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79화 (472/1,404)

#479화 드래곤 슬레이어 (4)

챠밍이 아쿠아 브레스를 날리는 순간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드래곤을 이런 식으로 잡을 수 있을까?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온 결론.

이대로는 절대, 절대 못 잡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딜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레비아탄처럼 바다에 떠 있는 네임드는 우리가 내려다보는 형태로 계속 공격할 수가 있어 어떻게든 괜찮았다.

피할 것은 피하서 공격을 계속 쏟아부으면 되니까.

하지만 드래곤은 완전히 달랐다.

오히려 하늘로 올라가면 압도적으로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었으니까.

드래곤이 워낙 빠르기도 하고 브레스를 자주 써대는 통에 제대로 된 포지션을 잡기도 힘들었다.

당장 지금만 봐도 안개 속에서 드래곤이 날아다니며 유저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이건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다.

물론, 지상에서 싸움을 걸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결국 드래곤이 하늘로 올라가면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거기다 운석 낙하 같은 스킬을 사용하면 지상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도 없었고.

가르시아 제국을 끼고 싸우면 그나마 할 만할 줄 알았는데…….

막상 제대로 부딪쳐보니 우리가 상정했던 드래곤의 능력을 훨씬 상회했다.

이쪽은 제대로 된 딜을 넣지 못하는데 드래곤은 자기가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니니 이대로 가면 답도 없었다.

여기서 딱 하나.

우리가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기는 했다.

바로 드래곤 슬레이어.

원래라면 지금 시점에서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드래곤을 잡고 나온 뒤의 보상으로 나오는 템을 내가 소유하고 있었다.

그럼 이 장점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단 무조건 드래곤 슬레이어를 사용해 프리-딜을 넣을 환경이 필요했다.

그러다 챠밍이 아쿠아 브레스로 드래곤의 정면을 맞춰 잠시 무력화시키는 그 순간.

생각이 확 떠올랐다.

딱딱한 비늘로 뒤덮여 있지 않은 곳.

드래곤의 입안.

혹은 드래곤의 안.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수 있지만.

길이 있는데 가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지.

그래서 아예 드래곤의 입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

드래곤이 입을 닫게 되면 내 쪽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재중이 형에게 레비아탄 스피어를 빌려왔다.

지금 레비아탄 스피어가 부르르 떨리면서도 드래곤의 입을 닫지 못하게 계속 버텨주었다.

비슷한 급의 무기라 버텨주지 않을까 생각한 판단이 잘 들어맞은 것 같았다.

만약 버텨주지 못했다면 뒤도 보지 않고 내뺐을 것이다.

무모하다면 무모한 판단.

아무튼 이제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으니 완전히 끝을 볼 수밖에 없다.

르아 카르테를 박아 넣자 마력 흡수 옵션이 줄기차게 마력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가장 걱정이 되던 마력 문제는 해결됐고.

심지어 체력까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고급 듀얼 링에 붙은 체력 흡수 옵션이 발동되는 모양.

나쁘지 않아.

이렇게 되면 조금 더 여유 있게 버틸 수 있었다.

드래곤과 함께 낙하하는 도중 한 손으로는 위아래로 박혀 고정된 레비아탄 스피어를 잡고 다른 한 손에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드래곤의 입안을 사정없이 찍어 내렸다.

푸욱!

푸욱!

드래곤 슬레이어로 공격을 할 때마다 단단한 비늘이 있던 외부와는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났다.

드래곤에게 있어서 가장 약한 부위이기도 하고.

아마 타격 자체가 전부 크리티컬로 적용되지 않을까?

이런 내 예상은 확연하게 들어맞기 시작했다.

드래곤이 그 커다란 동체를 낙하하는 동안에도 한 번씩 크게 비틀었다.

그 때문에 드래곤의 입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내게도 큰 충격이 왔고.

아마 크리티컬 시 일정확률로 체력을 깎는 옵션이 발동한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지 바로 연락이 왔다.

<이쁜소녀> 방금 드래곤이 엄청 흔들렸어요!

<불멸> 좋아! 잘하고 있어!

<방패전사> 흐흐, 네가 최고다.

드래곤이 몸을 비틀었다는 것 자체가 체력을 2%나 깎았다는 말과 동일했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50번.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돼.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드래곤 슬레이어를 정신없이 찍었다.

그러다 챠밍에게 연락이 왔다.

<챠밍> 오빠! 곧 지상에 추락해요! 꽉 잡아요!

챠밍의 말에 입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지상이 한없이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불바다가 된 지상이.

바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집어넣고 두 손으로 레비아탄 스피어를 꽉 잡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내 드래곤이 통째로 지상에 추락해 버렸다.

