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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8화 (108/1,404)
  • # 108

    #108화 누가 우리의 적인가? (3)

    —들었어? 최강 길드.

    —아, 주호?

    —길드장하고 대판 싸웠다던데?

    —주호가 본인 몫을 터무니없이 요구했다더라.

    —에이, 그건 길드 쪽에서 나온 이야기고 실제로는 반대라는 말이 있어.

    —나 같으면 주호 밀어주겠다.

    —길드장이 너무 욕심부린 것 아님?

    —에이, 주호 다 퍼주면 길드에 뭐가 남냐.

    —유적지를 통째로 당연히 남지.

    —지금 상위 길드들 비상 걸렸음.

    —우리 길드도 분위기 장난 아님. 조건 다 들어주고 데려올지도 모르겠다.

    —팀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고 템 지원 싹 할 정도 되는 길드만 나설 것 같은데?

    —돈으로 데려올 수 있으면 진짜 남는 것 아니냐?

    —역시 대어가 시장에 풀리니까 대우가 장난 아니구나.

    <주호> 일단, 제대로 진행되고 있네요.

    <불멸> 아아, 이쪽도 제대로 흘리는 중이다.

    미리 준비했던 대로 재중이 형도 최대한 빠르게 퍼져나가도록 길드원들까지 동원해서 소문을 만들고 있다.

    어차피 게시판에 글 쓰는 것은 자기 아이디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여차하면 가족들 아이디로 들어가서 장난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소문을 만들어내기에는.

    그런 길드원들의 노력이 있어 지금 활화산처럼 불타오르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이.

    이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불멸> 귓말하고, 메일 전부 다 풀어놨지?

    <주호> 당연하죠.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미치겠어요.

    너무 많이 온다.

    어떻게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그동안 막아놔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귓말은 하나 읽기 바쁘게 다음으로 넘어가고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한테까지 귓말이 와서 원하는 귓말을 보려면 스크롤을 한참 올려야 한다.

    그나마 메일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이건 그냥 차곡차곡 쌓여 있으니까.

    선물 풀듯 하나씩 개봉해 보면 된다.

    <주호>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불멸> 왜?

    <주호> 너무 많네요. 연락 온 길드들이.

    모르긴 해도 좀 규모가 된다 싶은 길드들은 다 메일을 넣어둔 것 같다.

    이걸 다 읽어보려면 게임 자체를 못 할 것 같다.

    기업 공개 채용에 산처럼 이력서가 와 있는데 혼자 차마 검토하기 힘든 그런 문제라고 해야 하나.

    <불멸> 어차피, 우리 목적은 한 개뿐이잖아. 다른 건 다 무시해.

    <주호> 뭐, 그렇긴 하죠.

    사실, 이럴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지금 정도가 좀 지나쳐서 문제지만.

    일을 진행하는데 크게 지장이 오거나 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우리가 원하는 곳은 단 한 곳뿐이니까.

    <불멸> 아마, 조만간 물어 올릴 거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호> 사장님 좀 잘 챙겨주세요. 당분간 같이 사냥 못 하니까.

    <불멸> 누가 누굴 걱정하냐. 너나 잘해. 이따 끝나고 요 앞 불고기 집 콜?

    <주호> 수신 양호.

    겉에서 보면 우리 사이는 개판이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화기애애하다.

    ***

    “이렇게 오셔도 됩니까?”

    “어차피 저흰 상관없지 않나요?”

    방패전사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그 뒤로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서서 날 보고 있다.

    “하긴, 괜찮겠죠.”

    “이편이 더 자연스러울 겁니다.”

    원래 붙어 다니던 사람들이 갑자기 떨어져서 다닌다?

    이것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꽤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디테일 한 것까지 잘 챙기시네요.”

    내 말에 이쁜소녀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따라나섰을 거예요.”

    챠밍도 이쁜소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런 사람들이었지.

    “사실, 혼자 사냥하기 적적했거든요.”

    항상 옆에 있다가 없으니 빈자리가 정말 크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내 말에 다들 웃어 보였다.

    “생각보다 안무네요.”

    “아, 거기 말입니까?”

    “네. 이토록 애타게 기다리는데 말이죠. 일부러 혼자 나와서 이렇게 돌아다녀 주는데도 접촉을 안 하다니 조심스러운 건지 겁이 많은 건지 모르겠어요.”

    “사장님도 하루 만에 붙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신 것 같은데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그럼, 사냥이나 하죠? 시간은 금이니까.”

