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250화 자격 증명 (2)
내 몸에서 붉은빛이 번쩍이자 주변의 웅성거림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적막.
그것은 우리가 도착하기 이전이나, 이후 할 것 없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비행선을 뒤에 둔, 군인 NPC가 아예 유저들에게 호응조차 해주지 않았으니까.
그 탓에 이 색다른 반응을 본 유저들은 모두 숨죽여 상황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주목받네…….
처음엔 일정 레벨 이상이면 통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었다.
내 레벨은 로스트 스카이를 통틀어 제일 높다.
유저들에게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이것이라고 생각해서 호기 있게 나선 것인데…….
이것 봐라
재밌네.
네임드 아이템이 조건이라고
내 인벤토리와 장비창에 있는 아이템들은 일반 유저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대부분 네임드 아이템이었고, 간혹 노멀 아이템이 섞여 있을 뿐이다.
군인 NPC와 대화한 후 그런 네임드 템 중 일부가 붉은빛으로 일렁였다.
종류가…….
대부분 네임드를 잡고 나온 부산물이라 칭하는 잡템들이었다.
어디에 쓰는지 알 수조차 없었던.
『 미스트 윙의 부러진 깃털 / 25,000 아르. 』
『 브락크의 다리 조각 / 23,000 아르. 』
『 라미아 여왕의 손톱 / 25,000 아르. 』
『 거대 개구리의 침 / 19,000 아르. 』
『 해적 선장의 술병 / 18,000 아르. 』
『 레서 크라켄의 빨판 / 18,000 아르. 』
아니, 잡템은 확실하다.
쓸모는 없지만, 상점에서 팔면 돈으로 바꿔주니까.
특별히 무게가 나가는 게 아니라 인벤토리 구석에 집어넣고 완전히 잊어버렸던 것들이다.
예전에 케르베로스를 잡고 난 뒤 나온 잡템 중에 선착장의 특별선을 이용할 수 있는 증표 같은 것이 있었다.
그 때문에 혹시나 몰라 팔지 않고 놔둔 아이템들 지금에서야 번쩍이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처럼 무식할 정도로 네임드를 잡아댄 사람들은 거의 없다.
아니.
전혀 없다.
특히 검은 호수의 여왕과 미스트 윙은 아직 전 서버에서 우리 외에는 누구도 잡은 적도 없지.
이건…….
완전히 독점인데
“야, 뭔데 그렇게 번쩍여 ”
재중이 형이 옆에서 궁금한 듯 물어봤다.
우리 팀도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는 중이다.
궁금하겠지.
나도 이렇게 될지 몰랐으니까.
“여기서는 말 못 하겠네요.”
그 말에 오히려 우리 팀이 전부 눈을 빛냈다.
사람들 앞에서 말 못 할 비밀.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 팀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거래를 걸어 증표가 되는 번쩍이는 잡템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이건 ”
재중이 형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자 내가 검지를 입가에 대고 조용히 넘어가자는 제스처를 보냈다.
“크크, 재밌네.”
그 말을 끝으로 재중이 형도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마찬가지로 챠밍, 이쁜소녀도 날 한 번 바라봤다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좋아. 표정 잘 숨기네.
오랫동안 같이 다녔더니 척하면 척이다.
붉은 군장을 입은 선임 NPC가 내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자 일단은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내 어깨에 선임 NPC의 장갑이 닿자마자 인벤에서 네임드 잡템들이 하나씩 차감되어 사라졌다.
『 그대는 자격을 증명했다. 브링어 1호에 올라타도록. 』
역시.
케르베로스 때와 동일했다.
선임 NPC가 자리를 옆으로 비켜주자 뒤에 있던 여성 군인 NPC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걸어 들어가 비행선 아래에 사람들이 탈 수 있는 공간으로 올라탔다.
대략 오십 명 정도가 정원으로 보였다.
이 정도라면 우리 팀이 전부 타고 가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어 ! 뭐야 주호가 올라타잖아!”
“와, 씨! 우리도 태워줘!”
“조건이 뭐지 왜 주호만…….”
“레벨! 주호 레벨 얼마야 빨리 찾아봐.”
내가 브링어 1호에 올라타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광장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우리 팀 모두 선임 NPC와 대화를 한 뒤 올라타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어 전부 타잖아 ”
“파티로 되는 건가 ”
“그런 게 어디 있어. 조건이 대체 뭐야!”
우리 팀이 모두 올라타자 사람들이 서로 밀고 밀치는 난리가 났다.
아예 아무도 못 탔다면 모를까.
우리가 타는 것을 보자 사람들 눈에 욕심이 불붙었다.
“저런다고 절대 못 탈 건데…….”
방패전사가 선임 NPC 주위로 다시 개떼처럼 모여든 사람들을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우리는 조건을 다 아니까 나오는 여유다.
어쩌면 몇 명은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는데
우리 중 레벨이 가장 낮은 이쁜소녀까지 다 올라탔으니 레벨로 결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레벨이 낮긴 하지만, 그것은 우리 팀 한정이다.
