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79화 (277/1,404)

# 279

#279화 폭풍 속의 악마 (3)

【 하르 부스터! 】

조타를 잡고 있던 재중이 형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하르 부스터를 시전했다.

현재 브링어 1호에 달 수 있는 최고의 옵션인 하르 부스터가 하얀 불꽃을 내뿜으며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속.

검은 폭풍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나아가자 폭풍들이 선체를 거칠게 두들겼다.

그 반동과 가속으로 선체는 미친 듯 흔들렸다.

애초에 한 단계 위인 스탄의 추진 기관을 달았으니까.

직전의 평안했던 비행과는 다른 흔들림에 재중이 형이 급하게 외쳤다.

“아무 곳이나 잡아!”

그 말에 근처에 있는 기둥을 잡곤 자세를 숙였다.

브링어의 후방을 바라보니 여전히 썬더볼트가 라이덴을 문 채 사방을 휘젓고 있었다.

동족 의식이 없는 건가

다른 종

전혀 다른 관계

애초에 같은 지역에 사는 녀석이 아니었나

찰나의 여유가 생기자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하게 떠올랐다.

썬더볼트가 라이덴을 물고 늘어지면서 시간을 아주 조금 벌긴 했지만, 그것이 오래 갈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잔뜩 긴장했던 전사 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슨 크기가 저래 ”

라이덴도 썬더 와이번에 비하면 꽤 큰 편이다.

그런데 저 썬더볼트는 그런 라이덴이 어린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컸다.

“드래곤…… 인가요 ”

재중이 형이 무심코 했던 말이 있다. 나중에는 드래곤도 탈 수 있지 않겠냐고. 와이번도 있기에 설마 했는데…….

그 말에 나르샤 누나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드래곤은.”

나르샤 누나는 우리와 다르게 검은 폭풍 속에 숨겨져 있던 동체를 전부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게임 경력이 긴 누나가 아니라고 한다면 아닌 거겠지.

“일단 몸이 너무 길어, 마치 뱀처럼 검푸른 색 비늘, 몸 전체를 감쌀 정도의 커다란 날개, 세 개의 휘어진 뿔이 인상적이지만 뭐, 확실히 드래곤은 아니야. 너무 달라.”

확실히 썬더볼트의 몸이 전부 보이지 않았다.

“라이덴하고 비교하면 두 배 그 정도는 될 것 같은데 다행히 팔다리는 없네. 거칠게 빠진 이빨이 엄청 길고. 한 번 물리면 절대 못 빠져나오겠는데 ”

나르샤 누나의 설명에 대략적인 형태는 알 것 같았다.

“얼마나 버틸 것 같아요 ”

“나도 몰라.”

“계속 지켜봐 주세요.”

“변화가 있으면 바로 말해줄게.”

싸이클롭스를 상대로 오버된 오우거 로드가 꽤 오래 버텼으니까 라이덴 역시 쉽게 죽진 않을 것이다.

“형, 이대로 달아날 수 있어요 ”

재중이 형에게 묻자, 형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부스터가 무한정이 아니라 한 번은 떨어뜨려야 할 거야. 따라오지 않으면 제일 고맙겠지만…….”

“그렇게 친절하진 않죠.”

정말 따라올 줄 모르겠지만, 따라온다는 가정으로 준비해야 했다.

원거리 전력은…….

챠밍 정도인가

나르샤 누나의 공격은 폭풍 때문에 힘드니까.

그리고 이쁜소녀나 전사 형은 원거리의 공격이 취약한 편이고.

재중이 형은 브링어 1호를 조종하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조타를 잡지 않았더라도 지금은 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전사 형은 마법포를 잡고 각오를 다지면 말했다.

“마법포로 최대한 버텨봐야지.”

마법포 역시 부스터와 마찬가지로 스탄 급, 하지만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몸으로 때워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내가 하려는 것을 말하면 반대를 할 것이기에 챠밍만 슬쩍 불러서 몇 가지를 주문했다.

“네 정말 하시려고요 ”

“……방법이 없어.”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챠밍도 별다른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나르샤 누나가 급하게 외쳤다.

“온다!”

라이덴을 잡았나

생각보다 너무 빠르잖아.

라이덴이 기적처럼 도망쳤을 수 있지만, 그랬다면 라이덴을 쫓았을 것이다.

부스터로 벌었던 거리는 어느새 좁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깝게 느껴질 만큼 우리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이쁜소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썬더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잡히겠어요.”

“준비해.”

전사 형과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가 마법포를 전부 후방을 향하게 했다.

그리고 어느새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썬더볼트를 바라보며 전사 형이 크게 외쳤다.

“쏴!”

전사 형이 외치자 네 곳의 마법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조준은 완벽했다.

하지만 썬더볼트는 좌우 네 장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크게 펼치며 마법포를 모두 피해 버렸다.

마치 기동성이 좋은 전투기가 롤링하는 것처럼.

“저, 저게 말이 된다고 ”

지금까지 보지 못한 묘기.

