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화 라이칸스로프의 영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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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오크 족장의 글레이브 / 공격력 5∼9
근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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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괜찮은 템이다. 재중이 형 말을 들어보니 다음 맵에 가도 이 정도 템은 바로 구할 수는 없다고 한다.
늑대의 창(3∼5), 늑대의 장창(3∼7) 정도가 어느 정도 들어가서 사냥하면 구할 수 있는 드랍 템이라고 하는데 이것과 비교해도 두 단계 이상의 상위 템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팀들이 마을 동쪽의 오크 부락지에서 오크 족장을 다시 잡아봤다는데 오크 족장의 글레이브를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했단다.
마법서도 한 권 정도. 강화석도 몇 개 안 떨어뜨려서 물약값도 못 건졌다나…… 손해만 잔뜩 보고 혹시나 해서 다시 시도하려고 했는데 리젠 시간이 너무 길어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고 나왔다고 한다.
한마디로 초기에 오크 마을을 지키고 있을 때 잡지 않으면 나중에 스펙 업을 실컷 하고 가서 잡으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냥 강화석만 좀 줄 뿐. 많이 잡다 보면 글레이브를 주기야 주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고.
쓸 수 있다면 쓰는 것이 좋다는 말이지. 한참 동안이나 오버 스펙으로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이고.
“그럼 제가 한 번 써볼게요.”
이쁜소녀가 앙다문 입술을 열어 의견을 전해온다. 그러면서도 계속 양손검을 보는 것이 미련이 좀 남은 모양인데 일단 써본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쁜소녀가 우리 중엔 가장 무기 종류를 많이 바꾼 편이네. 단검, 장검, 양손검, 활도 써봤고 이제 장창 분류에 들어가는 글레이브도.
짧은 시간에 그렇게 무기를 자주 바꿨는데도 쓰는 무기마다 꽤 매끄럽게 쓰는 걸 보면 확실히 이쪽에 재능이 있다. 쓰는 무기마다 일정 수치 이상의 딜은 확실히 내주니까.
그리고 처음엔 정말 중구난방으로 아무 곳이나 딜을 넣으면서 내 손 가는 대로 마음대로 하겠다는 검이었다면 지금은 날이 갈수록 원하는 지점으로 거의 비슷하게 딜을 넣는다.
마치 그동안은 영점 조절을 했다는 듯이.
화끈하게 딜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좀 더 세밀해졌다고 해야 하나?
고개를 돌려 이쁜소녀를 보니 글레이브를 양손으로 넓게 잡고 이리저리 휘둘러본다.
몇 번을 휘두르면서 연습해 보더니 이내 멈추고 나를 보며 말한다.
“저, 이거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
일단 글레이브와 마법서는 제 주인을 차례대로 찾아갔다.
“주호 님이 고생 엄청 하셨으니까 저희는 이 정도만 받아도 충분해요.”
“저도요…….”
글레이브와 마법서들의 값어치가 높다 보니 강화석 배분에서 챠밍과 이쁜소녀가 아예 빠져 버렸다. 일반 템 배분에서도 역시 챠밍과 이쁜소녀가 빠졌고.
참고로 강화석은 지금 엄청나게 비싸다. 그냥 부르면 그게 값이다. 시세조차 정립 안 돼서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골치 아픈 물건. 확실한 것은 비싸다는 것.
물량이 아예 없는 지금 현금으로 2, 30만은 가볍게 왔다 갔다 하는 중이고. 말만 잘하면 그 이상도 가능할 정도다. 나중에 더 풀리면 확 내려가겠지만 당분간은 유지될 것 같다.
“저도 딱히 욕심 안 내겠습니다. 100에 90은 주호 님이 하신 건데요. 그리고 어차피 주호 님 없었으면 깨지도 못했을 겁니다. 누가 지금 오크 족장을 30분 넘게 혼자 상대를 할 수 있을까요. 이건 걸치기를 알아도 절대 아무나 못 하거든요.”
그러면서 슬쩍 방어구 강화석 다섯 개만 가져간다. 방패전사는 따로 챙긴 것이 하나도 없다 보니 강화석으로 정리를 끝내려는 모양이다.
