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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1화 (91/1,404)
  • # 91

    #91화 수면 아래 파고드는 그림자 (5)

    “여기는 두고 가도 되는 거예요?”

    챠밍이 한참 사냥터에 대한 강의를 재중이 형에게 들었던 터라 바로 의문을 남긴다.

    확실히.

    사냥터를 일단 찾아오긴 했는데 다음이 문제다.

    우리는 지금 이 사냥터를 유지할 인원이 없으니까.

    가만히 두면 누군가 와서 이 사냥터를 차지하게 될 거고 그럼 그냥 남 좋은 일만 하게 되는 셈이다.

    “잠시만 기다려봐라.”

    사장님이 아까 잠시 어딘가 연락을 하시는 것 같더니 혹시 이건가?

    정확히 2분 뒤, 전혀 처음 보는 사람이 찾아와서 사장님과 악수를 하고 몇 마디를 나누더니 자기네 길드 사람들을 불러들여서 우리가 탈환한 자리를 잡아갔다.

    저 길드 마크를 어디서 봤더라.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길드네요. 전에 저희가 도와준 사람들요.”

    방패전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든다.

    “아, 그렇군요.”

    “전에 목록을 달라고 해서 드린 적이 있는데 이렇게 뒤에서 준비를 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에 재중이 형이 다가와서 웃었다.

    “사실, 이러려고 준비한 것은 아닌데 좀 일찍 보게 됐네요. 부탁까지는 아니고 서로 윈윈 하는 상황이라 저쪽도 흔쾌히 좋다고 허락했습니다. 마침, 저쪽 길드도 사냥터가 꽤 치이는 상황이라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할 이유도 없고.”

    너무 많은 길드가 난립해 있어서 저주받은 숲 안에서 돈이 되는 사냥터를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라는 재중이 형의 말에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된다.

    서로 줄 것을 줄 수 있는 그런 관계.

    우리는 모자란 인원을.

    저쪽은 부족한 사냥터를.

    “여기를 다시 찾으려고 올인 라인이 왔다가도 손가락 빨고 돌아가야겠네요.”

    “그래, 계속 다른 길드와 전선을 넓히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그냥 사냥터가 비어서 여기서 자리 잡았다고 하면 올인 라인이 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우리 사냥터였으니까 나가라고 치고받다가는 이쪽 길드가 우리에게 붙는 빌미를 줄 수도 있고.

    가득이나 우리가 부담스러운데 거기에 추가로 다른 길드가 끼어들면 야심차게 준비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질 수가 있으니까 당분간 이 자리는 절대 손을 못 댄다.

    “뭐, 사장님 생각이지. 딱지치기로 길마 하시는 거 아니라니까.”

    확실히 그러네.

    길마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사장님과 대본이 싹 짜져 있었구나.

    방패전사가 듣고 있다가 의문이 있는지 질문을 한다.

    “그럼 앞으로 여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 우리가 지면 어차피 못 찾는 사냥터가 될 테고. 이기면 올인 라인 사냥터를 적당히 넘겨주고 다시 받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우리 사냥터뿐만 아니라 올인, 리멤버, 여명 사냥터를 전부 다 뺏을 생각이거든요.”

    역시 이 형 포부가 장난이 아니야.

    ***

    <승호> 흠, 이거 정말 걸리는 것 맞나요?

    <재중> 반드시 올걸? 안 오면…… 모르겠다.

    나와 재중이 형이 현재 VRS를 나와서 밖에서 따로 메신저로 따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바쁜 시기에 잠시 나와서 뭘 하는가 싶지만 이것도 작전의 일환이다.

    찬물에 세수를 하고 와 VRS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다 떠오른다.

    길드전 한번 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네.

    사장님과 재중이 형이 하는 것을 보면 싸우는 전장 선택까지도 온갖 꼼수와 전략을 사용해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놓고 싸움에 임한다.

    지금도 마찬가지.

    한 가지 작전을 위해서 지금 아예 밖으로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신호가 오면 잽싸게 들어가기 위해서.

    이런 것까지 고려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사장님도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VRS 사용 시간까지 고려할 줄은 정말 몰랐다.

    정말 중요할 때 우리가 없으면 곤란하다나?

    오프라인 상황까지 생각하면서 하다니…….

    남들이 보면 무슨 가상현실을 하면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꼼수 하나가 정말 사활을 걸고 하는 길드전에서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전에 서버에서 백골도 이런 식으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시작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땐 내가 힘으로 깨버렸지만.

    좀 억울했겠는데?

    그와는 별개로 걱정되는 것이 있다.

    <승호> 형, 우리 이렇게 시간 끌리면 추격당할지도 몰라요.