그때 방패전사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아…… 귓속말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방패전사가 재중이 형에게 말하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버렸다.
우리 중 방패전사가 친구 목록이 제일 많다.
우리 팀과 연락하고 싶으면 방패전사를 통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나야 원래 귀찮아서 친구 목록은 비어 있고, 재중이 형도 딱 필요한 사람 외에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뭐라고 와요 ”
“예상하는 대로지.”
방패전사가 한숨을 쉬었다.
항상 중간에 낀 사람만 피곤하다.
그리고 내게 직통으로 연락 오는 사람도 있었다.
<스칼렛> ……비싸게 살게요. 원하시는 대로 부르세요.
이 여자.
완전 달아올랐는데
흥정조차 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부르란다.
내가 그 말을 했더니 재중이 형이 박장대소했다.
“크큭, 어지간하면 조건 달고 할 텐데…… 아예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으니 그냥 숙이고 들어오네.”
“네, 확실히요.”
“아마, 벌써 온갖 수단 다 사용해서 선임 NPC에게 얘기 걸어봤을걸 이런 쪽으로는 빠르니까.”
“아무것도 안 됐겠죠.”
애초에 이건 현재 우리 외에는 불가능한 퀘스트다.
운영자가 간만에 마음에 드는 짓을 했네.
네임드 6마리를 각각 잡아야 하는데 결코 쉬운 미션은 아니지.
심지어 전설을 포함해 다른 길드 길마들까지 차례대로 연락이 왔다.
“다 씹어.”
재중이 형의 단호한 한 마디.
“당연한 말을.”
물론, 힌트조차 줄 생각이 없다.
이런 면에서 나와 형은 정말 잘 맞는 편이지.
그렇게 얼마 기다리지 않아 브링어 1호가 진동과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와, 움직여요!”
“드디어 가네요.”
이쁜소녀와 챠밍이 난간을 붙잡은 채, 주변에 바글바글 몰린 사람들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로 빠르게 날아오르면서 광장에 빼곡하게 차 있던 사람들이 점점 작게 변해갔다.
“정말 많이 모여 있었네요. 끝이 안 보여요.”
챠밍이 새삼 놀랐다는 눈빛을 해 보였다.
“많네. 적어도 몇 만은 되지 싶은데.”
“한동안 조용하진 않겠네요.”
그런데 브링어 1호가 떠오르자 몇몇 사람이 탈것을 소환해 같이 날아올랐다.
“어 오빠. 저 사람들 따라오려나 봐요.”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저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네.
올라타려고 시도할 수도 있겠는데
이런 내 걱정과 다르게 같이 올라탄 NPC들이 거치된 포로 이동했다.
『 자격이 안 되는 자. 물러서라. 』
NPC들의 싸늘한 외침.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유저가 탈것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비행선에 거치된 포에서 종류를 알 수 없는 마법이 쏘아져 나갔다.
마법포
해상에서 쓰던 포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빠르게 날아간 마법이 관통하듯 사람들의 탈것을 뚫고 지나가면서 역소환 시켜 버렸다.
“으악!”
“떨어진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허락받지 못한 자들은 절대 타지 못하겠는데
“휘유, 완전 세잖아. 이거 한 대 달라고 못 하냐 ”
“설마요.”
포격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차마 접근하지 못하고 떠오르는 브링어를 바라보기만 했다.
“계속 따라오네요. 어디까지 올 생각인지…….”
챠밍이 이동하는 브링어의 뒤를 밟으면서 날아오는 유저들을 보면서 말했다.
“놔둬. 곧 떨어져 나갈걸 ”
어차피 비행 시간이 모자라 따라오다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베네아에서 북쪽으로 좀 더 날아가다 보니 역시나 유저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끝이군.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떨어져나가자 그제야 모두 긴장을 풀어버렸다.
애초에 NPC가 있어서 긴장할 것도 없긴 했지만.
그렇게 비행선의 창을 통해 주변 풍경을 구경하던 것도 잠시, 비행선 내부의 중앙 기관실에 들어간 나르샤가 뭔가를 살펴보고 있었다.
“뭐 있어요 ”
“아, 여기 하르를 태우네 ”
“하르를요 ”
“응, 아마 연료로 쓰는가 봐.”
이거…….
하르 가격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의 눈빛이 빛났다.
저 형 또 이걸로 해먹을 생각 중이구나.
별 것 없다.
그냥 사재기만 좀 해두면 된다.
물론, 비행선이 충분히 풀린다는 가정 하에.
당장 어떻게 할 필요는 없어 보이고.
비행 시간이 이렇게 긴 것은 하르를 연료로 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비행선 자체가 빛을 내면서 어두운 주변을 밀고 지나가는 것도 하르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방패전사가 미니맵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말을 꺼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온 곳에서 마지막입니다.”
베네아에서 시작해서 하르페가 있는 검은 숲을 지나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북서쪽에 에띠앙, 북동쪽에 페르타가 위치해 있다.
