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화 테인 공작 (3)
이전 드래곤 레이드 당시, 놈의 입안에서 수룡화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단순히 드래곤의 화염에서 버티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고.
그리고 버텨야 했던 자리가 자리인지라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투를 할 만한 충분한 공간과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는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일단, 수룡화는 데스 나이트 변신과 유사한 점을 가졌다.
스탯 변화라던지.
속성 변화 같은.
반면 데스 나이트 변신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온전한 레비아탄으로 변신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실 레비아탄으로 변신이 가능했다면 이미 게임은 끝났겠지.
레비아탄의 그 커다란 몸체로 제국 황궁에 통째로 드러누워 버리면 황자고 공작이고 할 것 없이 그냥 끝이다, 끝.
그리고 데스 나이트 때와 같이 데스 나이트 장비를 자동으로 몸에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괜찮다.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의 공격력은 그 어떤 장비로도 대체할 수 없으니까.
혹여나 데스 나이트 때처럼 장비 제한 때문에 르아 카르테나 드래곤 슬레이어를 착용 못 하게 되면 오히려 그게 더 손해지.
또 다른 특징은 몸 전체가 레비아탄 특유의 비늘로 감싸진다는 점이다.
이건 방어구와 완전 별개의 시스템이기도 하고.
신체 자체가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드래곤 혹은 레비아탄 비늘 위에 기존에 입던 방어구를 입고 그대로 전투가 가능했다.
이러면 만약 드래곤 플레이트가 부서진다고 하더라도 비늘 자체가 방어를 하게 된다.
다른 말로 변신해 있는 동안 방어 하나만큼은 엄청난 수준까지 올라간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붉은 기운에 버틸 수 있는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제외한 그 어떤 곳도 맞으면 안 되었는데 더 이상 테인 공작의 붉은 기운에 몸을 사릴 필요가 없었다.
순수하게 대인 전투를 위해 고안된 변신.
그리고 이제부터는 더 이상 속도전에서 밀릴 이유도 없었다.
팔을 살짝 휘둘러보자 이전과는 판이한 속도로 팔이 휘둘러졌다.
옆으로 스텝을 밟으니 이동속도 역시 상당히 올라왔고.
“괜찮네.”
비록 가짜 황제와 테인 공작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정도의 이동속도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원하는 순간 원하는 곳에 찔러 넣을 만큼의 속도는 나올 것 같았다.
그런 변신에 놀랄 만했지만, 테인 공작은 여전히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말했다.
『 레비아탄……. 』
시스템에도 나왔지만, 레비아탄을 잡은 것은 모든 NPC가 알고 있었다.
테인 공작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저런 반응이었고.
“이제 좀 할 만해졌네. 피차 시간이 없으니까 한 판 붙자.”
테인 공작이 이런 스킬을 알 수는 없겠지만, 이쪽은 시간제한이 존재했다.
변신이 풀리기 전에.
끝을 본다.
그리고 테인 공작도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팀이 1황자를 잡으러 갔으니까.
내게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는 노릇.
『 ……그렇다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지. 』
순간 테인 공작의 신형이 흐릿해지면서 왼쪽으로 발을 박찼다.
전에 가짜 황제를 상대했던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재중이 형 말대로 분명히 움직이기 전, 발 방향이 바뀌었다.
바로 르아 카르테를 왼쪽으로 들어 올려 휘두르는 테인 공작의 붉은 기운을 막아냈다.
캬가각!
그리고 수룡화로 공격 속도가 더 올라가서 그런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힘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고.
공격을 또다시 막아내자 바로 테인 공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쪽에서 힘과 속도에서 밀리지 않는다면 이제부터는 내 시간이지.
바로 르아 카르테의 검신이 테인 공작의 검면을 타듯이 깎고 들어가자 테인 공작이 급하게 검면을 돌려 내 검을 떼어내려고 했다.
이전 같으면 르아 카르테가 튕겨 나왔겠지만.
수룡화로 힘과 속도가 올라간 것이 주효했다.
게다가 감각이 원하는 높은 수준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구현되었고.
그런 것이 쌓이자, 테인 공작의 노력이 무색하게 르아 카르테의 검신은 검면을 미끄러지듯 타고 들어갔다.
하지만,
『 흠! 』
순간 테인 공작의 검이 묵직하게 무거워지면서 르아 카르테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보통 몬스터나 NPC와는 다르게 테인 공작은 유저에 더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힘과 속도를 극과 극으로 조절을 하는 바람에 예의 상황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칫.
