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
#281화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양파처럼 (2)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하나, 물약을 사서 창고에 넣는다.
둘, 다른 사람이 빼면 다시 넣는다.
셋, 했던 행동을 반복한다.
물약을 사지 못해 죽은 귀신처럼 아무 생각 없이 물약만 사다 옮겼다.
재중이 형 말로는 딱 한철 작업이라고 했다.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운영자가 알면 바로 셔터를 내리는 그런 작업.
“딱 스탄 살 돈만 만들자.”
비공정의 가격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스탄이 브링어보다 두 배는 더 컸지만 가격은 네 배가량 더 비쌌다.
개조하지 않은 브링어가 최소 억대라 잘 버는 우리라도 부담이 되는 큰 액수였다.
물론, 그동안 해 먹은 것이 있어 그 돈을 사용하면 되겠지만 그래도 더 쉽게 살 수 있는데 굳이 비상금을 털 이유가 있을까
물약을 옮기는 과정 자체는 지루한 반복이었지만, 스탄을 산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내색 없이 물약을 옮겨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약만을 옮겼는데 그것을 스칼렛이 전부 소화하고 있었다.
“와, 스칼렛 장난 아니네. 좀 사다가 그만둘 줄 알았는데 말야.”
심지어 재중이 형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미 최강, 달, 치맥 길드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물약의 개수를 아득히 넘겨 버렸다.
그렇다는 것은 이 순간에도 꾸준하게 팔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물량 전부를.
“우리야 좋죠. 한철 장사라면서요.”
공짜로 돈을 버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약간의 수고만 더 하면 돈이 넝쿨째 들어오는데.
“스칼렛을 끌어들인 것이 신의 한 수였네.”
서로 윈윈.
우리는 물약을 계속 쏟아낼 수 있어서 좋았고, 스칼렛은 이득을 챙길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거기다 재촉하는 연락까지…….
<스칼렛> 아! 왜 이렇게 늦어요!
<스칼렛> 빨리빨리 안 보내요 !
<스칼렛> 물량 빼돌리는 거 아니죠
:
<스칼렛> 가격 더 올려드릴게요. 좀 빨리…….
<스칼렛> 저기요, 장사 더 안 해요
<스칼렛> 아, 진짜 제가 졌어요. 3할 더 올려드릴게요. 딱 두 배만 빠르게 보내 봐요.
이거 우리가 갑 맞지
분명히 스칼렛이 을인데 입장이 묘하게 되어버렸다.
사려는 쪽이 파는 쪽을 오히려 닦달하는 그런 광경.
“뭔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
“저쪽이 호구가 맞긴 한데…… 이젠 나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재중이 형이 이런 말을 할까.
처음엔 100원짜리 물건을 사서 200원에 넘겼다.
그러다 지금은 거의 300원에 파는 형국이었다.
상점가의 세 배.
이렇게 우리가 폭리를 취하는데 그것을 스칼렛이 전량 사들이고 있으니 분명히 호구가 맞다.
하지만 우리의 숫자가 적어 제대로 물량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은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여섯 명이 빠르게 움직여 창고에 들릴 때마다 창고가 싹 비어 있었다.
심지어 챠밍은 블링크를 사용해 건물과 건물을 날아다니는 묘기까지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량이 부족했다.
재중이 형 역시, 안 되겠는지 혀를 내둘렀다.
“이거 계산 미스인데 ”
“이 정도로 잘 팔릴 줄은 몰랐죠.”
사냥보다 더 힘든 일이 있다니…….
가볍게 시작한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 더 이상은 못 해.”
나르샤 누나가 참다 참다 결국 파업을 선언했다.
“진짜 힘들어요.”
“저도요.”
챠밍과 이쁜소녀도 뻗었고. 나도 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사 형과 재중이 형도 마지막 한 번을 끝으로 손을 놓아버렸다.
“와, 이게 뭐라고…… 이건 일입니다. 일.”
“그만 쉬자.”
포기하는 일이 없던 재중이 형 입에서 쉬자는 소리까지 나왔다.
<스칼렛> 저기요 창고에 물건이 없…….
<스칼렛> 뭐하세요 물건이 없어요. 저기요
스칼렛 저 여자, 우릴 말려 죽일 생각인가
“그거 꺼버려.”
재중이 형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창고와 물약 상점을 못해도 수백 번은 오간 것 같았다.
지루함과 인내의 싸움.
그 종착점에서 결국 두 손과 두 발을 들었다.
이 정도로 타이트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스칼렛의 닦달로 인해 정말 한계까지 속도를 올렸었다.
이득
아마 처음에 예상했던 이득보다 몇 배는 더 올렸을 것 같다.
중간부터는 어느 정도 들어오는지 헤아리지 않았으니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좀 쉬고 다시 합시다.”
전사 형의 그 말에 모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재중이 형까지.
재중이 형은 즐기는 것을 좋아하지 이렇게 단순 노동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진짜 전사 형은 하드코어라니까.
참는 것을 보면 전사 형이 재중이 형을 뛰어넘을지도 몰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쉬는 사이에 시스템 음이 울렸다.
