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87화 (480/1,404)

#487화 테인 공작 (2)

붉은 기운이 터지면서 생긴 폭발의 여파로 몸이 뒤로 쭉 밀렸다.

내 뒤에 있던 챠밍 역시, 몸이 밀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꺅!”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검을 쥐고 있는 손바닥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손과 팔이 연신 잘게 떨리며 몸이 밀려 나는 와중에도 내 관심은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에 집중되어 있었다.

버틸 수 있으려나?

휴, 다행히 브랜디슈나 아이기스처럼 파괴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르아 카르테가 저 이상한 붉은 기운의 마력을 흡수하면서 폭발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대략 챠밍과 함께 열 걸음 정도 밀려났을까?

붉은 기운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1차로 막아주고 르아 카르테가 꾸역꾸역 붉은 기운을 잡아먹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의 검신은 그 광채를 잃지 않고 온전히 버텨냈고.

휴.

역시 생각대로…….

그리고 곧장 뒤에 있는 챠밍을 살폈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무리하셨어요… 오빠는 죽으면 안 되는데…….”

“음, 그냥 몸이 먼저 나가더라. 어쨌든, 둘 다 살았잖아?”

모르겠다.

챠밍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자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나갔다.

아마 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내 말에 챠밍의 볼이 빨갛게 변하며 고개를 돌렸다.

“……바보.”

그러면서 챠밍이 나에게 힐을 걸어주었다.

【 와이드 힐! 】

힐을 받자 둘의 체력이 동시에 바닥에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어요….”

“땡큐. 이거면 돼.”

그리고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내려다보았다.

폭발에 검신이 살짝 그을리긴 했어도 특유의 광채는 그대로였다.

“이 검들은 버티네요?”

챠밍의 감탄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정 상, 유일 아이템은 최상위 아이템이지 않을까?

가짜 황제가 노리는 것도 그렇고, 예전의 왕국에서도 국보 같은 존재였으니까.

드워프의 왕도 인정한 검이고.

로스트 스카이 내에서 유일 아이템의 값어치가 결코 낮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고작 공작(?) NPC가 쓴 기술에 파괴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있었다.

어느새 재중이 형이 달려오더니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잽싸게 애인부터 챙기는 것 보소. 아이템엔 관심도 없구만.”

재중이 형이 말한 애인이라는 단어에 당황한 챠밍의 볼이 다시 빨갛게 변하더니 우리를 연신 번갈아 보았다.

“알, 알고 있었어요?”

“저 형, 눈치가 백단이라…… 바로 알던데.”

“어떻게 해…….”

챠밍의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하긴, 잘 사귀면 되는 거지.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유일템은 괜찮냐?”

재중이 형이 물어보자 두 개의 검을 들어 올려서 보여주었다.

“보다시피. 흠집조차 안 났어요.”

“호오라, 역시 유일템인가. 부럽다, 부러워. 나도 빨리 하나 구해야지 원.”

그러면서 재중이 형은 접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테인 공작을 노려보았다.

“일단, 저 녀석은 네가 맡으면 되겠네.”

무기고 방어구고 아작 나는 순간 작전이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다.

테인 공작의 저 이상한 붉은 기운을 막을 방법이 생겼으니까.

“네, 결국 제가 단독으로 상대해야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커버하면 테인 공작에게 썰리기만 할 뿐.

재중이 형이 레비아탄 스피어를 들어 올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레비아탄 무기까지 날아가면 다른 녀석들을 상대할 수가 없어. 네가 힘 좀 써야겠다.”

“확실히 그렇죠. 아직 적은 더 남아 있잖아요.”

1황자를 지키고 있는 게 이 테인 공작 하나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3황자도 그렇고.

1황녀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셋 다 주위에 최측근들이 있다고 봐야 했다.

여기서 장비가 아작 나면 그 녀석들과 싸울 방법이 없다.

“여기서 갈라지죠.”

“아, 우린 남아 있어봐야 별 도움이 안 될 테니까.”

재중이 형의 현실적인 판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거리에서는 무기가 썰려 버리고.

원거리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테인 공작이 너무 빨라서 제대로 맞추지를 못했다.

“챠밍 너도 가.”

“네? 전 오빠 회복…….”

“블링크를 다 쓰고 나면 테인 공작을 피하기 힘들어.”

둘이 있다 보면 챠밍에게 어글이 넘어가는 경우가 잦을 것이다.

그걸 계속 신경 쓰는 것은 내 쪽에서도 버거울 수 있었다.

