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3
#423화 탐식 (2)
인간이 아니라고?
더 많은 내용을 원했지만, 드워프 노인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분명, 퀘스트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상적인 루트로 오지 않아 정보만 알려준 정도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종종 정보를 하나씩 툭툭, 던지는 NPC 중 하나일 것이다.
이쪽은 다른 방법으로 알아봐야겠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르아 카르테를 가르시아 제국 황제에게 보여주지 말라는 뉘앙스를 보였다는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건가?
사실 지금껏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드워프 대장장이 노인 역시 르아 카르테를 아는 것을 보면 그쪽으로 연관시키긴 어려웠다.
그렇다면 제국 황제와 드워프 노인 사이에 어떠한 접점이 없다고 판단하는 게 맞는 걸까?
혹,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이 정보는 계속 기억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제국 귀족으로 올라가다 보면 분명 제국 황제를 마주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르아 카르테가 왜 탐식인 거지?
보는 사람들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천차만별인데…….
제국 황제에 대한 의문점은 풀어주지 않았지만, 드워프 노인이 이쪽으로는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 영웅의 검은 한 자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그러면서 내가 들고 있던 르아 카르테를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니, 르아 카르테는 한 자루밖에 없는 유일한 검이라고 했는데?
분명히 퀘스트에 명시가 되어 있었다.
한 자루 밖에 없고 내가 죽을 경우 반환되어 사라진다고.
아직까진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다른 서버에서 얻게 되면 이 사실이 알려지리라 생각되었다.
나머지 15개 서버의 소유주들이 전부 입을 닫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솔직히 비밀이라는 것을 그렇게 믿지는 않았다.
유저들의 과시욕을 생각해 보면 누군가 하나는 분명히 말을 꺼낼 것이다.
어떤 경로로든.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생각도 못 한 채.
드워프 노인에 대한 말을 되씹어 보면 르아 카르테 같은 종류의 영웅의 검이 다른 곳에도 몇 자루 더 존재한다는 이야긴데…….
이건 더 들어봐야 아나?
그리고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드워프 노인이 말을 꺼냈다.
『 누구는 마검이라고도 부르지. 누구는 악마의 창이라고도 부르고. 저주의 활이기도 하며, 재앙의 도끼이기도 하다. 소유자의 성향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은 매번 바뀌어 왔다. 검이라고 하지만 검이 아닌 녀석도 있고. 』
역시 한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형태가 다 다르다는 건가?
아니면 검인데 부르는 명칭이 각각 다르다는 걸까?
얻는 경로만 알게 된다면 다 얻어내고 싶기는 한데.
사실상 중요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 그리고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웅의 검들은 각자 다른 곳에 조용히 봉인되어 있다고 하니까. 탐식이 어떻게 이렇게 풀려났는지 모르겠지만. 』
봉인이라…….
르아 카르테는 솔직히 봉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했다.
로가슈 왕국에 버젓이 보관되어 있었으니까.
그냥 박스 속에 있었다고 하면 드워프 노인이 뒷목 잡고 쓰러질지도 모르겠는데?
물론, 봉인은 되어 있었다.
검 자체에.
당장 쓰지도 못하고 인벤 속에 넣어둔 이유는 정보가 뜨지 않아서니까.
다시 내 르아 카르테를 보던 드워프 노인의 눈빛이 확 살아나면서 말했다.
『 영웅의 검들은 하나 같이 세상을 바꿀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탐식만은 특별하지. 』
특별하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다른 녀석들하고는 다르다는 소린가?
훨씬 강하다는 소리이려나?
대체 뭐가 다르지?
그리고 슬쩍 내 손에 들린 르아 카르테와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 그 녀석을 내게 맡겨줄 수 있겠나? 그 녀석을 내가 어떻게든 쓰게 만들어 주지. 』
의외의 상황.
악마형 케르베로스 손날을 제국의 장비로는 제련을 못 해서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지금은 상황이 묘하게 변해 버렸다.
설마, 지금 르아 카르테를 복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전에 있던 서브 퀘스트에서는 분명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시작해 네 가지 재료를 모아오라고 해서 반쯤 손을 놓고 있었다.
이는 아무래도 인간과 드워프의 기술력이 달라서 생기는 일 같기도 하고.
원래 준비되어 있던 퀘스트를 성큼성큼 뛰어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상황은 내게 나쁘지 않지.
떠먹여 준다는데 안 먹으면 이쪽이 바보다.
현재의 장비 역시 부족함이 없지만 드워프 대장장이가 말했듯 지금 조합으로 올릴 수 있는 한계점이 명확했다.
앞으로 잡아야 할 녀석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이 제안은 반갑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엔 정식적인 퀘스트가 떴다.
《 서브 퀘스트 : 르아 카르테(탐식)의 수리. 》
-드워프 대장장이 NPC와 수리 과정에 참여하세요.
-퀘스트 보상
『 +0 르아 카르테 (유일) - 봉인 일부 해제. 』
봉인 일부 해제?
