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
#386화 해원의 눈물 (4)
해원 입장에선 무조건 통하리라 생각하고 이 함정을 준비했을 것이다.
한 번의 미끼로 진(眞) 썬더볼트의 쿨타임을 빼내는 함정.
여기까진 좋다.
준비도 철저했고, 조사도 잘했다.
하지만 쉴라를 잡고 얻은 스킬북을 몰랐다는 것.
애초에 쉴라의 드랍템은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기도 하고.
해원이 누군가를 우리 쪽 진영에 넣어두었다고 해도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알았다면 저렇게 무턱대고 함정을 짜진 않았을 테지.
내가 해원에게 귓말을 넣은 시점은 이미 천상 연합원들이 우리 근처까지 우르르 몰려온 시점이었다.
뭔가를 눈치채고 빠질 수도 없는 딱 그런 위치.
빼내려고 해도 다들 높은 광산 언덕에서 뛰어 내려와 이미 가속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뒤쪽 역시 천상 연합원들이 잔뜩 포진해 있어서 뒤로 빠질 수 없는 상황.
해원이 우리를 확실히 잡아보겠다고 정말 과할 정도로 병력을 투입한 것이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해원> 뭐? 너 방금 뭐라고?
<주호> 아, 이제 늦었어. 암튼 고맙다.
내 말에서 뭔가를 눈치챈 듯 해원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전체 외침으로 고함을 질렀다.
주변 호위들에게 전달할 시간조차 아까운 듯 본인이 직접.
다만, 해원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해원의 외침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
“전부 달려들어!”
“이번엔 주호 잡는다!”
“신화 길드는 여기서 끝이다!”
“죽여!!”
“드랍템은 내가 먹는다!”
“시끄러! 저건 내꺼야!”
“다들 달려!”
“우아아아!! 가자!”
우리 주변엔 온통 천상 연합원들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조용히 달려드는 것도 아니었고.
원래 전쟁이라는 것은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일말의 불안감.
우리에게 아무리 진(眞) 썬더볼트의 쿨을 빼냈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랭킹 10위권 안의 유저들이었다.
그런 우리를 상대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몇몇은 고함을 질렀고, 이 외침은 전염이 되듯 전 인원에게 퍼져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해원 개인이 외침이 들리기나 할까?
이 흐름을 이제 와서 막긴 어렵다.
개떼처럼 유저가 달려들었지만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지금부터는 우리 타임이니까.
그리고 한껏 당황한 표정을 보여줬던 챠밍, 이쁜소녀도 담담하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갑니다.”
앞서 스킬로 소모했던 마력을 한 번에 회복시키기 위해 바로 스킬을 돌렸다.
【 데스 나이트 하트! 】
그러자 순식간에 데스 나이트 형상으로 변했다.
마력이 풀로 돌아온 것을 보자마자 다시 다음 스킬을 시전했다.
【 시간의 서! 】
시간의 서를 사용해 전에 써버린 진(眞) 썬더볼트를 지정하자 시스템음이 울렸다.
《 시간의 서를 이용해 진(眞) 썬더볼트의 쿨타임을 초기 단계로 변경했습니다. 진(眞) 썬더볼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시간의 서는 앞으로 6시간 뒤,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완전히 진(眞) 썬더볼트의 쿨타임을 돌린 후 주변을 바라봤다.
데스 나이트 변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승기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는지 달려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고맙지 뭐.
“입고 있던 것들 다 벗어놓고 가라.”
【 진(眞) 썬더볼트! 】
스킬을 시전하자 하늘이 우르릉거리면서 다시 한 번 열리기 시작했다.
“어?!”
“뭐야?”
“왜 하늘이?!”
“한 번만 쓸 수 있다며어어!!!”
“젠장! 뒤로 빠져!”
“저리 비켜!”
“나오라고 좀!”
“아! ……발! 오늘 몇 번째 죽는 거야!”
