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51화 (251/1,404)

# 251

#251화 자격 증명 (3)

브링어의 포를 맞으면서도 계속 날아오는 녀석들을 자세히 바라보니 이마 중간에 검은색 원통형의 뿔이 솟아나 있었다.

거기다 눈빛은 케르베로스의 그것처럼 붉게 물들어 유독 눈길이 갔다.

저 몬스터가 소형이기는 해도 누가 봐도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악마형 몬스터인가

예전에 업데이트를 할 때 악마형 몬스터가 추가되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렇게 바로 보게 될 줄이야.

조금 더 시야에 가까워지자 소형 몬스터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블러디 가고일.

회백색의 몸체에 붉은 핏줄이 그로테스크하게 툭툭 튀어나와 있었고, 그 핏줄로 검은 핏물이 흘렀다.

챠밍이나 이쁜소녀, 나르샤가 가까워진 블러디 가고일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검은 핏물을 온몸에 흘리는 몬스터.

누가 봐도 상대하기가 꺼려진다.

정말 악취미네.

꺼내놓는 몬스터마다 귀엽게 봐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거기다 마르고 뒤틀어진 박쥐 날개 같은 것을 달고도 저렇게 날아다니다니.

날개가 몸체보다 작아 밸런스가 무너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분명 강할 것이다.

브링어의 주포를 몸으로 받고도 버텨냈으니까.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주포에 직격당할 때마다 이상한 배리어 같은 것이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지금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저것들이 브링어에 붙으면 버틸 수 있을까요 ”

내 질문에 재중이 형이 표정이 굳었다.

“일단 우린 죽겠지. 싸우다 죽든, 떨어져서 죽든.”

역시 스펙의 문제인가.

나와 재중이 형이 있음에도 저런 분석이라…….

무슨 퀘스트를 이따위로 해놨는지 모르겠다.

분명 넘어올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살길부터 찾아야 하는 판국이 되어 버렸다.

요즘은 시도한 적이 없는데…….

해봐야 하나

지금까지 굳이 필요한 경우가 없기도 했고 불필요한 대화는 NPC가 인식 자체를 안 했기에 시도도 안 해본 것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하다.

과연, 어느 부분까지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와서 NPC의 지능에 기대야 하는 노릇이라니.

재중이 형이 재빠르게 브링어의 키를 쥐고 있는 NPC에게 다가가서 이런저런 설명과 몇 가지 단어를 꺼내서 이야기하다가 나를 보며 허탈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역시,

저것도 정해진 롤만 수행하는 NPC인 모양이다.

결국 싸워야 하나

“아마 칼도 안 들어가지 싶은데…….”

방패전사가 내게 오면서 미스트 쉴드를 꺼내며 말을 건넸다.

말을 건네면서도 시선은 블러디 가고일에 있었다.

“네, 형도 그러던데요.”

“……여차하면 애들 데리고 튀어. 뒤는 내가 다 막아준다.”

이 형 오늘 좀 멋있네.

근데, 사실 튀려고 해도 튈 곳이 없다.

고도가 너무 높아서.

가속이 엄청나게 붙은 상태에서 라이덴을 소환하는 것은 정말 마지막에 해봐야 하는 방법이겠지.

이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 하강하고 있는 동안은 저 블러디 가고일들이 달라붙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럼 그냥 무방비로 노출이 돼서 뒤를 장담할 수가 없게 된다.

방어가 약한 챠밍이나 나르샤는 치명적이고.

지금은 일단 붙어본다.

재중이 형이 돌아오더니 자리를 잡았다.

“챠밍 안쪽, 나르샤와 둘이서 무조건 점사하고. 나와 소녀 한 조, 방패전사 정면 가고, 주호 옆에서 최대한 도와줘.”

“옵니다!”

방패전사가 외치자마자 블러디 가고일들이 브링어 주변을 돌면서 긴 삼지창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쾅!

쾅!

한 방, 한 방이 묵직했다.

