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4화 (94/1,404)

# 94

#94화 빛이 머무는 곳, 유적지 (2)

정말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바로 전화를 거니 컬러링 음악이 좀 울리다가 유혜선 팀장이 곧장 받는다.

<승호> 무슨 일 있어요? 다짜고짜 살려달라고 하시니.

<혜선> 진짜 저 좀 살려주세요.

앞뒤 다 자르고 살려달라는 소리만 하니 상황 파악이 안 된다.

전부터 좀 막무가내긴 했는데 이건 정말 급한 모양이다.

<승호> 어디세요?

<혜선> 집이요.

<승호> 대체 집에서 왜 살려달라는 겁니까?

<혜선> 저기, 촬영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돼요?

촬영? 그거랑 살려달라는 거랑 무슨 관계가……?

<승호> 갑자기 무슨 촬영이요? 혹시 제 몸에 문제가 있어서 그것 때문에 곤란해지셨나요?

지금 몸 상태 때문에 빠지게 되면 앞으로의 일정에 큰 문제가 생긴다.

물론, 몸부터 챙기는 것이 맞겠지만.

하필 지금…….

<혜선> 아뇨, 그런 촬영 말고요. 광고요.

<승호> 네? 광고요?

뭐지? 잘못 들었나?

<혜선> 네, 우리 DS그룹 광고에 출연해 줄 수 없어요?

<승호> 그걸 왜 제가.

<혜선> 유명해졌잖아요! 그렇게 될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요.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빨라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인지 회사 차원에서 저희 VRS 대표 모델로 주승호 씨를 쓰고 싶다고 저를 얼마나 달달 볶든지 일을 못 하고 있었거든요.

방패전사가 말한 것이 이런 것인가?

게임 안팎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더니 동영상이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이렇게 입질이 온다.

<승호>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많을 건데 왜 접니까? 유명 연예인도 많고 차라리 그쪽이 더 광고될 것 같은데요.

<혜선> 으음, 요즘 TV 안 보시죠?

솔직히 집에서 TV를 켜본 것이 언제였더라? 한참 된 것 같은데.

<승호> 네, 요즘 좀 바쁘다 보니 잘 안 보게 되네요.

<혜선> 게임 방송사 4곳에서 매일 주승호 씨 영상 틀어주는 것은 알아요? 포털 사이트에도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주승호 씨 지금 엄청 유명해요. 어제도 한 건 하셨잖아요.

내 게임 상황을 다 알고 있네.

<승호> ……그런가요?

솔직히 전혀 몰랐다.

<혜선> 영상 자체는 주승호 씨가 속한 길드 전체라고 봐야겠지만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거든요. 아마, 방송사에서도 연락이 갔을 텐데…… 정말 몰랐어요?

게임 안에서 귓말이나 메일이 항상 폭주해서 그냥 시스템 메시지 말고는 다 차단한 상태다.

거기다 내 연락처는 게임 회사에서 알려줄 리가 없으니 주변에서 내게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주호 캐릭터를 가지고 나라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게임 안에서의 이런 상황을 설명하니까 유혜선 팀장이 바로 이해를 했는지 탄성을 낸다.

<혜선> 모를 만하네요.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저한테 닦달을 하죠.

<승호> 그래서 광고를 찍기 위해 저한테 연락하신 거네요.

<혜선> 네, 전 솔직히 반반이네요. 수입이 좋긴 한데 주승호 씨 사생활이 그만큼 방해받을 수도 있어요.

<승호> 혹시, 현실 모습으로 찍어야 하는 건가요?

만약, 찍게 된다 해도 현실과 가상의 모습이 거의 같아서 크게 상관은 없다.

이런 사정을 모르니 저렇게 말을 하는 거겠지.

이제 모자이크가 풀리면 보자마자 알아보겠지만.

<혜선> 원하시면 가상의 모습으로 구현해서 찍으셔도 돼요. 기술이 좋아져서 요즘은 구분하기가 힘들잖아요. DS에서 원하는 것은 주승호 씨의 타이틀이라서 오히려 그쪽을 더 선호할 거예요.

<승호> 타이틀이라면 어떤?

<혜선> RTP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DS사의 VRS를 사용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거기에 현 개인 랭킹 2위가 DS 제품을 쓴다고 광고하는 거죠. 사장이 얼마나 랭커들에게 목말라 있는지 알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매번 랭커들이 PV 제품만 쓴다고 얼마나 쪼아대던지.

모든 일에는 다 그마다 사정이 있다는 소리다.

아무 개연성 없이 일어나는 일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뭐, 저런 이유야 그렇다 치고…….

솔직히 광고 자체가 딱히 꺼려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럴 경우 나 자체가 문제가 된다.

<승호> RTP를 공개하는 것은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이건 민감한 문제다.

나도 그렇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될 만한 그런 일이다.

<혜선> 사실 테스트 결과에 대한 보호 조항이 계약에 명시가 되어 있어서 발표를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것은 현재 공개된 RTP 최대 수치에 맞춰서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될 거예요. 그 정도만 해도 안정성에 대한 공익 광고는 충분하거든요.

