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21화 나눠 먹는 독약이 제일 맛있다 (3)
“궁수가 넷에 창 든 녀석이 하납니다.”
왼쪽 통로보다는 좀 나아 보이긴 한데 궁수 넷도 쉬운 상대는 아니다. 거기다 궁수에게 접근하기 전에 창을 든 워 울프가 방해된다.
“제 HP량을 생각해 보면 궁수가 둘 이상이면 힘들 것 같네요.”
방패로 막으면서 가도 그 정도. 일단 거리도 있고 궁수들 레벨도 상당히 높다. 아마 필드의 궁수들보다 화살이 박히는 느낌 자체가 월등히 다를 것이다.
“화살을 계속 맞으면 제가 밀려나거든요. 그럼 전진을 못 합니다. 단순히 방패만 믿고 달려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화살에 넉백 같은 기능이 있나요?”
“네, 아까 연습 삼아 몇 대 맞아보니까 방패 채로 밀리던데요? 화살이 상당히 묵직해요. 그 화살이 두, 세 배가 되면 오히려 못 버티고 넘어질 겁니다.”
넘어지면 그냥 꼬치 행이고. 상상하긴 좀 그러네.
어쩐다.
방패전사가 막아준다고 해도 궁수 두 명분 정도. 그 이상은 나나 이쁜소녀가 막아야 하는데.
“이쁜소녀 님 날아오는 화살 피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도리도리.
이쁜소녀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해 준다. 이쁜소녀도 빠르긴 한데 그것과 별개로 화살을 피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일단 좀 무섭다. 게임이라고 해도. 그리고 화살의 속도를 생각해 보면 피하는 것이 사실 어렵긴 하다.
“궁수 5마리와 창에 궁수 4마리라…….”
어딜 가도 뚫기 힘들어 보인다. 그나마 이쪽이 낫다. 쉬운 것이 하나 없네.
“방패전사 님 왼쪽 궁수 둘 정도 가능하시죠?”
“둘은 가능합니다. 셋은 모르겠지만.”
“나머진 제가 어떻게 해볼게요. 이쁜소녀 님 제 뒤를 잘 따라오시다가 제가 먼저 공격한 워 울프 궁수에게 붙어주세요.”
끄덕끄덕.
“챠밍 님은 혹시나 일점사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대기하시다가 이쁜소녀 님이 워 울프에게 붙으면 창을 든 워 울프를 묶어주세요.”
챠밍도 고개를 끄덕인다.
“갑니다.”
방패전사가 라지 쉴드를 앞에 내세워 몸을 막으면서 전진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워 울프 궁수들에게서 일제히 방패전사에게로 화살이 쏘아져 나간다.
“오래는 못 버텨요!”
팅팅거리는 소리도 아니고 텅텅 발리스타에 맞은 것 같은 묵직한 소리가 방패 위로 울려 퍼진다.
실수다. 가까운 두 마리 정도만 쏠지 알았더니 링크된 몹이 동시에 화살을 날릴 줄이야. 작전이 엉망이네.
동시에 나도 쌍검을 내세우고 오른쪽 벽에 가까이 붙어 달려나간다. 그러니 그제야 궁수 둘이 나를 보고 화살의 방향을 돌린다.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느끼는 적절한 긴장이 흥분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혀 극도로 날카로운 집중을 이끌어낸다.
날카로운 촉을 앞세우고 공기를 찢으며 날아오는 화살의 궤적이 눈에 맺힌다.
감각을 느낌과 동시에 오른쪽 장검의 면으로 첫 화살의 촉을 비껴냈다. 궤적이 검에 맞아 바뀌어 튕겨져 나가는 화살을 확인할 시간은 없다. 오른손에 느껴지는 묵직한 반탄력을 느낄 새도 없이 두 번째 화살의 경로로 왼손의 장검을 휘둘러서 다시 쳐냈다.
