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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9화 (109/1,404)

# 109

#109화 누가 우리의 적인가? (4)

이것 봐라?

너무 쉬운데?

몰래카메라를 당하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우리가 함정을 파고 기다리긴 했지만 이렇게 한 번에 뿌리까지 딸려 나올 줄이야.

이쯤 되니 표정 관리가 필요할 정도다.

“사신이라…… 생각보다 놀라운 패군요.”

사실 놀랍지는 않다.

사장님, 재중이 형과 했던 이야기에서 사신의 이름도 자주 오르락내리락했으니까.

확신이 없었을 뿐.

어느 정도 의심은 하고 있었다.

지금은…….

살짝 놀라는 척을 해줘야 할 때.

딱, 이 정도가 좋다.

의심을 주지 않고 의외라는 인상을 주기에는.

제우스가 원하는 반응을 해줬더니 내 표정을 본 제우스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생각이 있으십니까?”

사신이 뒤에 있으니까 마음껏 최강의 문을 박차고 나오라는 소리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니까 당황스럽네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한두 곳의 제안을 받은 것이 아니라서요.”

왜 그런 쇼를 했겠는가.

제우스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선택을 좀 미루더라도 당연한 이유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너희들 말고도 선택할 길드가 많은데 급하게 결정 내릴 것이 없다는 제스처를 보여야 저쪽도 함정이라는 생각을 못 하니까.

제안이 왔다고 덥석 물면 의아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서로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싸움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 제안이 가장 좋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을 보면 꽤 긍정적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미래를 결정할 일인데 너무 쉽게 결정할 수 없죠. 일단, 제안 자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사신이 어째서 그쪽을 돕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쪽 바닥에 별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이번 경우는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고 해야겠군요. 원하는 것이 말이죠.”

몇 가지 궁금한 것이 더 있긴 했지만 그것까지 지금 물어봤다가는 의심을 살 것 같아서 일단 여기서 멈췄다.

“좀 더 생각을 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도록 하죠. 그럼.”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를 파했다.

제우스 쪽 사람이 모두 사라지자 방패전사가 곧장 안색을 굳혔다.

“사신이라니 꽤 대어가 튀어나왔습니다.”

“네, 재밌게 됐죠. 일단, 돌아가요.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또 다른 길드들이 달라붙을 겁니다.”

내 말에 이쁜소녀가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빨리 돌아가요.”

말을 바꿀까 봐 얼른 돌아가자는 이쁜소녀의 말에 모두 웃어버렸다.

***

“사신이라는 말이지?”

재중이 형이 입에 불고기를 가득 집어넣고 우물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 좀! 다 먹고 말해요. 양념 튀어요.”

지글지글 불판에서 익어가는 양념 불고기를 뒤집어놓으니 익은 것만 잽싸게 채가는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긴 건 깔끔한데, 먹을 땐 머슴이 따로 없다.

이렇게 하고 어떻게 팬 관리를 했을까.

먹는 모습을 한 번만 찍혔어도 다 떨어져 나갔을 것 같은데.

가볍게 소주 한잔을 걸치며 한 쌈 크게 입에 넣었더니 잘 구워진 양념 불고기 특유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져 나갔다.

“들어보니까 제우스가 밑이 아닌 것 같던데요?”

“어, 나도 그건 놀랐네.”

전에 우리끼리 이야기했을 때는 분명히 사신이 제우스를 이용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흘러가는 모양새는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제우스 이거 나한테도 돈질하려고 하더니, 이번엔 사신에게 그러고 있었구만.”

오히려 갑이 제우스 일지도 모르는 이상한 그림.

돈을 쥐고 흔드는 것이 제우스라면 전설에서 떨어져 나간 사신이 저렇게 확 큰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 사신하고 연관이 있었을까요?”

“아마, 나한테 까칠하게 굴던 때려나? 잘 모르겠네.”

재중이 형 말만 들어보면 꽤 오래전부터 일수도 있다는 소리다.

“신경 안 쓰였어요?”

“내가? 그놈을? 농담이겠지?”

재중이 형이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녀석과 우리는 질적으로 달라. 이쪽 세계를 대하는 자세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해야 하나.”