삼지창 끝으로 피가 터져 나가는 이펙트가 나면서 굉음이 동시에 들려왔다.

그리고 그 공격들에 브링어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꽉 잡아!”

재중이 형이 외치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창으로 공격하는데 저런 이펙트와 충격이라고

대체 밸런스는 어디에다 버려둔 건지 모르겠다.

주포에서 푸른빛의 마법이 끝없이 날아가며 블러디 가고일들을 맞추었다.

결국, 여러 번 맞은 한 마리가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무적은 아닌 모양이다.

그럼에도 충분히 강하다.

주포를 쏘지 않는 다른 NPC가 무기를 들고 안으로 진입하려는 블러디 가고일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밀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마리가 빈 공간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방패전사가 튀어나갔다.

【 돌진! 】

대쉬가 몸을 가볍게 해서 빠르게 전진하는 회피형에 가까운 기술이라면 돌진은 말 그대로 묵직한 기술이었다.

온몸의 체중을 싣고 미스트 쉴드를 정면으로 들어 블러디 가고일의 몸체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끼긱!”

충분히 힘을 살린 방패전사가 우위를 점했는지 블러디 가고일이 난간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그러더니 다시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방패전사를 노려봤다.

방패전사가 새로 배운 스킬까지 사용해가면서 밀어붙였는데 고작 몇 발짝 정도 밀어낸 것에 불과했다.

평지에서 싸웠으면 밀렸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놈들 엄청 탄탄합니다!”

잠시나마 밀려 나간 블러디 가고일에게 나르샤의 공격이 쏟아졌다.

뇌전이 섞인 화살이 연속으로 블러디 가고일의 몸에 쏘아졌는데 화살들은 모두 몸에서 튕겨 나왔다.

뇌전 화살이 하나도 안 박혀

현 최강 네임드 석궁인데

나르샤가 그걸 보더니 안색이 굳어졌다.

이제껏 버티기는 해도 아예 안 박힌 경우는 처음이니까.

그래도 잠시나마 주춤거리게 만들었고, 챠밍의 방해가 이어졌다.

【 에어 붐! 】

챠밍 앞의 공기가 압축되더니 정면을 빠르게 밀고 지나가면서 블러디 가고일을 완전히 바깥으로 밀어내 버렸다.

“어차피 공격이 안 통하잖아요.”

챠밍이 나르샤를 보자마자 마법 구성을 싹 바꾼 모양이다.

확실히 지금은 단순히 위력이 높은 공격이 아니라 저런 기술이 필요하다.

밀어내는 기술이라…….

난간 중 빈 공간을 향해 날아오는 또 다른 블러디 가고일을 향해 아쿠아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이게 과연 어느 정도 통할지…….

지금 가진 기술 중에서 밀어내는 기술은 이 정도가 전부다.

블랙 아쿠아 캐논을 정면에서 맞은 블러디 가고일의 피부 위로 무언가 이상한 방어막 같은 것이 생기더니 블랙 아쿠아 캐논을 맞고도 멀리 밀려 나기만 할 뿐.

잠시 멈칫한 것만 제외하고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

전혀 안 통하나

나름 이쪽은 최강 기술이란 말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라이덴 미늘창을 앞으로 내밀며 스킬을 시전했다.

【 뇌격! 】

어차피 블랙 아쿠아 캐논이 안 통하면 남은 것은 뇌격 정도밖에 없다.

과연 저것도 안 통할까

하늘에서 새하얀 뇌전이 내려치더니 블러디 가고일을 한차례 강하게 태우고 사라졌다.

결과는

블러디 가고일 중 하나가 마비된 듯 곧바로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주 무적은 아니네.”

재중이 형이 그제야 좀 안도한 한숨을 쉬었다.

아래로 추락하던 블러디 가고일이 정신을 차렸는지 그대로 다시 날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모두의 표정이 순간 굳어버렸다.

“크크, 아주 밸런스 개똥이구만. 훌륭하네. 진짜.”

뇌전으로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재중이 형이 허탈하게 웃었다.