다시 장전된 화살이 연거푸 날아온다. 화살의 궤적, 나의 속도, 검에서 느껴지는 손이 감각 등이 연이어 내게 각종 정보와 경고를 동시에 보내온다.
다시 휘둘러지는 장검으로 세 번째, 네 번째 화살을 모두 쳐내자마자 우반신을 비틀어 내며 오른손의 장검을 오른쪽 궁수의 가슴을 향해 쏘아냈다.
맞았는지 아닌지 확인은 다음. 곧장 다른 궁수에게 달린다. 뒤는 이쁜소녀가 알아서 해줄 것이다.
궁수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다시 활시위를 올렸다. 내가 던진 장검에 공격받은 궁수를 제외한 세 마리가 모두 나에게 화살을 쐈다.
“피해요!”
챠밍의 하이 톤의 비명을 생각하기도 전에 일단 굴렀다. 파공음을 내면서 날아온 화살들이 내가 굴러 지나간 자리에 박히는 소리가 들린다. 구르지 않았으면 꼬치가 됐을지도.
화살이 연이어 날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방패전사가 잘 붙은 모양이다. 슬라이딩하면서 바로 궁수의 뒤로 미끄러져 들어가 바로 장검을 휘둘러 궁수의 목을 연이어 긋고 나서야 겨우 주변이 보인다.
방패전사가 두 마리의 궁수에게 바싹 붙어 궁수들이 뒤로 도망가는 중이고 이쁜소녀는 내가 던진 검에 맞은 궁수에게 붙어서 글레이브로 난도질 중이다. 창을 든 워 울프는 챠밍의 마법을 맞고 꼼짝도 못 한 채 활활 타오르고 있다.
어차피 반응이 정해져 있는 궁수 몹은 달라붙으면 그때부터는 학살이다. 나와 이쁜소녀가 각자 궁수를 잡고는 곧장 흩어져서 이쁜소녀는 챠밍을 도와서 창을 든 녀석을 쓰러뜨리고 나는 방패전사를 도와 궁수를 마저 눕혔다.
혹시 몰라 이쁜소녀가 쓰러뜨린 궁수 곁으로 가서 장검부터 줍는다. 이게 사라지면 안 되거든. 거리가 있어서 던질 때 약간 불안한 것도 있었는데 다행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들 서로 바라보면서 웃는다. 작전이 엉망이긴 한데 어떻게 뚫긴 했다. 드랍 템을 회수하면서 방패전사가 옆에 붙어 물어본다.
“대체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뭘?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니 다시 묻는 방패전사.
“아까 화살요. 그걸 보고 쳐내는 게 가능한 겁니까? 한 개도 아니고. 몇 발씩이나요.”
“가능하니까 하죠. 나중에 한 번 해보세요. 짜릿짜릿한 것이 끝내줍니다.”
방패전사가 그 말에 날 흡사 외계인 보듯이 본다. 이 시선 예전에 어딘가에서 많이 느꼈었는데…… 여우 잡을 때였던가? 오크 족장 잡을 때였던가?
통로에서 몇 번의 고비를 더 넘기고 몹 수가 좀 적은 방을 찾아서 사냥하다 보니 어느새 접속을 끌 시간이 다가온다.
확실히 궁수가 모여 있으면 뚫기는 어려운데 다 정리하고 한 방을 잡았을 때 궁수가 많으면 더 편하다. 한 마리씩 젠 되는 족족 녹여 버릴 수 있으니까. 궁수는 전사 계열보다 대체로 HP가 적다. 대신 빨리 녹이지 못하면 궁수가 늘어나서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 재앙이 된다.
“활이랑 창만 잔뜩 쌓였네요.”
창은 그렇게 안 비싸지만 활은 확실히 한 가격한다. 이번에 내다 팔면 꽤 짭짤한 수입이 나올 것이다.
방패전사가 인벤을 보더니 흐뭇하게 웃는다. 저 웃음이 무섭다. 내가 시간제한만 없었다면 하루 종일 노예처럼 방패전사와 사냥을 했을지도 모르겠네. 그간 지켜본 결과 충분히 나를 굴리고도 남을 사람이다.
