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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59화 (357/1,404)
  • # 359

    #359화 미치광이 리치 (2)

    날 바라보는 것도 잠시, 재중이 형은 쓰러진 데스 나이트의 머리를 거침없이 내려찍는 것을 반복했다.

    내려칠 때마다 데스 나이트의 거대한 동체가 들썩거리면서 주변으로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온전한 힘으로 내려치는 완벽한 프리 딜.

    쓰러진 데스 나이트의 급소를 공격하는 것은 재중이 형에겐 땅 짚고 헤엄치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거기다 데스 나이트로 변신해 있는 상황이라 폭발적인 딜이 더 쌓였고.

    그사이 내 몸의 경직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팔이 부들부들 떨려서 무기를 잡을 수조차 없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데스 나이트로 변해 있다고 해도 한계를 넘은 기동은 충격과 반동을 해소하기 쉽지 않았다.

    데스 나이트보다 빠르게 풀린 경직 덕분에 녀석에게 달려가 재중이 형이 했던 것처럼 급소를 쉴 새 없이 내려찍었다.

    “큭큭, 이제 풀렸냐?”

    “생각보다 충격이 심했어요.”

    데스 나이트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프리 딜을 넣을 찬스는 없다.

    말할 시간도 아깝지, 지금은.

    다크 웨폰을 켜둔 상태로 계속 내려찍자 데스 나이트의 신체가 조금씩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생각 이상으로 대미지 누적 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훨씬 많이.

    보다 월등하게 딜을 넣어서 쓰러뜨리지 않으면 우리 팀이 한 명씩 바닥에 눕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 모두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싸우고 있으니까.

    더, 더, 더.

    마음이 급해지자 손발이 어지러워지면서 급소가 아닌 곳에도 타격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너무 조급해, 타점이 어긋나잖아.”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재중이 형 말대로 지금은 너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간 배웠던 것을 싹 잊은 것처럼.

    “침착하게.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고.”

    형이 내뱉는 말에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좌우로 흩어지던 검격이 다시 일정한 형태를 유지해 갔다.

    그렇게 원래의 컨트롤로 돌아오자,

    “우리 팀을 믿어. 그렇게 쉽게는 죽지 않아.”

    이야기를 들으며 심호흡을 했다.

    지금은 믿자.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다음은 그때 생각하기로.

    “일어나면 바로 큰 거 한 방.”

    “네.”

    문득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상황이 어렵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낸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저 마인드야말로 프로 게이머의 장점이 아닐까.

    어느 정도 대미지를 입히자 데스 나이트의 눈에 붉은빛이 돌아오면서 땅을 짚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제대로 기동을 하지 못하는 지금이라면 우리 쪽에 훨씬 많은 기회가 있다.

    준비는 최대로.

    과연 데스 나이트 상태에서 소환이 되려나?

    【 리틀 오우거! 】

    소환 스킬을 쓰자 내 옆에 소환진이 생기면서 바로 리틀 오우거가 나타났다.

    이게 되네.

    데스 나이트가 완전히 일어나기 전에 먼저 기술을 걸어 차징에 들어갔다.

    체력과 마력이 풍부한 지금.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은 죄다 써버려야 한다.

    리틀 오우거로 차징 시간을 확 줄여 빠른 시간에 풀 차징을 만든 뒤 힘겹게 일어나는 데스 나이트의 머리에 그대로 스킬을 시전했다.

    【 반월참! 】

    물론, 추가 대미지를 주기 위해 검은 기운이 잔뜩 응축된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헬름 안으로 욱여넣었다.

    쿠앙!

    그러자 사방으로 폭격 터지는 충격파와 굉음이 땅을 타고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데스 나이트의 거대한 동체가 사정없이 흔들리더니 다시 넘어갔다.

    풀 차징한 반월참은 그 자체만으로 극강의 대미지를 준다.

    그것도 전혀 피하지 못하는 가까운 거리에서 급소에 쏘아 넣었으니 피해가 적지 않을 터.

    아무리 데스 나이트라도 이 공격은 절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한 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왼손의 블레이드에 검은 반달이 사라졌지만 오른쪽 블레이드에는 반월참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원래의 몸으로는 반월참 한 방이면 체력과 마력이 거의 다 떨어져 버리지만 지금은 다르지.

    지금 넘치는 게 체력과 마력이다.

    이번에는 아예 데스 나이트의 목에 블레이드를 박아 넣으면서 다시 한 번 기술을 시전했다.

    【 반월참! 】

    다시 한 번 폭발음이 터지면서 데스 나이트의 온몸이 들썩거렸다.

    동시에 데스 나이트의 붉은 눈에서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운을 시키기가 어렵지 다운만 시키면 데스 나이트도 잡몹과 다를 게 없다.

    ……파티원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정말 최선을 다해 두 개의 검을 급소에 연속으로 찔러 넣었다.

    문득 다른 곳을 둘러보려다, 고개를 살짝 저었다.

