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5
#385화 해원의 눈물 (3)
벌집 쑤시듯 온 필드를 쑤시고 다녔다.
언제 나오나 했더니 이제야 무거운 엉덩이를 옮긴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이렇게 들쑤셔 놔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는 놈이라…….
스칼렛이 중간에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내부에서 불만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단다.
연합 운영진들은 뭐하냐며, 욕설도 좀 섞였다고 했고.
다이렉트로 이런 요청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서 중간에 스칼렛이 심어둔 사람이 캐치할 수 있었다.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와야 했을 것이다.
휘하 연합원들이 죽는 것과 별개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북쪽 사냥터 지역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
뭐, 몇 번 지원이 오기는 했었다.
나오긴 했지만, 우리에게 계속 털렸고.
그렇게 챠밍이 프리 딜을 할 동안 나는 마력을 전달하는 식으로 달려드는 천상 연합 유저들을 차례대로 녹여 버렸다.
굳이 진(眞) 썬더볼트를 꺼낼 것도 없이.
강력한 마법사가 마력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광역기를 날리는 광경이란…….
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마 광역기 종류가 더 많았으면 정말 쉴 새 없이 광역기를 날렸을지도 모른다.
카스카라의 강력한 마력 흡수 능력.
두 개의 듀얼링에 달린 추가 마력 흡수.
급소만을 노릴 수 있는 능력.
마력 전달.
그리고 트리플 캐스팅.
재중이 형조차 이 조합을 보고 혀를 내둘렀으니 상대방 입장에서는 과연 어땠을까.
처음에는 소규모 병력으로 달려들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점점 규모가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몇 명밖에 안 되는 우리를 잡지 못해 결국 나가떨어졌다.
시간이 좀 지나자 그런 도전도 뜸해져 버렸고.
일단, 이곳과 귀환지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지금 현재 귀환지 지정은 딱 두 가지다.
옛 로테 주변의 임시 귀환지.
그리고 로가슈 왕성의 귀환지.
저들의 문제는 적이 너무 많다는 것.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천상 연합 유저들의 귀환지가 로가슈 왕국으로 되어 있었다.
옛 로테의 임시 귀환지에선 소규모 쟁이 벌어지기 일쑤라 서로 피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리고 옛 로테의 임시 귀환지에는 제대로 된 시장도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몇몇 장사꾼이 위험을 감수하고 물건을 퍼다 나르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데스 나이트나 미치광이 리치가 버젓이 돌아다니는 장소에서 장사하기란 쉽지가 않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리가 먼 로가슈 왕성의 귀환지를 드나들게 되었다.
이로 인해 생기는 거리의 문제.
그래서 점점 북쪽 광산 던전의 사냥터가 비어가기 시작했고, 이는 다른 유저들의 행복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동안 천상 연합 때문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 했던 유저들도 아예 비어버린 자리를 마음 놓고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상 연합도 강하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세력도 많이 약해졌고, 자칫 잘못했다간 역풍을 맞아 사냥터 통제력을 잃어버릴 수 있기도 했고.
욕 들어 먹기 딱 좋은 일이기도 하고.
일단 분쟁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라면 억지로 뺏기가 힘들어졌다.
그런 저변의 이유 때문에 외곽부터 중앙까지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가자 결국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북쪽에 존재하는 천상 연합의 사냥터는 괴멸될 테니까.
그럼 자연스럽게 수입이 감소하고 이는 그대로 연합의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
규모를 키우고 그 규모로 억지로 자리를 뺏고 그 자리를 다시 휘하 길드원들에게 돌려 지배력을 강화했던 천상 연합 입장에서는 연합을 유지하는 근간부터 흔들리는 일이다.
지속적인 사냥터의 부재.
죽음으로 인한 경험치 손해.
착용하던 아이템 드랍.
이런 식으로 계속 피해가 누적되자 결국 천상 연합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핵심 인력은 북쪽 광산 던전 안에서 사냥을 했지만…….
뿌리가 되어야 할 유저들이 계속 이탈하면 이런 형식의 연합은 유지가 되지 않는다.
해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결국 본인이 직접 나선 것 같았고.
해원이 멀리서 이를 부득 갈면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더니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녀석 똥줄이 탔나보네.”
“그러게요. 여유롭던 그때의 모습 하고는 많이 다른데요?”
예전 선상에서 봤던 그 모습 하고는 많이 다르다.
심지어 방어전에서 봤던 모습 하고도.
