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화 승자의 전리품 (1)
운영자들이 야심 차게 준비했던 황위 쟁탈전은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싱겁게 끝나 버렸다.
압도적인 결과만 남기고.
거기다.
《 가르시아 제국과 천상 연합이 적대 관계가 됩니다. 》
《 가르시아 제국과 몬스터X 연합이 적대 관계가 됩니다. 》
:
《 가르시아 제국과 에어썬 연합이 적대 관계가 됩니다. 》
그동안 2황녀를 공격하려 했던 모든 연합에 대해 적대 관계가 선포되었다.
예전에 가짜 황제 때문에 우리가 적대 관계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적대 관계가 공식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나가자 그동안 2황녀를 죽이려고 작당을 했던 적 연합 측에서 한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젠장, 살았잖아!
-이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임?
-어떻게 되긴. 망했지.
-괜히 끼어들었나?
-그치, 저놈들이 준비 없이 이럴 리 없다니까….
-쪽수로 밀었는데도…….
-제국에 있는 애들 다 튀어! 방금 NPC에게 공격당함.
-아- 놔. 미치겠네. 제국 이제 못 들어가는 거야?
-아마도. 죽어도 안 풀림. 제국 외곽에서 살아나더라.
-미쳤네. 진짜 어쩌라고.
-일단 용의 대지 거점으로 튀셈. 이제 거기가 살 길임.
-ㅋㅋㅋㅋㅋㅋ제국에 쫒기기잼
-퀘스트 포기하고, 제국 안 가면 됨. 상관없음.
-하긴 사냥만 할 거면… 그래도 좀 찝찝하긴 하다.
-언젠가 풀림.
-이왕 이렇게 된 거… 용대 앞 지키자.
-그래, 나오면 바로 잡는 거임. ㅇㅈ?
-ㅇㅇ. 2황녀만!
-혹시 알아? 2황녀 죽이고 나면 왕이라도 될지.
채팅창을 본 전사 형이 옆에 서 있는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시선을 주면서 말했다.
“이것들 완전 막 가는데? 철수 안 할 생각이야.”
“흐음, 지금 당장 나가는 건 무리겠죠.”
“하긴, 잘못하다가 우리 황제님이 공격당하면 곤란하지.”
지금 용의 던전 내부와 바깥쪽에 적 연합 유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대로 나가면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수 있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겠네요.”
딱히 시간제한은 없으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저들도 언제까지 진을 치고 있지는 못할 터.
만약, 마리아 가르시아가 우리처럼 텔레포트라도 해서 돌아갈 수 있다면 베스트지만 아마 그렇게는 못 하는 것으로 보이니.
그때, 가만히 서 있던 마리아 가르시아가 입을 열었다.
『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을 불렀어요. 』
“헙,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방식은 모르겠지만, 아마 유저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서로 연락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어찌 됐건 마리아 가르시아가 황제가 되면서 적이었던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휘하로 들어왔다.
속사정이야 어찌 됐건 당장은 우리 편이라는 말이기도 하고.
옆에서 뭔가를 생각하던 챠밍이 내게 물었다.
“오빠, 두 공작이 우리를 적대하지 않을까요?”
“글쎄, 솔직히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1황자를 죽인 것은 재중이 형.
그 와중에 테인 공작을 붙들어 놓은 것은 나.
그리고 3황자를 죽인 것도 나.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보기에는 우리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을지도.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자동적으로 마리아 가르시아에게로 향했다.
이쪽은 꽤 민감할 수가 있는 문제라.
그 문제에 대한 확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여기 있는 황제밖에는 없었다.
우리를 한 번씩 쭉 바라본 마리아 가르시아가 관련된 말을 꺼냈다.
『 적법한 절차였습니다. 그대들을 적대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
전사 형이 그 말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휴, 한숨 놓았군. 테인 공작하고 다시 붙으라면 간담이 서늘해. 솔직히 속도를 못 따라간다고.”
다른 사람들도 이건 마찬가지라.
거의 일인군단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니까.
