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61화 (551/1,404)
  • #561화 작위 경매 (3)

    -또 백작이야?

    -이번엔 해원이네.

    -뭐? 해원이 백작을 어떻게? 그쪽 개박살 아님?

    -모르지. 설마 요새전 순위 때문에?

    해원까지 작위를 달자 역시나 채팅창이 들썩거렸다.

    그런 관심 때문일까? 해원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가 나와 재중이 형이 같이 고맙다고 인사 하자 해원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내게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너 뭐 잘못 먹었냐?”

    “그런 건 아니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일부러 돈을 팍팍 퍼주는데 고맙다는 말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지.

    “하, 너도 돈에는 어쩔 수 없네. 그러니까 진작 내 밑으로 들어왔으면…….”

    “뭐래, 됐고. 작위 얻었으면 이제 갈 길 가지?”

    “이 새끼가 진짜.”

    “멀리 안 나간다. 수고.”

    나갈 마음도 없고.

    그리고 해원이 욕을 하든 뭘 하든 오늘 하루는 봐주기로 했다.

    귀한 호구님을 함부로 대하긴 나도 양심의 가책이 있었으니까.

    정말 아주 콩알만큼 약간.

    문전박대까진 아니지만, 자신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안 해원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어디 그 여유가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본다!”

    “네네, 그러시던가요.”

    으득.

    이를 한 번 갈아붙인 해원이 곧장 길드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자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크큭, 우리 호갱님한테 너무 서비스가 안 좋은 것 아냐?”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마주 보고는 그저 웃어 보였다.

    이것도 나름 신경 쓴 건데 말이지.

    그렇게 해원이 해결되고 남은 두 장의 백작 작위의 경매가 계속 이어졌다.

    한 명은 예상했던 대로 꽤 많은 돈을 써낸 연이라는 프로 유저가.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월하향이라는 여성 유저가 가지고 갔다.

    마지막까지 박빙을 이룬 두 유저의 경쟁에 사장님의 표정이 밝아진 건 덤이었고.

    전설, 리더, 태양과 황룡도 따라갔지만, 자금이 부족했는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포기했다.

    《 영혼 길드의 연이 가르시아 제국 백작 작위에 임명됩니다. 》

    《 유니콘 길드의 월하향이 가르시아 제국 백작 작위에 임명됩니다. 》

    -야, 오늘 무슨 날이냐? 백작 풍년인데?

    -해원도 백작이면 말 다함ㄴㅇㄱ.

    -우리가 모르는 보상 있는 것 아님?

    -그런 듯.

    -와, 백작이 하나도 아니고 벌써 다섯이고.

    -그러고 보니 두 명 더 있잖아. 불멸하고 챠밍.

    -남작은 없는데 백작만 일곱임ㅋㅋㅋㅋㅋ

    -작위 얻는 방법 삽니다!

    -기여도 노가다ㄱㄱㄱ

    -그걸로 언제 작위 다냐. 한 몇 달 걸릴 듯.

    연과 월하향이 연속으로 백작 위에 오르면서 채팅창이 북적거렸다.

    아까 해원이 작위를 달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작위 획득 쪽에 가 있었다.

    작위를 달기 쉬운 것이 아니니까.

    특히 백작은 더 그렇고.

    그러나 단순히 작위에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나온 보상들.

    그중에서도 가장 값어치가 있는 대상인.

    『 +1강 확정 정제 강화석. 』

    그리고.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

    『 10강 방어구 정제 강화석. 』

    이 세 가지는 정말 채팅창에 끊임없이 산다는 글이 올라왔다.

    -확정 정제석 삽니다. 무한 매입. 장난 사절!

    -10강 무기 강화석 전부 삼! 일단 귓!

    -방어구 10강 삽니다! 올 현금. 바로 계좌로 쏴드립니다.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위에 따라 정제 강화석을 워낙 많이 뿌려놔서 채팅창인지 경매장인지 구분이 힘들었다.

    -9강 무기 강화석 팝니다! 아르 사절!

    -즉구! 7~10강 확정 강화석 모조리 사요!

    -7~8강 방어구 강화석 있는 대로 삼!