    저주받은 숲 지형이 많이 변하면서 사냥터가 다 뒤집히다 보니 지금이 좀 어수선한 상태다.

    덕분에 우리 팀이 적당히 사냥하기에 나쁘지 않기도 하고.

    사실, 더 좋은 사냥터가 있는데 굳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저기, 혹시 시간 있으시면 저희와 이야기 좀 나누실 수 있습니까?”

    보통은 이렇게 남의 사냥터에 접근하면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 다가오는 거겠지만.

    생판 처음 보는 길드 사람들이 주변에 불쑥 나타나서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듯 무기를 집어넣고 두 손을 살짝 들고 우리에게 다가와 어느 정도 거리가 되니 바로 정지했다.

    “아마, 오늘 사냥하기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뭐, 저희도 사람 구경이나 하죠.”

    방패전사가 사람 좋은 얼굴로 웃는다.

    고개를 돌리니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저희 신경 쓰지 마시고 천천히 볼일 보세요.”

    챠밍이 차분하게 미소 지었다.

    방패전사가 슬쩍 옆으로 다가와서 아주 작게 속삭였다.

    “사실, 다 걱정돼서 따라온 겁니다. 얼마나 닦달하던지. 저 이런 이야기 했다고 나중에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이거 참.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이렇게 마음이 놓이다니.

    “일단, 저 사람들부터 해결하죠.”

    우리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 길드장님이 잠시 보자고 합니다. 잠시 같이 가시죠.”

    덩치가 있는 한 남자가 다른 팀원들 사이에서 나와 먼저 말을 걸었다.

    장비는 저주받은 숲에서 얻을 수 있는 장비는 모두 차고 있다.

    이 시점에서 다 모은 것을 보면 꽤 현질을 한 모양이다.

    다른 길드원들도 장비가 준수하고.

    단순히 보이는 면에서는 괜찮아 보이는 길드다.

    규모가 커서 그런지 고개가 좀 뻣뻣하다.

    그런데 말이지.

    너희가 그렇게 뻗댈 자리가 아니거든?

    “직접 오라고 하시죠?”

    내 말에 그 덩치 사내의 인상이 확 구겨진다.

    “제가 지금 누굴 따라갈 상황이 아니라서요.”

    그러면서 고개를 슬쩍 들어서 덩치의 뒤를 턱으로 가리켰다.

    내 턱짓에 뒤를 돌아본 덩치가 깜짝 놀란 듯 어깨를 들썩인다.

    “보이죠?”

    그곳엔 수많은 사람이 오직 나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개떼처럼 모여서 서 있었다.

    ***

    “정말, 오늘은 사냥 못 하겠네요.”

    벌써 거의 30팀이다.

    어느 순간부터 숫자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이다.

    메일이나 귓말만 보내면 성의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있는 곳을 게시판에 풀자 아예 날 찾아온 사람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어 사냥터가 마치 시장처럼 변해 버렸다.

    “야! 좀 떨어지지그래?”

    “너희야말로 떨어져라.”

    “우리가 먼저 왔거든?”

    “먼저 온 게 벼슬이냐?”

    “딜할 능력도 없는 것들은 빠지지그래. 복잡하기만 한데.”

    “지금 우리보고 말한 거냐? 어?”

    “난 누구라고 말한 적 없는데?”

    “이 자식들이!”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있다 보니까 우리가 서 있던 주변 사냥터의 분위기가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목적, 다른 사람들이 모이니 좋은 분위기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적어도 이 근처에선.

    반면에 내 앞에 선 사람들은 그야말로 있는 웃음 없는 웃음 다 지어내면서 우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희가 이번에 주호님이 원하시는 대로 팀을 개편해드릴 생각입니다. 길드에서 원하는 누구라도 뽑아다가 쓰셔도 됩니다. 모든 부분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현재, 저희 길드장님이 이 정도의 금액을 지원하실 예정이고…….”

    길드장이 직접 오는 곳도 있고, 어디 길드는 대리하는 사람이 와서 조건을 계속 설명했다.

    내가 잠시 쳐다보다가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니까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짓는다.

    “다음요.”

    “잠시만, 저희는 조건을 더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요.”

    “1분만 더 설명할 시간을…….”

    앞에서 계속 미적거리니까 결국 뒷사람들이 폭발했다.

    “아! 그것참, 능력 안 되면 뒤로 빠지시라니까.”