<승호> 그런 부분은 철저하네요.

<혜선> 주승호 씨는 회사가 보호해야 할 자산이에요. 이런 일로 불편함을 드리면 저희가 면목이 없어요. 사실 광고에 대한 논의도 전에 진행이 몇 번 됐다가 계속 반려됐거든요. 이번에는 너무 유명세를 타셔서 효과가 좋을 거라 판단해 밀어붙이는 중이고요. 현재 연예인들을 홍보 모델로 쓰고 있지만 이쪽이 더 효과가 좋을 거라고 예상하나 봐요.

유혜선 팀장이 전에 했던 것처럼 자세한 수익과 어떤 식으로 프로모션을 하는지 꼼꼼히 알려주기 시작했다.

<승호> 당장은 힘들 것 같은데 생각할 시간도 좀 필요합니다.

<혜선> 네, 저야 전달했으니까 이제 좀 덜 시달리겠네요. 사실, 요즘도 너무 바쁘거든요. 해외 수출용으로 스펙을 조절한다고요. 잠 와서 죽을 것 같아요.

살려달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왠지 전에처럼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승호> 얼른 쉬세요.

<혜선> 네, 주승호 씨도요. 매번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으니까 힘내요.

<승호> 쭉 확인하고 있었나 보네요.

<혜선> 제가 발굴한 최고의 스타잖아요. 1호 팬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다음에 봐요.

1호 팬이라…….

기분이 꽤 묘하네.

평소 느껴보지 못한 그런 생소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

달아오른 불판 위로 아름다운 마블링에 속살이 야들야들한 한우 등심이 올라가자마자 지글지글 비 내리는 소리와 함께 소고기 특유의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가 거실을 온통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쩌다 우리 집이 고깃집이 됐나요.”

사장님, 재중이 형이 나란히 앞에 앉아서 등심이 구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은 난장판, 사장님 댁은 불가. 여기가 최고지.”

“오랜만에 포식하겠구나.”

소고기는 가게로 가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없다나?

아예 반찬까지 다 사 들고 와서 잔칫상을 벌인 상태다.

소고기 파티는 이번 승리를 자축하기 위한 그런 자리다.

“방패전사,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도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어요.”

“불러볼까?”

재중이 형이 스마트폰으로 우리끼리 연락하는 앱을 켜려고 하자 일단 말렸다.

“아, 아뇨.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네요.”

단순히 가상현실 게임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현모를 하는 것은 다르니까.

무턱대고 오라고 하면 꽤 난감해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디 사는지 누구인지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고.

“너도 꽤 오래 알고 지냈지 않냐?”

“그러게요…….”

“너도 참 답답하게 산다. 그냥 한번 보자고 해.”

“23년을 이렇게 살아서 그런지 그게 쉽지 않으니 문제죠…….”

사장님과 재중이 형이 내 말에 다들 피식 웃는다.

“뭐, 그건 알아서 해라. 내가 옆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까.”

고기가 익어가자 현모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싹 사라지고 다들 입에 욱여넣기 바빠졌다.

조금 적적한 것 같아서 TV를 틀어 게임 방송을 트니 정말 유혜선 팀장이 말한 대로 우리가 플레이하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모자이크가 전혀 없는 모습으로.

“결국, 이렇게 되네.”

언론 매체에 많이 노출됐던 재중이 형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보고 있고, 사장님도 이런 쪽으로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닌지 그냥 시청 중이시다.

마치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그런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방송이라…….

생각보다 파장이 크게 다가올 것 같은데?

뭐 우리야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다 보니 TV를 좀 보다가 흥미가 사라진 듯 재중이 형이 스마트폰으로 게시판에 들어가 가장 핫한 게시물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읽어보니 내가 사장님께 부탁했던 빅엿이 현재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 하르 가루가 새 유적지에 대한 단서? 》

―유적지를 차지하려면 필요하니까 팔지 말고 모으셈. 비싼 거임.

―유적지?

―저주받은 숲 중앙에 있다고 NPC한테 들음. 베네아처럼 만들 수 있다고 함.

―대박이네.

―이런 건 어디서 들어요?

―케르베로스 깨야지 NPC가 알려줌. 그냥은 안 됨.

―당장 깨러 가야 하나.

―하르 가루는 뭐냐?

―있음, 필드에서 광석 캐면 아주 소량 나온다.

―와, 나 이거 캐서 뭔지 알아보려고 질문 엄청 날렸는데 아무도 대답 안 해준 게 이유가 있었구나.

―지금 개당 천 원 넘음. 거래 사이트에 거래 완료 엄청 떠 있음.

―짜증 나네. 이거 잡템인지 알고 진짜 싸게 팔았는데.

―어쩐지 올리자마자 사라지더라. 나름 비싸게 올렸는데.

―케르베로스 깬 놈들 지들끼리만 알고 가격 후려치고 있었구만.

―상인들 아예 마을에서 이거만 사들이고 있던데 이유가 있었네.

―누군지 몰라도 정보 제공 감사. 이제 싸게 안 판다.