방패전사가 방어로 전투를 시작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방패를 강화하려면 저것이 더 필요했겠네. 다른 아이템에는 눈길도 안 준다.
“이러면 너무 제가 많이 가져가는 셈인데요?”
“그 정도는 가져가셔야죠.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애초에 통행료 수수료가 워낙 크기도 하고요. 아, 그리고 저희끼리 미리 이야기된 건데 통행료 수수료가 나오면 절반은 떼서 주호 님에게 드릴 겁니다. 안 받는다고 하지 마십쇼. 저희끼리 이미 의견 통일 다 본 겁니다.”
그 말에 챠밍과 이쁜소녀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다 이야기가 끝났다는 거네.
개인당 거의 1100만 원 상당의 아르를 건네준다는 소리다. 다 합치면 3300만 원 수준의 아르.
거기다 내 앞으로 온 강화석만 총 65개. 이걸 현금으로 치면 1600만 원에서 최대 2000만 원 이상이다. 70개 중 65개를 내 몫으로 몰아주다니…….
오크 족장 공략의 아이디어를 내가 내고 아래서 혼자 고생해서인지 다 나누고 종합해 보니 전체 배분에서 내 몫이 월등히 많긴 하다.
앞으로 일주일간 들어올 통행료 수수료가 2250만 원 정도, 강화석 65개로 거의 2000만 원, 그 외 잡템들 팔면 얼마가 나오는데 이건 별 의미가 없고.
세 명이서 각자 1100만 원 수준의 아르를 주면 거의 3300만 원이 추가로 들어온다.
보스 하나 잡아서 현금으로 환산하면 거의 7500만 원 정도를 번 셈이다. 강화석과 아르의 값어치가 점점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딱 그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많다.
이건 좀 너무 한데? 무슨 게임이 이래? 40명이 해 먹을 양을 네 명이 해 먹으니 단위 자체가 달라진다.
일단 나머지 일반 템들은 눈에도 안 들어온다. 강화석 몇 개에도 못 미치는 값어치라 그런지 크게 신경이 안 쓰인다. 이건 방패전사가 평소 하던 대로 다 처분해서 주기로 했다. 난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템이 많으니 처리하는 것도 일이네요.”
방패전사가 싱긋 웃는다. 이번 레이드로 확실히 자기 몫을 챙긴 상태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다. 솔직히 아이템은 부수적인 수준이다. 통행료 수수료에 비하면. 방패전사도 앞으로 얻을 통행료 수수료가 거의 1100만 원 정도가 되니까. 비록 내 1/7 수준이지만 방패전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모양새다.
“음, 그래도 이건 좀 문제가 되겠네요. 어차피 이 강화석 저 혼자 다 쓰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하죠. 앞으로 통행료 수수료가 나오면 저에게 값을 치르는 걸로 하고 제가 먼저 몇 개씩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이쁜소녀가 가진 글레이브를 본다. 저런 무기가 있는데 강화석이 없어서 노강으로 들고 다닌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웃을지도 모르겠다.
65개의 강화석을 혼자 꿍쳐두고 있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당장 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재중이 형 말대로 지금 강화석을 파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고.
그리고 앞으로 같이할 생각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난 이 파티가 꽤나 맘에 드니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내게 먼저 와서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건 사실이고.
“일단 무기 강화석 5개, 방어구 강화석 5개씩 모두에게 넘겨드리는 걸로 하죠. 부족한 부분은 추가로 주고받기로 하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전 좋습니다. 수수료야 충분하니까요.”
방패전사가 반색하면서 물어온다. 방패전사는 전방에서 몸으로 때워야 하니까 특히 강화석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구할 수도 없는 강화석을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충분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고.
“그럼 저도 좀 부탁드릴게요.”
챠밍도 지팡이나 방어구가 새로 생기면 강화석을 써야 하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필요하긴 하다.
“저도요…….”
아니, 이 사람들이…… 전부 다 필요했을 건데 말도 안 하고. 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문제네. 방패전사야 나중에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먼저 나서서 이야기 안 했으면 어쩌려고 이러나.
일단 인벤에서 강화석을 꺼내서 모두에게 넘겨주고 나니 35개의 강화석이 남아 있다.