다 같이 마을로 귀환해서 템을 방패전사에게 싹 넘겨주고 마무리했다. 내가 빠지면 젠 속도를 따라가긴 좀 힘든 자리라서 어쩔 수 없다. 이제 세 명이 다른 파티를 만들어 해도 되고 1층에서 자리 잡아도 괜찮을 것이다. 좀 더 했으면 좋겠지만 내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고생하셨어요.”
“내일 봐요.”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챠밍과 이쁜소녀의 인사를 받으면서 접속을 종료했다.
***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이거요? 외국에서 이도류 시합하는 영상인데 궁금해서 한 번 찾아서 보는 중이에요.”
“갑자기 그건 왜?”
“누가 이미지 트레이닝이 좋다고 해서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영상 같은 것을 보는 것이 상상하기에 좋다네요.”
유혜선 팀장이 스쳐 지나가듯이 말해준 것인데 생각이 나서 한 번 살펴보는 중이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라…… 그리운 단어네.”
“형도 그런 것 해봤어요?”
“응? 아…… 우리야 뭐, 늘상 하는 거지. 연습할 때 이미지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고 전체를 흐름을 구상하고 부분을 나눠서 연습하고. 딱히 특별할 건 없네. 새로운 전략 짤 때 많이들 하지.”
“역시 프로게이머네요?”
“그래, 앞에 전직이 빠졌다만. 이도류 관심 있어 하는 걸 보니 너 로스트 스카이에서 검 두 자루 쓰는구만?”
“네, 어쩌다 보니.”
재중이 형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거 쉽지 않을 건데? 이도류도 종류가 많은데 장검이랑 단검? 장검 두 자루? 처음에 앞에 나가는 발 위치 따라서 이름도 바뀌거든. 검을 역으로 잡는 방법도 있고.”
“아직 그건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냥 장검 두 자루 쓰고 있어요.”
“이거 완전 초짜구만.”
“검 잡는 게 초짜 아닌 사람이 어딨어요. 대부분 사람이 저 같은 일반인이죠. 검도? 진검 가지고 하는 것도 있다고 하던데.”
“하긴, 잘 아는 것이 더 이상하겠다. 취미가 그쪽에 있지 않으면. 아님 그쪽을 생업으로 삼던지. 넌 3세대도 안 해봐서 더 모르겠네.”
“그래서 그냥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는 중이에요. 영상이 생각보다 도움이 되네요.”
“눈으로 바로 보는 것이 직관적이라 좋긴 해. 근데 이도류 엄청 어려울 건데? 게임상이라 가능하려나? 3세대 게임에선 많이 하는 편이거든. 잘 쓰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현실은 거의 사장된 검술이기도 하고. 제대로 쓰는 사람도 역사에 거의 없고.”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오해의 소지가 있네. 일단 검을 나눠 쥐니까 팔과 손에 힘이 엄청 좋아야 하거든. 그리고 공격과 방어를 모두 검으로 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지. 한 손에 검을 들고 방패를 드는 것에 비해서 약점이 너무 많아. 특히 검이 두 개라 집중이 산만해지고 무엇보다 두 검의 검로가 얽히는 것부터 해결해야지. 검로 때문에 안 얽히려고 단검을 두 개 들기도 하고, 긴 검이랑 짧은 검을 따로 들어서 공격과 방어를 나눠서 하는 경우도 있기도 해. 아무튼 재능 없으면 못 해. 양손을 다 잘 써야 하기도하고.”
“고려할 부분이 많네요.”
“양손검하고 비교해 보면 양손검은 두 손으로 검을 쥐니 힘을 많이 실을 수 있고 세긴 한데 손목의 각도 때문에 공격 방법이 적고 검이 단순해진다고 해야 하나? 반면에 쌍검은 비교적 자유롭고 다양한 공격이 가능해지지. 힘이 밀리는 단점은 여전하지만.”
