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화 유일한 계승자 (5)
이미 대부분의 후계자가 죽은 지금.
황제 쟁탈전이라는 콘텐츠가 원래 의도와는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다.
애초 운영자들은 이러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각 진영이 서로 물리고 물리면서 좀 더 풍부한 이야기와 재미를 이끌어내려 했겠지.
하지만 그러한 바람은 현재 산산이 부서진 채, 색다른 그림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2황녀 사냥’이라는 이름을 달고.
꿩 대신 닭이라고는 해도 지금 이보다 더 핫한 콘텐츠가 또 있을까.
다른 서버에서 맛볼 수 없는 진귀한 콘텐츠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기본 세력이 없다며 거들떠보지 않았던 2황녀의 생김새부터, 어떻게 우리가 2황녀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우리 연합이 보호하는 2황녀를 쉽게 잡을 수 있는지 따위를 말이다.
그런 관심은 그동안 불패에 가까운 전적을 냈던 우리였기에 더욱 심한 듯 보였다.
그리고 2황녀를 잡으면 과연 황제는 어떻게 되는가.
오리무중으로 변한 이 콘텐츠에 오히려 더 많은 유저가 지켜보는 결과를 낳았다.
기본 세력이 단단했던 1황자, 3황자, 1황녀가 맞붙어서 누군가가 황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형화된 뻔한 스토리에 가까웠다.
그런 뻔한 스토리보다 2황녀를 죽여서 황제 자리가 무주공산이 되는 스토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았고.
이제는 뒤가 궁금해진 유저들의 열렬한 관심 속에 게임 방송과 더불어 개인 방송 역시 꾸준하게 채널을 늘려가며 현장을 중계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심플하다.
유저들이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딱 그 관점에서만 보면 지금 이 콘텐츠는 확실하게 성공이었다.
“와아아~!”
“바로 들어가!”
“몬스터 연합은 정문!”
“에어썬은 후문!”
“천상은 성벽!”
그 밖에도 참가한 각종 연합과 길드의 외침이 거점 가득 울려 퍼졌다.
한 영상에 다 잡히지 않을 정도의 유저들이 거점을 완전히 둘러싸고 한꺼번에 돌진하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장관이란 말이 아깝지 않았다.
“2황녀만 잡으면 게임 끝난다! 2황녀부터 죽여!”
“죽더라도 넘어!”
“전부 달려들어!”
그런 적들이 뚫으려는 용의 대지 거점은 화련의 투자 덕분에 꽤 화려한 방어력을 보유했다.
성벽은 유저들이 한 번에 뛰어넘지 못할 정도로 높았고.
공중으로 날아드는 몬스터를 견제하기 위한 방어 시설 역시 구비한 상태.
이 방어 시설 때문에 비공정은 거점을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다 방어 NPC 역시 수준급으로 준비되어 있었고 성벽 위로 우리 쪽 연합 유저들이 올라서면 방어력이 한층 더 올라가게 된다.
거점을 공격하는 적이 많다고는 하나 성벽을 끼고 방어를 하는 우리를 상대해서 마냥 쉽게 공략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변이 일어났다.
거점의 성벽에 서 있던 우리 연합 사람들이 하나둘 빛으로 변해 그 자리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쟤들 뭐야?”
“뭐, 뭐임?”
“이거 대체…….”
“ㅋㅋㅋㅋ인원 많아서 튄 듯! 자, 공격이다!!”
“크크, 그래. 니들이 아무리 강해도 이 숫자엔 무리지!”
“망설이지 말고 가즈아!!”
“2황녀가 눈앞이다!”
적 연합 유저들이 일제히 성벽을 타거나 성문을 공격하면서 거점을 무너뜨리기 위한 파상공세를 펼쳤다.
우리 쪽에서 방어하기를 포기해 버려서 그런지 더 쉽게 거점을 공략해 갔고.
NPC가 남아 있다고는 하나 이만한 수의 적들을 감당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하나둘 성벽을 넘기 시작했고 곧 거점의 성벽은 적 연합의 유저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2황녀를 찾아 거점을 훑었다.
한편으로 이렇게 거점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울부짖는 누군가도 있었고.
<유미> 흑흑, 미리 연락 좀 주시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주호> 아, 오랜만입니다.
사실 까먹고 있었다.
아니, 이번엔 전혀 고려를 안 한 쪽이기도 하고.
<유미> 저 위에서 미친 듯이 까였어요. 단독 못 따왔다고요.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할 처지가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주호> 아쉽게 됐네요.
<유미> 정말 이 대박 콘텐츠를! 조금만 미리 보여주셨어도 완전 난리가 났을 텐데…….
아쉬워하는 유미를 보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부터 방송을 타려면 얼마든지 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작업은 중간 과정이 드러나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방송 불가인 것이 너무 많았다.