《 5분 뒤 임시 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고객님들 모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
“크, 이제 확인한 것 같은데 ”
“생각보다 늦게 본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지금 새벽이니까.”
사실 점검을 해도 상관이 없다.
이미 스칼렛에게 실시간으로 대금을 싹 받았고, 주황 물약은 넘어갈 만큼 다 넘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니까.
이런 상황은 과거에 있던 많은 게임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스탄 살 돈은 모였어요 ”
솔직히 퍼 나르기만 해서 정확히 얼마쯤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이건 다들 궁금했는지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재중이 형이 최종적으로 들어온 돈을 확인하더니 입이 귓가에 걸렸다.
“크크, 풍년이네. 우리가 좀 열심히 했지. 게다가 스칼렛이 열성적으로 도와준 것도 있고. 얼추 세 대 정도 살 수 있으려나 그것도 개조까지 다 할 수 있어.”
그 말에 다들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엄청나게 짧은 시간 동안 스탄 세 대를 살 정도의 돈을 마련해 버렸다.
전사 형이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아아, 좀 더 할 수 있었다면……. 그럼, 진짜 그 윗급도 노려볼 수 있을 텐데.”
재중이 형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너무 욕심 부리면 운영자가 잡아갈걸 ”
그 말에 다들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왠지 운영자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사 형도 양손을 들면서 웃어 보였다.
“하하, 그럼 여기까지군요.”
“그래, 여기까지.”
마지막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차례대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시야가 변하면서 VRS 덮개를 열고 나오자 청량한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시간이…….
점검 시간을 확인해 보니 대략 한 시간.
평소보다 시간이 짧은지라 게시판엔 큰 파장이 없었다.
그냥 왜 하는지 정도만 궁금해했고.
워낙 길게 점검하는 날이 많아서 이번에도 그러지 않겠냐는 말 정도가 전부였다.
아직 물량이 풀리지 않았구나.
아마 점검이 끝나고부터 본격적으로 풀 생각인 것 같았다.
주황 물약이 풀리고 나면 그간 잡지 못했던 몬스터들도 대거 잡힐지 모르겠네.
죽을 고비를 넘기는 순간이 많아지면 그만큼 잡을 확률도 높아지니까.
이건 일단 두고 봐야 아는 일이고.
일단, 최대한 많이 챙겨 먹었으니 이제 잊어도 될 일이었다.
가벼운 식사와 빨래, 청소, 샤워를 하자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점검이 끝나고 서버가 열렸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78.
> 로딩 중…….
블러디 가고일을 좀 잡긴 했지만 현재 워낙 레벨이 높아서인지 더 이상 경험치와 레벨이 오르진 않았다.
기여도 작업이 끝나는 대로 새 사냥터를 찾을 필요가 있겠네.
* * *
[ 공지사항 ]
▷ 주황 물약의 일일 구매 개수를 제한합니다.
▷ 주황 물약의 구매 가격이 상승합니다.
▷ 모든 물약의 무게가 대폭 증가합니다.
▷ 칼바람 둥지의 폭풍이 더 강해집니다.
▷ 칼바람 둥지의 번개 위력이 상승합니다.
▷ 썬더볼트의 인식 거리가 대폭 늘어납니다.
▷ 네임드 몬스터의 리젠 시간이 줄어듭니다.
▷ 비공정 구매에 필요한 기여도가 늘어납니다.
* * *
주황 물약.
결국 손을 보았다.
일일 구매 개수에 한계를 두어 더 이상 사재기가 불가능하도록 패치해 버렸다.
뭐, 압축 물약보다 좋은 성능에 저렴한 가격이라 그럴 만했다.
더구나 구매를 아예 막아버린 게 아니라서 다행이긴 했지만, 물약을 많이 사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
말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거기다 구매 가격까지 올려 버렸다.
이건 뭐, 스칼렛이 알아서 할 일이라 우린 모르겠다.
신경 쓸 이유도 없고.
알아서 잘 팔겠지.
비싸다면 더 비싸게 팔 사람이 스칼렛이니까.
칼바람 둥지는…….
전체 유저 스펙을 웃도는 우리를 겨냥한 것 같았다.
자꾸만 왔다 갔다 하니까.
폭풍도 강하게.
번개도 강하게.
거기다 제일 걸림돌인 썬더볼트의 시야까지 넓혔고.
요리조리 피해 다닐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건가
네임드 몬스터의 리젠 시간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지금의 우리에겐 그다지 해당 사항이 없기도 하고.
다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비공정.
구매를 위한 기여도가 늘어났다라…….
스탄을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우리 팀이 전부 접속하면 고민을 해봐야 하나
그렇게 조금 더 기다리자 하나둘 접속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들어온 재중이 형이 옆에 와서 물었다.
“좀 쉬었냐 ”
“샤워 좀 했어요. 요즘 몸이 굳은 것 같아서. 덥기도 덥고.”
요즘 에어컨이 없으면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미친 날씨가 이어졌다.
“에어컨을 처음에 만든 분한테 감사해야해.”