아직 지금 수준의 힘과 속도에 적응이 안 됐어.
이전 같으면 테인 공작이 무슨 짓을 하든 무조건 검면을 타고 원하는 대로 치고 들어갔겠지만, 급격한 차이가 나다 보니 내 쪽에서도 제어가 쉽지 않았다.
그것도 비슷한 수준의 적과 붙으면서 조절하려니… 감각이 적응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당장은 어쩔 수 없나.
바로 테인 공작이 사라지면서 좌우에서 공격에 들어왔고 그걸 르아 카르테로 쳐내고 드래곤 슬레이어로 바로 반격을 하는 식으로 버텨냈다.
겨우 동수.
거기다 워낙 테인 공작의 컨트롤이 좋다 보니 실수를 하지 않아 빈틈을 만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럼…….
이쪽에서 먼저 변수를 만든다.
다시 한 번, 테인 공작의 공격이 들어올 때 이전에 썼던 기술을 꺼내 들었다.
【 더블 크래쉬! 】
순간 르아 카르테의 잔상이 생기면서 테인 공작의 검을 강하게 쳐냈다.
그리고 잔상의 이중 공격으로 테인 공작의 검을 완전히 틀어지게 만들었다.
『 더블 크래쉬…! 』
역시 검의 대가인 만큼 이런 스킬 정도는 알고 있는가 보네.
테인 공작의 검이 튕겨 나가면서 자세가 무너지자 바로 드래곤 슬레이어로 테인 공작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카강!
테인 공작을 상대로 만든 첫 유효타.
내친김에 다시 르아 카르테를 휘둘러 공격하려는데 위험한 느낌이 들어 바로 르아 카르테를 회수한 뒤 바로 스탭을 밟아 몸을 뒤로 빼냈다.
샤아악!
이건 뭐지?
순간 테인 공작의 검이 여러 개로 분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착각인가?
시야에 들어온 공격이 순간 열 개가 넘어갔는데?
그 공격이 나오고부터 오히려 내 쪽에서 테인 공작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테인 공작은 긴 검의 리치를 이용해서 연신 내게 공격을 쏟아부었다.
무슨 공격이 이래?
만약, 이게 더블 크래쉬와 같은 계열의 공격이라면…!
아무리 검을 빨리 휘두른다고 해도 열 개가 넘어가는 검을 한 번에 쳐낼 수는 없었다.
두세 개는 막는다고 치더라도 나머지는 몸으로 모두 때워야 하는데 수룡화의 방어력이 좋다고 한들 그걸 전부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 끝을 봐야겠군! 』
테인 공작은 분화하는 검들의 개수를 점점 늘려가며 사방에서 날 옥죄면서 계속 밀고 들어왔다.
검의 공작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숨겨둔 한 수가 있었잖아.
더블 크래쉬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이건 더블 크래쉬보다 몇 배는 위력적인 스킬이었다.
아주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스킬’이기 때문에.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이런 스킬을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아예, 공략할 생각을 말라고 만들어둔 것 같은 스킬에 혀를 찼다.
붉은 기운을 내뿜는 검들이 한 번에 십여 개가 넘게 날아들면 무조건 피할 수밖에 없으니까.
한 발, 한 발이 필살기에 가까운 위력을 내는데 마냥 맞으면서 공격하는 것은 애초에 말도 안 된다.
그렇게 계속 검을 막지 못하고 연신 물러나면서 방어만 하자 테인 공작이 한 번씩 공격할 때마다 드래곤 플레이트에 계속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칫.
이러면 게임이 안 되잖아.
대체 무슨 스킬을 이렇게 무식하게 만든 거지.
다행히 드래곤 플레이트와 수룡화의 비늘이 동시에 방어를 해주고 있어서 치명타는 없었지만 이대로 시간이 가면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대로 빠져?
황자를 찾을 시간은 충분히 벌었겠지?
하지만 지금 테인 공작을 놓는다면 순식간에 우리 팀의 뒤를 칠 것이다.
안 돼.
우리 팀에서 테인 공작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재중이 형이 화룡화를 써서 잠시 버틴다고 해도 방어구가 나보다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결국,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나…….
조금만 더 버티자는 생각에 제일 위협적인 경로로 들어오는 검만 쳐내면서 계속 버텨냈다.