기동성이 좋은 라이덴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마법포를 가볍게 피한 썬더볼트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우리를 거세게 쫓기 시작했다.

“다시!”

연속해서 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

이쪽에서 쏘는 것 이상으로 폭풍 속에서 완벽하게 마법포를 피해내 버렸다.

내가 감각을 최고로 끌어올려서 쏴 봤지만, 가소롭다는 듯 피하는 것에 할 말을 잃었다.

후, 피하지 못할 속도로 발사할 수 있는 마법포가 있거나, 혹은 정말 많은 마법포의 대규모 포화가 아니면…….

그것도 아니라면 피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게 만드는 방법밖에는 없어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딱 한 가지를 할 수 있었다.

“전사 형, 여기 부탁해요.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아직 있어 봐. 이것만 해보고.”

전사 형이 굳은 표정으로 후미 끝에 가서 섰고, 썬더볼트가 아슬아슬하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 후에 기술을 시전했다.

【 싸이클롭스의 외침! 】

분명히.

썬더볼트와 동급일지 모르는 저 스킬이라면…….

강력한 음파가 터져나가자 바짝 따라오던 썬더볼트의 몸이 그대로 경직된 듯 보였다.

그러고는 그 거대한 몸체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꺄!”

“됐어요!”

이쁜소녀와 챠밍이 동시에 환호했다.

정말 통하다니.

싸이클롭스를 잡은 보람이 있었구나.

언제 한번 싸이클롭스를 오버시켜봤으면 좋겠는데…….

가능하다면 말이지.

전에 잡은 녀석은 반쪽짜리나 마찬가지였으니.

물론, 얼마나 많은 몬스터와 사람을 갈아 넣어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르샤 누나가 난간 아래를 살피다 큰소리로 외쳤다.

“아직 긴장 풀지 마!”

경직과 스턴에 걸린 것 같았는데 저 정도는 뿌리칠 수 없는 건가

걱정했던 것처럼 다시 고도를 올려 우리 뒤꽁무니를 뒤쫓는 썬더볼트.

“저놈 무섭네.”

다시 뒤를 잡히자 전사 형이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나르샤 누나가 아쉬운 투로 이야기했다.

“브링어보다 더 좋은 녀석이 있어야겠는데 ”

개조했다고 한들 브링어는 한계가 있었다.

그 이상.

좀 더 좋은 비공정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기여도를 올려야 했고.

“기승전 기여도네.”

나르샤 누나의 말에 모두 동감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 나가야 한다.

“이제 안 되겠어요. 형, 가요!”

내가 신호하자 재중이 형이 전사 형에게 키를 넘겨주고 바로 달려왔다.

“운전은 내가 하지.”

“잘 부탁해요.”

재중이 형이 전사 형에게 받은 뇌전 갑옷을 입은 채, 내게서 라이덴을 받아갔다.

그리고 브링어의 난간에서 라이덴을 소환했다.

“올라타!”

재중이 형의 신호에 뛰어서 올라탔다.

【 라이덴 하트! 】

타자마자 주변의 전기를 흡수해서 빠르게 마력을 채워갔다.

역시 라이덴은 여기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구나.

아마 썬더 와이번도 가능하겠지만 활동 시간이 있으니 무리겠고.

재중이 형은 주변 번개 폭풍으로부터 대미지를 적게 받기 위해 뇌전 갑옷을 입었는데 나와는 달리 시간을 오래 끌 순 없었다. 그런 우리 모습을 본 챠밍이 크게 외쳤다.

“오빠! 조심해요!”

이쁜소녀는 빠르게 달려가 마법포를 잡더니 역시 크게 소리쳤다.

“저 열심히 쏠게요! 죽으면 안 돼요!”

든든하네.

그리고 우리가 썬더볼트에게 붙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마법포를 쏘면서 계속 견제했다.

“좋아, 가볼까 ”

재중이 형이 라이덴의 속도를 살짝 늦추자 바로 폭풍에 밀려나면서 브링어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썬더볼트와 거리가 가까워졌고.

인사나 한 번 해볼까

어차피 무한한 마력, 스킬 쿨만 있다면…….

무한정 공격을 쏟아낼 수 있다.

재중이 형이 운전해준 덕분에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오직 공격에만 집중했다.

썬더볼트와 우리가 교차하는 순간.

【 아쿠아 웨폰! 】

【 비월참! 】

【 비월참! 】

소모돼도 괜찮은 웨폰부터 사용해 비월참 두 방을 썬더볼트의 머리 옆으로 쏟아부었다.

이 정도 거리면 뭐…….

적절한 거리였다.

정확하게 비월참 두 발을 썬더볼트의 머리에 맞추자 썬더볼트가 크게 울어댔다.

크아아악!!

동시에 주변 대기를 밀어내는 충격에 순간 멈칫했지만 하울링 같은 기술은 아닌 것 같았다.

“괜찮죠 ”

“그래. 한 번 더 가자.”

