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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22화 (415/1,404)

# 422

#422화 탐식 (1)

정상적인 루트로 용의 대지까지 가는 길은 아마 꽤 험난하고 고단한 일일 것이다.

시간도 생각 이상으로 오래 걸릴 테고.

재중이 형이 사냥꾼 NPC를 떠올린 것은 그러한 과정을 대폭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에 지나왔던 그 ‘통로’.

그 통로만 다시 이용할 수 있다면 아무 피해 없이 시간을 절약하면서 다시 한 번 용의 대지로 직행할 수 있으니까.

“사장님께 말씀드릴게요.”

지금까지 PVP 대전에 집중하는 바람에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던 것도 있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께 답변이 왔다.

이렇게 빨리?

나머지 이야기는 남작 저택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처음 방문하는 남작 저택에 흥미를 보이던 사장님은 이내 이야기를 꺼내셨다.

“언제 한 번 쓰일 것 같아서 말이지. 안 그래도 미리 말을 해주려고 했는데 여러 일이 겹치다 보니 뒤로 미뤄졌구나.”

역시 미리 찾아놓으셨네.

이로써 일이 훨씬 편해졌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헌터 조합에서 받은 퀘스트 장소를 찾던 중 발견했다고 하니까.

그리고 포섭은 전과 같이 돈을 잔뜩 주는 것으로 끝.

“돈을 좋아하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혹시 다른 조건이 막 걸려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걱정은 덜었다.

“허허, 이쪽에선 고맙지. 너희끼리 다녀올 거냐?”

“네, 거점을 만들 것도 아닌데 우르르 몰려갈 필요는 없잖아요. 이번에는 장비를 만들 수 있는지만 확인하고 올 생각이에요. 모처럼 좋은 재료가 들어왔는데 그냥 넘기기도 그렇고.”

“흐음, 그런데 악마형 케르베로스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놈요? 으음, 예전에 제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역소환되는 것 같기는 하던데 이게 맞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아직도 돌아다닐 수도 있고, 아마 소환문을 열어봐야 확실히 알겠죠. 지금 열어볼까요?”

“아서라. 여기서 열었다가는 너 끌려간다.”

남작 저택에서 튀어나오는 악마라…….

잡혀가기 딱 좋지.

모처럼 얻은 작위도 날아갈 테고.

“농담이에요. 나중에 좀 멀리 가서 해볼 생각이에요.”

소환문을 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지 소환문을 여는 것으로는 제국에 적대하는 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건 전에도 확인했고.

다만 이번처럼 방해를 받을 바에는 그냥 단독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훨씬 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자마자 바로 제국을 나섰다.

사실 이 통로를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은 너무 쉬웠다.

돈만 주면 되니까.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들켰을 경우,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되고.

아직은 그렇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면서 통로에 들어섰다.

전사 형이 앞장서서 말했다.

“여길 이렇게 빨리 다시 오게 될 줄은.”

“그러게요. 나중에나 올 것 같았는데.”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이 아니었다면 이쪽으로 올 일은 없었겠지.

그렇게 통로를 몇 개씩 지나 한참을 걸어가서야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없는 통로를 따라 걷기만 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이쁜소녀와 챠밍, 막내별 할 것 없이 통로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힝, 힘들어.”

“자주 다닐 곳은 아닌 것 같아요.”

“정말 다음엔 비공정 타고 오고 싶어요.”

그런 아쉬운 말을 뒤로 한 채 주변을 둘러봤다.

용의 대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서 거점을 열면 용아병, 드레이크, 바실리스크, 레서 드래곤, 골렘, 검의 형상을 한 몬스터 같은 녀석들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두 팔을 벌리며.

옆에서 지도를 확인 중이던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형, 그 녀석들 케르베로스보다 강하진 않겠죠?”

“으음? 모르지. 전에는 숫자가 워낙 많아서 상대를 못 해봤으니까. 왜? 싸워보게?”

“네, 가능하다면.”

이전에는 솔직히 장비에 대한 부족함.

레벨이나 스탯에 대한 문제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상쇄할만한 새로운 조합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녀석들을 상대로 통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겨났다.

“일단 목적부터 달성하고. 전투는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사냥도 좋지만 지금 여기에 온 목적을 잊으면 안 돼.

“알았어요.”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냥꾼들을 보자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 이걸 몸에 발라. 녀석들이 싫어하는 약이다. 』

뭐지?

저런 것도 있었나?