    <재중> 안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끝낼 생각이다. 아무리 누군가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계속 템을 떨어뜨리면 이탈자가 나와. 앞으로 크게 세 네 번 정도. 그게 끝일 거다. 저렇게 급조한 라인은 한 번에 몰아쳐서 효과를 못 보면 힘이 확 떨어지니까.

    <승호> 끝나는 대로 바로 다음 작전 넘어가야겠어요. 좀 늦은 감이 있는데 같이 병행해야 될 것 같아요.

    <재중> 전에 말한 빅 엿 말이지?

    <승호> 네, 4일이 참 기네요.

    <재중> 그러게. 견제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이 될지는 몰랐지. 신호 왔다. 일단 들어가자.

    <승호> 안에서 봐요.

    이게 사장님이 준비해놓은 쥐덫이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37.

    > 로딩 중…….

    접속하자마자 눈앞에 어두운 숲이 쫙 펼쳐져 있다. 그리고 내 주변으로 하나 둘 우리 길드원들이 접속해서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호> 상황은요?

    <카이저> 제대로 걸려들었다. 지금 50여명 정도가 이쪽으로 오는 중. 나머지 백여 명은 전부 우리가 꾸민 곳으로 직행했고.

    <주호> 이게 마지막이겠네요. 쁘락치들 써먹는 건.

    <카이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저놈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바로 속았다고 생각할 거다. 이 정도로 시간을 벌었으면 충분해.

    옆을 둘러보니 챠밍, 방패전사, 이쁜소녀, 나르샤, 재중이 형이 각자 무기와 물약을 점검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게 노림수다.

    원래 사장님이 지키고 있었던 저주받은 웨어타이거 자리에서 길드원들이 싹 빠져 별동대를 운영해 숲 완전 반대편에 있는 올인 라인의 사냥터를 치러 갔다는 이야기를 쁘락찌에게 흘렸다.

    마치 이미 떠나고 없는 것처럼 이쪽 사냥터에는 몇 명만 남겨 위장해놓고.

    웨어베어 자리를 엉뚱한 길드에게 뺏기고 난 뒤에 저쪽 수뇌부가 이 소리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기들 뒷마당이 싹 털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럼 잡으러 가야 하는데 40명으로도 아무것도 못해보고 밀렸으니 그보다 숫자를 배는 넘게 움직여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고.

    그래서 백여 명 정도는 가짜로 흘린 우리를 잡으러 갔고 오십여 명은 웨어타이거 자리로 보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차라리 그 병력을 모두 집중해서 하나만 노렸으면 좋았겠지만 라인이 안 좋은 이유가 자기들 앞마당은 깨지면 안 되니까 서로 다퉜겠지.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빈 곳을 놔두고 싶지 않았을 테고. 사공이 많으면 의견 통일이 쉽지 않거든.”

    재중이 형이 급조된 라인의 맹점을 바로 찍어준다.

    “제우스가 움직였으면 다른 식으로 했을 텐데 이놈들 무슨 생각인지 아직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고…….”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제우스 쪽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중이다.

    아마, 지금도 간을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사실 이 덫은 제우스를 노리고 만든 건데 제우스가 잠잠하니까 좀 붕 뜬 느낌이 없잖아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얼른 잡아먹고 싹 쓸어보자.”

    때마침 오십여 명의 올인 라인이 우리 사냥터로 진입했다.

    우리 길드원 몇 명이 급하게 대응하는 척 하다가 뒤로 빠지면서 올인 라인을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였다.

    연기 좋네.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깊은 곳까지 들어오자 큰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길드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50명을 포위한 형세로.

    “어? 이게 뭐야?”

    “이놈들이 왜 여기 있어?”

    “이건 약속하고 다르잖아!”

    【 포이즌 웨폰! 】

    【 포이즌 클라우드! 】

    챠밍의 마법 전개를 시작으로 50명의 몸 주변으로 녹색 안개가 올라와 HP를 급격하게 깎아먹기 시작했다.

    너무 방심해서 따라들어 온다고 진형이 완전히 밀집되어 있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독 안개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꿍의 광역 마법.

    【 아이스 월! 】

    광역으로 얼음 기둥이 랜덤으로 올라오자 범위 안에서 기둥에 걸린 사람들을 급격하게 얼려버렸다.

    짧은 시간이지만 완전히 발이 묶인 상태에서 포이즌 클라우드에 계속 노출되자 중독 시간이 계속 연장되면서 HP가 계속 빠지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주변에서 궁수들과 마법사들의 공격이 계속 되자 포위된 상태에서 몇 명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야! 약한 쪽부터 뚫어!”