생각해 보니 너무 많아서 세기도 힘든데?
정상적인 진행을 한 기억이 드물기도 하고.
이번에도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사용해 황자들과 황녀를 학살한다는 사실이 미리 알려졌다면 오히려 우리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이번 역시 방송은 불가였다.
그리고 더더욱 할 수 없는 이유는 2황녀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힌트를 줄 수도 있으니까.
철저하게 2황녀를 숨겨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유미와의 협력 자체가 불가능했다.
고려를 아예 하지 않았기에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유미> 그런데 거점 저렇게 내주셔도 돼요?
<주호> 아, 그렇게 됐어요.
<유미> 흐응, 뭘까요? 보니까 거점에도 안 계신 것 같고…….
유미가 의아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거점을 아예 싹 비워 버렸고, 거기다 우리 역시 거점에서 발을 뺐으니까.
사실 적 연합들도 지금쯤 엄청나게 당황하고 있을 터.
“대체 2황녀는 어디에 있는 거야?!”
“아냐! 주호를 찾아! 주호가 데리고 있다!”
“주호는 어디임?!”
“불멸 조심해! 혼자 상대하지 말고!”
“벌써 도망간 거 아냐?”
“아무 데도 없잖아!”
“2황녀고 주호고 아무것도 없어!”
“도망가는 비공정이나 탈것 찾아봐!”
아무리 찾아봐도 있을 리가 있나.
당황해서 멍하게 있는 적 연합들을 영상으로 보면서 우리 모두 배를 잡고 웃어버렸다.
전사 형 역시 마찬가지.
한껏 즐거운 표정으로 영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쟤들 이제야 알았는데?”
“네, 지금쯤 속았다는 걸 눈치챘을 겁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등골이 오싹할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을 테니.
그리고 아주 멍청이만 있는 것은 아닌지 바로 몇몇 유저가 외쳐댔다.
“이미 빼돌렸어!”
“이대로 2황녀 못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이벤트 끝날 때까지 찾지 못하면 전부 반역이야! 제국 전체와 싸워야 한다고!”
“젠장, 이거 엿 된 것 아냐?
“미친……!”
“지금 거점이 중요한 게 아냐! 빨리 전 맵을 뒤져야 해!”
“흩어져! 신화 연합 머리카락이라도 찾아와!”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적 연합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수많은 방송을 타고 전 서버 유저들에게 퍼져나갔다.
뿐만 아니라 방송을 보고 있든 수많은 사람들까지 이 장면을 보게 되었고.
자기들 딴에는 우리 연합을 잡고 최고의 자리를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분탕질을 할 생각이었을 텐데 남은 것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대대적인 망신.
오직 그것 하나만 남아버렸다.
특히 해원이 똥 씹은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모습이 방송을 타자 그 방송을 내보내던 BJ를 공격하기도 했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크크, 표정 좋고, 각도 좋고.”
전사 형도 한마디 했다.
“해원이 화면을 잘 받습니다. 부럽게.”
그 말에 모두 배를 잡고 웃어버렸다.
저렇게 잡히는 건 절대 사양이지.
전국적인 망신인데.
그렇게 웃고 즐기는 사이, 용의 던전 5층까지 내려와 적당한 방에 자리를 잡고 멈췄다.
“이제부터는 본 게임이네요.”
“아아, 찾느냐 못 찾느냐의 싸움이겠지. 우리는 이제 잘 버텨야 하고.”
고개를 돌려 사장님을 바라봤다.
“따라오신다고 고생하셨어요. 지금부터는 전부 나가도 됩니다.”
“우리가 뭐 한 게 있나. 그냥 따라오기만 했는데.”
“그럼, 시간 맞춰서 한 분씩 들어와 물약만 건네주세요.”
“알았다.”
그렇게 사장님을 비롯한 최강 길드원 대부분이 빛으로 변해 사라져갔다.
저들의 역할은 물약 보급.
시간에 따라 물약을 주고 나가면서 물약 관리를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 팀과 2황녀만 남았고.
“형, 먼저 나가요.”
재중이 형을 바라보면서 말하자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따 교대하러 들어올게.”
나와 재중이 형이 자리에 동시에 없는 경우가 제일 위험하다.
그래서 서로 제한 시간을 녹일 수 있도록 따로 빠지기로 했고.
그렇게 남은 우리 팀과 용아병을 상대하면서 드래곤 슬레이어를 성장시켰다.
얼마 뒤, 재중이 형이 들어오자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를 넘겨주었다.
“형, 그럼 부탁해요.”
“아아, 안 부셔 먹고 잘 키워놓으마.”