    누가 채팅창에 정제 강화석을 판다는 글을 올리는 순간엔.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ㅍㅍㅍ! 선착!!

    그리고 그때부터는 정말 전쟁이었다.

    -아, 죄송한데 귓속말 너무 많이 와서 다 못 읽어요. 금액 적어서 귓, 가장 높은 금액에 팝니다.

    보고 있던 유저들이 죄다 그 사람에게 귓속말을 보낸 모양.

    그만큼 강화석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 회의장에서 우리들만큼이나 큰돈이 오가는 중이었고.

    물론, 이런 상황은 지금 회의장에 있는 각 길드의 길마들도 잘 알고 있었다.

    간발의 차로 백작 작위를 놓친 전설을 비롯한 다른 길드의 길마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바로 강화석을 사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니까.

    아마도 준비한 자금으로 귀족 작위를 사지 못했을 때 쓰려고 한 것 같네.

    온전히 귀족 작위에만 돈을 쏟을 수 없는 노릇.

    저 수많은 강화석을 쓸어 담지 못하면 앞으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테니.

    그중 몇 개를 건졌는지 각 길드 길마가 먼저 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허탕을 친 전설을 비롯한 리더도 회의장을 떠나갔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백작 작위를 얻은 연과 월하향이 차례로 회의장을 나가면서 재중이 형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중 연이라는 유저가 한 마디를 건넸다.

    “겨우 시작점까진 왔네요.”

    짧게 올린 진회색 헤어와 짙은 눈매가 매서워 보이는 강한 인상을 가진 유저.

    특히 호리호리하면서도 탄력 있어 보이는 몸의 균형이 눈에 들어왔다.

    로스트 스카이에선 커스터마이징으로 많은 것을 변경할 수 있지만, 이런 점은 변경할 수 없다.

    뭐, 변경을 해도 일정 수준까지만 가능하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유저는 평소에 이런 체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는 뜻.

    밖에서 무슨 운동을 한 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수준으로 몸을 단련한 느낌이다.

    일반 유저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오랜만이네.”

    “전에 보고 두 번째입니다.”

    이 유저.

    생각났다.

    콜로세움 때, 스치듯 지나가서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재중이 형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프로 유저 중 가장 앞에 있던 그 유저였다.

    아마 이번에는 이긴다고 했었지.

    다시 나타난 것을 보면 충분한 준비를 하고 왔을 것이다.

    이미 레벨은 상당히 올린 상태고.

    뒤에 스폰을 해주는 기업도 있으니 자금도 충분할 터.

    그런 연을 보고는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빡빡하기는. 농담도 좀 하고 그래라.”

    “그게 필요합니까?”

    “하아, 너 가끔 보면 무섭다니까?”

    “칭찬으로 듣죠.”

    이거 대화가 되기는 하는 건가?

    연이라는 유저는 무뚝뚝함이 표정 전체에 묻어 있는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말하는 것과 표정을 보면 더 그렇고.

    마치 잘 만들어진 기계 같은.

    “널 데리고 무슨 말을 하겠냐… 뭐, 전에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지? 일단 여기 이놈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주호. 랭킹 1위. 쌍검을 주로 쓰나 필요하면 다른 무기도 수준급으로 사용 가능. 추정 RTP 최소 450 이상. 거의 500에 가깝다고 생각됨. 현 시스템 상에서  대부분의 움직임을 구현 가능한 수준. 몇몇 영상에서는 프로 급 수준의 움직임도 보여줌. 개별 무기에 대한 훈련도는 낮음.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많음. 정돈된 스타일이 아닌 임기응변으로 대처를 많이 함.”

    정말 기계처럼 줄줄 읊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뭐야.

    이 사람?

    “이놈 엔느 쪽이야. 집요한 면에서.”

    “아, 그… 스토커?”

    스토커라는 말에 연의 무표정이 잠시 깨지며 눈썹 한쪽이 확 올라갔다.

    그때, 갑자기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여성이 뛰어 들어왔다.

    “캬아악! 스토커 아니라니까!!”

    엔느?

    아직 안 갔던 건가?