역시 사냥꾼들이라 피해 없이 다니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다들 아무 생각 없이 물컹거리는 누런 뭔가를 손으로 받았는데 받자마자 인상을 팍 썼다.

《 사냥꾼에게서 『 드래곤의 배설물 』을 받았습니다. 》

정말 역한 특유의 썩어가는 냄새를 맡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챠밍, 나르샤 누나, 이쁜소녀, 막내별 할 것 없이 비명이 들렸다.

“꺅! 이게 뭐예요!”

“아, 진짜! 미치겠네!”

“으앙, 냄새!”

“이런 XXXX!”

특히 막내별은 입에서 바로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전사 형과 재중이 형도 인상을 쓰고 그 물질을 바라봤다.

『 어서 몸에 발라. 녀석들이 오기 전에. 』

미친.

이걸 바르라고?

“차라리 그냥 싸우죠?”

내 말에 전사 형은 격하게 공감한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 말은 재중이 형에게 바로 막혀버렸다.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일단 해봐.”

그 말에 한참을 쳐다보다가 결국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특유의 역한 냄새가 온몸을 덮치는 것을 느끼면서 코를 막고서야 겨우 냄새가 줄어들었다.

“이거 제대로 안 되면 내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악을 쓰면서 바르고 나자 시스템 음이 울렸다.

《 『 드래곤의 배설물 』 효과로 일정 시간 동안 몬스터들이 피합니다. 》

효과는 확실히 좋았다.

냄새가 거지 같아서 그렇지.

먼저 출발하는 사냥꾼들을 따라 다들 구역질을 하면서 산맥을 가르는 길로 지나갔다.

가다 보니 길 주변 곳곳에 드레이크들이 앉아 있었고, 어떤 곳엔 바실리스크까지 보였다.

바르라고 한 이유를 알겠네.

이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또 한바탕 난리가 났을지도.

대체 드워프들은 왜, 이런 곳에 자리를 잡은 거지?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을 텐데…….

아니, 그전에 제대로 살아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한참을 들어가는데 어느 순간 시스템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 『 드래곤의 배설물 』 효과가 끝납니다. 》

이거 시간제한이 있던 거였나?

바로 사냥꾼들이 우리를 향해 외쳤다.

『 이젠 뛰어! 』

앞서나가던 사냥꾼들이 미친 듯 뛰기 시작하자 우리 뒤쪽 산맥에서 굵은 울음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레드 드레이크, 아이스 드레이크, 다크 드레이크 등 온갖 종류의 드레이크들이 우리 뒤를 따라 잔뜩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대충 백여 마리?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챠밍 손!”

옆에 있던 챠밍의 손을 잡고 바로 내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세차게 발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가속이 붙자 챠밍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꺄악!”

무슨 사냥터가 매번 이따위야.

내 옆으로 재중이 형이 막내별을 잡고 뛰고 있었고, 나르샤 누나, 이쁜소녀, 전사 형도 발에 불이 나도록 달렸다.

『 저기다! 』

사냥꾼들이 빠르게 산맥의 한 동굴 속으로 사라졌고 그 동굴을 의심할 시간도 없이 바로 사냥꾼들을 따라 뛰어들었다.

모두가 동굴 속으로 뛰어들자 동굴 밖에서 뭔가가 쿵쿵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리며 동굴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꺅!”

다들 무너질 것 같은 진동에 놀란 듯 비명을 지르자 동굴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동굴 안을 잔뜩 메아리쳤다.

급하게 뒤를 돌아보자 동굴이 좁아서 더는 들어오지 못하는 듯 밖에서만 서성이다가 결국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더 안 쫓아오는 것 같아요.”

『 여기가 제일 위험한 구간이었다. 이제 따라오도록. 』

돈을 많이 뜯어간 이유를 알겠네.

그렇게 사냥꾼들의 뒤를 따라 걸어가자 전의 통로와 달리 점점 몸이 기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하?

드워프 왕국이라는 곳이 지하에 있었나?

한참을 걸어 내려가자 어느 순간 후끈한 열기와 함께 환한 빛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자 넓은 지하 공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지하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넓고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하나의 도시.

곳곳에 들어선 용광로에선 시뻘건 증기와 화염을 뿜어내고 예의 제국에서 봤던 근육이 빵빵하게 터져 나올 것 같은 드워프들이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지나가던 드워프들이 잠시 우리를 바라볼 뿐.

특별히 제지를 한다든지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드워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국처럼 다른 이종족들도 상당히 많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 내 안내는 여기까지. 』

사냥꾼이 그렇게 우리만 남겨두고 그대로 다시 통로를 향해 사라져 버렸다.