강화석의 중간 시세인 25만 원으로 계산해서 개인당 250만 원 정도 값어치를 가진 아르를 앞으로 넘겨받기로 했다.
같이한 파티원끼리 시세 최대치로 다 받아먹는 것도 웃긴 일이다 보니 이 정도 선에서 서로 양보하면서 계산을 마쳤다.
챠밍과 이쁜소녀가 더 주려는 것을 말린다고 오히려 내가 더 힘들 지경이었고. 이 사람들 앞으로가 걱정이네.
이제 시선은 다들 이쁜소녀에게 가 있다.
“그럼, 강화해 볼게요.”
이쁜소녀의 기대 잔뜩 실은 눈빛이 글레이브를 구멍 내버릴 것만 같은데?
강화하는데 딱히 다른 특별한 NPC가 필요하든지 하는 것은 없다. 그냥 무기에 가져다 대고 강화를 말하면 된다. 물론 하기 전에 ‘예, 아니요’ 정도는 물어봐 준다.
그러고 보니 이 게임도 외부 PC에서 강화가 되려나…… 사장님 같은 분은 소주 한잔하시고 해야 할 건데.
사람이 좀 없는 뜸한 구석으로 가서 글레이브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고는 다른 손으로 무기 강화석을 올려다 놓는다.
주위로 번쩍거리는 하얀 빛 이펙트. 물론 파티원만 보인다.
《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
강화에 성공했다는 시스템 음과 함께 빛이 사라진 자리에
『 +1 오크 족장의 글레이브 / 공격력 5+1 ∼ 9+1 』
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야! 이런 식이네요.”
방패전사가 감탄하고, 나와 챠밍은 글레이브를 유심히 살핀다. 최소와 최대 공격에 +1씩 더 붙은 상태.
“무기가 한 등급 더 오르는 것과 같네요?”
“네, 그래서 강화석이 그렇게나 비싼가 봅니다. 당장은 구하기도 힘들기도 하고요.”
챠밍과 내가 이어서 말을 주고받는다. 예상은 했지만 강화된 수치를 막상 보니 꽤 좋다.
이쁜소녀는 살짝 흥분 상태인 듯 숨을 쉬었다 내었다 하고 있다.
“계속 가요!”
재중이 형이 1서버에서 4까지는 그럭저럭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을 파티원들에게 말해줬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강화를 막 하려는 것 같다. 말려야 하나? 사장님은 1에서 2갈 때도 깨 먹었다는데…… 그 정도로 운이 없지는 않겠지?
번쩍!
『 +2 오크 족장의 글레이브 / 공격력 5+2 ∼ 9+2 』
말리기도 전에 이미 해버렸다.
번쩍!
『 +3 오크 족장의 글레이브 / 공격력 5+3 ∼ 9+3 』
번쩍!
『 +4 오크 족장의 글레이브 / 공격력 5+4 ∼ 9+4 』
4가 되었는데도 또 강화석에 손을 올리는 이쁜소녀.
그만해!!
속으로 외치면서 난 급히 손을 들어서 이쁜소녀를 말린다. 챠밍과 방패전사도 깜짝 놀라서 말리고.
“그만!”
챠밍이 이쁜소녀의 손을 덥석 잡아 말린다.
몰랐는데 둘은 서로 만질 수 있는 모양이다. 본인의 허락이 있으면 서로 만질 수 있다는데, 친해지더니 저 정도는 되는 건가?
이쁜소녀가 그 때문인지 멈칫한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들어 흥분 가득한 눈빛으로 챠밍을 본다. 얘, 너무 갔는데?
“왜?”
“너, 눈 풀린 거 봐. 그만해. 4까지가 안전하다니까.”
“아쉬운데…….”
얘, 봐라. 도박은 절대 하면 안 될 애다. 얌전하던 애가 이상한 데서 한 번씩 포인트를 잡는다니까.
“더 하려고?”
“응.”
이쁜소녀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이걸 어쩌나.
강화 한 번에 손을 부들부들 떠는 사장님을 보다가 얘를 보니 도통 적응이 안 된다.
사장님이나 재중이 형네 파티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패했을 때 수치 하락 같은 것은 없고 바로 깨진단다. 4 이상에서 깨질 확률이 체감상 확 올라간다고 하던데 이건 말려야 하지 않을까?