하긴 칼이 턱 밑까지 치고 올라가는데 여유롭다면 그것도 문제겠지.
정말 미친놈이라는 소리니까.
이미 필드 사냥터의 절반 이상이 터졌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났으면 필드에서 천상 연합의 천자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왔을 것이다.
그리고 먹잇감이 없어지면 당연히 던전 안까지 들어갔을 거고.
거기서부터는 나와 재중이 형의 전문 분야다.
뭔가 좀 아쉽긴 하네.
정말 씨를 말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해원이 앞으로 걸어 나오자 당연하다는 듯 주변 호위들이 좌우를 방어하면서 움직였다.
제대로 실력을 보지 못한 몇 명의 사람들.
해원은 논외로 치고 저 사람들의 능력에 따라 지금부터의 싸움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 호위들 속 해원이 인상을 쓰면서 우리를 바라봤다.
“지금 뭐 하자는 거냐?”
“뭐하긴. 방어전 뒤풀이 하는 거지. 그쪽이 보내준 선물이 마음에 들어서. 우리도 선물 좀 해주려고.”
“으득, 그건 리치 레이드를 방해하면서 끝난 걸로 아는데.”
저게 약 먹었나?
누구 마음대로 끝내?
그리고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지.
“원래 선물 받으면 배로 돌려주는 성격이라. 왜 마음에 안 들어?”
나나 재중이 형이나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준다.
그게 적의든 신의든.
내 말에 해원이 표정을 굳혔다.
“마지막 제의다. 내 밑으로 와라. 원하는 조건은 다 맞춰주겠다. 돈이든, 아이템이든. 원하면 빌딩이라도 한 채 내어 주지.”
상황이 좋지 않지만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였다.
한두 번 한 일이 아니라는 듯.
자연스러운 그런 어투.
돈 많은 녀석은 항상 이런 식인가?
하다가 안 되면 돈부터 들이대고 본다.
해원도 그 범위 안에서 크게 다른 것 같진 않았다.
차라리 그런 쪽이라면 화련이 훨씬 낫다.
화련은 ‘아주’ 최소한 게임을 즐기며 한다.
그리고 게임 속의 나를 정말 원해서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반면에 지금 해원은 자기 일에 걸림돌이 되니까 치워 버리기 위해서 제안을 하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비즈니스.
딱 그런 느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절하지. 사실 내 몸값이 좀 더 비싸거든.”
흥정하려는 것 같은 뉘앙스에 해원의 표정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변했다.
니들도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하는 그런 표정.
“원하는 대로 불러라. 네가 생각하지 못한 액수까지도 가능하다.”
“흐음, 그럼. 네 전 재산의 반 정도만 받아볼까? 그 정도는 되겠지? 아니지. 너희 그룹 전체의 반 정도면 되겠네. 네 재산이라 봐야 뻔하니까.”
지가 재산이 많아 봐야 지 할애비보다 많겠나.
받으려면 반은 받아야 이쪽도 많이 남는 장사지.
내 조건에 해원의 표정이 싸하게 굳었다.
“지금 장난해?”
“어, 잘 아네. 근데 다 맞춰줄 수 있다면서? 사나이가 한 입 가지고 두말하네. 이래서 믿을 순 있겠어?”
“으득, 이 새끼가.”
협상 결렬.
표정만 봐도 알겠다.
애초에 제대로 된 조건을 걸었다고 해도 줄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처음 볼 때부터 재수가 없더라니.”
“우리가 통하는 것도 있었네. 나도 너 재수 없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해원 쪽에서 먼저 행동에 옮겨왔다.
그리고 우리와 해원이 서 있는 넓은 광산 부지 근처로 수많은 천상 연합원이 로그인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학습효과가 없는 건가?
진(眞) 썬더볼트가 있는데도 이렇게 인원으로 밀어붙일 생각을 하다니.
그 정도로 머리가 없진 않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이지?
“쳐.”
해원의 말이 떨어지자 주변의 호위들이 다시 각각 정해진 연합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천상 연합원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해원은 당연히 바깥으로 도망가 버렸고.
지금 당장 해원을 쫓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우리 편이 위험해진다.
“전사 형, 일단 쓸어버릴게요.”
“알았다. 준비 중.”
사방에서 달려드는 천상 연합원들을 동시에 공격하기 위해서는 머리 위로 진(眞) 썬더볼트를 시전 해야 했다.