제국 대장장이가 손도 못 대던 것을 이 드워프 노인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브 퀘스트를 받자마자 전에 있던 퀘스트가 사라지며 지금 퀘스트로 완전 변경되었다.
주변 드워프 대장장이들과 다르게 홀로 놀고 있던 모습이었지만 퀘스트가 뜬 이상은 이젠 되돌릴 방법도 없고 믿고 맡길 수밖에.
손에 들고 있던 르아 카르테와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을 맡기자 드워프 노인이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드워프 노인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드워프 노인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추가로 들려오는 친밀도 상승.
그것도 한 번에 동시에 울리는 것을 봐서는 르아 카르테를 전달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환심을 산 것 같았다.
『 따라오게. 』
그렇게 드워프 노인이 자리를 옮기는데 이전까지 본체만체하던 다른 드워프들이 일제히 드워프 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뭐지?
이 상황은?
르아 카르테를 알아볼 때부터 다르다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 이상의 반응이 나왔다.
주변에서 눈으로 쇼핑을 하던 우리 팀들이 놀라서 내게 달려왔다.
제일 근처에 있던 전사 형이 먼저 와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 르아 카르테 고쳐준다네요.”
“정말? 제국에서는 힘들었잖아.”
“그러니까요… 여긴 되나 봐요. 퀘스트까지 떴어요.”
“오! 그래? 그럼 확실하네. 그런데 저 드워프 이상하지 않냐? 주변 드워프들이 다 숙이는데?”
전사 형이 의아해하면서 잠시 옆에 있던 드워프에게 가서 물었는데 정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 우리의 왕이시다. 경의를 표하라. 』
그 말에 다가온 이쁜소녀가 깜짝 놀란 듯 외쳤다.
“정말 왕…?”
“그런가 보네.”
르아 카르테를 한눈에 알아보고 고쳐준다 할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때, 시스템음이 울려왔다.
《 드워프 노인 NPC의 명칭이 변경됩니다. 드워프 왕 『 카르바할 』의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
“나 뭔가 운이 있나 보다.”
길 지나가다 찾아낸 드워프가 왕이라니…….
구경하던 것을 멈추고 모두 드워프 왕을 따라 자리를 이동했다.
처음엔 얼마간 간다고 했던 것이 점점 지하를 향해 계속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드워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참을 내려가서야 멈춰 섰다.
최하층인가?
얼마 뒤 벽면에 있던 엄청나게 커다란 붉은 철문을 밀고 드워프 왕이 안으로 사라졌다.
철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에 깜짝 놀랄 틈도 없이 바로 드워프 왕을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용암?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용암 같아 보이는 액체를 보고는 다들 감탄한 듯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 우리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지. 상위의 무구를 제련하기 위해서는. 』
확실히 제국이 아닌 이곳이어야 하는 이유.
산맥 골짜기 아래 동굴 밖은 드레이크나 용종 몬스터들이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자리 잡은 이유였던가?
『 용맥. 이곳만이 최강의 무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
그렇게 뿌듯한 듯 용맥을 바라보던 드워프의 왕이 내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 지금부터 7일 동안 그대는 나와 함께 이 탐식을 고쳐야 한다. 』
7일?
방금 7일이라고 했나?
고개를 돌려 우리 팀을 보자 다들 난감함을 표했다.
물론, 날 포함해서.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형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왔다 갔다 하면서 속 편하게 고치라는 말은 아닐 것 같고. 꼬박 7일을 잡혀 있어야 한다는 소린데…….”
“어쩌죠?”
“어쩌긴.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확실히 만들어서 와.”
“다들 어쩔 생각이에요?”
“으음, 이 근처서 사냥이 되는지 해봐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도 없고.”
“하아, 곤란하게 됐네요.”
7일이면 다른 유저들이 제국에 익숙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특히 상위권 유저 사이에선 7일이라는 시간은 정말 컸다.
별수 없나.
지금 이 아니면 또 이런 기회가 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혹시나 퀘스트를 파기해서 드워프 왕의 마음이 바뀌어 버리면 그것도 문제다.
동굴 입구에서 조심스럽게 사냥한다면 어떻게 사냥이 되기는 하겠지.
여차하면 동굴로 뛰어 들어오면 되고.
워낙 이런 쪽으로는 잘하는 사람들이라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모두 아쉽다는 듯 다시 상층으로 올라간 뒤, 본격적으로 드워프 왕과 복구 작업이 시작되었다.
용맥의 기운을 이용해 르아 카르테를 제련하자 르아 카르테의 하얀 검신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은 용맥 속으로 녹듯이 사라졌고.
한 시간.
두 시간.
몇 시간이나 멍하니 해머로 내려치는 광경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손날이 녹아든 용맥이 르아 카르테에 흡수됐다가 빠져나오는 것을 계속 반복했다.