“그래도 혼자는…….”

“르아 카르테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 체력은 맞출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드래곤 플레이트만 입고 있어도 여기선 체력이 회복이 돼.”

“아, 알았어요.”

테인 공작을 바라보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큰 기술을 써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그 기술을 막아서 그런지 몰라도 테인 공작이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움직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통 이런 식으로 어글이 풀리는 일은 없는데…….

확실히 NPC라서 행동 방법이 완전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붙는 동안 돌아서 달리세요.”

“그래, 고생 좀 해라. 만약 죽을 것 같으면 그냥 뒤도 보지 말고 도망가.”

“네, 여기서 죽진 않을 거예요.”

곧장 재중이 형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상황을 전달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날 한 번씩 바라봤다가 이내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가.”

“네, 죽지 말아요.”

챠밍까지 사람들 쪽으로 보내고 난 뒤,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들어 올렸다.

저 공작을 혼자 상대해야 하다니.

부담감으로는 지금까지 중에서 최고의 상황이었다.

“그럼, 갑니다.”

【 헤이스트! 】

보통 단기전이 아니면 헤이스트를 쓰지 않지만 르아 카르테가 있으니 괜찮다.

몸이 한층 가벼워졌지만, 아마 이걸로도 저 공작의 속도를 따라잡진 못하겠지.

지금부터는 속도에 밀려 실수하는 그 순간이 바로 아웃이었다.

바로 테인 공작에게 달려나갔다.

내가 다가가자 테인 공작의 검 위로 다시 붉은 기운이 덧입혀졌다.

탐나긴 하네.

저 기술.

유저가 저 기술을 쓸 수만 있다면 방어구를 무시하고 모조리 썰어버릴 수도 있을 터.

【 트리플 캐스팅! 】

【 라이트 웨폰! 】

【 라이트닝 웨폰! 】

【 아쿠아 웨폰! 】

웨폰을 걸고 난 뒤 추가로 웨폰을 더 걸었다.

【 시간의 서! 】

【 트리플 캐스팅! 】

【 포이즌 웨폰! 】

【 다크 웨폰! 】

【 파이어 웨폰! 】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가 일단 저 붉은 기운에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부딪히는 순간 들어오는 대미지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럼 이쪽에서도 최대한 위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걸 수 있는 모든 웨폰 기술을 걸고 난 뒤 공작의 검과 드래곤 슬레이어가 부딪혔다.

까강!

부딪히는 순간 여섯 종류의 웨폰 기술이 모두 적용되면서 붉은 기운의 대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시켰다.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로 테인 공작의 좌우를 시간차로 베어 들어가자 테인 공작이 르아 카르테를 막으면서 동시에 검을 비틀어 드래곤 슬레이어까지 쳐냈다.

확실히 속도에서는 테인 공작이 우위였다.

검이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동시에 휘두르는 내 검들을 막아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밀리지는 않았다.

헤이스트를 걸고 본격적으로 집중으로 하자 테인 공작의 공속을 커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문제가 되는 근력은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로 테인 공작의 검을 최대한 흘리면서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동안의 전투들에서 얻은 경험이 정말 미친 듯 빠르고 강한 테인 공작의 공격들을 막아내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감각 역시 할 수 있는 한 끌어올려서 위급한 상황을 모면하게 해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테인 공작은 강하고 빨랐다.

몇 번의 검격을 주고받다가 다시 내 쪽이 밀려 나오자 이를 꽉 물었다.

이대로는 힘들어.

모두에게 버티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밀리는 것은 안 된다.

순간 감각을 더 끌어올려 테인 공작의 공격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한순간 판단이 서자 주저 없이 테인 공작에게 달려들었다.

그것도 완전히 초근접 거리로.

한두 방 정도는 맞아줄 각오를 다지면서.

대신 확실히 공격에선 우위를 점한다.

그런 생각으로 테인 공작에게 붙자 테인 공작이 날 떼어내기 위해 조금씩 뒤로 간격을 벌렸다.

확실히.

테인 공작의 검은 빠르다.

다만, 그 빠른 검이 휘둘러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휘두르기 위한 공간이 있어야 했다.

지금!

테인 공작이 검을 휘두르려는 시작점에 오히려 더 깊게 파고들어서 드래곤 슬레이어를 테인 공작의 궤적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검이 속도가 붙기도 전에 막히더니 제대로 된 가속을 얻지 못해 평이한 검속으로 내려와 버렸다.