당황.
흥분.
어이없음.
혼란.
진(眞) 썬더볼트가 시전되어 구름 아래로 썬더볼트의 머리가 드러나자 패닉은 배가 되었다.
서로 빠져나가려고 밟고 밀치는 아수라장.
“챠밍. 부탁해.”
“네, 준비했어요.”
【 본 쉴드! 】
이번에 미치광이 리치를 잡으면서 추가로 얻은 망토가 있었다.
그것을 챠밍에게 바로 쥐여주었고.
그렇게 본 쉴드가 시전되어 우리 주변을 감쌌다.
썬더볼트의 강력한 전기 공격이 퍼지면서 사방이 폭발하는데도 우리는 안전하게 그 광경을 구경했다.
“잘 터져나간다.”
전사 형이 흐뭇한 표정으로 즐거워했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편안한 얼굴로 이 상황을 즐겼다.
썬더볼트의 뇌전이 한동안 필드를 휩쓸었고 더 지질 것이 없다고 판단한 듯 다시 고고하게 구름 위로 사라져 버렸다.
전멸.
예전 공지에 일부 광역기가 너프됐다고 해서 약간 걱정을 하기는 했는데 데스 나이트 변신과 함께 사용해서 그런지 스탯 보정을 어느 정도 받은 것 같았다.
전체적인 위력에 큰 차이가 없는 모습.
아니, 오히려 더 강해진 건가?
천상 연합의 정예들이 아이템을 화려하게 갖추고 덤볐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그 자리에서 녹아버렸다.
범위 안에 들어가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그리고 이번엔.
확실한 아이템 밭이었다.
상급 템만 떨어져 있는.
그렇게 바닥 위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아이템들이 전 필드를 따라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이템이 워낙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시커먼 광산이 아니라 마치 보석으로 된 산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전사 형의 감탄이 바로 이어졌다.
“휘유! 엄청나네.”
이쁜소녀도 이 광경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대박! 미쳤어요!”
챠밍도 마찬가지.
“너, 무…… 많네요.”
나르샤 누나도 뿌듯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에도 아이템 밭을 만든 적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 정말 규모가 달랐다.
해원이 작정하고 전 연합원들을 꼬라박은 상황이라 더 그랬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다 주워가지?
좋은 것만 선별하려면 줍는 시간이 한 시간은 꼬박 걸릴 듯싶다.
그 사이 템이 먼저 사라져 버릴까 걱정될 정도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막내별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저 이런 것 처음 봐요. 정말… 현실 맞죠?”
막내별이 한 손을 들어서 자기 뺨을 꼬집어봤다.
“아얏!”
“아, 당연히 아프죠.”
그런 아픔은 잠시.
막내별이 영롱하게 눈빛을 빛내면서 사방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아!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기분!”
“보고만 있지 말고 이제 죽어라 주워야 해요. 사라지기 전에.”
“으, 이걸 다요?”
내 말에 바로 막내별의 표정이 바로 질린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정말 너무 많으니까.
“좋은 것만! 어차피 다 못 주워요.”
“빨리 시작해야겠네요.”
막내별의 전의를 불태우면서 주변의 아이템 밭을 노려봤다.
“그렇게 불태울 것까진 없고요. 일단 전 못다 한 앙금 좀 풀고 올게요.”
그러면서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재중이 형이 먼 산을 보면서 못 본 척을 했다.
“아, 나도 아이템이나 줍고 싶었는데.”
“힘든 일은 항상 형이 맡는 거죠.”
“아놔, 혼자 다 처리 안 되냐?”
“해원은 좋은 걸 떨어뜨릴걸요?”
“당장 가자.”
농담을 진담 반 섞어가면서 내 옆에 다가와 섰다.
어차피 혼자 보낼 생각도 아니었으면서.
“전사 형, 그럼 부탁 좀 할게요. 아, 정 안 되겠으면 사장님 불러요. 그래도 안 되면 스칼렛도. 인벤 모자라서 대부분 버려야 할 테니까.”