그렇게 썬더볼트의 옆을 따라 비행하면서 다시 한 번 포이즌 웨폰으로 비월참을 갈겼다.

그 때문인지 브링어를 쫓던 것을 멈추고 우리에게 이빨을 들이댔지만 재중이 형의 완벽한 비행 실력이 빛을 발하며 요리조리 잽싸게 빠져나갔다.

진짜 탈것 컨트롤에 빈틈이 없었다.

교본으로 삼고 싶을 정도.

“형, 이 녀석도 악마형이네요.”

그동안 마법포를 한 대도 맞지 않아서 몰랐는데 비월참으로 몇 번 공격해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싸이클롭스와 같은 방어막이 있다는 것을.

“쳇, 쉽게는 안 잡힐 거라는 소리네. 가득이나 공중형이라서 힘든데 배리어까지 있다니…… 난이도 죽이는구만.”

앓는 소리를 하지 않는 재중이 형이 난감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우리가 잠시 시간을 끄는 동안 브링어도 주변을 배회하면서 마법포를 계속 날려댔다.

“형, 더 늦으면 우리가 힘들어요.”

“슬슬 하자.”

일단 쉴드부터.

【 다크 아머! 】

【 헤이스트! 】

【 오우거 하트! 】

보통 하트를 쓰면 마력이 떨어져 채우려면 한참 걸리는데 지금은 그냥 쓰면 쓰는 족족 빠르게 마력이 차올랐다.

어떻게 보면 최적의 장소인데

내가 준비가 끝나자 재중이 형이 라이덴을 썬더볼트의 정면으로 몰았다.

그리고 정면에서 블랙 아쿠아 캐논을 날렸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하르 블레이드로 쓰지만 않으면 다른 계열도 일단은 스킬이 다 나가니까.

쌍수의 장점이 이런 곳에서도 나타난다.

하르 무기만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가까운 거리에서 계속 스킬에 얻어맞자 썬더볼트는 발악을 시작했다.

정말 화가 많이 났는지 아예 큰 입을 쩍 벌렸다.

그것도 사람 한 명은 가볍게 들어갈 만큼 엄청나게 크게 벌어졌다.

“지금!”

재중이 형의 신호에 빠르게 라이덴의 등을 박찼다.

헤이스트를 사용해서 그런지 쏜살같이 썬더볼트의 입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완벽한 착지에 이어 재중이 형이 빌려준 라이덴 미늘창으로 썬더볼트의 혀를 내려찍었다.

【 라이트 웨폰! 】

【 강격! 】

오우거의 힘과 싸이클롭스에게서 얻은 강격이 합쳐지자 미늘창의 날이 입안 곳곳에 강하게 박혀 들어갔다.

푸욱!

생각보다 쉽게 미늘창이 들어갔다.

역시,

입속은 연약했어.

그 고통에 썬더볼트는 억지로 입을 닫으려 했지만, 수직으로 박힌 미늘창 덕분에 입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계쏙 발악을 했다.

몬스터의 입속에서 창 하나에 의존해 버티는 상황이 달갑지는 않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뇌격을 날려볼까 하다가 오히려 체력을 채워줄 것 같아서 일단 포기했다.

“됐어요!”

재중이 형이 주변을 날아다니며 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미늘창으로 어느 정도 괴롭힌 뒤,

【 다크 웨폰! 】

바로 다크 웨폰이 씌워진 카스카라를 꺼내 입속을 난장판으로 쑤셔댔다.

마력이 차오름과 동시에 주변의 배리어가 점점 찢겨 나가는 것이 보였다.

역시 싸이클롭스와 같네.

이건 정말 녀석들의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흔들림을 버티면서 기다리자 어느새 브링어가 썬더볼트의 정면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절대 못 피한다.

“날려!”

내 신호에 풀 차징을 하던 챠밍이 입속에 있던 나를 향해 마법을 쏘아냈다.

썬더볼트는 입을 닫지 못해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고.

【 이레이져! 】

챠밍이 마법을 쏘는 순간 미늘창을 빠르게 회수한 뒤 스킬을 시전했다.

【 대쉬! 】

스킬의 힘으로 내가 튀어 나갔고 그 틈을 이레이져가 헤집으면서 터져나갔다.

“크에에에에엑!!!”

찢어질 것 같은 커다란 비명.

약점을 제대로 헤집은 이 한 방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썬더볼트의 입안에서 강력한 이레이저의 빛이 터지는 것을 허공에서 감상했다.

충격이 너무 강했는지 아까와 다르게 자세조차 제어하지 못한 썬더볼트가 머리부터 떨어지면서 추락했다.

그걸 구경하던 재중이 형은 나를 잽싸게 낚아챘다.

“고생했다.”

재중이 형과 서로 바라보면서 웃었다.

원하던 결과를 제대로 얻었으니까.

아쉽지만 딱 여기까지.

우리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카드는 이미 다 써버렸다.

다시 하라고 해도 이젠 못 하지.

그걸 알고 있던 재중이 형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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