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96화 (196/1,404)

# 196

#196화 유명세 (2)

사인을 해달라고?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당황스럽다.

평소엔 서로 관계없는 사람처럼 그냥 지나칠 사람들이 내게 하나둘 모여들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집중시켰다.

“누군데 그래?”

“너, 몰라? 로스트 스카이 랭킹 1위.”

“진짜? 그런 사람이 여기 왜 있어?”

“저기 있네.”

“일단, 사인부터.”

…….

이게 무슨 일이지.

게임에서 이름 좀 날린다고 사람들이 알아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은 현실 아니던가?

내가 잘 나가는 프로게이머도 아니고…….

갑자기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닥치자 머릿속이 백지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몰려 있는 이 사람들은 다 뭐지?

무슨 상황인지 정확한 파악이 필요했다.

그렇게 잠시 멍하게 있는 것도 잠시, 날 흘깃 바라보던 여자가 노트를 내미는 것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인 좀 해주세요.”

“……저 아세요?”

내 말에 오히려 여자가 더 당황했다.

“유명한데…… 매일 애들이 영상을 찾아서 봐요. 저희도 이제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더 난리에요.”

“……아, 고등학생.”

“네, 3월부터 등급 제한이 풀려서 다 할 수 있어요!”

전혀 몰랐다.

요즘 게임만 미친 듯 파고들었지 딱히 이쪽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우리 집에 모였을 때 연지가 조만간 보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반에서 오빠 모르면 간첩이에요. 지금도 쌍검 따라 한다고 연습하는 애들도 있는데…….”

대체 여긴 뭘까.

내가 사는 세상이 맞나?

누굴 따라 해?

게임에서야 이해하겠는데 많은 사람이 따라 해?

“꺅, 오빠 저랑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요.”

“형! 저도 사인 좀 해주세요.”

뒤에서 학생들이 계속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부터 지하철은 절대 타면 안 되겠네.

재중이 형 말대로 차를 한 대 사야 하나?

돈 벌어서 청승 떨어야 한다고 내게 그랬는데…….

이젠 고려를 해봐야겠다.

“으음, 사인이 따로 없어서 그냥 이름만 적어줘도 될까요?”

예전에 대회 때 현역여대생이 생각난다.

셔츠에 이름만 적었던.

그때 이후로 사인할 일이 없어서 완전히 신경 끄고 살았었는데…….

“네! 제 이름도 밑에 작게 좀 적어주세요. 날짜랑.”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사인회를 지하철 한구석에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

내 이야기를 들은 유혜선 팀장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아니,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을 건 없잖아요.”

“꺄, 아! 배야. 제가 전에 그랬잖아요. 곧 유명해질 거라고요.”

“그게 이런 식인 줄 몰랐죠.”

정말 이렇게 될지 상상도 못 했다.

행인 1, 혹은 엑스트라 1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길 가다 사인받을 확률이라…….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주호 씨, 얼굴도 잘생겨서 그런 거예요. 비슷하게 뜬 사람들은 이 정도는 아니에요.”

“칭찬 맞죠?”

“네, 아마 3월부터 규제가 다 풀려서 그래요. 학생들 사이에서 지금 인기가 엄청나거든요. 몰라서 그렇지 학생들에게 대통령이나 다름없을 걸요? 우리도 지금 새 VRS 물량 뽑아낸다고 정신이 없어요. 갑자기 주문이 폭주해서 매일 야근이에요. 원래라면 지금쯤 휴가를 갔어야 했는데…… 망했어요…… 흑.”

숨도 쉬지 않고 쏟아내는 말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워 가장 평범한 답을 내었다.

“뭐라고 위로를 드려야 하나요…….”

“괜찮아요. 그냥 이게 생활이 되어서.”

힘겹게 웃는데 왠지 그 모습이 짠해 보인다.

“아, 눈에서 왜 눈물이…….”

“하하…….”

어쩐지 보자마자 눈이 퀭해 보이긴 했다.

전에도 꾸벅꾸벅 졸던데 지금은 더하면 더 했지 덜해 보이진 않는다.

“일단, 저만 모르고 있었나 보네요.”

“승호 씨는 대부분 VRS 들어가서 생활하시니 주변에서 말 안 해줬으면 모를 수도 있겠네요. 신경 쓰일까 봐 주변에서 이야기 안 해줬을 수도 있고.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야기 안 했을 수도 있죠, 그래도 TV 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인…….”

“제가 TV를 거의 끄고 살 거든요.”

마지막으로 TV를 언제 켰더라?

이거 너무 게임만 하고 사는 것 같네.

“으음, 식사는 제대로 하고 계세요? 잠은요? 게임 외에 다른 것은 어때요? 혹시 어지럽거나 하지 않나요?”

내 표정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유혜선 팀장이 바로 물어왔다.

“글쎄요, 요즘 약간 힘이 없기는 했어요. 매번 VRS에 들어갔다, 나와서 바로 자는 식이라…… 식사는 하긴 하는데. 많이 하는 편은 아니고. 평소대로 그냥 인스턴트로…….”