번쩍!
『 +5 오크 족장의 글레이브 / 공격력 5+5 ∼ 9+5 』
말릴까 생각하고 있는데 늦었다. 깜짝 놀랐네.
챠밍도 깜짝 놀라고 방패전사는 그저 멍하니 보고 있다.
“진짜 그만!”
이번엔 내가 말렸다. 저거 놔두면 분명히 깨 먹는다. 확실하다.
나까지 나서니 그제야 손을 빼는 이쁜소녀를 보고 긴 한숨을 내쉰다. 챠밍도 옆에서 같은 표정이고.
이쁜소녀가 +5까지 강화된 글레이브를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강화석을 다 뺏어놓든지 해야지 언제 일내겠는데?
***
방패전사가 인벤을 열더니 몇 가지 아이템을 꺼내서 건네준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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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늑대의 장검 / 공격력 3∼5
0 늑대의 팔 보호대 / 방어력 3
0 늑대의 다리 보호대 / 방어력 3
0 늑대의 투구 / 방어력 3
* * *
“먼저 들어와서 꽤 준비했죠.”
짧은 시간에 제대로 구했네. 여기선 늑대 시리즈가 기본 드랍 템이라고 한다. 숲 시리즈의 상위 호환 템이다.
늑대 시리즈는 대체로 회갈색의 가죽으로 되어 있고 느껴지는 단단함은 숲의 세트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숲 세트가 좀 자연의 느낌이었다면 늑대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야성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디자인도 유선형에서 좀 더 각진 형태로 변해서 만져보면 단단함이 느껴진다.
“이걸 저한테 주셔도 되나요?
그랬더니 인벤에서 보란 듯이 같은 아이템을 몇 개 더 꺼낸다. 일단 많이 구했단 소리네. 그럼 부담 없지.
“사람 없는 사냥터가 정말 좋긴 하던데요? 골라잡았죠.”
역시 사람 없는 사냥터가 최곤가…….
솔직히 숲 세트에 강화석을 쓰긴 좀 아까웠는데 이러면 문제가 없다.
지금은 강화석이 아쉬우니 딱 기본 강화까지만 해놓고 강화를 멈추었다.
『 +4 늑대의 장검 / 공격력 3+4 ∼ 5+4 』
『 +3 늑대의 팔 보호대 / 방어력 3+3 』
『 +3 늑대의 다리 보호대 / 방어력 3+3 』
『 +3 늑대의 투구 / 방어력 3+3 』
좀 더 강화를 올리고 싶지만 새 무기가 하나뿐이기도 하고 강화석으로 다른 부위도 구하는 대로 강화해야 하니까 일단은 여기서 스톱했다.
***
오크 마을이 피난민 마을로 변하면서 생긴 제일 큰 변화는 아무래도 사냥 외에도 즐길 것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음식도 먹고 음료도 즐기고 옷도 구경하고.
조만간 수제 옷들을 유저들 스스로 만들어서 팔 수 있는 시스템도 내놓는다고 한다. 지금 판매하는 옷은 기본적인 중세풍의 옷들이라 그렇게 인기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신기해서 입어볼 뿐. 현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외형이다. 거기에 비싸기도 하고.
수제 음식은 맛 표현에 있어 너무 복잡한 것들은 구현하기 힘들다고 하니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할 테고.
이런 시도들이 현재 호평을 받는 중이기도 하다. 사냥만 하기에는 4세대 VRS의 기능이 아까우니까. 물론 현실감 넘치는 사냥만 해도 굉장한 것이지만 유저들은 항상 더 나은 것을 원하곤 한다.
“사냥도 재밌긴 한데 조금 아쉽긴 했거든요. 지금은 좋네요.”
챠밍이 옆에서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미소 짓는다. 그리고 옆에서 이쁜소녀와 방패전사도 주스를 마시면서 끄덕인다. 사냥터로 가는 길에 소풍 가듯이 음식과 음료를 사 들고 가면서 마시는 중이다.
정말 하늘의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만 아니면 진짜 소풍 가는 기분일 것 같다. 라이칸스로프의 영역은 날씨가 이 모양이다. 피난민 마을로 변하기 전의 오크 구역처럼.
