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화 마력 봉인 (4)
<주호> 테이밍 메시지 떴어요!
<불멸> 그래? 그럼 계속 가야지. 체력 얼마 안 남았겠네.
<주호> 네, 여기서 손 놓기는 좀 아깝죠.
순간 테이밍에 대한 유혹이 나를 붙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테이밍을 하면 기다릴 필요 없이 일단 상황 종료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게 아니다.
거점을 만들고 수많은 유저를 제물로 삼아 레벨을 올리는 작업, 발리스타를 설치해 비공정으로 붙잡아두는 일련의 과정들 모두 오직 하나만을 위한 준비였다.
바로 오버된 드래곤을 잡는 것.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돌아올 필요도 없었다.
그냥 던전에 들어가서 아무 때나 드래곤을 상대하면 되니까.
이건 오직 지금만 할 수 있는 일.
<주호> 그럼 이대로 갑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선택해 바로 포기를 눌렀다.
《 아퀼라스의 테이밍을 포기합니다. 아퀼라스가 더욱 날뛰게 됩니다. 》
《 아퀼라스가 폭주합니다. 》
갑자기 드래곤이 미친 것처럼 몸을 틀면서 나를 떨어뜨리려고 했다.
이제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몸부림에 밧줄을 잡고 있는 두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크윽.
가뜩이나 버티기 힘든데 더 난폭해지다니.
메시지를 보니 이제껏 테이밍을 포기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포기를 하는 순간 몬스터가 더 날뛰는 것 같았다.
주변에 연결된 수많은 비공정이 무게 추 역할로 드래곤을 눌러주고 있기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튕겨 나가도 벌써 튕겨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차마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던 챠밍과 이쁜소녀가 걱정이 되는지 메시지를 보냈다.
현재 나 외에는 드래곤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뒹구는 몸부림과 주변에 퍼진 화염이 있었으니까.
<챠밍> 조금만 힘내요!
<이쁜소녀> 파이팅!!
그래,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튕겨 나갈 것 같은 느낌에도 억지로 버텼는데 그 순간 또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아퀼라스의 체력이 일정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체력 감소 옵션이 더 이상 발동되지 않습니다. 》
응?
이건 또 무슨…….
그러고 보니 좀 전부터 드래곤 슬레이어로 공격을 아무리 해도 드래곤이 쓰러지지 않았다.
이전에는 체력 감소 옵션이 발동될 때마다 눈에 보일 정도의 경직을 보여줬는데….
지금은 아예 그런 반응조차 없었다.
<주호> 형, 난감하게 됐어요. 체력 감소 옵션이 안 통하는 것 같아요.
<불멸> 뭐?
<주호> 시스템 메시지가 알려주네요.
<불멸> 으음, 오버는 옵션만으로 잡는 것을 안 되도록 해둔 건가… 아니면 그사이에 잠수함 패치를 했던가.
확실히 제국에서 드래곤을 잡았을 땐, 이런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재중이 형 말대로 중간에 손을 댔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아마 드래곤 슬레이어의 옵션으로 드래곤을 학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 같기도 한데.
쉽게 납득하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욕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불멸>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는 딜로 찍어 눌러야 해.
<주호> 네, 그럼 좀 부탁해요.
체력 감소 옵션이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딜을 넣어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혼자 공격해서 잡을 수 있다면 베스트겠지만.
드래곤의 체력 회복 속도보다 더 깎아내려면 결국 모두가 함께 공격해야 했다.
재중이 형이 곧장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자 진형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에는 드래곤을 어떻게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쪽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온전히 공격을 위해 드래곤을 포위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곧장 드래곤에게서 떨어져 내렸다.
포화가 시작되면 같이 휘말릴 수도 있었으니까.
등에서 떨어지자 드래곤의 시선이 바로 내게 돌려졌다.
크르륵!
이거 어지간해서는 어글은 안 넘어갈 것 같고.