전에 들었으면 전혀 모를 말이겠지만, 한 번 만나보니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제우스가 뭘 원하는지도 알았고, 뒤에 숨은 녀석도 다 알아냈다.

“이제 움직이는 건가요?”

“그래, 끝을 봐야지.”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한 후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마지막을 향한 축배를 들기 위해.

***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43.

> 로딩 중…….

접속하고 조금 지나 제우스 측에 연락을 했다.

<제우스> 저희 쪽 제안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주호> 조건이 좀 더 좋았습니다. 우리 팀을 모두 좋은 조건에 받아준다는 말이 괜찮았습니다. 다른 길드는 거기까지는 부담스러워하더군요.

내 대답에 제우스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 있을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런 사람이니까.

돈으로 뭐든 해결이 된다고 믿는.

<제우스> 답변이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주호> 그럼, 제 소속이 어디가 되는 겁니까?

<제우스> 일단, 사신 쪽으로 들어가 계십시오. 사신과는 아무래도 그런 약속이니까요. 나올 시기는 추후에 제가 따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분명 사신 길마인 악마가 원하는 건 최강 길드 자체가 아니라 나뿐이라는 것을 제우스를 통해 확인을 했다.

이건 사신에게 원하는 것을 넘겨주는 척하면서 나를 사신에 넣어두고 이중으로 써먹겠다는 소리다.

정보를 빼먹거나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는 그런 위치로.

참, 하는 짓들이 아름답다.

<제우스> 아, 그리고 이쪽도 마무리를 지어야겠습니다.

<주호> 그거 말씀이군요.

어찌 이렇게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가 하나도 없을까.

사신은 내가 자기 길드로 들어가면 원하는 것을 받겠지만 제우스는 아직 아니다.

그리고 사신도 내가 길드를 나오면 더 이상 최강 길드와 갈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우스가 돈을 더 찔러주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포지션으로 변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우스> 오늘 최강 길드라는 이름을 로스트 스카이에서 지울 겁니다. 깔끔하게.

제우스가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해 드디어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

현재 최강 길드에서 유지 중인 사냥터는 두 곳이다.

유적지를 가진 길드의 세력이 자리 잡기엔 퍽이나 부족한 사냥터이긴 하지만 길드원 수가 적으니까.

조만간 보강을 한다고 하지만 당장 힘든 점이 많다.

그렇게 로테로 돌리던 사냥터 중 한 곳에 제우스와 길드원들이 단체로 뛰어들었다.

“쳐!”

숫자로 친다면 압도적으로 제우스 쪽이 많다.

기존 최강 길드에서 빼 온 사람들과 추가로 계속 사람을 받아들였으니까.

거기다 이번 습격을 위해 접속 시간까지 맞춰 그 수가 훨씬 많은 것도 있었다.

잠시 대치하던 대부분의 최강 길드원이 헬하운드를 타고 자리를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쳇, 저놈의 헬하운드.”

옆에서 제우스가 혀를 찬다.

애초에 우리가 잡은 헬하운드를 제우스 쪽에 몇 개 풀지도 않았으니까 주력으로 빠져나가면 잡을 방법이 없다.

“마음대로 안 되는 모양이네요?”

“지금도 잡기 힘드니까요. 헬하운드는.”

제작진이 패치를 멋지게 해놓은 덕분에 일반 탈것이라면 몰라도 헬하운드는 아직도 쉽지 않다.

내 잘못은 아니니까 찔리는 것은 전혀 없다.

그렇게 두 곳의 사냥터를 모두 뺏고 난 뒤, 잠시 기다리자 최강 길드원이 떼로 사냥터를 되찾기 위해 돌아왔다.

“주호님, 이제 저들 속으로 돌아가시죠. 신호하면 바로 움직여 주시면 됩니다.”

“뭐, 그렇게 하죠. 생각보다 음흉한 분이셨네요.”

“단순히 죽이는 걸로는 성이 안 찹니다. 눈앞에서 자기 길드 최고수가 돌아서는 걸 보여줘야 충격이 배가 되겠죠. 생각만 해도 재밌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최강 길드의 마크를 달고 있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제우스 본인의 유흥을 위해서다.