    충분히 잘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차피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자리에서 빠지면 그때부터는 다시 혼란의 연속이니까.

    변신 상태에서의 딜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바닥에 쓰러진 데스 나이트의 형상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변신이 풀리기 전까지 이 녀석만은 잡아야 한다.

    그렇게 얼마의 딜을 더 넣고 나자 다시 데스 나이트가 일어섰다.

    이번엔 재중이 형이 반월참을 먹이고 내가 다시 진(眞) 비월참을 여러 발 먹이면서 다시 쓰러뜨렸다.

    그것도 부족해서 재중이 형이 다시 진(眞) 비월참을 추가로 날렸다.

    “이제 더 없지?”

    “네, 전 끝났어요.”

    스킬로 다운시키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

    정말 숨넘어가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급소를 찍고 또 찍어 내렸다.

    좀 죽어라.

    변신과 또 평상시의 배에 달하는 딜을 넣었지만 아직도 데스 나이트가 죽지 않았다.

    “칫, 역시 네임드는 네임드인가. 피를 다 까는 게 쉽지 않아.”

    재중이 형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바로 혀를 찼다.

    변신한 데스 나이트의 딜 자체는 월등하다.

    혼자 길드 수십을 박살 낼 수 있을 정도로.

    그런 나와 재중이 형이 동시에 달려들어서 마지막 페이즈로 넘어갔을 뿐, 그 이상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메인은 아직 건재한데 사이드 메뉴만 계속 건드리고 있는 격인가.

    더 이상 다운시킬 무기가 사라지자 데스 나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페이즈.

    검은 기운이 풀풀 날리고 안광이 시뻘겋게 변한 형태.

    녀석이 스피어를 휘두르는데 이전과 속도 차이가 상당히 났다.

    다시 다운을 시키려면…….

    한 번 더 시도해야 하나?

    “형, 점프?”

    “아니, 지금 너한테 어글이야.”

    확실히 전과 같은 빈틈을 만들어내긴 힘들 것 같았다.

    “정석!”

    재중이 형이 데스 나이트 스피어를 쥐고 정면에서 데스 나이트와 부딪혔다.

    창 두 개의 잔상이 수차례 허공에서 격돌하면서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변신한 데스 나이트에 익숙해진 탓인지 컨트롤이 더욱 좋아졌지만, 그만큼 데스 나이트가 마지막 페이즈로 들어가 속도가 올라가 버렸다.

    겨우 평수를 이루는 상황.

    그 뒤를 내가 뛰어들어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내가 뒤쪽에서 가세하자 데스 나이트의 자세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더!”

    재중이 형이 거세게 창을 휘두르면서 데스 나이트의 빠른 창격을 모조리 봉쇄했다.

    역시, 재중이 형.

    컨트롤의 정교함은 데스 나이트가 따라가질 못한다.

    이러면 이야기가 쉬워지지.

    【 대쉬! 】

    재중이 형과 데스 나이트의 창이 얽혀서 잠시 멈췄을 때 바로 뒤로 뛰어 들어가 허리와 팔을 동시에 베어내고 지나갔다.

    “크어억!”

    내 역할은 철저하게 급소를 노려 딜을 폭발시키는 것.

    그리고 그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했다.

    움직이는 데스 나이트의 갑옷 사이를 정확하게 베고 지나가자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때문인지 넘어갔던 어글이 다시 넘어오면서 데스 나이트가 내게 창을 강하게 찌르자 두 개의 블레이드를 십자로 교차해 창날을 막아냈다.

    다만, 막았음에도 두 발이 뒤로 쭈욱 밀려 나갔다.

    큭, 역시 변신해도 힘에서 밀리나?

    “나이스!”

    물론, 이 상황은 재중이 형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단번에 거리를 좁힌 재중이 형이 온몸의 체중을 실은 찌르기로 데스 나이트의 뒷목을 강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크어억!”

    나를 공격하면 재중이 형이.

    재중이 형을 공격하면 내가.

    완벽하게 합을 맞추면서 데스 나이트가 중간에서 춤을 추게 했다.

    둘 다 데스 나이트의 공격을 버텨내고 반격할 수 있어 이런 레이드가 가능했다.

    만약, 능력이 부족했다면 절대 이런 식의 운영은 힘들겠지.

    “형! 조심해요!”

    그때, 데스 나이트가 더블 크래쉬를 쓰자 재중이 형이 자세를 낮추고는 스피어를 창대 중간과 끝으로 넓게 잡았다.

    그러고는 창끝을 잡은 팔을 미세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중간에 잡은 팔은 고정한 채.

    뭐지? 저 자세는?

    처음 보는 자세라 신기했지만, 데스 나이트의 더블 크래쉬가 그대로 튕겨 나가는 것을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두 번의 공격을 막아내 버렸다.

    역시 저 형은.

    못 하는 것이 없구나.

    “이 정도는 해야지.”

    “자랑이죠?”

    “크크, 티 났냐?”