“그건 알아서 하마. 다녀와. 내 몫까지 한방 쎄게 먹여주고.”
“접수.”
거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장님에게는 베록이 있었다.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터.
솔직히 이 정도까지 하리라 생각하지 못해 사장님을 섭외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아이템이 사라지는 것은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충분히 많으니까.
큰 걱정 없이 재중이 형과 함께 멀리 보이는 해원을 향해 걸어갔다.
눈에 들어오는 해원의 모습은 전의 그 위풍당당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엄청난 규모의 연합 정예 병력이 한순간에 녹아버렸다.
천문학적인 돈은 아닐지라도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액수가 증발했을 것이다.
아무리 해원이 자금이 많다고는 해도 이 정도 실책이면 뼈아프다.
그러잖아도 하루의 반을 유저들을 학살하면서 손해를 눈덩이처럼 불려놓았는데 지금은 더 한 상황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해원의 표정이 썩어 있었다.
얼마나 분한지 손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도 보였고.
나와 재중이 형이 아이템 밭을 뚫고 계속 걸어가자 해원이 주변에 있던 호위들이 해원의 앞을 막아섰다.
해원이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정면을 막는 선택을 할 뿐, 빠져나간다거나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충견 정도는 된다 이거네.
어떤 상황에서도 해원 하나만 신경 쓰지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만큼 돈이 들어갔다는 소리려나?
실력도 아마 꽤 좋으리라고 생각되었다.
다만 지금 내 쪽은 데스 나이트로 변신을 한 상태였다.
전에 비해 스탯이나 스킬이 칼질을 당했다지만 일반 유저들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상태이기도 하고.
그런 상황을 아는지 내 앞을 막아선 호위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잔뜩 흘러나왔다.
총 다섯.
점점 접근하는 우리를 보더니 결국, 해원의 허락 없이 호위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한 명이 정면을 지키고 넷이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굉장히 빨랐다.
전에 해원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 적이 있어서 그런지 해원을 지키는데 한 명이 무조건 앞을 지키는 것 같았고.
“형, 뒤로 돌아간 녀석들 부탁 좀 할게요.”
두 명이 뒤로 돌아가자 재중이 형에게 뒤를 맡겼다.
물론, 말이 끝나기 전에 재중이 형은 뒤로 내달려 두 명과 동시에 교전을 벌였다.
한 치의 실수도 없는 편안함 모습.
오히려 뒤로 돌아간 두 명의 유저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순간 내 양옆으로 두 개의 검이 교차로 파고 들어왔다.
떨어졌다가 약간의 시간차로 들어오는 두 사내의 검격.
평소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 그 찰나의 시간차에 매섭게 파고 들어왔다.
다만.
보인다.
분명 빠르긴 하지만 미세한 떨림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팔과 어깨의 미묘한 틀어짐이.
매번 데스 나이트의 빠른 공격을 보다가 그보다 낮은 속도의 공격을 보니까 더 잘 눈에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한쪽은 잠시 눈을 돌리려는 강격을 가장한 페이크.
다른 한쪽은 페이크를 가장한 강격.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페이크 쪽은 무시.
어차피 저건 내 시선을 끌기 위한 헛동작에 불과했다.
페이크로 휘두르는 쪽을 막으려는 시늉을 하다가 바로 자세를 바꿔 강격을 날린 유저의 칼날을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휘둘러 위로 쳐올렸다.
까앙!
강격을 위해 힘을 잔뜩 실었던 남자가 반탄력에 부들거리면서 떨리는 팔을 애써 다잡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사이로 내가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로 명치 쪽을 그대로 찔러 들어갔다.
퍼억!
순간 몸을 최대한 비틀어서 공격하긴 했다.
눈썰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
아니, 마지막까지 공격을 피하려고 했으니 생각보다 수준이 있었다.