“으음! 그러면 안 돼요! 승호 씨는 뇌의 활동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식사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몸이 버티지 못해요. 에너지의 절반을 뇌가 사용하는 건 아세요? 승호 씨처럼 RTP가 높은 사람은 무조건 식사를 제대로 해야 해요.”

유혜선 팀장이 허리에 손을 얹고는 눈을 매섭게며 뜬 채, 정색하면서 나를 쏘아붙이자 내가 급격하게 쪼그라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부모님에게 편식한다고 혼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특히 라면이나 각성제 역할을 하는 커피도 안 돼요. 술은 특히 안 되고요. 세 끼 제대로 식사를 해야 해요. 제가 따로 연락할 테니까 식단은 짜주는 대로 최대한 맞춰서 식사하세요. 돈도 많이 버시는 분이 왜 인스턴트로 때워요.”

편하니까, 라고 하려다가 눈을 치켜뜨고 쳐다보는 유혜선 팀장에게 눌려 바로 입을 닫아버렸다.

여기서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간 하루 종일 잡혀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거든.

“안 되겠어요. 제가 한 번씩 찾아가서 좀 살펴야겠네요.”

“네?”

“제대로 지키나 앞으로 확인을 해야겠어요.”

“그렇게까지야…….”

“본인 몸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네네, 알겠습니다.”

이젠 식단 관리까지 받아야 하나?

정말 쉽지 않다.

***

“여기 광고 횟수랑 계약금 내역이에요.”

“생각보다 많네요.”

확실히 많다.

그간 로스트 스카이를 하면서 번 돈도 적지 않은데 광고 하나로 벌어들이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꽤 크다.

으음…….

유적지를 먹고 난 뒤부터 수익이 급증했던가?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하르페는 여럿이서 나누다 보니 그렇게 큰 액수가 들어오지는 않았다.

하르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먹은 것도 있지만 이건 길드원 전체가 해 먹은 것이기도 하고.

아이템 하나 팔아서 천만 단위로 돈을 챙기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유의미한 액수는 아니었던 것.

다만 에띠앙을 먹고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에띠앙을 먹은 처음에는 세금을 안 받았지만, 지금은 통장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돈이 들어오고 있다.

세금도 10%까지 때리니 이제야 레벨업을 좀 해서 넘어오는 사람들에게까지 받는 세금이 무시 못 할 수준이다.

거기다 마법 세트를 한 철 장사로 제대로 팔아먹으면서 말도 못 하게 돈을 불렸다.

그땐 지금이 피크였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정말 돈이 많이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새 맵을 넘어오면서 다시 한 번 폭발했다.

공중 몹을 잡고 나온 바람 계곡의 아이템을 스칼렛이 경매로 넘기자 정말 하루가 다르게 돈이 쌓이고 있었다.

일반 템을 네임드 수준보다 낮게 팔아먹고 있는데 돈이 안 쌓일 수가 없지.

선점의 효과가 이렇게 크다.

물론, 단발성으로 치면 이쪽이 훨씬 페이가 세다.

잠깐 얼굴 좀 내비치고 받는 것이라 나쁘지 않다.

거기다 내 편의를 위해서 가상 속에서 진행한다고 하니 굳이 자리를 옮겨 다닐 필요도 없고.

“부동의 1위를 지키고 계셔서 그런지 회장님이 아주 흡족해하세요. 저 PV 애들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있다면서요.”

“정말 그런 관계가 있기는 하네요.”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에요. 회장 모임 같은 곳에 가면 요즘 어깨 쫙 펴고 다니신다고 그러고.”

“제가 1위 하는 것이 그렇게 내세울 일인가요?”

“F1 경주 같은 경우만 봐도 드라이버도 부각되지만 그 회사가 1위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눈에 바로 회사의 로고가 보이니까요. 그럼, 이미지가 쌓이죠. 항상 1위 하는 회사? 이건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광고 효과를 내요.”

“그런 쪽으로도 잘 아시네요.”

“하는 일이 경쟁이니까요. 2인자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그렇게 돈을 쏟았는데 결국 승호 씨 한 명만 못 하네요. 정말.”

“그럼, 그 쏟아부은 돈 저한테 좀 주라고 하세요.”

“안 그래도 이번에 진행되는 일 전부 페이백 개념으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보통 광고비를 그 정도로 책정해서 드리지는 않거든요. 탑 배우보다 더 높게 드리니까.”

“양심은 있네요.”

“잘 좀 봐달라는 거예요. PV로 가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간청? 혹은 다른 VRS 회사도……. 거기에 조만간 후원 개념으로 회사 로고도 승호 씨 가슴에 마크하기 위해 협상에 들어갈 거예요. 유명 스포츠 업체들 아시죠? 그런 식으로요. 유명 선수에게 들어가는 후원금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게임만 해도 돈이 굴러들어오는 세상이네요. 예전에는 전혀 몰랐는데.”

“그 게임을 정말 잘 하시니까요. RTP가 높고 움직임만 좋다고 이 정도가 아니에요.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보면 재밌게 하세요. 단순히 PK를 잘하는 수준을 넘어서 머리싸움에도 능하시고, 작전도 잘 짜고, 재미도 있어요. 지금 학생들이 열광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죠?”