    데스 나이트의 공격과 공격 속도를 따라갈 수만 있으면 데스 나이트도 무서운 네임드는 아니었다.

    거기다 워낙 우리 둘이 동시에 밀어붙이는 바람에 데스 나이트가 쓰는 큰 기술이 전부 캔슬되고 있었다.

    반월참, 진(眞) 비월참 같은 기술들.

    만약, 그 기술이 그대로 시전되었으면 우리도 쉽게는 서 있진 못 했겠지.

    그렇게 한창 전투하던 중에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이거 잘하면…….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것 아냐?

    “형, 저 믿죠?”

    “아니, 이상한 짓 좀 하지 마라.”

    그러면서도 내게 시간을 벌어주려는 듯 재중이 형이 데스 나이트에 더욱 달라붙었다.

    그 잠깐의 틈을 타서 고개를 돌려 백여 마리의 몹을 달고 공동 끝을 달리고 있는 사탕 형을 바라보았다.

    뒤에 이쁜소녀가 따라다니면서 광역 딜로 녹이고 있음에도 이미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늘어났다.

    저놈의 소환은 끝이 없나?

    중간에 처리를 못 하면 계속 생겨나는 것 같았다.

    만약, 사탕 형이 몹을 달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전사 형은 이미 지쳐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주호> 사탕 형!

    <사탕주면따라가요> 무슨 일? 지금 바빠!

    <주호> 신호하면 제 쪽으로 오세요!

    <사탕주면따라가요> 알겠습, 읍!

    그 와중에 몹에 한 대 맞은 사탕 형이 신음을 냈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 용하네.

    체력이 막 출렁이는 것을 보면 겨우 버티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간을 조금만 더 끌었어도 저 백여 마리의 몹이 풀려나면서 공동을 어지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 이번 레이드는 바로 파탄 났을 거고.

    <주호> 소녀는 이쪽으로 바로 오고.

    <이쁜소녀> 여기 그냥 둬요?

    <주호> 응, 바로 와.

    혹시나 휩쓸리면 곤란하니까.

    <주호> 나르샤 누나!

    <나르샤> 왜?! 좋은 수 생겼어?

    <주호> 신호하면 커스 아처들 싹 몰고 와줄 수 있어요? 여대생하고 발키리 아주머니하고 같이.

    <나르샤> 조금 위험하지만, 해볼게.

    <발키리> 알았어.

    <현역여대생> 네! 잘 몰고 갈게요.

    이쪽도 됐고.

    그렇게 마지막 페이즈의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다가 이쁜소녀가 옆에 도착했다.

    “합류!”

    “네!”

    지금은 잡몹보다 이 녀석이다.

    빨리 대미지를 더 줘야 하는 이유도 있고.

    이쁜소녀가 가세하자 더욱 빈틈을 많이 만들어냈다.

    비록 변신을 못해 스탯은 좀 쳐지는 감이 있기는 해도 무기 자체가 워낙 출중하니까.

    빠른 속도로 빈틈을 노려 공격하지 않더라도 배틀 액스 무기 특성상 갑주 자체를 후려치는 것만으로 상당한 대미지가 들어갔다.

    둘이 아닌 셋.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던 상황에서 소녀의 가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데스 나이트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대미지를 쌓다 보니 순간 데스 나이트가 큰 기술을 쓰기 위해 자세를 바꾸는 것이 보였다.

    “딜 중지!”

    “응?”

    “네?”

    내 신호에 둘 다 데스 나이트에게서 손을 떼었다.

    -전부! 모여요!

    아까 미리 말한 대로 신호를 하자, 사탕 형이 몹을 우르르 끌고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역시 나르샤 누나, 발키리 아주머니, 현역 여대생도 똑같이 커스 아처를 달고 달려왔고.

    그동안 데스 나이트의 스피어에서 반월참이 차징되면서 주변으로 강력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 더 강하게 모아라.

    이제 우리 팀도 내가 뭘 하려는지 다 아는 것 같았다.

    달려오면서 각자 탈출기를 쓰려고 준비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완전히 풀 차징이 된 데스 나이트의 반월참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그대로 폭사 되었다.

    -전부 튀어요!

    【 블링크! 】

    내가 사라지는 것을 기점으로 내게 몹을 몰아오던 사탕 형, 나르샤 누나, 발키리 아주머니, 현역 여대생이 동시에 탈출기로 반월참의 범위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쿠아앙!!

    공동 전체를 울리는 풀 차징의 반월참.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위력과 범위를 자랑하면서 공동 중앙을 싹 쓸고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 있던 해골병, 구울, 커스 아처도 동시에 쓸려나갔다.

    물론, 반월참이 쓸고 지나간 자리엔 그 어떤 몹도 남아 있지 않았고.

    “넌 진짜……!”

    “오빠, 최고!”

    블링크로 사라졌다 나타난 나를 본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동시에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그럼, 2라운드?”

    지금부터는 우리 쪽이 숫자가 우위다.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정말 암울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미치광이 리치까지 가는 길이 이제야 보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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