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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0화 (20/1,404)

# 20

#20화 나눠 먹는 독약이 제일 맛있다 (2)

물건들을 사고팔다 보니 옆에서 이쁜소녀가 늑대의 양손검에 홀려서 멍하니 보고 있다. 하긴 원래 양손검을 썼으니까. 잠깐 보다가 고개를 흔든다. 포기했네. 사고 싶은 장난감을 포기한 애를 본 기분이라 기분이 묘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사줘야 하려나?

생각보다 글레이브가 마음에 안 드나?

그러고 보니 글레이브로 무기를 바꾸고 난 뒤에 전처럼 굉장히 자유로운 모습이 잘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무기 성향에도 분명 그런 면이 없진 않은데…….

“혹시 글레이브가 별로예요?”

“아! 아뇨. 괜찮긴 한데…… 양손검도 좋아서요.”

별로 안 좋다는 걸로 들리는데…….

“그럼, 양손검으로 바꿀래요? 굳이 글레이브를 안 써도 돼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죠.”

“으음, 그럼 조금만 더 써 보고 말해도 돼요?”

“네, 편하신 대로요.”

그렇게 약간 아쉬워하는 이쁜소녀와 대화를 마치고 마을에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서 방패전사에게 묻는다.

“그런데 강화석이 저렇게 많이 풀리면 조만간 던전도 사람들이 들어오겠는데요.”

방패전사도 내 생각이 틀린건 아니라고 바로 답해준다.

“네, 생각보다 강화석이 풀리는 시기가 너무 빠르네요. 거기다 현금이 두둑한 사람들은 비싸도 결국 사서 쓰게 되어 있거든요. 오늘 중에 무기 +4에 방어구 전부 +3 만든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안전한 수준까지 강화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방패전사의 말이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할 수도 있고.

“무기 한 부위, 저처럼 두 개를 쓰면 두 부위에 방어구 6개 부위라. 방패 쓰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강화석 값만 거의 오백만 원이 넘는데…… 이걸 한다고요?”

가상현실의 아이템에 5백만 원이 넘는 돈을 쓸 수 있는 건가? 그것도 이제 시작인 게임에서? 사장님이야 예전에 하던 게임에서 거의 상위급의 무기를 강화하던 것이라 그 정도겠지만. 이 게임에서 사람들이 써대는 돈 단위가 바로 와 닿진 않는다.

“사람들이 가상현실 게임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알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4세대는 더하겠죠. 꼭 부잣집이 아니더라도 자기 취미생활에 엄청나게 돈 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아요. 사람이 몇 명인데요. 돈 많은 사람 정말 많거든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보다는 남들보다 앞서나가려고 초반에 돈 쓰는 사람들이 더 많죠. 사냥터를 앞서나가야 나중에 더 해 먹거든요.”

재중이 형에게도 분명 같은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도 지금 모든 부위를 강화하지 못했음에도 어떻게든 던전 1층 사냥을 하고 있는데 모든 무기 +4, 방어구 +3이면 무난하게 사냥할 수준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당장 던전이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들어서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좀 더 흘러야겠죠. 강화석이 얼마나 풀리느냐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일단 당분간은 신경 안 써도 되겠네요.”

“네, 저희만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죠.”

사람 없는 사냥터가 사람들로 바글거릴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지는데?

***

“2층까지 내려가 볼까요?”

지하 2층 입구는 이미 봐둔 상태.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내려갈 수 있다.

역시 1층 입구부터 전에는 보지 못 했던 사람들이 서성인다. 안에서 호되게 당했는지 파티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미 파티를 맺고 들어가고 있는 파티도 보인다. 대략 100여 명 정도가 입구서 파티를 구하거나 다른 일로 서 있는 중이다.

“거기 네 명요, 저희도 네 명인데 1층 파티 생각 있으십니까?”

우리가 입구 근처로 다가가니 장검과 스몰 쉴드를 든 짙푸른 헤어의 훈남이 우릴 불러 세운다. 훈남의 뒤를 바라보니 두 명의 여인과 한 명의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동굴 벽에 기대서 우리를 흘깃 바라본다.