내가 드래곤 주변을 돌면서 시선을 끄는 사이 준비가 끝난 듯 사방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불멸> 시작한다.
그러고는 형형색색의 이펙트로 물든 화살들이 일제히 드래곤으로 쏘아졌다.
동시에 그동안 마력을 세이브한 마법사들로부터 각종 공격 마법들이 시전되었고.
그간 마력을 아껴놨기에 각자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력을 마력에 구애받지 않고 넣을 수 있었다.
파앙!
쿠쿵!
콰쾅!
드래곤의 거대한 몸체가 무수히 많은 공격을 받아내면서 거칠게 흔들렸다.
기동력이 빠진 드래곤은 거대한 만큼 맞추기가 쉬웠으니까.
빗나가는 공격 없이 대부분의 공격이 드래곤의 몸을 강타했다.
크아아아!
특히 드래곤의 비늘이 상당수 뜯어진 상태여서 그런지 공격 자체가 잘 먹혀들어 가는 모습이었다.
물론, 비늘이 덮여 있는 곳은 거의 아무런 대미지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았고.
화살이 그대로 튕겨 나가거나 마법이 폭발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만 봐도 그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 집중포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압도적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한 유저의 손에 완성되었다.
다른 모든 유저의 공격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 정도의 화려함.
그것도 조금 전 경험했던 그 마법이 챠밍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 메테오 스트라이크! 】
풀 차징된 마법이 시전되자 검은 구름이 열리며 그 사이로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내렸다.
드래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마법이 갑자기 떨어지자 오히려 아군들이 더 놀랐다.
아니, 드래곤이 썼다고 착각하고는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우왁! 뭐야?!”
“메테오?!”
“드래곤이 쏜 거야?”
“죽는다! 다 튀어!”
“아냐! 우리 편! 아군이야! 아군!”
“대체 누가?”
“챠밍?!”
“와씨, 레알? 유저가 이걸 쓴다고?!”
“드래곤보다 좀 작기는 해도 진짜 메테오잖아!”
“대박!”
챠밍이 처음에 이걸 썼을 때는 제국에서 황족들을 죽이기 위해서 쓴 것이었다.
그래서 유저들이 잘 모르기도 했고.
챠밍이 얼마나 많은 마법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깜짝 놀라겠지.
드래곤이 쓰는 마법 외에도 레비아탄에게 얻은 마법도 있었으니까.
캐릭터 자체의 값어치로만 치면 챠밍이 전 서버에서 제일 비쌀 것이다.
그때, 내게 끌렸던 어글도 메테오 스트라이크라는 위협 속에서는 잠시 풀린 듯 드래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드래곤이 단순하게 나를 계속 바라보다가 메테오에 맞았으면 베스트겠지만 생각 이상으로 지능이 높아 보였다.
어느 쪽이 더 위협적인지 순간적으로 판단해 떨어지는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올려다보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그 입에서 마법진이 연속으로 생성되었다.
브레스?
그건 안 되지.
아마 드래곤의 브레스라면 챠밍의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억지로 틀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유저가 쏘는 메테오는 드래곤의 그것보다는 규모가 작으니까 튕겨내기도 더 쉬울 터.
곧장 집중포화 속에 억지로 뛰어들었다.
“어어?!”
“근접은 들어가면 안 돼!”
“미쳤나 봐.”
“아냐, 주호잖아!”
“전부 공격 중…….”
워낙 집중 포격 중이라 누군가 드래곤에게 뛰어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 같았다.
이건 솔직히 버겁지.
드래곤을 잡으려다가 내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 화룡화! 】
그러자 몸에 전달되는 부담이 한층 줄어들었다.
속도 역시 한층 올라가 더 빠르게 드래곤의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설마 이것도 안 통하진 않겠지.
시선이 온전히 공중으로 쏠린 사이 바로 점프를 해 드래곤의 입가를 드래곤 슬레이어로 올려쳤다.