    아이스 월의 지속시간이 끝나자마자 한 명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모두에게 지시를 해 그나마 나무가 적고 지키는 사람이 적은 쪽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다들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재중이 형이 감탄한다.

    “아주 병신들만 모여 있는 건 아니네. 그런데 거기가 제일 위험한 곳인데…….”

    재중이 형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50명 중 20명 정도가 느리진 발로 우르르 모여서 나한테 뛰어오는 중이다.

    나 혼자 서 있으니까 어지간히 만만해 보인 것 같다.

    【 포이즌 웨폰! 】

    【 비월참! 】

    【 라이트 웨폰! 】

    【 비월참! 】

    사정 볼 것 없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휘둘러 풀 차징 한 비월참 두 방을 날리고 다시 비월참 두 방을 더 꽂아 넣었다.

    “뭐야?!”

    달려오다 비월참에 폭격당한 선두부터 뒤로 튕겨 나가 볼링핀 구르듯 뒷사람과 충돌하고 2차로 날아드는 비월참에 다시 우르르 뒤로 튕겨 나가 쓰러지면서 포위망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개중에 십여 명은 HP가 다해서 죽어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도 그렇게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정말 순간 폭딜은 최고네요.”

    옆에서 방패전사가 감탄하면서 휘파람을 분다.

    녹색 반달과 하얀 반달 네 개가 순차적으로 터져나간 자리엔 폭격당해 경직이 일어나 꼼짝 못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튀어나오던 녀석들을 포위망 안으로 싹 다시 밀어 넣어주니까 곧장 그 위로 챠밍의 마법이 쏟아진다.

    【 파이어 월! 】

    그리고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 이쁜소녀의 비월참이 이어져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났다.

    거기다 궁수 라인과 마법사 라인에서 끝없이 포위한 장소로 공격을 쏟아 부으니 방패를 들었든 플레이트를 입었던 상관없이 빠르게 녹아 빛으로 변해간다.

    간혹 튀어나오는 녀석들은 격수들이 붙어서 처리를 하니 한 명도 빠짐없이 죽어 사라졌다.

    “오!”

    “이예!”

    마지막 한 명이 쓰러지자 모두 승리의 함성을 내뱉는다.

    완벽한 전략의 승리.

    한 치의 피해도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넣어서 두들겨 패다가 끝냈다.

    저쪽이 잘못한 거라고는 몇 가지 없다.

    150명을 한 번에 보내지 않은 점.

    정찰을 보낸 것 까진 좋았는데 함정인 걸 몰랐던 점.

    그리고 내게 우르르 달려든 점.

    만약 이 영상을 내보내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사기가 꺾이는 정도가 아니라 라인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결말이다.

    정말 아무것도 못해보고 엄청난 수의 아이템만 바치고 갔으니까.

    수십 개가 넘는 드랍템을 챙기느냐 다들 신나 보인다.

    드랍템 중에 구 네임드 6강도 몇 개 눈에 띈다.

    좀 전에 웨어베어 자리에서도 6강 짜리 두 개를 주웠는데 이번엔 세 개나 떨어뜨려주고 갔다.

    대체 저런 템을 떨어뜨리면 무슨 생각이 들까?

    지금 시세가 좀 떨어졌다고 해도 이천 정도는 가볍게 웃돈다.

    저걸 복구나 할 수 있을까?

    반면에 우리 쪽은 길드원들에게 분배금 폭탄을 퍼줘도 남을 정도라 사장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중이다.

    “오늘 회식 한 번 해야겠다.”

    사장님의 얼굴이 연신 웃음꽃이다.

    이대로 잘 되면 정말 소고기 먹으러 가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형, 지금 저쪽 공백이 좀 있죠?”

    “죽은 녀석들이 베네아에서 여기까지 탈 것으로 오려면 빨라도 30분 정도. 헬하운드나 케르베로스라면 더 단축되겠지만.”

    어차피 이제 저쪽도 속은 걸 다 알 거다.

    재중이 형과 사장님은 제우스가 신경 쓰여서 지금 이것과 비슷한 작전을 많이 짜놨는데 지금 그게 필요할까?

    이 정도로 압도적으로 깨서 전력을 유지했으면 진행반향을 좀 바꿔도 되지 않을까?

    제우스가 언제 움직일지 모르겠지만 움직여봤자 아무 의미가 없게 만들면 된다.

    “작전을 좀 바꿔도 될까요?”

    “응? 어떻게?”

    “전에 말했잖아요. 싸움을 걸어오는 곳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밟아놓으라고. 지금이 그때입니다. 약해진 몸통을 지금 치죠. 올인 라인을 완전히 저주받은 숲에서 몰아내는 겁니다.”

    그래, 속전속결.

    이 싸움. 우리가 확실하게 가져간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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