“……그래도 그렇게 사인해달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 관심이 폭발해서요. 원래도 그랬지만요. 아마, 조만간 격한 도전을 받게 될 거에요. 열광도 하지만 그만큼 그 자리가 탐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증명이라고 하면 더 좋겠네요.”

“증명이라…….”

“지금도 증명은 하시겠지만, 이젠 진짜 돈으로 싸우는 때가 올걸요? 회사도 여럿 후원 들어가고, 파이가 커지면 경쟁도 심해지니까요. 아마 후원하는 사람들을 부추기기도 할 거예요. 2인자 이미지는 썩 좋진 않아요. 기업에게는.”

단순히 게임만으로 돌아가는 수준은 넘어간다는 건가?

게임에서도 돈이 사람을 부릴 수 있겠네.

“혹시 로스트 스카이 하고 계신 건가요? 왜 이렇게 잘 아세요?”

“저 말 했잖아요. 1호 팬이라고요. VRS로 여러 게임이 돌아가고 있지만, 특히 자주 보고 있어요. 틈틈이요.”

그러면서 내게 윙크를 해 보였다.

확실히 고맙지.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만들어준 1등 공신이니까.

“승호 씨에게도 여러 기업이 붙으려고 했을 건데, 연락 못 받으셨어요?”

“제가 모르는 전화는 안 받는 주의라.”

“흐음, 저희 쪽 통해서 몇 곳이 접촉했는데 알려드릴까요? 제가 보기에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몇 곳의 조건은 그대로 세이브 시켰거든요.”

“제 몸에 로고를 더 그리자는 거네요.”

“그게 다 돈이니까요! 지금도 괜찮겠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죠?”

“그럼, 한 번 만나보기는 할게요.”

유혜선 팀장이 골랐으면 내게 해가 되는 쪽은 아닐 거라고 본다.

이쪽은 믿고 있기도 하고.

들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나와 버리면 되니까.

“옷에 너무 덕지덕지 붙는 것은 아니겠죠?”

“설마요.”

“가죠, 제가 한턱 쏠게요. 약속도 지킬 겸.”

“저, 정말 비싼 거 먹을 거예요!”

내 제안에 유혜선 팀장이 밝게 웃기 시작했다.

***

B사의 하얀 세단에 올라탔다.

아, 물론 내 차는 아니고.

정말 차는 한 대 있어야겠다.

유혜선 팀장이 운전해서 평소에 먹고 싶다던 정말 비싼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냥 인테리어만 봐도 비싸 보이네요.”

좋다.

분위기가 어둡긴 하지만 고풍스럽고 절제된 세련미가 인테리어 곳곳에서 느껴진다.

음식점 하나에 돈을 얼마나 들인 거야?

내가 봐도 꽤 고심한 것 같다.

“먹다가 체할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그 정도는. 들어가요.”

입구에서 잠시 확인을 하는 것 같더니 유혜선 팀장이 무언가를 내보이자 안내를 받았다.

따로 확인할 정도라……

아마 혼자 왔다면 엄청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곳은 와본 적도 없고.

웨이터가 안내한 창가에 앉아서 주문하려고 메뉴판을 보니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괜찮죠?”

“생각보다요. 처음이라 좀 어색하네요.”

“으음, 여기 정말 맛있어요. 자주 못 와서 슬펐는데 오늘 딱 오네요. 메뉴는 제가 골라도 되죠?”

“아무렴요.”

어딜 가든 잘 아는 사람이 시켜주는 것이 제일 맛있다.

실패가 없으니까.

그렇게 코스로 나오는 요리를 하나씩 맛보다 보니 어느새 배가 빵빵하게 차버렸다.

전부 맛있어…….

역시 돈값을 하는구나.

“맛있죠?”

“네, 기회가 되면 다시 와도 되겠네요. 만족스러워요.”

“그럴 줄 알았어요.”

정말 기뻐하는 모습이다.

순수하게.

가끔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우리 팀을 데리고 한 번 더 와도 될 것 같다.

그때, 깔끔하게 잘 차려입은 한 젊은 사내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누구지?

유혜선 팀장이 아는 사람인가?

내가 눈짓을 하자 고개를 젓는다.

아니라는 거군.

“혹시 로스트 스카이, 주호 님?”

“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짙은 눈썹에 진한 눈매를 가진 사내가 소개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품에서 자기 명함을 꺼내 들고 내게 건넸다.

T 전자 VRS 사업부 본부장?

나이도 얼마 안 됐는데?

저 나이에 본부장을 달수가 있나?

“제가 몇 번 연락을 드렸는데, 연락이 되지 않더군요. 집으로 찾아가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아 포기하려던 차에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제게 연락은 왜?”

이것도 유혜선 팀장이 이야기한 범주에 들어가는 일인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T 전자에서 VRS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조용한 자리로 모시고 싶은데 시간 되십니까? 정중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VRS 사업?

그 말에 고개를 돌린 나와 유혜선 팀장의 시선이 바로 마주쳤다.

이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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