정말 그분에게 감사한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VRS 안에 눕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챠밍이 옆에 있다가 몸서리쳤다.
“잠시 나갔다 왔는데 숨이 턱턱 막혔어요. 진짜 에어컨 없으면 못 살겠어요.”
그 말에 이쁜소녀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구나.
그때, 챠밍이 뭔가를 떠올린 듯 이야기를 꺼냈다.
“이왕이면 얼음 나라 같은 곳에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럼 하루 종일 행복할 것 같아요.”
“저도요!”
둘 다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다만…….
그런 나라가 있으려나
옆에 재중이 형을 바라보니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뭐, 업데이트 해주면 고맙긴 하겠네. 지금 화염 지대 같은 걸 업데이트 했다가는 다 도망가 버릴걸 ”
화염 지대라는 말에 모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 폭염에 화염 지대라니…….
생각만 해도 최악이다.
반대로 얼음 지대라면 흥행이 되지 않으려나
이런 날씨에 적합한 사냥터이기도 하고.
“언제 한 번 비슷한 곳이라도 찾아봐야겠어요.”
“그러려면 비공정이 좋아야 해. 폭풍 지대 정도는 마음대로 뚫고 다닐 수 있어야 찾아다니지.”
“공지는 봤어요 ”
“아, 이거 물약은 다 막았고…… 거기다 우리가 폭풍 지대를 오가는 게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아주 칼질을 해놨네.”
재중이 형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했다.
“뭐, 그 문제는 썬더볼트보다 더 빠른 비공정을 구입하면 되겠지. 설마 썬더볼트를 더 빠르게 만들진 않을 거 아냐. 그렇게 되면 이제 저 폭풍 지대는 아무도 못 지나가.”
“우리도 문제네요.”
“뭐, 우리야 나르샤가 있으니까. 멀리서 인식하고 덤벼온다 생각하면 바로 빠져야지. 그 정도 거리는 있으니까.”
좀 더 힘들어졌을 뿐.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지만 역시 문제는 비공정이네.
좀 더 비공정을 업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만 기여도를 올리는 바람에 스탄을 당장 구매할 수 없다.
“일단, 어쩔 수 없네. 한 번 더 다녀올 수밖에.”
이번에는 전처럼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문제가 또 생겼다.
물약 무게가 늘어 몸이 엄청 느리게 움직여졌다.
어쩔 수 없이 바로 물약부터 정리해 버렸다.
이대로라면 움직일 수 없으니까.
그런데 물약 상점 여성 점원 NPC가 이상한 말을 건넸다.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저 가까이 갔을 뿐인데 오히려 대화를 걸어왔다.
『 손님들 덕분에 저희 상점의 매출이 엄청나게 올랐어요. 정말 감사해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도와드릴게요. 』
전에 친밀도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아마, 이 서버에서 우리만큼 이 점원 NPC와 친밀도를 올린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물약을 미친 듯 사줬거든.
“기여도, 상승, 방법.”
원하는 포인트만 찍으면 그 뒤는 NPC의 재량이다.
그리고 이 정도 친밀도라면 무슨 답이라도 내어주겠지.
일반적으로 얻기 힘든.
『 기여도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물건을 팔아주면 돼요. 필요한 곳에 필요한 물건이라면 많은 기여도를 얻을 수 있어요. 』
물건을 팔아서 기여도를 얻는다라…….
“비공정, 브링어, 판매, 기여도.”
『 어머 비공정을 파시려고요 브링어는 기여도 5만에 판매가 가능해요. 』
됐다!
『 이건 비밀인데요. 수송 부대에서 더 높은 기여도로 비공정을 팔 수 있어요. 얼마 전에 수송 부대가 전멸했거든요. 여기 소개장이에요. 』
《 잡화상점 VIP를 위한 소개장을 입수했습니다. 》
친밀도 최고네.
“형, 길이 생겼어요.”
***
큰 기대는 안 했으나 최고의 결과를 가져왔다.
무려, 8만의 기여도로 여분으로 있던 브링어를 팔아치웠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18만.
“여기서 잠깐, 그대로 있어 봐.”
재중이 형이 가진 10만으로 브링어를 구매한 뒤 그걸 내게 넘겨주었다.
“다시 팔어.”
“이래도 되나요 ”
“애초에 이런 시스템이잖아 ”
당연히 소유권을 넘겨주면 내가 팔 수 있다.
그리고 8만을 더해서 26만.
스탄은 25만 기여도가 필요했다.
“이제 스탄 사지지 ”
“그렇네요…….”
그러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서 우리 팀을 봤다.
남은 네 사람이 모두 팔아서 넘기면
총 40만이 추가된다.
그렇게 하면 내가 가진 26만과 합쳐서 무려 66만의 기여도가 만들어진다.
“……베록 급.”
다름 아닌, 스탄의 윗급.
무려 60만의 기여도로 살 수 있는 비공정.
스펙은 가볍게 스탄을 씹어 먹는 괴물급 비공정.
“크크, 이거 골 때리네. 바로 사버려. 돈이야 물약 팔아서 충분하니까.”
물약을 미친 듯 사버리는 덕분에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