이제부터 알아서 하라는 소리인가?

“자, 그럼. 한번 살펴보자고.”

재중이 형이 앞장서자 곧장 뒤를 따랐다.

여기도 장비, 저기도 장비.

만들어지고 달궈지는 온갖 종류의 장비가 잔뜩 있는 것을 보자 다들 눈을 뗄 수 없는 듯 곳곳에서 발을 멈추고 지켜봤다.

검도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쭉 뻗은 검도 있고, 날렵하게 휘어진 검, 넓은 폭을 뽐내는 검, 바늘같이 얇은 것에 어떤 검들은 진한 흑색으로 물든 것들도 있었다.

반면에 하얗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검들도 있었고.

다른 무기들도 많았는데 마치 긴 낫처럼 보이는 무기와 가운데 잡는 손잡이를 기준으로 양옆으로 넓은 날이 길게 뻗은 특이한 무기도 보였다.

가르시아 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기들의 향연에 이미 여기에 왜 왔는지 다들 잊고 무기 구경에만 정신이 팔렸다.

이건 흡사 쇼핑 나온 사람들 같잖아.

특히 이쁜소녀는 이미 넋이 나가서 용광로 앞에 아예 쭈그려 앉았다.

확실히 불꽃이 튀는 모습과 쇠를 두들기는 소리만 들어도 묘한 감상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다 가장 커 보이는 커다란 용광로에 멍하게 앉아있던 한 노인 드워프를 보았다.

저 사람, 아니 저 드워프.

분위기가 대장장이 노인과 많이 닮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관심이 가는 건지.

지나가다 우리 팀이 한 번씩 그 노인 근처를 지나갔지만 그 노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힘없이 앉아 있던 그 드워프 노인 옆에 가서 풀썩 주저앉았다.

그런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역시 관심이 없다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얼마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드워프 노인의 입에서 한마디 말이 나왔다.

『 꽤 재련을 했군. 』

시선이 잠시 내 카스카라에 머문 것을 보면 한눈에 알아본 것 같았다.

무려 13강.

현재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 중 강화 수치가 가장 높다.

다만, 대미지는 떨어지는 편이다.

워낙 구형 네임드 템이다 보니.

아마 신형 네임드 템을 조금만 강화하면 대미지 면에서는 밀려 버릴 것이다.

『 검이 더는 못 버티겠어. 아주 불안한 상태야. 』

13강.

이 상태에서 강화를 더 했다가는 바로 터져 버릴 것이다.

노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마 그런 것 같고.

눈썰미.

지나가던 드워프들은 그냥 흘깃거리면서 보고만 지나갔는데 이 노인은 확실히 달랐다.

혹시나 싶어서 인벤에 있던 르아 카르테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을.

그걸 보자마자 노인의 힘없던 눈에 이채가 돌았다.

『 부서진 영웅의 검…. 』

역시.

보여주는 것이 맞았어.

제국의 대장장이 노인과 같이 확실히 알아보았다.

그런데 드워프 노인이 눈이 아주 가늘어졌다.

『 자네, 혹시 가르시아 제국 출신인가? 』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드워프 노인의 저 착 가라앉은 눈빛.

이 대답 여하에 따라 앞으로의 분기점이 변할 것 같은 미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제국 출신이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흔한가?

대부분의 유저는 제국에서 넘어오는데?

굳이 이걸 물어보는 이유는?

지금 제국의 귀족이긴 하지만 출신 자체가 제국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콕 찍어서 제국 출신을 물어보는 것.

그리고 내 르아 카르테.

이건 분명 연관이 있다.

“아닙니다. 제국에서 오기는 했지만 그곳 출신은 아니죠.”

내 대답은 이것.

『 혹시 가르시아 제국의 황제에게 그 검을 보여준 적이 있나? 』

“아뇨.”

보여주기는커녕 만나보지도 못했지.

『 어떻게 가지게 된지는 모르겠으나 자네가 이 『 탐식 』의 검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조차 운명. 』

탐식?

운명?

르아 카르테를 가리켜 탐식이라고 하는 자는 처음이었다.

이 자.

뭔가 꽤 많이 알고 있다.

그때, 드워프 노인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 제국의 황제를 조심하게나. 그자는……. 』

그자는?

그러자 잠시 눈을 감은 드워프 노인이 눈을 다시 뜨더니 내게 진중하게 말했다.

『 인간이 아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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