마지막까지 숨기고 있다가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다는 부탁에 나도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어 들어주고 있었다.

“흠, 그럼. 나중에 뵙죠.”

그대로 나와 팀원들은 탈것에 타고 일부러 시야가 안 보이는 곳으로 빙 둘러서 최강 길드에 합류했다.

내가 합류해도 재중이 형이 눈길만 슬쩍 줄 뿐 거의 모른 체했다.

겉으로 보이기만…….

<불멸> 여! 어때? 재밌냐? 쁘락치하는 거?

<주호> 생각보다 재밌네요. 아, 그리고 제우스 저놈 완전 상 변태예요. 지금까지 잘도 데리고 있었네요.

<불멸> 그 정도야?

내가 지금껏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니까 재중이 형이 킬킬 웃는다.

<불멸> 그래도 잘해준 편인데 날 그렇게 미워했는지 몰랐네.

<주호> 자존심에 아주 스크래치를 박박 긁혔나 보죠.

<불멸> 그럼, 좀 더 긁으러 가볼까?

나와 합류한 최강 길드와 함께 제우스의 길드가 포진해 있는 장소까지 이동했다.

사냥터를 되찾으려면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하는데 아예 제우스 쪽은 자리를 깔고 앉아 우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불멸, 오랜만입니다.”

이미 다 이긴 경기라고 생각하는 걸까?

제우스의 얼굴에 승자의 여유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넌 내 밑이야, 하는 딱 그런 표정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인지 알고 싶은데? 다짜고짜 우리 애들 자리나 건들고 말이지.”

“강한 쪽에서 약한 쪽을 잡아먹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약하다?”

“아닌가요?”

“이것 참, 별 그지 같은 놈도 얕잡아 보네.”

재중이 형의 말에 제우스의 눈썹이 확 올라갔다.

저거다.

자존심에 스크래치.

아주 강하게 나서 지울 수 없는.

“크크, 지금 상황이 눈에 안 들어오는 모양인데. 언제까지 그 잘난 척을 할 수 있나 보지.”

“이젠 정중한 척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냐? 그게 더 어울리네. 쪽수 좀 된다고 지금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 그래서 준비를 좀 했지.”

제우스가 팔을 들었다 내리자, 우리 길드 주변으로 접속 이펙트가 잔뜩 번쩍이기 시작했다.

얼핏 봐도 수십 개가 넘는 빛으로 순간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마치 이 자리를 미리 준비한 것 같은 그런 포지션이다.

“사신 길드?”

낫을 든 검은 사신 마크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우리를 포위하듯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어때? 쪽수가 좀 많지?”

서른 명 대 백오십 명의 차이라면 확실히 심하다.

“사신이었나?”

그 말에 사신 쪽에서 악마가 걸어 나오면서 박수를 쳤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인 애들이 오늘 왜 이렇게 많냐.”

재중이 형이 비꼬듯 말하니 악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예의 여유를 되찾는다.

“전에 라인을 만들자고 했을 때 받아주셨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유감입니다.”

“아아, 그 개소리?”

재중이 형의 말에 다시 한 번 악마의 얼굴이 굳는다.

진짜 사람 성질 긁는 데는 진짜 도가 텄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어떻게 저리 얄밉게 하지?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대체 뭘 믿고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이 숫자가 안 보입니까?”

악마의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사신이나 제우스 사람들이다.

그것도 빠져나갈 수 없이 빽빽하게 지키고 서 있다.

“많긴 하네.”

“이제 주변이 좀 보입니까?”

악마의 그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어쭈?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악마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재중이 형을 쳐다본다.

“야, 너 의외로 적이 참 많더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사신과 제우스 사람들이 서 있는 곳 바깥으로 수백 명이 넘는 사람이 하나둘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주변을 에워싸자 압박감마저 느껴질 정도.

수를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길드 마크의 향연에 자연스레 눈이 돌아간다.

“너도 이제 주변이 좀 보이냐?”

재중이 형이 아까 악마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한 마디.

“너희들 안 되겠다. 오늘 여기서 해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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