재중이 형이 쌍검을 사용하지 않아 그렇지 쓰면 정말 잘 쓸 수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드래곤 슬레이어를 원활하게 키우기 위해서 넘겨준 것도 있고.
르아 카르테는 다른 이유로 넘겨주었다.
물약을 최대한 세이브하기 위해.
한정된 물약 안에서 버티려면 르아 카르테의 존재는 필수였다.
그렇게 로테이션을 돌려가면서 용의 던전에서 버틴 지 삼 일째 되던 날.
“드디어 발견했나?”
전사 형이 밖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영상을 켜놓았는데 삼 일간 정말 처절한 수색이 있었다.
유저들이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황녀를 찾기 위한 그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
물론, 삼 일 동안 신화 연합의 그 어떤 흔적조차 찾지 못한 채 그저 시간만 흘러갔다.
애초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상황이라 찾을 방법이 없지.
그러다 마지막으로 발견한 곳이 이곳.
용의 던전.
언젠가는 도달하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일찍 도착한 편이었다.
“하루 남았죠?”
내 물음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마지막 하루 남았지.”
해원을 비롯한 꽤 많은 적 연합 유저들이 용의 던전의 존재를 알자마자 우르르 몰려왔다.
눈으로 보지 못한 이상 우리가 이 안에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왔다는 것은...
아마도 합리적 의심?
“더 이상 뒤질 곳이 없다는 뜻이겠지. 이곳 말고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돌파가 시작되겠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각 연합에서 내놓으라 하는 유저들이 차륜전으로 용의 던전을 공략해 나갔다.
BJ들도 방송으로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진행 상황을 아는 것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리고 용아병의 존재는 저들에게는 아직까지 너무 큰 벽이었다.
브랜디슈와 아이기스를 동시에 들고 다니는 용아병에게 수많은 유저가 학살을 당하고 막히면서 적 연합 유저들의 표정에 패색이 짙어졌다.
단 1층도 돌파하지 못한 채.
“이건 미칫 짓이야.”
“정말 여기를 뚫었다고?”
“드래곤도 잡은 놈이잖아. 분명히 이곳에 있어.”
“아무리 주호라도 벌써 사라진 지 삼 일째인데 이렇게 빡센 던전 안에서 어떻게 버텨? 던전 안에서 물약을 팔지 않는 이상은…….”
“다른 곳에 있는 것 아냐?”
“다 뒤져봤잖아. 여기 밖에 없다니까? 이건 백퍼 킹리적 갓심임.”
“하아, 진짜 산 넘어 산이다.”
역시 예상대로 현 유저들의 스펙으로는 이곳 용의 던전은 너무 버거웠다.
나중에 하다하다 안되니까 달려서 돌파하려는 유저들도 있었는데 채 2층을 내려오지 못하고 중간에 다 이슬로 사라져 버렸다.
아이템만 잔뜩 떨어뜨리고.
어쩌다 정말 재수 좋게 2층까지 내려와도 거기서 끝.
용의 던전은 더 이상 유저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캬, 저거 다 주워 와야 하는데.”
전사 형의 한탄.
그리고 이어지는 막내별의 깊은 한숨.
“아깝다아!”
처음에 긴장을 했던 우리 팀도 2층조차 뚫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마음을 푹 놓았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난 후.
적 연합 유저들의 속을 타게 만들었던 이벤트의 시간이 모두 지나가 버렸다.
《 황위 쟁탈전 이벤트가 이 시간부로 종료됩니다. 》
《 2황녀 생존 확인. 》
《 마리아 가르시아가 유일한 계승자가 됩니다. 》
《 현 시간 이후 2황녀 마리아 가르시아가 가르시아 제국 황제의 위에 오릅니다. 》
《 테인 공작이 마리아 가르시아의 휘하에 소속됩니다. 》
《 루젠 공작이 마리아 가르시아의 휘하에 소속됩니다. 》
《 하만 후작……. 》
:
《 이벤트 기여도 1위 : 신화 길드 주호. 》
《 이벤트 기여도 2위 : 신화 길드 불멸. 》
:
됐어!
이벤트가 완전히 완료되자 시스템 메시지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 덕분에요. 그대들의 충심은 잊지 않겠습니다. 】
2황녀를 제국까지 데리고 가는 추가 퀘스트가 뜨면서 이벤트가 완전히 일단락됐다.
심지어.
우리를 그렇게 고생시켰던 테인 공작이 마리아 가르시아의 휘하에 들어와 버렸다.
노인 마법사인 루젠 공작까지.
하나만 있어도 재앙인데 둘 모두 있다니.
“크큭, 쟤들 진짜 난리 났네.”
재중이 형의 환한 웃음에 우리 모두 따라 웃었다.
그리고 그동안 2황녀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모든 연합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너흰 이제 다 죽었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