우리가 가진 대인전 최강의 기술인데 잠시 멈칫거리게 만들고 끝인가

거기다 지금 그런 블러디 가고일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여기서 잘못하면 뼈를 묻겠네요.”

조타를 하던 NPC까지도 방어를 위해 뛰쳐나왔다.

확실히 공격하는 몬스터에 비해 NPC가 많이 부족하기는 하다.

아마 자동적으로 저렇게 되도록 설정된 것 같다.

“보통 이쯤 되면 강력한 NPC가 나타나서 도와줘야 정상인데…….”

게임을 많이 해본 방패전사가 뭔가를 기대하는 말을 했지만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정말 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꼭 누군가 손을 써둔 것 같은 그런 찝찝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는데…….

NPC들이 잘 버틴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오래갈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주호 오빠!”

그때 챠밍이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응 ”

“딱 한 번 해볼 만한 것이 있어요.”

챠밍이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말을 하는데 사실 지금은 방법 자체가 없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어지는 챠밍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자.”

어차피 이대로 흘러가 봐야 죽음을 눈앞에 둘 뿐이다.

재중이 형, 방패전사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그냥 해.”

“하자!”

다 같은 생각이군.

“그럼 갑니다.”

챠밍과 눈을 마주치고 난 뒤에 바로 네믈리드를 꺼냈다.

그리고 라미아 하트를 돌려 지력을 최대치로 올렸다.

조금이라도 효과가 좋기를 바라면서.

“전부 눈 감아요!”

챠밍이 하이톤으로 외치자 우리 팀 모두가 눈을 감았다.

그와 함께 챠밍과 내가 동시에 스킬을 시전했다.

【 라이트 웨폰! 】

【 라이트! 】

번쩍!

순간 주변에 눈이 멀 정도의 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몇 배로 증폭된 하얀 빛이 비행선을 모조리 덮어버리자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키엑!”

“윽!”

블러디 가고일이며, NPC며 할 것 없이 모두 두 손으로 눈을 잡고 비틀거렸다.

“지금!”

재중이 형이 눈을 뜨고는 비어 있는 조타를 바로 잡았다.

솔직히 난 저런 조작에 익숙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다! 아무거나 붙들어!”

어떻게 조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이 조타를 확 뒤집자 비행선이 크게 흔들리다 머리가 앞으로 빠르게 기울었다.

거의 수직에 가깝게.

그 영향으로 난간에서 싸우던 NPC 중 대다수가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거기다 블러디 가고일도 동시에 떨어져 나갔고.

그러더니 브링어가 아래를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브링어가 낙하하자 순식간에 머리카락이 뒤로 쓸려나갈 정도로 미친 듯이 가속이 붙었다.

“으악!!!!!!”

“꺄악!!!!!!”

우리 팀이 질러대는 비명은 순식간에 바람에 묻혀 사라졌다.

추락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면 딱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몇 안 남아 있던 블러디 가고일까지 우수수 떨어져 하늘 멀리 날아가 버렸다.

단 몇 명의 NPC만 살아서 기둥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애초에 NPC가 급강하만 알아들었어도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됐는데.

바람에 잘 안 떠지는 눈을 치켜들곤 고도를 확인했는데 숫자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혀어엉!!! 속도!!!! 줄여요!!!!”

이대로 가면 바닥에 처박혀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젠장!!!! 못!!!! 줄여!!!!!”

기둥에 매달려 있던 우리에게 재중이 형의 외침이 돌아왔다.

안 된다고

하긴 블러디 가고일을 모두 떼어내려고 선체를 너무 기울이긴 했다.

그리고 그건 이 정도 가속에서 선체를 다시 뒤집지 못한다는 말과 동일했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 알겠다.

가속 압력에 눌려서 속이 답답해질 정도가 되자 이대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냥 뛰어내려요!!!”

선체는 포기해야겠다.

이대로 선체를 살리려고 하다간 우리가 쥐포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

“챠밍, 소녀!! 내 허리 꽉 붙들어!!!”

“네!!!!!”