쿠웅!

드래곤의 그 거대한 몸체가 추락하면서 내게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 내게도 전달되었다.

거기다 얼마나 충격이 강한지 레비아탄 스피어를 잡고 있는 두 손과 팔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크윽!!”

고층 빌딩에서 추락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손의 힘이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결국 레비아탄 스피어를 놓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드래곤의 입안에서 튕겨 나와 바닥을 엉망으로 굴렀다.

당연히 체력도 바닥으로 수직 낙하를 했고.

간당간당한 수준으로 체력이 떨어지자 물약이 급하게 자리를 채웠지만, 겨우 바닥에 닿는 것만은 피했다.

칫.

근력이 너무 약해.

조금 더 강한 근력이 있었다면 억지로 버텼을 텐데.

체력이 너무 급격히 떨어지자 나 역시 경직이 된 듯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불바다가 되어 있어서 그런지 체력이 다시 깎이기 시작했다.

물약으로도 보조가 안 되는 수준으로.

이런 식으로 죽으면 개죽음인데?

그렇게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몸에 힐이 잔뜩 뿌려지면서 체력이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오빠!”

“저희 왔어요!”

내 바로 위로 챠밍과 막내별의 레서 드래곤이 날아다니며 내게 힐을 잔뜩 뿌려댔다.

“땡큐! 덕분에 살았다.”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굳어 있던 몸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드래곤은?

고개를 돌려 드래곤이 추락한 방향을 봤는데 이미 드래곤이 경직에서 풀려나 고개를 올려 내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입안에는 여전히 레비아탄 스피어를 꽂은 채.

그리고 르아 카르테 역시 아직까지 드래곤의 입안에 박혀 있었고.

드래곤이 계속 켁켁, 거리면서도 눈은 여전히 내게로 집중된 모습에 곧장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내면서 자세를 잡았다.

활활 타오르는 전장에 드래곤과의 정면 대치라…….

확실히 좋은 그림은 나오하겠지만, 이쪽 사정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드래곤의 입안에서 공격을 해야 하는데 이번엔 그렇게 쉽게 틈을 내어줄 것 같진 않았으니까.

어느새 전사 형이 하늘에서 뛰어내리더니 드래곤에게 어글 스킬을 사용했다.

【 징벌의 사슬! 】

재중이 형이 요구한 것 중 하나.

내게 어글이 넘어가면 어떻게든 전사 형이 대신 끌어야 한다고.

순간 드래곤이 고개를 돌려 전사 형을 보는가 하더니 다시 내게로 시선이 돌아왔다.

“어? 어글 스킬이 안 먹혀?!”

이건 전사 형도 생각을 못 했는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잠시라도 시선을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재중이 형도 뛰어내리고는 곧장 외쳤다.

“녀석 입에 무기가 박혀 있어서 그래. 저거 안 빼면 어글 못 풀어.”

“어쩔 수 없네요.”

드래곤의 입에서 빼는 것도 문제지만 다시 박는 것도 문제다.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럼 어글은 계속 내가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도전해볼게요.”

하지만 드래곤은 내가 가는 곳마다 시선을 돌리면서 경계를 했다.

입에 화염을 가득 머금고서.

이러면 접근이 불가능해.

그렇다고 내가 시선을 끄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딜을 넣을 환경이 되지도 못했고.

이대로 놓아줘야 하는 건가?

아니, 놓아주더라도 르아 카르테와 레비아탄 스피어는 회수해야 했다.

르아 카르테를 물고 사라지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라.

우리의 대치가 계속되자 하늘에서 유저들이 우르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글이 끌릴까 봐 차마 덤비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재중이 형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야.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 도망가거나 운석이라도 떨어뜨리면 이 레이드는 완전히 터진다.”

“네, 알고 있어요.”

어떻게든 드래곤의 입안으로 다시 들어가야 될 텐데…….

보다 못한 전사 형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죽더라도 시선 끌어 줄 테니까 한 번 들어가 봐.”

이쁜소녀도 앞장섰고.

“저도 가요!”

그때 챠밍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잠깐만요!”

“응?”

“어떻게든 드래곤의 입에만 올라타면 되는 거죠?”

“그래.”

“그럼, 전사 오빠 옷 좀 벗어 봐요.”

챠밍의 뜻밖의 말에 전사 형이 두 팔로 몸을 가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아, 옷 말고 갑옷요!”

“아! 난 또 뭐라고.”

전사 형이 얼떨결에 벗어준 수룡갑을 전부 받아서 내게 건네줬다.

“오빠, 저 믿죠?”

“보통 그거 남자가 쓰는 말 아냐?”

“아무튼. 빨리 입어요.”