현재 피난민 마을 아래 지역은 검은 구름이 다 사라지고 맑은 하늘에서 햇볕이 쨍쨍하다. 그쪽으로 가면 원하는 소풍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김밥만 있으면 되려나.
흐린 날씨는 그렇다 치고 입에 가득 문 주스의 상큼함으로 인해 새로운 사냥터로 간다는 긴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뭐,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사냥터를 가본 상태라서 혼자 긴장하고 있기도 어색하기도 하고.
“여긴 진짜 돌 밖에 안 보이네요.”
“네, 너무 삭막하죠? 숲은 엄청 좋았는데.”
내 말에 챠밍이 투정을 살짝 해 본다.
둘러보니 라이칸스로프의 영역은 높은 돌 언덕이 대부분이다. 간간히 보이는 숲이었던 곳은 바싹 마른 가지를 가진 나무들만 곳곳에 듬성듬성 있을 뿐.
피난민 NPC들의 이야기에는 여기가 로가슈 왕국의 외곽 지역이며 지금은 이름도 남지 않은 어느 남작이 다스리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게시판에서 본 것은 총 5개의 남작가의 잊혀진 고성이 라이칸스로프 아래 무릎 꿇어서 황폐해졌단다. 지금 시작 지점 두 마을마다 한곳의 잊혀진 고성과 연결되어 있고 아마 그곳을 어떻게든 해야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지 않을까?
“아마, 최종 네임드 보스도 그곳에 있을 겁니다. 아직 성을 발견한 유저가 없어서 그렇지 발견되면 다시 시끄러워질 것 같네요.”
“이번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크 족장을 너무 어이없이 잡긴 했지. 다시 그런 방식으로 그런 기회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
“저기인가요?”
“네, 저도 길만 들어서 오래 걸릴지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찾았네요.”
이름 모를 던전. 가까이 다가가니 지도에 알람이 뜨면서 서부 늑대 굴이라고 명칭이 바뀐다.
서부면 동부, 북부, 남부가 다 따로 있으려나?
던전 입구는 마을에서 가까운 사냥터보다 한참을 북서쪽으로 나아가서 몇 개의 사냥터를 거쳐야 나오는 곳이다.
오면서 보니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저 멀리도 사람, 전부 사람뿐이다. 언덕 너머 보이는 것도 전부. 사냥터마다 사람이 빼곡해서 사냥은 될지 모르겠다. 한 파티가 한 리젠 자리에 못 박혀서 그것만 잡고 있으니 답답하기까지 해 보인다.
재중이 형이 늘 하던 말이 떠오르네. 가장 좋은 사냥터는 나 혼자 잡는 사냥터라고. 그 말을 반대로 하면 지금 필드의 사냥터들은 가장 안 좋은 사냥터라는 소리다.
“던전이 저희에게 더 나을 겁니다. 지금 필드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방패전사가 우리의 장비를 보고 내린 결론이 아예 던전으로 들어가 버리자는 것이었다.
“여기 렙이 좀 높지 않나요?”
“제가 듣기로 지하 1층이 18 렙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높네요.”
지금 내 렙이 11,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가 13이다. 이거 차이가 좀 심한 것 아냐? 잡히려나.
“던전은 장비가 안 되면 사냥이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대부분 게임이 다 그렇고 필드보다도 몬스터 젠도 빠른 편이라서 지금 시점에서는 던전에서 사냥 가능한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저희는 가능하다는 건가요?”
챠밍이 방패전사의 설명에 되묻는다.
“그렇죠. 일단…… 이쁜소녀 님 무기가 좋은 것도 있고…… 저희는 주호 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거…… 부담 백배네요.”
“저도요.”
나와 이쁜소녀가 같은 대답을 해주니 방패전사가 그저 웃는다.
“뭐, 안되면 다시 나와서 하면 되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그게 더 부담 주는 말 같이 들리는데 말이지.
뭐, 방패전사의 말대로 일단 사냥만 가능하다면 던전은 우리에게 최고의 사냥터가 되어 줄 것이다.
커다란 동굴형 던전 입구로 발길을 옮기니 무저갱의 어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