아마 테인 공작 한 명만 풀어놓아도 지금 바깥에 진을 친 유저들을 다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이건 확신에 가깝다.
실제로 붙어봤으니까.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럼 조금만 쉬죠. 곧 해결될 것 같으니까.”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채팅창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 게 왔나?
-우왁! 저 새끼 뭐야?
-……갑옷이 썰렸잖아!
-검이고 방패고 다 썰리잖아!
-대체 저 붉은 기운은 뭐냐고!
-……발. NPC잖아.
-저딴 NPC가 제국에 있었어?
-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이동 속도가…….
-상대도 안 돼. 너무 빠르다.
-막아! 막으란 말이야!
-한 번에 수십이 썰려나가는데 뭔 수로 막아!
-체력 깎으면 우리가 이겨!
-마법사들 그냥 광역기 때려 부어!
우왕좌왕.
난리법석.
굳이 채팅창이 아니더라도 BJ가 찍어서 보여주는 광경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양 떼들 사이에 늑대 한 마리를 놓아두면 저런 그림이 나올까?
“이건 학살이잖아?”
놀란 표정을 한 전사 형의 말에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게임 자체가 안 된다.
애초에 어느 정도 차이가 나야 한 대라도 때려 볼 텐데 지금은 압도적이었다.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썰면 써는 대로.
유저 수십이 동시에 죽음의 빛으로 변하는 광경은 쉽게 볼만한 장면은 아니었다.
확실히 저 붉은 기운 자체가 사기지.
아니, 꼭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테인 공작 자체가 사기다.
거기다.
-피, 피해!
-마법은 또 뭐냐고! 법사들 돌았음??
-……미쳤어!
-유저가 아니고 저것도 NPC임!!
-대체 저걸 몇 개나 날리는 거야!
하나하나가 엄청난 크기의 거대한 불덩어리들.
그것도 하늘 가득 빼곡하게 날아오는 모습은 그 하나만으로도 멋진 광경이었다.
얼핏 보면 수십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던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절대 아니었다.
단독 공격.
테인 공작과는 또 다른 괴물.
“그때는 정말 많이 봐준 거였네요.”
지금은 저런 마법사를 뚫고 3황자를 죽인 일이 거의 기적에 가까운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 화염 마법 한 발, 한 발이 필살기 급의 위력을 남기며 용의 던전 외부 필드에 버티던 유저들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쿠쿠궁!
“꺅!”
“우와, 던전 안이 떨려?!”
다들 깜짝 놀라서 흔들리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용의 던전 최하층이 충격에 흔들릴 정도의 위력.
압도적인 위력과 범위로 화염이 터져나가자 유저들이 도저히 버틸 수가 없고 폭발에 꺼져 버린 필드 곳곳에서 죽음의 빛이 난무했다.
엄청나게 잘 드는 칼과 최강의 포.
둘의 조합은 그 자체로 악몽에 가까웠다.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가짜 황제를 쫓아내지 않았으면 우리가 저놈들하고 싸웠겠네.”
당장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게 단둘이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용의 던전 주변이 거의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국의 다른 병사들이 대기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저 모습을 보면 딱히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두 공작의 위력 시위에 질린 적 연합 유저들은 점점 전투 지역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건 말도 안 되잖아.
-난 튑니다. 다들 ㅅㄱ
-나도 튄다. 이건 미친 짓이야!!
-제국을 무시한다고? 까라고 해. 답도 없구만.
-황자들만 안 죽었어도 저놈들이 우리 아군일 텐데.
-그러면 뭐하냐. 지금은 적이잖아.
-거점 쳐들어오면 막을 수 있을까?
-무리.
-첫 단추부터 잘못 넣었어. 망한 듯.
“자업자득이네요.”
괜히 우리에게 고춧가루 좀 뿌려보겠다고 연합군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단 두 명의 공작에게 무참하게 썰려 버렸다.
재중이 형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이래서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니까?”
그렇게 적 연합군이 패퇴하고 두 공작이 용의 던전 안으로 입장하는 모습이 방송에 잡혔다.