우리도 살펴보니 저들의 장비는 모두 늑대 시리즈. 모두 다 풀세트인 걸 보니 아마 강화도 안전 최대치까지는 했을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여길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현질을 했을 테니까.

“1층 가시나 봅니다?”

방패전사가 대표로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이런 쪽은 방패전사가 편하다.

“예, 생각보다 만만치 않네요. 몹 렙도 높고. 풀 파티가 편할 것 같은데 생각 있으신가요?”

우리도 역시 늑대 시리즈를 풀로 입고 있는 상태다 보니 저쪽도 혹했는가 본데? 이런 곳에서 생각하는 것은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만약 강화 수준이 궁금하다면 칼 한 번 맞대보거나 거래 창에 올려놓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으니 파티가 된다고 하면 확인해 봐야겠지만 우리 쪽은 딱히 파티 생각이 없으니까.

“저희는 선약이 있어서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하도록 하죠.”

정중한 거절. 이 정도면 그냥 평범하게 오가는 대화다. 저쪽도 우리 장비를 보고 그냥 찔러 본 정도지 꼭 같이해야 할 이유는 없고.

일단 우리 목표는 2층이나 3층이고 저쪽은 1층이다 보니 의견 자체가 안 맞기도 하다.

“네, 득템하세요.”

“그쪽도요.”

우리 대화를 주변에서 들었는지 더 이상 말을 걸어오는 파티는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늑대 시리즈 풀셋이다.

나나 방패전사가 예상한 것이 맞다. 강화석이 풀리면서 현금을 쓰는 사람들이 대거 던전을 찾을 거라는 걸.

그 사람들을 뒤로하고 어두운 입구를 통해 들어가 지도에 표시된 통로를 따라서 쭉 들어가니 2층 입구가 나온다.

“2층부터는 창 쓰는 애들이랑 활까지 쏜다니까 조심해야 해요. 챠밍 님은 되도록 방패전사 님 뒤쪽에 머무르시고요.”

“네, 활 조심할게요.”

챠밍은 스탯은 거의 지력과 마력 쪽, 그리고 체력에 일부가 가 있는 상태. 마법은 한 번에 세 가지까지 가능하다.

“라이트는 뺄게요. 아무래도 프로텍트 쉴드를 넣어야 할 것 같네요. 파이어 애로우랑 바인드 세 가지 쓸 수 있으니까 기억해 주세요. 힐은 못 넣을 것 같아요.”

“네, 그럼 등불은 제가 들고 다니도록 하죠.”

프로텍트 쉴드가 없어서 챠밍이 화살을 맞고 죽기라도 하면 그게 더 문제다. 챠밍의 체력 자체가 낮아 맞고 나서 힐 하기엔 너무 늦다. 그렇다고 공격 마법을 뺄 수도 없고. 바인드는 지금은 필수니까 안 된다.

지력이 더 높다면 마법 슬롯이 늘어나서 여유가 있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지금 시점에서 챠밍만큼 마법서를 많이 가진 사람도 없을 테니 슬롯 부족을 걱정하는 유일한 사람이려나?

방패전사는 항상 선두에 서서 방패를 들어야 하니 등불은 나나 이쁜소녀가 드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중 그래도 내가 반응이 빠를 것 같아서 일단 내가 들기로 했다.

2층에 진입.

2층은 1층과 거의 같은 구조인데 통로가 좀 더 넓고 높은 편이다.

“1층보다는 규모가 좀 큰 것 같네요.”

방패전사가 라지 쉴드를 앞세워 가면서 중얼거린다. 난 혹시 모를 눈먼 화살에 집중하면서 뒤를 따르고 챠밍이 중간, 이쁜소녀가 뒤에 붙는다.

궁수가 많은 곳에서는 아무래도 방패전사 같은 스타일이 좋다. 가운데 늑대 머리가 양각으로 장식된 라지 쉴드인 늑대의 오각 방패는 크기도 크기지만 방어력도 우수하니까. 한 사람을 거의 다 커버해 주니 화살을 막기엔 저만한 것도 없다. 물론 HP가 달긴 하지만 방패 보정으로 그 양이 상당히 감소해 버리니까.

