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1
#421화 부위 파괴 (4)
평소였다면 한 곳을 집중적으로 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급소에 대미지를 더 박아 넣을 생각을 하지.
크리티컬이나 경직을 일으킨다면, 추가로 대미지를 더 넣기도 좋고 팀원들이 더 많은 딜을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반대로 이런 식으로 한 곳을 집중 공략하는 것은 대미지 자체가 반감된다.
방어력이 제일 높아 보이는 부위에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밀어 넣는 일은 단단한 무언가를 치는 것과 별다를 바 없다.
하물며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부위 중 가장 단단하고 강할 것 같은 곳을 치는 일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또한, 민첩이 높고, 공격속도가 빠르다 보니 조금만 집중을 잃는다면 같은 곳을 맞추기조차 어려워 제대로 된 공격은 힘들다.
다른 넓은 부위를 두고 단 한 곳을 계속 친다?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부위 파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한 곳을 노리는 것은 애매한 문제니까.
확실히 파괴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만약, 부위 파괴 지점이 다른 곳이라면 그야말로 헛수고를 아주 과하게 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우린 달랐다.
이미 정보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가르시아 제국 대장장이 노인이 정확하게 콕, 찍어서 말해줬다.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을 가져오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퀘스트 목록에 분명 손날이 있으니 누가 봐도 손날은 부위 파괴가 되는 부위였다.
그래서 다른 곳은 모두 제외하고 무조건 손날만을 노리고 일격을 집중했다.
검투사 블레이드의 크리티컬 증폭.
웨폰 조합의 대미지 증폭.
카스카라의 마력 회수.
제멋대로 휘둘러지는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을 볼 수 있는 감각.
완벽한 타이밍에 정확히 같은 곳을 다시 타격할 수 있는 센스.
그리고 내 신경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몰아주는 팀원.
이 모든 것이 합쳐져 한참 상위의 몬스터인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을 얻을 수 있었다.
이쁜소녀의 활기찬 응원(?)에 미소 지으면서 다시 다른 손날을 향해 검투사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를 휘둘렀다.
손날이 하나뿐이라면 이쯤에서 그만뒀겠지만 이쁜소녀 말대로 손날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아직까진 충분히 더 뽑아먹을 여력이 있기도 하고.
그때 전사 형이 의외의 말을 했다.
“좀… 약해진 것 같지 않아?”
악마형 케르베로스와 가장 근거리에서 붙어 싸우는 전사 형의 체력이 처음에만 해도 완전히 바닥을 내려갔다가 챠밍과 막내별이 억지로 살려낸 것도 여러 번.
그런 전사 형의 체력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더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혹시 손날을 부숴서 공격력이 약화 된 건가?
충분히 일리가 있는데.
재중이 형도 몇 번 창을 섞어보더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약해졌어.”
재중이 형이 그렇다면 정확하겠네.
나 역시 검투사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를 휘둘러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을 강타하자 손에 느껴지는 반탄력이 미세하게 줄어든 것이 손의 감각을 타고 느껴졌다.
체력 감소도 줄어들었고.
이대로 계속 약해진다면 어쩌면 이 녀석을 잡을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는데.
충격이 줄어들자 이전보다 꽤 안정적인 레이드에 다시 한 번 녀석의 손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검은 손날 / 제작 재료 』
두 개째.
잘하면 진짜 이쁜소녀 말대로 전부 부숴 버릴 수 있을지도.
다만 물약 문제나 다들 무리를 하는 중이라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
일단 하는 데까진 최대한 해봐야 하나.
그런데 그때 변수가 발생했다.
지켜보고 있던 유저 중 몇몇이 공격을 시작한 것.
칫, 저 녀석들이……!
아마 전사 형과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생각 이상으로 잘 버텨내자 한 숟가락 올리려 공격을 한 것 같은데.
한참 레이드에 집중하던 흐름이 저 녀석들의 공격 때문에 완전히 깨져 버렸다.
그리고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기다렸다는 듯 전사 형과 근접전을 하던 것을 멈추고 곧장 블링크로 사라졌다.
방향은 안 봐도 뻔했다.
방금 공격을 한 녀석들 쪽으로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퍼런 손날들을 크게 들어 올리며.
“어?! 왜!”
“어글 완전히 넘어간 것 아니었어?!”
“젠장! 피해!”
전사 형이 굳건하게 어글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억지로 어글을 돌려막고 있었던 건데… 이 미묘한 변화 하나 때문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전사 형은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인상을 썼다.
“아, 진짜. 저 새끼들이.”