용의 던전 안의 유저들?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테인 공작의 공격을 피해 도망갈 장소는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다른 방송을 돌려본 결과 테인 공작이 가는 길이 전부 죽음의 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중이 형이 탐스럽게 테인 공작을 바라봤다.
“저 붉은 기운을 내뿜는 기술은 꼭 배우고 싶은데?”
“스킬이겠죠?”
“아마도? 방법이 없으려나…….”
얻을 수 있는 생각을 하는 도중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동시에 용의 던전 최하층에 도착했다.
저들이 여기 도착했다는 사실은 오는 길에 있던 유저들을 싹 녹여 버렸다는 뜻이고.
그리고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성큼성큼 걸어오면서 덤벼드는 용아병을 한 방에 차례차례 찍어 눌러 버렸다.
역시…….
용아병은 상대도 안 돼.
일단 다가오는 두 공작을 보면서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그런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마리아 가르시아의 앞에 서더니 잠시 마리아 가르시아를 쳐다보기만 했다.
마리아 가르시아가 확답을 주기는 했지만 저 정도의 인물들이라면 칼을 거꾸로 잡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실제 루젠 공작의 표정이 좋지 않기도 했고.
테인 공작도 그렇게 좋다고만 볼 수는 없었다.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녀석들을 쳐야…….
굳은 표정으로 마리아 가르시아를 바라보던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정적을 깨고 움직임을 보이자 바로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손에 들었다.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게.
그런 그들을 보면서 마리아 가르시아가 굳게 말을 꺼냈다.
『 못마땅하신가요? 』
마리아 가르시아의 말에 테인 공작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 황위 쟁탈전에서 승리한 유일한 계승자입니다. 저희가 모시던 분이 누구였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승리해서 남은 자가 가장 강하다. 선친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입니다. 』
그리고 마리아 가르시아가 고개를 돌려 루젠 공작을 보자 루젠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 마법사 군단은 황제만을 지지합니다. 』
그 말을 듣자 마리아 가르시아의 표정이 온화하게 풀어졌다.
『 이제부터 그대들은 내 신하입니다. 』
그러자 두 공작이 동시에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무릎을 꿇었다.
『 신, 테인 공작 새로운 황제를 뵙습니다. 』
『 신, 루젠 공작 새로운 황제를 뵙습니다. 』
마리아 가르시아도 그런 두 공작을 보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이 여자도 보통이 아니네.
여차하면 자기 몫을 딸 수 있는 공작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보였던 모습은 찾아보기도 힘들게.
아마 2황녀가 황녀가 됐을 경우.
이뤄지는 시나리오인 것 같았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나올 수 없는 시나리오일 테고.
운영자가 만들어만 뒀지 실제로 이 시나리오가 나온다고는 상상도 못 했을 지도.
그때,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의 고개가 동시에 내게 돌아갔다.
그리고 둘의 활활 타오르는 눈을 보고 있자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아직 앙금이 남은 것은 아니겠지?
그러면 좀 곤란한데…….
저쪽은 황제라서 못 덤빈다고 해도 내 쪽은 또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황녀의 칼이었으니까.
『 그는 황위에 오를 수 있게 도와준 유일한 아군입니다. 』
마리아 가르시아의 말이 있자 못마땅한 듯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서로를 바라봤다가 곧 고개를 돌려 버렸다.
역시 쉽진 않네.
그런데 나를 바라보던 마리아 가르시아가 돌발 발언을 했다.
동시에 울리는 시스템 메시지.
《 황위 쟁탈전 기여도 1순위 주호 님의 보상이 책정됩니다. 》
《 마리아 가르시아가 부여할 수 있는 총 기여도 10만 포인트 중 5만 5천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 기여도에 맞는 보상을 기존 보상에서 추가로 합산합니다. 》
『 주호 남작. 그대는 최고의 기여를 했어요. 그런 그대를 높이 사 그대를 지금부터 제국의 세 번째 공작으로 임명합니다. 』
뭐?
세 번째 공작?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