『 여기에 피를 넣어라. 』
그리고 드워프 왕이 제련하는 중간중간 내 손에 상처를 내서 피를 흘려 넣는 작업만 했다.
각인이라던가?
당장 쓰지 못하는 르아 카르테를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이 정도 작업이라면 못할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챠밍이 드레이크를 잡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챠밍> 오빠, 드디어 드레이크 잡았어요!
<주호> 대단하네.
반나절 동안 한 마리라.
성과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냥이 된다는 것은 꽤 중요했다.
그 뒤로도 승전보를 계속 알려왔다.
<챠밍> 한 마리씩 겨우 잡아요. 언니가 멀리서 끌고 오면 동굴 앞에서 불멸 오빠가 눕히고 그래요.
이쪽은 한시름 놓았나.
사냥이 안 됐다면 바로 돌아갔을 텐데.
재중이 형이 라이데인을 들고 있어서 어떻게든 사냥이 되기는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레벨 차이가 극심하다 보니 한 마리씩 힘겹게 잡는 것이라 연합 사람들을 불러오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제국에 남아 있는 사장님이 전해오는 소식에는 상위 팀, 프로팀이 각기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주호> 벌써 벗어났어요?
<카이저> 생각보다 사냥 속도가 정말 빠르구나. 이미 어지간한 상위 팀은 제국을 다 벗어났다.
<주호> 어디로 갔어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내 쪽에서 얻은 정보를 스크린 샷으로 남겨 사장님에게 넘겨주었다.
사냥터 정보는 사장님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카이저> 말라버린 숲. 울음의 호수. 이쪽은 엘프들 주 서식처라. 피의 저택도 간 것 같더구나. 얼음 성도 도전 중이고. 특히 보이지 않는 숲이라는 곳도.
화산 지대나 지하광산은 이쪽에 가까운 사냥터라 아마 다 제외한 건가. 제국에서 동쪽인 우리와는 다른 북쪽으로 간 것 같았다.
<주호> 사장님은요?
이쪽 사정은 이미 이야기했었다.
도움을 줄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끌어올 수도 없고.
<카이저> 일단 말라버린 숲으로 이동했다. 이쪽은 엘프에게 기술도 배울 수 있다고 하고. 아직까진 다들 레벨링에 집중한다고 쟁이 일어나지 않는데 확실히 자리 잡고 나면 상황이 확 변할 거다. 폭풍전야 같구나.
그렇게 재중이 형 쪽과 사장님 쪽 사정을 들으면서 게시판을 살펴봤다.
빠른 레벨링이라…….
내가 완전 휴업 상태고 재중이 형 쪽은 레벨보다는 여기서 버틴다는 느낌으로 힘겹게 레이드 중이라 적절한 사냥터에서 빠르게 학살해가면서 레벨을 올리고 있는 유저들에게 뒤를 잡히기 시작했다.
차라리 나중에 올 것을 그랬나…….
초조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안함이 계속 생기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보다 르아 카르테가 좋지 않다면 어떻게 하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5일째 되는 날.
기어코 레벨 순위가 뒤집히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제국에서 몹이 주는 경험치는 예전과 비교할 것이 아니지.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나자 내 순위가 100위권 바깥으로 사라져 버렸다.
내 쪽은 섬을 넘어오기 전의 그 레벨 그대로인 반면 다른 유저들은 계속 치고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주호 접은 거 아님? 왜 레벨이 하나도 안 올라?
-순위가 뒤집히더니 이제 안 보이네.
-정말 그만뒀나?
-신화 쪽 사람들은 레벨 간간이 오르던데?
-어디 아픈 것 아냐?
-경쟁자들은 이때다 싶겠네.
-상위권에 신화 애들 없으니 이상하긴 하다. 1년 내내 그 자리였는데.
아직 안 접었다.
이놈들아.
중간에 화련이 몇 번이나 연락 와서 물어보기는 했었다.
<화련> 혹시 죽었어?
<주호> ……아직 살아 있습니다.
<화련> 난 또 혹시 죽었나 했네. 살아 있으면 됐어.
이 여자가 사람을 바로 죽였다 살리네.
<화련>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주호> 혹시 제 걱정해주는 겁니까?
<화련> 미, 미쳤어?! 끊어!!
아니면 됐지.
왜 화를 낸담.
까칠한 화련의 외침을 듣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긴 하다.
나 빼고는 다 제대로 굴러가고 있구나.
그렇게 얼마 더 기다리자 드디어 드워프 왕 카르바할의 손이 멈추었다.
일주일간 해머만 내려치는 저 드워프도 참 대단하긴 하네.
『 오래 기다렸다. 』
드워프의 왕이 한껏 매끈하게 빠진 투명에 가까운 검신을 가진 르아 카르테를 내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르아 카르테의 살펴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기존 검과는 완전히 다르다.
어렵게 기다린 보람이 있네.
이거라면……!
들뜬 마음에 우리 팀에게 곧장 연락했다.
<주호> 드디어 완성됐어요. 탐식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그런 녀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