재중이 형도 라이데인을 잠시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정말 쉽지 않네.”
이쁜소녀는 몸이 축 처지며 데스 나이트 배틀 액스를 땅바닥에 찍으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평소보다 과도한 움직임에 아직 적응이 안 된 모습.
올려둔 민첩에 좀 더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저 빠른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억지로 제어했으니… 긴장이 풀리며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곧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주변에서 구경하던 유저들 사이로 사라져 여기저기 날뛰는 모습에 나 역시 고개를 저었다.
개판.
공격하는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보고 도망가는 사람, 어쩔 수 없이 반격하는 사람이 뒤섞여서 레이드가 순식간에 개판이 되어버렸다.
아직 손날을 더 부셔야 하는데…….
미치겠네.
일정한 패턴과 예상되는 범위 안에서의 움직임은 어떻게든 크리티컬을 먹여 같은 부위를 계속 강타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그야말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저렇게 이 유저, 저 유저를 때리며 사방팔방 날아다닐 때는 부위 파괴의 난이도가 수십 배는 올라가게 된다.
예측 불가.
아무리 내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도 저 상황에서는…….
잔뜩 찌그려진 데스 나이트 갑옷을 입고 있던 전사 형이 내 옆으로 오더니 허탈한 듯 말했다.
“망했네.”
“네, 방해꾼이 너무 많아요.”
말 그대로 방해꾼.
저 많은 유저는 우리에겐 짐짝 같이 느껴졌다.
“그냥 단순히 잡는 거라면 숫자가 많을수록 좋겠지만.”
“우린 아니죠.”
레벨 업을 하지 않는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체력을 깎아줄 사람들이 많으면 좋다.
반대로 저렇게 날뛰면 부위 파괴에는 쥐약이다.
우리가 손을 놓아버리자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다시 유저들을 학살하면서 시가지를 벗어나 버렸다.
이번엔 다른 프로팀들 역시 딱히 나설 생각은 없어 보였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차라리 이쪽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려나?
우리가 계속 부위 파괴를 성공시켰으면 격차가 더 벌어졌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들이 막아서기에는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부담스럽기도 할 테고.
어차피 못 잡는다.
그럼 굳이 힘들게 막아서서 우리에게 득이 될 만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보였다.
그리고 상대하는 유저가 많아지자 멀리서 헬 라이팅이 다시 시전되었고 유저들의 안색이 하얗게 죽어버렸다.
“우린 피하죠.”
내 말에 우리 팀 모두 악마형 케르베로스에서 최대한 멀어졌다.
페이즈가 넘어가서 위력이 더 강해졌을 텐데 솔직히 부담되기도 하고.
헬 라이팅이 한 번 터지고 주변 건물이 전부 터져나가는 진풍경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상대하는 유저가 많아지니까 우리가 상대할 때 나오지 않던 패턴까지도 다 끌어다 쓰는 것 같았다.
거기다 전에 봤던 여섯 개의 검은 검날들이 생성되어 악마형 케르베로스 주변을 떠돌면서 주변 유저들을 하나씩 요격해버렸다.
상대하기 아주 까다롭게 변해 버렸네.
또 하늘에서 검은 비가 광범위하게 내려 유저들을 녹이는가 하면 바닥에서 시커먼 손들이 잔뜩 올라와 유저들을 땅으로 끌고 들어갔다.
전사 형이 그걸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휘유, 저거 우리랑 싸울 때 썼으면 망했겠는데.”
“역시 그렇죠?”
얼마 뒤, 도망간 유저들을 뒤쫓아 완전히 시가지 안쪽으로 사라지는 녀석을 보고는 검조차 내려버렸다.
진짜 저 유저들을 싹 다 죽여 버릴 수도 없고...
제국의 방어를 빌려서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잡으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제멋대로 행동하는 유저들이 변수였다.
어디로 튈지 이젠 감도 안 잡힌다.
악마형 케르베로스도 이속 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빠르니까 따라잡지도 못할 테고.
녀석이 사라지자 주변에서 대기하던 사장님이 급하게 우리에게 달려오셨다.
“허,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냐….”
“오셨어요?”
사장님을 비롯한 최강 길드 사람들은 성벽에서의 공격에 한 번씩 다 죽었었다.
몇 명 살아남아서 템을 겨우 회수한 것이 최선.
달 길드와 치맥 길드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스칼렛과 이슬두잔도 우리를 지켜보다가 멀리서 걸어 나왔다.
다들 아쉽다는 표정이 가득하네.
사장님을 보고는 물었다.
“물약은요?”
“미리 준비해놨지.”