전사 형에게 강제로 걷어온 수룡갑을 내게 입히고는 곧장 내 손을 잡았다.

“대체 뭘 하려고?”

“어떻게든 드래곤 입안에만 가면 되잖아요. 집중해야 하니까 잠시만 조용히.”

그 말에 입을 다물고 가만히 기다렸다.

순간 챠밍이 스킬 하나를 시전했다.

【 블링크! 】

한순간 시야가 완전히 변하더니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레비아탄 스피어와 르아 카르테가 눈앞에 있는.

“이거?!”

“수백 번 연습한 보람이 있네요. 그럼 오빠 고생해요!”

그러더니 챠밍이 다시 한 번 블링크를 써서 사라져 버렸다.

완벽한 배송.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드래곤의 입안에 나를 돌려놓았다.

그리고 드래곤이 여전히 화염을 내뿜고 있음에도 수룡갑이 대미지를 대부분 감쇄해줘서 충분히 버틸 만했다.

<주호> 땡큐, 진짜 최고다.

<챠밍> 아니에요.

챠밍 덕분에 다시 기회를 잡아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생각으로 드래곤 슬레이어로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바깥의 패턴이 어떻게 변하던지 말든지 그쪽은 관심도 없었다.

오직 드래곤 슬레이어로 체력 감소 옵션을 터뜨리는데 모든 신경을 쏟았을 뿐.

중간에 드래곤이 몇 번 쓰러지기도 하고, 날아올랐다가 떨어지는 것도 반복했다.

어쩔 땐 드래곤이 머리를 휘둘러 바닥에 들이박기도 하면서 날 떨어뜨리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그럼에도 여의치 않고 장인 정신으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다.

수룡갑에 용족 피해감소가 잔뜩 붙어 있기도 하고 수속성 방어가 추가되어 있어 화염에도 버틸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물약이 점점 떨어져 나갔다.

<주호> 물약 떨어져 가요!

<챠밍> 물약 배달 가요?

<나르샤> 아예 안에 던질 게 받아!

그러자 드래곤의 입안으로 물약을 던져주는 기행까지 벌여가면서 드래곤과 나와의 전투가 지속되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내가 공격하는 쪽이지.

거기다 어글이 내게 묶여 있어서 드래곤이 외부에 대해 신경도 못 쓰다 보니 유저들의 아예 프리딜로 드래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딜탱이려나?

체력 감소를 2퍼센트씩 계속 깎아대니까 어글이 넘어가려고 해도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안에선 내가.

바깥에선 수도 없이 많은 유저가 동시에 공격을 해대니 드래곤도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제풀에 쓰러져갔다.

그렇게 얼마나 공격을 했을까?

갑자기 페이즈가 변하면서 드래곤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룡갑으로도 어떻게 커버가 안 될 정도로.

《 용의 대지의 화염 드래곤 - 아퀼라스가 본 모습을 드러냅니다. 》

그런 시스템이 울리면서 눈에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경고 표시가 떴다.

물약도 전혀 따라가지 못해 의미가 없었다.

큭.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건가?

이대로 있으면 화염에 휩싸여서 죽을 것 같아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머릿속에서 굴려보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딱 하나.

지체 없이 스킬을 시전했다.

【 수룡화! 】

《 종족이 수룡으로 변경됩니다. 》

《 용족에 대한 친화도가 상승합니다. 》

《 스탯이 일부 상승합니다. 》

《 수속성이 강화됩니다. 》

《 아퀼라스의 화염에 저항합니다. 》

:

수룡화를 쓰자 여러 가지 시스템 음이 울리면서 미친 듯 떨어져 내리던 체력이 한 번에 회복되었다.

그리고 화염에 저항하는 듯 더 이상 체력이 떨어지지 않고 버텨내기까지 했다.

그렇게 수룡화로 아퀼라스의 화염에 버텨낼 수 있게 되자 더 이상 화염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화염에 체력이 밀리지 않자 계속해서 드래곤 슬레이어로 아퀼라스를 공격했다.

수룡화가 끝나기 전.

네 녀석을 먼저 죽인다!

그런 각오로 정신없이 드래곤 슬레이어를 찍다 보니 어느 순간 시스템 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 용의 대지의 화염 드래곤 - 아퀼라스의 체력이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

《 축하합니다! 아퀼라스가 사망했습니다. 》

《 크루아 대륙 모든 NPC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집니다. 》

《 크루아 대륙 명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

《 가르시아 제국을 찾아가세요. 합당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

아퀼라스가 잡히자 사방에서 유저들의 환호가 들리는 것을 들으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옆길로 좀 세긴 했지만 뭐 어때?

결국 우리가 이겼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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