고. 유적지라도 있으면 정말 그곳은 전쟁터가 된다. NPC까지 합치면 수만이 한 번에 싸울지도 모르고.”

“경쟁이 심할 거라는 말이죠?”

“그렇지. 그러니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탐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어. 이를테면… 네가 가진 그 유물 말이지.”

“유일 아이템요?”

“그래. 확연하게 앞서 있는.”

르아 카르테.

드래곤 슬레이어.

발루딘.

현재 로스트 스카이의 모든 유일 아이템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

정확하겐 우리 서버에 존재하는 유일 아이템들을.

그리고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것들 중 하나가 더 있다.

“지도 말인가요?”

“어, 네임드들 잡고 나온 지도들. 퍼즐 조각도 그렇고. 특히 그중에 하나는 확실하게 어딘지 알고 있지.”

전에 받은 남작의 영토.

그동안 요새 방어전을 한다고 정신이 팔려서 전혀 신경 쓰지 못 했지만, 시간이 나면 한 번 들리리라 생각은 했었다.

“위치가 바이탄 요새와 레티어스 요새 사이죠?”

비어 있는 영토는 생각 이상으로 꽤 넓었다.

경계에 걸쳐 있어 산맥이 영지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니.

거기서 똑같은 지형을 찾아낸 이쁜소녀가 진짜 대단하긴 하네.

아마 이쁜소녀가 없었다면 한참을 찾았을지도.

“곧 네임드가 어떤 식으로든 잡힐 거야.”

“지도가 다른 사람들 손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지도나 퍼즐 조각은 거래가 가능하니까.”

“누군가 잡기 시작하면 금방 모을 수 있겠네요.”

이번에 다른 길드 그룹이 돈을 얼마나 써댈 수 있는지 확실히 봤다.

그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심은 절대 할 수 없지.

“그러니까. 여유가 있을 때 우리가 미리 다 쓸어야 해. 마침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현재 나와 있는 지도는 총 네 장.

그중 하나가 드래곤의 둥지라면 유효한 건 최대 세 장 정도이려나?

만약 이것만 다 먹을 수 있다면?

경쟁에서 완전히 앞서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사장님을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사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당분간 고생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빠지면 전력이 그만큼 비게 된다.

수호 형이나 최종병기 형이 있다지만, 프로가 바글거리는 다른 길드와 쉽지 않을 터.

나와 재중이 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장님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흐음, 어쩔 수 없지.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사실 잘 모르겠어요. 처음 해보는 일이고.”

“잘못하면 제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구나.”

“네, 그럼 알아서 대처해주세요.”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잘 이야기해 보마.”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까.

중간에 애매하게 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노선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남작 영지로 가보는 게 우선이겠지.”

“그럼, 준비하죠. 아, 그리고 사장님. 확정 강화석 살 수 있다면 좀 구해주세요. 총알은 충분하니까. 웃돈을 줘서라도요.”

“음, 돈이 있어도 어려울 건데. 일단은 알았다. 최선을 다해보마.”

“감사합니다.”

지금 시중에 풀려 있는 +1 확정 강화석이나 10강 정제 강화석 같은 경우 부르는 것이 값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고.

거기다 수량 자체가 얼마 없으니.

사려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막상 파는 사람은 적다.

이러면 가격이 안 올라갈 수 없지.

아마 한두 개만 얻어내도 정말 많이 건졌다고 봐야 할 지도.

정 안 되면 이쪽에서 뭔가를 내어주고 가져올 수밖에.

“그럼, 출발하자.”

바로 우리 팀을 불러 모아 지도 중 하나인 남작 영토를 향해 이동했다.

가는 길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바이탄과 레티어스 요새 사이의 산맥으로 가면 되는 일이라.

기존에 가던 길에서 조금 북쪽으로 이동을 하자 곧 남작령의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 테이든 남작령을 발견하셨습니다. 》

남작령의 형편이 어려운지 정말 산맥의 몇 안 되는 평지 속에 겨우 마을이라고 부를 만한 장소가 보였다.

그걸 본 전사 형이 바로 한숨을 쉬었다.

“이건 남작령이 아니라 어디 난민촌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그 말에 재중이 형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이런 곳에 유일 아이템이 있다는 건가?”

찾아온 우리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낙후된 남작령을 보자 기대감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있기는 하려나?

장소를 잘못 본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작령으로 비공정을 착륙시켰다.

지금 우리가 타고 온 비공정은 이번 이벤트로 받은 그 비공정이었다.

이른바 황실 비공정.

전에 쓰던 베록보다 크고 화려하면서도 주포도 여럿 달린 한 등급 높은 비공정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

비행이 불가능한 지역에서도 비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점.

페가수스처럼 특이한 기능이 이 비공정에도 갖춰져 있었다.

거기다.

비공정 자체가 워프를 할 수 있었다.

비공정을 통째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기능이지.

그렇게 비공정을 착륙시키자 다 쓰러져가는 남작 저택에서 집사로 보이는 NPC가 뛰쳐나왔다.

이곳 관리인이려나?

『 소문이 자자하신 주호 공작님을 뵙습니다. 테이든 남작령에 오신 것을 정말 환영합니다. 』

늙은 집사는 고생이 심했는지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대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라 차마 손대기도 힘들어 보이네.

주변 풍경을 보면 안 그럴 수 없겠다만.

뭐 하나 제대로 되어 있는 시설이 없으니까.

아마 몬스터를 막는 것도 벅찰지도.

“이곳 사정이 꽤 나쁘군요.”

『 …남작 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있었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겠지만요. 』

딱히 큰 감흥은 없다.

지금 이곳에 온 이유는 이 남작령을 살려보겠다고 온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이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습니까?”

바로 유일 아이템이 찍혀 있을지도 모르는 고대의 봉인 지도를 보여주자 집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 흠, 저에겐 이것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잠시 알만한 누군가를 부르겠습니다. 』

그러더니 곧장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난 뒤 집사가 누군가를 데리고 나타났다.

저건?

드워프?

한쪽 눈이 십자로 갈라져 있었고 몸 전체가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드워프.

그간 봤던 드워프들과 좀 모습이 다르기는 한데…….

집사의 말에 우리에게서 고대의 지도를 받아 살펴본 그 드워프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이것은 고대… 왕의 흔적! 』

빙고.

제대로 찾아왔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우리를 경계하며 배틀 액스를 들어 올린 드워프의 모습에 우리도 역시 무기를 꺼내 들었다.

『 돌아가라. 그대들은 이곳으로 갈 자격이 없다! 』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