통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창을 든 워 울프 두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방패전사가 눈빛을 보내오더니 곧장 달려든다.

딱히 상대가 창을 들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방패전사가 하나를 잡고 늘어지고 내가 하나. 이번엔 이쁜소녀가 방패전사를 돕고 챠밍이 내가 상대하는 워 울프에 바인드를 건다.

발이 묶인 워 울프의 자세가 썩 좋지 못해 접근하는 나를 향해 힘이 덜 실린 억지로 내뻗은 창을 검으로 쳐내고 반원을 그리면서 목을 그었다.

내가 그대로 목을 그어가면서 워 울프를 녹이고 좀 있어서 방패전사가 맡은 다른 워 울프도 누웠다.

“궁수만 없으면 여기도 괜찮네요.”

방패전사의 간단한 평.

“이제 길을 찾겠습니다.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좀 더 지나니 이제는 궁수도 한 마리씩 섞여서 나오기 시작했다. 워 울프 둘에 궁수 하나.

나와 이쁜소녀가 워 울프 하나씩을 맡는 동안 방패전사가 궁수를 향해 방패를 앞세워서 뛰쳐나간다. 챠밍이 이번엔 바인드를 궁수에게 쓰고 이어서 바로 파이어 애로우를 날린다.

【 파이어 애로우! 】

챠밍의 지팡이 끝에 맺힌 원형의 투명하고 붉은 마법진이 회전하며 그 중앙에서 붉은 화염의 화살이 쏜살같이 뻗어 나간다. 매직 애로우와 거의 흡사한 속도로 날아가던 파이어 애로우가 궁수의 몸에 날아가 적중하니 마법을 맞은 가슴 부위가 계속 활활 타오르면서 궁수의 HP를 깎아내린다.

방패전사가 못 움직이고 HP가 깎여가는 궁수를 처리하는 동안 챠밍이 나와 이쁜소녀를 도와줘서 전투는 쉽게 정리되었다.

“역시 마법이 최고네요.”

방패전사가 챠밍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드니 챠밍이 살짝 미소 짓는다.

확실히 챠밍은 상황에 따른 마법 배분에 센스가 있어 보인다. 이때쯤 이런 마법이 오면 좋겠다 싶으면 날아와서 도와준다. 시전시간, 효과, 적과의 상성 등을 고려한 판단이 매끄럽다. 쓸 수 있는 마법의 수가 더 늘어나면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된다.

드랍 템을 챙기고 조금 더 가니 갈림길이다.

“왼쪽? 오른쪽? 어디로 갈까요?”

딱히 더 좋은 곳을 구분할 방법은 없다. 이럴 땐…… 왼쪽인가?

“왼쪽 먼저 가 보죠.”

챠밍이나 이쁜소녀도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양쪽 어디를 가도 모르는 곳이기도 하고.

흙벽 통로를 따라 왼쪽으로 가다 보니 방이 있는데 궁수가 무려 5마리나 한 자리에 몰려 있다. 방패전사가 낭패한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여긴 좀…… 저기 들어갔다가는 제가 벌집이 되겠는데요?”

방패 너머로도 HP가 깎이니까. 재수 없게 방패로 못 막는 부분에 맞으면 더 깎이고.

방패전사가 우리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건 안 된다는 뜻.

재중이 형이 2층이 제일 짜증 난다고 한 이유를 알겠네. 궁수가 저렇게 몰려 있으면 우리 숫자에선 돌파가 불가능하다.

“오른쪽으로 가 봐요. 반대쪽이 나을 것 같아요.”

챠밍이 괜찮다는 듯 말해주면서 살짝 처진 분위기를 끌어 올려준다. 그 말에 다들 왔던 갈림길로 가서 이번엔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제일 선두에서 걸어가던 방패전사가 통로 너머의 방에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화를 낸다.

“아! 진짜. 장난해?”

모두의 시선이 방패전사가 보고 있던 통로를 향하고는 다들 똑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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