이미 악마형 케르베로스와 싸운다고 물약을 엄청나게 구입해 버렸다.
사장님과 최강 길드원들이 전해주는 물약으로 다시 인벤을 채운 다음 폭발이 일어나는 지점을 향해 발을 옮겼다.
“가죠.”
바로 따라잡진 못 하겠지만 어쨌든 어디선가에서 싸우고 있다면 멈춰 있을 테니까.
한 번 더 기회가 있다면.
이번엔 확실히.
다만, 상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돌아갔다.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흔적을 따라 제국 성까지 근접하자 전의 로가슈 왕국 때와 비슷하게 수비가 가능한 NPC들이 나와서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하늘에선 번개가, 땅에선 불바다가 시가지를 뒤덮으면서 처음 보는 무기를 들고 있는 붉은 십자가 문양을 새긴 하얀 갑옷을 입은 NPC들이 잔뜩 나와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상대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혀를 찼다.
“시간 오버네.”
방어전이 너무 길어지고 유저들이 네임드를 막아내지 못하면 그에 준하는 전력이 등장해 네임드를 죽이거나 밀어내는 상황.
전사 형이 방어 NPC들을 보더니 설명해주었다.
“기사단 NPC들이네. 전에 보상받을 때 한 번 봤다.”
“그럼, 보상은 못 받겠네요.”
확실히 제국 성 내에서 나온 NPC들이라 확실히 강했다.
다만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상대하기에는 NPC들이 그렇게까지 강하진 않아 보였다.
예전의 한켈보다는 못한 딱 그 정도 수준.
물론, 숫자가 많아서 잘 버티긴 하지만 결정타가 없는 그런 느낌.
지금 가세하면 이득을 볼 수 있으려나?
그렇게 잠시 밀고 밀리는 싸움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제국 성 내에서 또 다른 NPC가 등장했다.
그리고 온몸에 파란 기운을 둘러쓰고 악마형 케르베로스에게 달려들더니 파랗게 빛나는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방어막이 쭉쭉 찢겨나가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 NPC의 능력인지.
아니면 가지고 있는 저 검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제국에도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상대할 수 있는 한켈과 비슷한 존재가 있었다.
라이데인 때도 그랬듯 만약 저 검의 능력이 강해서 저렇게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두들겨 팰 수 있다면…….
이건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
나중에 제국을 털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건가?
일단, 두 눈에 저 검을 새겨두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거친 포효를 하더니 빠르게 제국 성을 벗어나 외곽으로 뛰쳐나갔다.
“어? 오빠, 쟤 도망가요!”
이쁜소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도망간 자리를 가리켰다.
전사 형도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진짜 튀었네.”
이건 전혀 예상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튀어버릴 줄은...
“어떻게 하죠?”
이속이 빨라서 마음잡고 도망가 버리면 솔직히 따라잡기는 어렵다.
재중이 형도 역시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나중에 잡을 기회가 있겠지. 어디선가 더 강해져서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아쉽지만 이번엔 부위 파괴 두 개를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얼마 뒤 방어전이 끝났다는 시스템 음이 울리고 보상은 예상했던 대로 받지 못했다.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죽지도 않았고, 결국은 NPC가 몰아낸 셈이라 별로 기대도 안 했었다.
그렇게 대규모로 드랍된 아이템으로 서로 할퀴는 상처만 낸 방어전이 마무리되어 버렸다.
아마 당분간 뒤처리 때문에 시끄러울지도.
원수가 된 길드가 한둘이 아니니까.
벌써부터 채팅창에 욕설들이 난무하는 것을 봐선 쉽게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결과를 뒤로하고 이번에 얻은 손날을 가지고 제국 대장장이 노인을 찾아갔다.
대장장이 노인이라면 분명히 이 재료를 써서 좋은 아이템을…….
“오호? 이걸 대체 어디서!”
역시 좋은 반응.
하지만 뒤 이어진 대답은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이 녀석을 제대로 쓰고 싶으면 드워프 왕국으로 가라. 등급이 높아 여기서는 제련할 수가 없어.”
드워프 왕국?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옆에서 챠밍이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생각해내고는 말을 꺼냈다.
“전에 우리 갔던 곳 근처에서 산맥 하나 넘으면 된다고 했었어요.”
“설마 거기?”
드래곤 친구 애들이 바글바거리던 그곳?
거길 가야 한다고?
챠밍의 말을 들은 우리 팀 모두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전에 그 고생을 했는데 또 가야 하는 상황이라.
가만히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뭔가를 생각하고는 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었다.
“전에 그 사냥꾼 NPC들. 찾아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