    “장난해? 여기 기다리는 사람들 안 보여?”

    “뒷사람 생각도 좀 합시다. 혼자 왔어요?”

    혹시나 앞 팀이 채가면 어쩌나 하면서 경쟁이 붙다 보니 조금만 빈틈이 보여도 아주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온다.

    결국, 날 설득하지 못한 길드 하나가 또 그렇게 옆으로 빠졌다.

    계속 어디에 귓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조건을 더 올려올 모양이다.

    이것도 슬슬 지겨운데…….

    언제쯤 오려나.

    이 정도로 쇼를 해주고 있는데 나타나 주면 서로 좋잖아.

    좀 와라.

    그렇게 몇 팀을 더 보내고 나서야 드디어 원하는 녀석들이 나타났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합니까.”

    회색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사내.

    제우스.

    그가 이전에 최강 길드 길드원이었던 사람들을 뒤에 데리고 내 앞에 섰다.

    ***

    재중이 형과 이것을 의논하면서 문제 삼았던 것이 있다.

    날 오픈 했을 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릴까.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좀 이름 있다 싶은 길드는 전부 덤벼들 거다. 아니라고 해도 길드 자산을 다 써서라도 널 붙들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고.”

    “듣기에 따라 무섭네요.”

    사실, 우리도 누가 우리는 노리는지 단순히 이것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다 좋은 조건을 제시할 것이고, 각자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건데.

    그중 딱 집어서 올인 라인의 끈을 잡아내긴 힘드니까.

    그래서 기다렸다.

    단 하나 남아 있는 끈을.

    그게 제우스다.

    분명히 사장님과 재중이 형하고 사이가 안 좋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럼, 이 좋은 기회를 놓칠까?

    머리가 직접 나오지는 않더라도…….

    제우스는 물 확률이 아주 높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보란 듯이 나타났고.

    “잠시 따로 이야기 가능합니까?”

    제우스가 뒤를 슬쩍 보더니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은 모양이다.

    “뭐, 그러죠.”

    미끼를 물었으니 이제 쇼는 그만해야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제가 피곤해서요.”

    내 말에 주변이 웅성거린다.

    그러면 어쩌겠냐.

    내가 안 한다는데.

    모여든 사람들을 뒤로하고 우리 팀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한참 자리를 옮기고 한적한 곳으로 온 뒤에야 제우스가 입을 열었다.

    “바쁜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는 깍듯한데 전부터 봤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사람이다.

    “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보자고 하신 거겠죠. 용건은요?”

    바로 훅 들어올지 몰랐는지 제우스가 살짝 놀란 얼굴을 한다.

    “흠, 문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럼, 용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길드로 오십시오.”

    조건 없이 막 던지는데?

    “굉장히 심플하네요.”

    “제가 돈이 부족한 사람은 아닙니다. 원하는 조건은 다 맞춰드리겠습니다.”

    이거 봐라?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백지수표부터 들이댄다.

    “뭐, 여유가 있고 즐길 만하다고 느껴서 이곳에 투자하는 겁니다. 최강 길드는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기 위한 발판이었다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것이 좀 많습니다.”

    계속 설명하라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 되는 사람도 있더군요. 돈으로 안 되는 사람 말이죠.”

    아, 재중이 형 말인가?

    이제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래서 뭐, 본때라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소리입니까?”

    “딱히 틀리진 않습니다.”

    이건 뭐 초딩도 아니고 제 마음대로 안 되니까 부신다, 이런 건가?

    사람이 이렇게 일그러질 수도 있구나.

    “뭐, 백번 양보했다 쳐서. 아무리 저라도 최강 길드를 혼자 상대할 수는 없는데, 저기 패잔병 머저리들을 데리고 싸우라는 소리는 아니죠? 그럼, 실망할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고개를 슬쩍 돌려서 이전 최강 길드원들을 보면서 말하자 내 말을 들었는지 곳곳에서 욕지거리가 나온다.

    “제가 한마디 했다고, 제대로 통제도 안 되고. 오합지졸이네요. 저런 것들을 믿고 지금 판을 벌이라는 소리라면 됐습니다.”

    “흠, 다 돈만 보고 따라온 놈들이라……. 좋습니다. 제가 가진 패를 어느 정도 보여드리죠.”

    “패라면?”

    “혹시, 사신 길드라고 아십니까?”

    그 말에 우리 팀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알다마다.

    직접 보기까지 했다.

    드디어 나왔구나.

    쥐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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