다만, 10강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가 워낙 강하다 보니 갑옷째로 깨져나가며 그 자리에서 남자가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같은 검사 사이에서는 결국 템이 어느 정도 승패를 좌우한다.
가뜩이나 힘과 속도가 밀리는데 무기까지 좋지 않으면 애초에 싸움 자체가 안 되지.
그렇다고 내가 봐주면서 할 사람도 아니고.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에 당해 물약으로 회복이 안 되고 상처 저주로 체력까지 빼앗기자 남자의 안색이 금방 시커멓게 변했다.
페이크로 날 속이려 했던 반대편의 남자가 낭패한 기색을 보였다.
하르 검을 화려하게 휘두르며 잠시라도 내 시선을 뺏어서 혼란하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것에 당하진 않지.
딱히 한 명을 상대로 질질 끌 이유가 없어 바로 달려들어 그냥 스킬 빨로 해결했다.
【 더블 크래쉬! 】
두 개의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로 더블 크래쉬를 걸어 연속으로 휘두르자 마치 한 번에 네 번을 공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큭! 젠장!”
내가 빠르게 따라붙어 계속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로 공략을 하자 사내가 인상을 썼다.
검으로 똑같이 막는다고 해도 추가 대미지가 들어오니까.
그러면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의 디버프 효과 때문에 물약으로 회복이 안 된다.
몇 번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낸 사내도 뒤이은 연타를 계속 허용해 그대로 허물어졌다.
무기 빨로 눌러 버린 거라 크게 감흥도 없고…….
뒤를 돌아보니 재중이 형은 진작 두 명을 끝내놓고 여유 있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 좀 빠릿빠릿하게 못 할래?”
“하, 벌써 끝냈어요?”
“무기가 너무 좋거든.”
그러면서 라이데인을 자랑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하긴 저 인간에게 저 무기를 쥐여주는 것은 사기지.
그 사이 해원은 부들거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잔뜩 성이 난 모습이었다.
“이! 내가! 내가 저런 새끼들한테 진다고?! 야! 당장 저 새끼들 죽여! 돈을 그만큼 처먹었으면 저런 새끼들 정도는 죽여야 할 것 아냐!!”
해원을 지키던 마지막 여성 호위가 굳은 표정으로 그 욕을 다 듣고 있었다.
넷이 덤볐음에도 안 됐는데 혼자서 상대가 될까.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여성 호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우리에게 달려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공격을 받아 죽어버렸다.
확실히 마지막 남은 이 여성 호위가 가장 실력은 있었다.
나와 재중이 형의 공격을 꽤 오랫동안 막아냈으니까.
그냥 시기와 주인의 문제인가.
재중이 형도 조금 아쉬운지 한마디 했다.
“실력이 아깝네. 저런 놈 밑에 있기엔.”
그렇게 모든 호위를 다 눕힌 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해원을 향해 걸어갔다.
“아주 시원하게 말아먹었네. 그럼 네 실수는 누가 처벌하냐? 네 할아버지가 똑같이 네 손가락을 꺾으면 되냐? 네가 멸치에게 했던 것처럼?”
“뭐?! 이 새끼가! 너 같은 버러지가 뭘 안다고! 내가 조금만 일찍 시작했어도 너희는 상대도 되지 않았어!”
재중이 형도 그 말을 듣더니 안색이 굳었다.
“버러지라… 저 새끼, 아주 말을 막 하는구만.”
사람들을 장난감처럼 부릴 때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저 녀석은 유저를 같은 사람이라고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밖에서 무슨 짓을 하든 잘 모르겠고, 내가 상관할 바도 아니지만.
여기 안에서는…….
적어도 지금 저 꼴은 정말 못 봐주겠다.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잡은 두 손을 꽈악, 쥐었다.
그리고 굳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안 되겠다. 넌 오늘 좀 맞아야겠다.”
아주 뒤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