―미쳤다. 수백 개 올려둔 거 아까 팔았는데…… 수십만 원 날아감.

―위에 분 광부임? 무슨 수백 개나 가지고 있음.

―님들 모름? 베네아에 지하수로 던전 있잖아. 거기 하르 가루 잔뜩 나옴.

―베네아에 던전도 있었어?

―있음, 들어가는 방법이…….

―오오, 정보 감사! 복 받으세요.

―캘 수 있는 자리 몇 군데 없다. 늦게 가면 자리 없음.

―나도 당장 캐러 간다. 지하수로 어디냐?

―지하수로 던전 앞에서 광부 모집합니다.

―안 그래도 저주받은 숲 사냥터 미어터지는데 정보 감사합니다.

―지하수로 사냥 가실 분, 탱커 1, 힐러 1 모집합니다.님만 오면 풀파. 렙 30 이상. 네임드 무기 이상만 받아요.

지금 막 본 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하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케르베로스를 잡아야 하르의 존재에 대해서 기본을 알게 된다.

길드 관리관이 기본 자격이 되면 하르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을 해주니까.

하르를 구하는 방법은 현재 세 가지.

첫째, 케르베로스를 잡고 난 뒤에 자격을 얻어서 길드 관리관에게서 네임드를 잡아 오라는 퀘스트를 받는 것.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은 하르 조각을 얻는 경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 다른 사람들은 전혀 엄두를 못 내는 부분이기도 하고.

웃긴 것이 지금 이 부분에 대해서 아무도 입을 안 열고 있다는 점이다.

“다들 한 욕심들 하니까 괜히 퍼지는 것이 싫겠지.”

아마, 이 사람들은 경쟁자들이 넘어오는 것을 감수하고 우리가 왜 그렇게 해적선을 잡고 크라켄을 잡고 다녔는지 알게 됐을 것이다.

지금 안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둘째, 방어전에 참여해야 하는데 이건 우리가 너무 일찍 본 대륙에 가버려서 우리끼리 발동시켜 버린 상태다.

이 방어전에 참여해야 하르의 존재를 알게 될 텐데 이건 현재 불가능.

셋째는 필드나 던전에 있는 광석을 캐서 하르 가루를 얻는 방법인데 이 경우에는 하르 가루만 캐지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 전혀 모른다.

이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케르베로스를 깬 사람들밖에 없는데 그들이 남 좋으라고 입을 열까?

절대 아니지.

이제야 케르베로스를 깨서 부랴부랴 며칠 전부터 정보를 얻은 상위길드가 서로 싼 가격에 하르 가루를 사들이고 있는데 난 이걸 아예 수면 위로 확 끌어올려 버렸다.

“거래 사이트에서 우리끼리 내부 거래로 하르 가루가 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죠.”

하르 가루가 정말 비싼 값에 거래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주목을 끌게 된다.

그리고 그간 싸게 팔았던 것을 싹 품에 다시 집어넣고 비싸게 팔기를 원하게 되고 그럼 시장이 잠시나마 멈춘다.

현재 싸게 하르 가루를 사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건 정말 원치 않는 상황이 된 거다.

다른 말로 완전 엿된 상황이다.

“지금쯤 아주 빡쳤겠죠?”

“넌 진짜…… 대단한 놈이다.”

내 싱글벙글한 얼굴에 재중이 형이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르 가루가 비싸다는 것을 알면 적당한 가격으로는 절대 안 팔 거니까 이제 편하게 사들이지는 못하겠죠.”

“그래도 조만간 거품이 꺼질 건데?”

이번 일을 뒤에서 진행한 사장님이 우려 섞인 말을 꺼냈다.

“3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겠지만 그때까지만 안 꺼지게 살짝살짝 불을 붙여주면 되니까요.”

“비싸면 다른 길드들 자금도 깎아 먹을 수도 있을 테고 말이지. 좋구나.”

“뭐, 지금 가격에 사면 그게 봉이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하나를 더 오픈해 버렸다.

지하수로 던전을.

“우리가 못 먹을 감이면 남들도 못 먹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지하수로를 오픈시켜 버렸다?”

사장님도 이 부분은 굉장히 의아해했으니까.

비밀로 감추고 있어도 모자란 부분을 아예 게시판에 오픈해 올리는 것은 정말 이례적이다.

“네, 안 그래도 어제부터 상위 길드 애들이 지하수로 입구에서부터 정보 통제하겠답시고 장난 아니었잖아요.”

조만간 통제하려는 길드와 광부들 간의 격전이 있을 예정이다.

이미 지하수로를 어떻게 들어가는지 다 까발린 상태니까.

세상에 돈이 된다는 곳에 안 몰려갈 사람이 있기는 할까?

소수라면 어떻게든 막겠지만 이렇게 싹 터뜨려 버린 이상은 절대 불가능이다.

“지금부터 정말 재밌을 겁니다.”

재중이 형이 결국 참지 못하고 내게 말했다.

“넌 진짜 악마다. 크크”

통제하려는 자.

망할지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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