“게임과는 많이 다르네요.”
“뭐, 게임에선 스탯과 대미지가 기본 보정을 해주니까 힘만 어느 정도 올리고 양손을 능숙하게 쓸 수 있으면 제법 괜찮은 그림이 나올걸? 상상에서 가능한 플레이가 나온다는 거지. 하긴 그렇게 치면 게임 안에서 모든 무기가 다 그런 식이긴 하겠네. 창도 그렇고.”
“형은 창 쓰고 있죠?”
“어, 뭐, 그냥 글레이브 구한 김에 겸사겸사 쓰는 중인데 나름 잘 맞기도 하고. 창은 실전에서 쓰인 영상이나 자료 엄청 많거든. 이미지 쌓기엔 좋지. 제일 많은 건 검이겠지만. 로망 아니냐. 소드 마스터!”
“아직 검기는 없던데요? 검강 같은 것도 나중에 나오려나.”
“크큭, 검강 같은 소리 한다. 깨달음도 없는 주제에.”
“어휴, 저희끼리 하는 소리지만 진짜 누가 들을까 겁나네요.”
“왜? 재밌는데?”
“쪽팔려서요.”
“……너 형이 쪽팔리냐? 응?”
재중이 형이 바로 헤드락을 건다.
“항복!”
내 항복 선언에 헤드락을 풀고 앉더니 말을 잇는다.
“검기는 아닌데 너…… 이런 건 어디 가서 말해주지 말고.”
뭔가 비밀인가?
“마법사들 잘 조져 봐. 진짜 낮은 확률로 무기에 인챈트 하는 거 나오니까. 꿈에 그리는 검기다 검기.”
“형, 사랑해요.”
“징그럽다. 꺼지셈. 근데 마법사 조지려면 던전 3층 아래로 내려가야 할 건데. 뭐, 그런 건 알아서 하고. 아무한테 알려주지 말고. 우리도 아는 사람 몇 명 없거든. 좀 있으면 풀리겠지만.”
“네, 근데 검사가 마법 쓸 수 있어요?”
“어이구, 넌 아직 공부 좀 더 해야겠다. 이 게임 장점이자 단점이 뭐냐?”
검사가 마법을 쓰려면 지력을 올려야 하나? 이게 맞나?
“직업이 없는 거요?”
“잘 아네. 지력 올려. 마법 배우려면 지력 두 개는 올려야 해. 진정한 마검사다! 게임에서라도 검기 한 번 써봐야지.”
“스탯이 안 그래도 모자란 데 지력 올리다 망할 것 같은데요?”
“안 망해. 언제 내가 너 잘못 되라고 가르쳐준 적 있냐? 형 말은 뭐다?”
“입만 열면 거짓말?”
다시 걸리는 헤드락.
“진리다, 진리. 존경이 모자라네.”
“네네, 진리.”
동생은 이렇게 서럽다. 맞는 말이었는데.
“너 그리고 마법사 하는 친구 있다며?”
움찔.
“호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거 없어요.”
“뭐, 사생활은 존중해 주마. 그 친구 민첩 좀 올리라고 해. 지력이랑 마력만 올리면 나중에 접을걸? 답 안 나와서.”
“민첩이 마법사한테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갈수록 애들은 빨라지고 강해지는데 회피 안 되고 체력 약하면 마법 써보기도 전에 뒤져. 무빙이 안 되는 마법사는 결국 반푼이 밖에 안 돼. 가만히 서서 마법 쓰는 시대는 지났다니까. 반쪽짜리 서 있는 샌드백 만들고 싶지 않으면 꼭 알려주고. 친한 사람한테만 이다? 여기저기 퍼뜨리지 말고. 힘도 나중에 올려야 해. 지팡이도 갈수록 무거워질 거다. 무기들이 지금 다 그래.”
역시 게임 분석가네. 게임을 거의 분해하듯이 플레이해 버린다.
그보다 마검사라…… 재밌을 것 같기도 한데? 3층을 빨리 내려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