    그런 엔느를 본 재중이 형이 회의실 문을 엔느와 번걸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너, 회의실 문에 귀 대고 있었지?”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재중이 형이 농담으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엔느의 얼굴이 빨갛게 변해 버렸다.

    당황한 표정이 가득한 채로.

    “어, 어떻게 알았어요?!”

    “스토커 소리를 듣고 1초 만에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정말! 스토커 아니야!”

    뭔가 정신이 없어…….

    이 상황을 지켜보던 챠밍을 비롯한 우리 팀도 얼얼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명은 스토커에 한 명은 내 이력을 줄줄 읊고 있고.

    화련의 언니도 그렇고 진짜 내 주변에는 왜 이런 사람들만 모이는 걸까?

    왠지 엄청나게 피곤하네.

    엔느가 들어와서 시끌벅적해진 회의장 속에서 재중이 형이 연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길 자신은 있고?”

    그러자 연이 흘깃 나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아마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뭐지?

    거의 확신에 가까운 저 표정은?

    분명히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표현.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호오? 나도 이긴 앤데?”

    “혹시 예전 대회 말하는 겁니까? 그땐 제대로 된 실력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RTP 저하가 온 시기라 온전히 싸우지도 못했죠.”

    “이거 참… 조사 많이 했네.”

    재중이 형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연을 바라보았다.

    그런 재중이 형을 보면서 연이 다시 말을 이었고.

    “3연속 개인 우승 타이틀을 가진 당신이 갑자기 은퇴한다고 하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문제였습니다. 조금 조사를 하긴 했지만.”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잠시 한숨을 쉬었다.

    “DS, 이 양반들 안 되겠네. 정보가 줄줄 새잖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비슷한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까요. 거기다 약간의 상상력이 들어가긴 했습니다만.”

    “뭐 그럼 됐고.”

    “그런데 어떻게 아직까지 접속해 있을 수 있는 겁니까? 분명히…….”

    전혀 의외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까지?

    무슨 말이지?

    그때 뒤에서 보고 있던 여인이 연의 팔을 잡았다.

    월하향이라고 했던가?

    검고 긴 생머리가 흘러내려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보이는 외모에서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 역시 굉장히 나긋했고.

    “거기까지만.”

    월하향이 막아서자 연도 더 이상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연이 날렵하고 단단한 느낌이라면 이 여인은 잘 정돈된 그런 분위기인가?

    그런 월하향이 재중이 형을 왠지 모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바보가 실례했어요. 챔피언.”

    “아직도 날 그렇게 부르냐?”

    “싫으신가요?”

    “아니, 뭐.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너뿐이니까.”

    이쪽도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이 형.

    프로 중 여성 유저하고 엮이지 않은 사람이 없잖아.

    엔느도 그렇고.

    방금 이 월하향이라는 사람도.

    그대로 연도 월하향도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다가 곧 재중이 형에게 인사를 한 뒤,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엔느도 뒤를 이어 밖으로 향했고.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해졌어.

    그때 가만히 보고만 있던 막내별이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불멸 님, 혹시 저 여자하고 그렇고 그랬던? 쳐다보는 눈빛이 장난이 아니던데!”

    그 말에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까지 한 눈빛으로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마치 가려운 곳을 막내별이 긁어준 것처럼.

    챠밍은 저런 것을 물어볼 리가 없었고, 소녀는 부끄러워 못 물어본다.

    나르샤 누나가 있지만 남의 사생활을 그렇게 파고 들 성격은 또 아니었고.

    전사 형도 궁금했는지 귀를 쫑긋했다.

    사실 나도 좀 궁금했으니까.

    모두 궁금하기는 한데 참고 있던 것을 막내별이 물어보자 재중이 형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 거냐.”

    그 말에는 내가 바로 대답했다.

    “꼭 대답이 듣고 싶어요? 실망할 텐데?”

    “아니, 안 들어도 되겠네.”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지금은 닫힌 회의실 문을 바라보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음… 뭐, 굳이 말하자면 내 제자.”

    “네?”

    다들 재중이 형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월하향. 프로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내가 다 키웠다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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