언젠가 재중이 형이 내게 썼던 방법들.

내 검속이 유저 중에 가장 빠르니까 항상 재중이 형이 검을 뽑지도 못할 정도로 압박을 넣었다.

지금.

그 방법을 그대로 재현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순간을 캐치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난 할 수 있다.

어지간한 감각이 아니면 할 수도 없는 인파이팅 형식의 공격으로 테인 공작의 빠르고 강한 공격을 초기에 눌러냈다.

재중이 형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난 철저한 인파이팅.

재중이 형은 창의 리치를 이용한 완벽한 컨트롤.

둘의 성향 차이가 전혀 다른 양상의 전투를 만들어냈다.

거기다 이렇게 붙음으로 테인 공작의 검의 리치가 더 긴 장점도 한꺼번에 없앴고.

물론, 이 방법이 쉽지만은 않았다.

단 한 번만 실수를 하면.

테인 공작의 검에 몸이 두 동강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것뿐.

그리고,

마냥 이것만 믿고 덤빈 것은 아니지.

열 번 정도 합을 주고받을 때쯤 갑자기 테인 공작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 큭, 어떻게?! 』

그러면서 테인 공작의 반응이 살짝 늦어지자 바로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로 연신 테인 공작을 몰아갔다.

솔직히 드래곤 슬레이어만 있었다면 붉은 기운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해도 절대 테인 공작에게 달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믿는 구석.

르아 카르테의 옵션들.

관통 확률이 35%나 되기 때문에 분명히 치고 박는 도중에 반응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테인 공작의 방어가 뚫리면서 타격을 입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반응이 점점 느려졌고.

거기다 회복 불가 옵션.

나와 붙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회복은 꿈도 못 꾼다.

이건 초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내게 승산이 있다는 말이었다.

내게는 물약이라는 체력 보조품이 있으니까.

물론, 테인 공작의 체력이 드래곤 마냥 엄청나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체력과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옵션도 초 장기전에 유리했다.

거기다 대인 피해를 70%나 늘려주기 때문에 서로의 피해를 거의 다 상쇄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을 단기간 내에 잡아낼 순 없어도.

적어도.

절대 밀리지는 않는다!

<불멸> 잘 버티네. 그럼 우린 간다.

대답을 해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오직 테인 공작에게만 집중했다.

내가 테인 공작을 붙들고 있는 사이 우리 편이 모두 빠져나갔다.

테인 공작이 우리 편을 막으려고 빠지려 하자 어김없이 달라붙어서 물고 늘어졌다.

『 방해하지 마라! 』

“안 돼. 넌 오늘 나하고 계속 놀아야 하거든.”

1황자가 죽을 때까진.

테인 공작이 우리 편에게 시선이 돌아간 사이 테인 공작의 허리와 다리에 한 번씩 치명상을 넣었다.

그러자 테인 공작의 움직임이 다시 느려졌고.

이쪽은 반대로 마력과 체력을 채웠다.

그렇게 갈 길 바쁜 테인 공작이 몇 번의 공격을 더 허용하자 결국 테인 공작이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 널 먼저 죽여야겠군. 』

“할 수 있다면.”

그런데 갑자기 테인 공작의 온몸에서 더 짙은 붉은 기운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보고만 있어도 아찔할 정도의 기운에 순간 몸이 흔들렸다.

설마.

지금까지가 전력이 아니었다는 건가?

뭔지 모르겠지만 몸의 감각들이 모두 경고를 일으켰다.

순간 테인 공작이 눈에서 사라지다시피 움직임이 월등히 빨라졌다.

이건 가짜 황제의?

캬가각!

무의식에 가까운 반사.

르아 카르테를 가까스로 들어 올려 한쪽 방향을 막았더니 그곳에 이미 테인 공작의 검이 도달해 르아 카르테를 올려쳤다.

“큭!”

난 이미 낼 수 있는 속도의 한계란 말이다!

감각은 테인 공작을 캐치해내는데 정작 몸의 민첩이 따라가지 못했다.

칫.

이건 더 아껴두려고 했는데.

이젠 할 수 없다.

테인 공작의 검을 억지로 쳐낸 뒤 곧장 스킬을 시전했다.

【 수룡화! 】

그와 함께 내 몸 전체가 마치 용의 그것과 유사한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부족한 것이 속도라면.

이쪽도 최대한 맞춰준다.

『 그건?! 』

내 변한 모습에 깜짝 놀란 모습.

그런 테인 공작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오늘 끝장을 보자.”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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