《 치명타가 적용되어 마력 봉인이 적용됩니다. 》
《 아퀼라스의 브레스가 중단됩니다. 》
휴, 이건 되는군.
혹시나 이게 안 됐으면 어쩌나 했다.
만약 드래곤이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쳐내서 우리 연합 쪽으로 날려 버리면 그때부터는 재앙이니까.
메테오에 비공정 중 다수가 터지면 드래곤을 누르는 무게가 확 줄어들 테고 그럼 바로 드래곤이 풀려나게 된다.
정말 재수가 없다면 드래곤이 도망가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는 하늘을 바라보자 코앞까지 브레스가 다가와 있었다.
이건 매번 고생인데…….
바로 발을 박차서 드래곤에게 최대한 멀리 도주했다.
화룡화가 되었다지만 메테오에 맞으면 이쪽도 쉽게는 못 넘어갈 테니.
그리고 바로 메테오가 떨어져 드래곤의 거대한 몸체를 두들겼다.
낙하 충격과 더불어 아주 강력한 폭발과 함께.
쿠웅!
콰앙!
크에에엑!
드래곤의 메테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드래곤을 그 자리에서 다운시켜 버렸다.
아마 이전에 맞은 메테오에 비늘이 깨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거기다 챠밍의 공격으로 더 많은 비늘이 깨지거나 부서져 떨어졌다.
이젠 시작할 때와는 달리 드래곤의 비늘 중 대다수가 그을리거나 깨진 것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어서 사장님의 외침이 들렸다.
- 전원! 주포 발사!
그런 사장님의 신호에 쿨이 돌아온 비공정의 주포들이 한꺼번에 드래곤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쿠왕!
콰콰쾅!
이거라면.
남은 체력을 확실히 깎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저들의 혼신을 다한 공격과 비공정의 주포가 메테오에 경직된 드래곤을 연신 두들기자 드래곤의 비명이 한껏 더 커졌다.
키에에엑!
드래곤이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꼬는 모습은 지금까지 못 보던 모습이기도 하고.
저건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자 연합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공격이 먹힌다!”
“잡을 수 있어!”
“너도 몬스터일 뿐이야!”
“오늘 역사를 만들자!”
잡기만 한다면 제국의 도움이 아닌 유저 단독으로 드래곤을 잡을 서버 최초의 레이드다.
그만큼 상징성이 있기도 하고.
어쩌면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드래곤의 몸 전체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비늘 역시 마찬가지였고.
뭐지?
저런 패턴이 있었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패턴.
이건 느낌이 쎄한데…….
본능적으로 몸에 신호가 계속 울렸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어.
갑자기 드래곤의 시선이 내게로 돌려졌다.
그 눈빛은 마치 죽음을 선고하는 것처럼 강렬했다.
대체 뭘 하려고?
순간 드래곤의 가슴 쪽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저건?
혹시 심장인가?
왜 저것만?
나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모든 유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다들 드래곤이 뭔가를 할 것 같아 자동적으로 무기를 앞으로 들어 올렸고.
지금껏 드래곤이 뭔가를 꺼내놓기만 하면 수백, 수천이 죽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만 해도 그렇고.
오버된 상태라 숨겨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 보면 다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연합 사람이 모두 그렇게 긴장하면서 드래곤을 노려보는 가운데 또 다른 변화가 생겨났다.
드래곤의 몸 전체에 그 열기가 퍼지더니 드래곤의 신체가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신체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울 정도로.
설마…?
여기서 더 강해지는 건 아니겠지?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데 더 강해지면 비공정의 무게로도 절대 눌러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어지간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재중이 형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전부 다 튀어! 자……!”
뭐?
재중이 형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거대해진 드래곤의 몸이 통째로 폭발했다.
그리고 도저히 눈도 뜰 수 없을 것 같은 빛과 어마어마한 폭발이 사방을 쓸어가면서 우리를 덮쳐왔다.
미친.
이건 피할 수 없잖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