치명타는 피했지만, 한 번씩 허용하는 공격에 체력이 계속 빠지자 물약이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르아 카르테의 체력 흡수 옵션도 내가 공격을 해야 적용이 되는데 방어만 하다 보니 지금은 버거운 느낌이 들었다.
이대론 못 버텨.
테인 공작의 공격을 억지로 쳐낸 뒤 한참을 떨어져 나와 남은 물약과 체력 수치를 확인한 뒤 결정을 내렸다.
<주호> 형, 이제 한계에요.
<불멸> 조금 더 끌 수 없어? 지금 1황자와 대치 중이다. 지키는 기사들이 있어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해.
<주호> …알았어요. 2분. 그 이상은 무립니다.
<불멸> 오케이. 그래도 죽을 것 같으면 그냥 튀어. 황자야 다음에 죽여도 돼.
물약을 다 쓰면 최대 2분은 버틸 수 있겠지.
다행스럽게도 테인 공작이 두 가지 기술을 동시에 쓰지는 않았다.
만약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과 검을 분화해서 날리는 기술을 같이 썼다면 이미 누워도 한참 전에 누웠을 터.
『 시간이 없군. 이제 죽어라. 』
테인 공작도 1황자 쪽이 급한 것을 아는지 다시 검을 분화해서 날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무심결에 뭔가를 보고는 십여 개가 넘어가는 분화된 검 사이로 달려들어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동시에 휘둘렀다.
까강!!
그리고 정확하게 중간에서 분화되는 검들 중 하나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다른 검들이 모두 허공에서 흩어지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던 테인 공작도 이번엔 놀랐는지 검을 회수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설마 분화되는 검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생각 못 한 건가?
그사이 빠르게 치고 들어가 테인 공작의 허리를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로 제대로 베고 지나갔다.
『 크윽! 』
바로 테인 공작이 무릎을 꿇고 검으로 땅을 찍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차오르는 체력과 마력.
치명타도 동시에 터진 것 같았고.
동시에 다시 테인 공작에서 회복 불가를 걸어놓을 수 있었다.
『 대체, 어, 어떻게? 』
“당신, 똑같은 기술을 내게 너무 많이 보여줬어.”
도저히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기술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을 줄이야.
뒷걸음치다가 발견한 일종의 운이었지만.
일단 주력 스킬을 파훼하자 테인 공작을 상대하는 일이 조금은 수월하게 변했다.
근접전에서 테인 공작을 버틸 수 있게 되자 이번엔 테인 공작의 행동이 완전히 바뀌었다.
계속 뒤로 빠지더니 이전의 붉은 기운을 응축시켜 반월로 날리는 기술을 내게 바로 시전해 버렸다.
그런데 이번엔 하나가 아니라 연속으로 두 개의 반월을 십자로 겹쳐 내게 날려 보냈다.
정말 쉽게는 안 되네.
워낙 근접거리라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빠르게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교차해 자세를 낮추고 급하게 붉은 반달을 막아냈다.
콰앙!
콰아앙!
순간적으로 쭉 빠지는 체력.
그럼에도 확실히 버텨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 폭발 속에서도 내 시선은 계속 테인 공작의 방향으로 가 있었고.
2타, 3타째의 연속 공격이 올 것이 뻔하니까.
그렇게 긴장을 잔뜩 하고 기다리는데 와야 할 공격이 전혀 날아오지 않았다.
뭐지?
의아한 생각에 폭발이 완전히 걷히자마자 뛰어들었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걸 보고는 혀를 찼다.
“아, 이 양반 도망갔네.”
고개를 돌려 멀리 복도를 바라보자 이미 한참을 멀어져서 따라잡기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동속도는 저쪽이 월등하니까.
이렇게 빠져 버리면 잡을 방법이 없었다.
따라가야겠네.
어찌 됐든 테인 공작은 내가 상대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 가르시아 제국 제 1황자 테른 가르시아가 사망했습니다. 》
《 황위 계승자가 사망한 제 1황자 진영이 해체됩니다. 》
《 1황자 진영에 속한 모든 유저의 소속이 변경됩니다. 》
《 1황자 진영에 속한 모든 NPC의 소속이 변경됩니다. 》
연속으로 울려 퍼지는 시스템 메시지를 모두 확인한 후 크게 환호했다.
크!
우리 편이 해냈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