그러려면 전사 형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방에서 개떼처럼 달려드는 천상 연합원들을 상대로 스킬을 꺼내 들었다.
【 진(眞) 썬더볼트! 】
하늘이 열리고 썬더볼트가 내려오는데도 불구하고 천상 연합원들이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우리에게 덤벼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형!”
“준비 끝! 전부 내 옆으로 모여!”
전사 형도 바로 스킬을 하나 준비했다.
전사 형의 외침에 막내별을 비롯해 모두 전사 형 옆으로 모여들었다.
【 본 쉴드! 】
붉은 뼈들이 사방을 막는 이펙트가 나오면서 우리 주변을 감쌌다.
이것이 진(眞) 썬더볼트를 마음 놓고 머리 위로 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실험한 결과 본 쉴드가 진(眞) 썬더볼트를 딱, 한 번 막아낼 수 있었다.
거기다 미치광이 리치에게서 얻은 망토가 챠밍에게도 똑같이 가 있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한 번 정도는 더 막아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진(眞) 썬더볼트가 전 필드를 터뜨리자 달려들었던 천상 연합 유저들이 싹 녹아서 사라졌다.
당연히 우리는 별 피해를 받지 않았고.
그렇게 많이 죽은 만큼 멀리 보이는 모든 필드에서 아이템들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눈부실 정도의 아이템 밭.
그런데 그걸 보던 나르샤 누나가 아미를 찌푸렸다.
“이상해.”
“네?”
“아이템, 전부 저렙 템이야.”
“그게 무슨?”
그 말에 시야에 확인되는 아이템들을 확인해 보니 전부 저렙 템들 밖에 없었다.
전사 형이 그걸 보고 인상을 썼다.
“함정이군요.”
그때 다시 해원이 멀리서 호위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리고 또 다른 천상 연합원들이 우르르 로그인을 시작했다.
이번엔 전과 확연히 다른 규모.
광산 필드 사방을 빽빽이 채운 인원이라…….
거기다 고급 아이템들로 무장했다.
우리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자 해원이 킬킬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이제 완전히 밖으로 활동하겠다는 건가?
주변 시선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때? 준비한 선물은 맘에 들었나?”
“……꽤 재밌는 짓을 하네.”
“물론, 재밌지. 이제부터 여긴 니들 무덤이 될 테니까. 어디 얼마나 좋은 아이템을 떨어뜨리나 보고 싶은데?”
천상 연합 사람들이 사방을 에워싸자 더 자신이 생긴 해원이 몇 마디 말을 더 풀어놓았다.
“그 썬더볼트 한 번밖에 못 쓰지?”
“뭐?”
설마 정보가 샌 건가?
어지간하면 셀 수가 없을 텐데.
“아아, 이쪽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그놈의 빌어먹을 썬더볼트 때문에. 이쪽 장기인 인원수로 밀어붙이지도 못하고. 그래서 애들 시켜서 좀 궁리를 했지.”
“궁리라면?”
“별것은 없고. 이상할 정도로 썬더볼트를 쓴 횟수가 적더라고. 그래서 확인해 봤는데. 하루에 한 번 넘게 쓴 기록이 없던데?”
어디서 찾았는지 몰라도 철저히 우리를 연구했나 보네.
저쪽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는 거다.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귓말이 들어왔다.
<불멸> 재밌네.
<주호> 재밌어요?
<불멸> 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놀아줄까?
<주호> 어떻게요?
<불멸> 좀 당황하는 척 도망가기라도 해봐? 크큭.
이 형 진짜.
사람 놀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네.
재중이 형이 모두에게 그렇게 말했는지 갑자기 챠밍을 비롯해 전사 형까지 전부 어색했지만 당황했다는 표정을 마구 지어 보였다.
도망치려는 발연기까지 곁들였고.
다들 잘… 하네…….
하지만 그런 우리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해원이 한껏 웃으면서 외쳤다.
“전부 쳐!”
그러자 주변 땅이 지진처럼 울릴 정도로 천상 연합 정예들이 모조리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남은 연합원에 정예까지 죄다 끌고 온 모양인데…….
사방에 오직 적들만 가득했고 우리는 단 몇 명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달려드는 적들의 표정에서도 그런 사실이 잔뜩 느껴졌다.
그런 천상 연합원들을 바라보다가 해원에게 귓말을 넣어줬다.
<주호> 넌 정말 복 받을 거다.
그리고 스킬 목록에 손을 올렸다.
해원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