페르타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미스트 윙이 나왔던 협곡이 있고.
에띠앙이나 페르타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길게 이어진 산맥이 존재한다.
정찰 갔던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면서 돌아왔던 곳이기도 하고.
우리도 사냥터 레벨이 안 맞으면 공략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다만 사냥하기에 조건이 너무 안 좋다고 했다.
거칠고 좁은 산을 타면서 몹을 잡는 것도 문제고, 물약 수급할 곳을 찾는 것이 더 문제라고 한다.
우리도 요즘 너무 바빠서 3순위로 밀어뒀었다.
굳이 좋은 사냥터를 두고 여건이 좋지 않은 사냥터를 찾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특별히 네임드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산맥 입구에 다다르자 브링어가 크게 진동을 하더니 고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링어는 끝을 모르고 고도를 계속 끌어올렸다.
“어라 엄청 올라가요!”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며 외치자 모두 고도를 확인했다.
“이 정도면 미스트 윙은 못 따라와.”
“……라이덴도 힘들 것 같은데요 ”
시야 오른쪽 상단의 미니맵 고도 표시에서 이미 라이덴의 한계 고도를 진작 아득하게 넘어버렸다.
“산맥 높이가 장난 아닌데 전에 이걸 탈 것으로 타고 넘어가자고 했었습니까 ”
방패전사가 재중이 형을 보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한때, 라이덴과 미스트 윙만 있다면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번 공성전이 끝나면 한 번 시도해 보자는 이야기도 나왔었고.
그런데 지금 보니 완전히 틀려먹었다.
“이 고도는 절대 안 되지.”
재중이 형도 바로 두 손과 두 발을 들었다.
너무 가파른 험지라 지상 탈것이나 등산으로는 절대 넘어갈 수 없어 보였다.
공중 탈것 역시, 고도가 낮아 못 넘어가게 되어 있었고.
일정 고도 이상 넘어가면 아예 소환 자체가 안 되니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사냥을 포기하고 한 일주일간 쉬지 않고 산만 탄다면…….
그것도 산맥의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는 정체 모를 몬스터들을 다 제거하면서.
아마 산맥 곳곳엔 몬스터가 바글바글할 것이다.
브링어가 없었다면 우리도 진짜 생고생을 해가면서 산맥을 넘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네임드를 잡아서 자격 증명을 하라는 소리네.”
재중이 형의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혹은 이 입장권이 있다면 말이죠.”
내가 인벤에서 꺼내든 아이템들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산맥을 넘어갈 수 있는 특급 티켓들.
흐음, 그럼…….
이걸 어떻게 써먹는다
***
산맥은 정말 높았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딘가 터널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지나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높이.
그런 고도를 브링어는 큰 무리 없이 올라가더니 고도가 제일 낮은 산맥 쪽의 끝을 넘어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어느 정도 올라가고 말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도 이번엔 질려버렸다.
챠밍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챠밍의 질문에 방패전사는 산맥을 넘는 상상을 하는 것 같더니 바로 표정이 굳어버렸다.
“으음, 가보면 무슨 수가 생기지 않겠냐.”
반대편에 임시 거점 정도만 있으면 이제 우리가 반대로 못 넘어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려나
거기다 확실한 거점이 없다면 진짜 처음부터 전부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큰 문제는 페르타.
거대 지네 브락크를 잡지 않고 방치하다간 유적지가 그대로 털려 버릴 수도 있다.
사장님 팀만으로는 솔직히 아직은 무리니까.
그런 걱정을 품에 안고 하강하는 브링어에서 바라본 산맥 반대편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풍경이었다.
지금껏 봐왔던 풍경보다 더 짙고 더 어두운 구름이 하늘에서 거칠게 소용돌이치고 그 사이로 번개 수백 다발이 동시에 사방으로 내리쳤다.
또 어떤 하늘은 와인색으로 물들어 붉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런 하늘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끝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들이 사방팔방 날아다니면서 서로를 물어뜯고 번개를 맞아 불타올랐다.
마치 산맥 너머가 평화로운 튜토리얼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변했다.
“세상에.”
나르샤가 놀란 표정을 짓다 무의식적으로 석궁을 꺼내서 장전할 정도로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거기다 날아다니던 회색빛을 가진 무언가가 브링어 1호에 날아들었다.
그것도 수십 마리가 동시에.
마치 먹잇감을 노리듯.
얼핏 보면 인간 같아 보이기도 한데 박쥐같은 날개가 달린 것을 보면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 일제히 사격! 』
선임 NPC의 지시에 마법포들이 동시에 적들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포격을 시작했다.
NPC의 사격은 대체로 정확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적을 맞추는 데 성공하기도 했고.
하지만.
“한 마리도 안 떨어졌어요!”
“그대로 날아와요!”
공격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챠밍과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베네아에서는 단 한 방에 탈것을 역소환시켰던 마법포가 저것들에게는 아예 먹히지도 않아
이거 앞으로 쉽지 않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