“전사 형!! 나르샤 누나 부탁해요!!”

“말 안 해도 잡고 있다!!”

“그럼! 살아서 봐요!!!!”

재중이 형은 알아서 잘하겠지.

둘 다 바로 내 옆에 있어서 빠르게 내게 와서 붙었다.

【 오우거 하트! 】

힘을 최대한으로 올린 상태에서 챠밍과 이쁜소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양손이 그렇게 난간을 놓아버리자 자연스럽게 내 몸과 챠밍, 이쁜소녀가 공중에 거칠게 튕겨 나갔다.

“꺄아아악!!!!”

몸이 압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지고 팔이 터져나갈 것처럼 짓눌렸지만 꾹 참고 챠밍과 이쁜소녀를 잡고 버텼다.

오우거 하트가 없었다면 벌써 둘 다 놓쳤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안전장치.

이게 통하지 않으면 죽는다.

【 라이덴 소환! 】

내 아래로 라이덴을 소환했지만, 서로 맞지 않아 내 몸이 사정없이 라이덴 등으로 냅다 꽂혔다.

“꺄아악!!”

챠밍과 이쁜소녀도 마찬가지고.

이대로 가다간 셋 다 튕겨 나간다.

“소녀! 조금만 버텨! 팔 뗀다!”

“네!!”

정말 잠깐만, 아주 잠깐만 버텨라!

챠밍은 안 되지만, 이쁜소녀는 힘이 높아 내가 팔을 떼도 잠시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쁜소녀를 감고 있던 왼팔을 힘겹게 빼서 라이덴의 비늘 사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왼팔이 세 명의 무게와 압력, 가속을 모두 감당하게 되자 비틀어 짜는 빨래처럼 뒤틀리기 시작했다.

“끄아악!!”

감각이 예민한 내게 이건 정말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미칠 듯하게 전해오는 아픔에 사라져가는 정신이 오히려 확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번만!

버텨라!!

제발!!!

무게와 압력을 버티면서 라이덴의 등에 몸을 밀착하자 라이덴이 풍압을 막아주면서 겨우 자세를 유지했다.

이쁜소녀도 허리에 잘 붙어 있고, 챠밍도 오른팔로 감아서 끝까지 버텨냈다.

주변을 살피니 재중이 형도 미스트 윙을 타고 빠져나왔고, 방패전사와 나르샤 역시 미스트 윙 위에 있었다.

그리고 브링어는 지금은 눈에 띌 정도로 가깝게 보이는 대지 어딘가로 가서 불시착했다.

아마 박살이 났을 것 같다.

우리가 그대로 타고 있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였겠고.

<재중> 다 살아 있지

<챠밍> 네. 주호 오빠가 진짜 고생했어요.

<이쁜소녀> 주호 오빠 덕분에 살았어요.

<방패전사> 진짜 무슨 퀘스트가…….

<나르샤> 다행이네. 다 살았어.

안정권에 들어선 라이덴과 미스트 윙이 속도를 줄여가면서 산맥들 사이로 하강을 시작했다.

좀 전에 브링어가 불시착한 장소로.

다행히 주변에 몬스터는 없는 것 같아 바로 땅으로 뛰어내려서 그대로 드러누웠다.

팔을 바라보니 경련이 크게 일어나 덜덜 떨리는 중이었다.

이 팔로 잘도 버텼네.

장하다. 내 팔.

“여긴 대체 어디냐.”

방패전사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미니맵 자체가 온통 검은 상태라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전사! 여기 브링어!”

나르샤가 돌아다니다가 브링어를 찾았는지 외쳤다.

심하게 반파되어 있지만 그래도 고유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

재중이 형이 주변으로 달려가자 우리 모두에게 시스템음이 울렸다.

《 브링어 1호의 선장이 사망했습니다. 주변에서 새 주인을 찾습니다. 유저 검색 중……. 불멸, 방패전사, 나르샤, 주호, 챠밍, 이쁜소녀 검색 완료. 선장 등록을 해주세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