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17화 라이칸스로프의 영역 (3)
피난민의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오는 서부 늑대 굴.
로스트 스카이의 지도 시스템은 자신이 가본 곳까지만 밝혀지고 나머지는 검은색 장막으로 막혀 있다.
지금 우리가 조금씩 그 장막을 걷어내면서 던전 입구를 지나고 있는 중이고.
사실상 현재 우리만큼 강화석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없다. 물론 현질해서 사서 쓴다면 또 모르겠는데 우리 쪽 마을의 강화석은 일단 다 우리가 쥐고 있거든. 사냥하면서 나오는 것이야 점점 풀리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다.
“필드에서는 쪽수만 되면 어떻게든 먼 지역까지 사냥은 나갈 수 있거든요. 몹이 리젠 되는 속도가 느리고 넓기도 하니까 뺑뺑이도 가능하고 아니면 마법사나 궁수들이 도망 다니면서 일점사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던전은 그게 안 되죠. 장비가 안 되면 아예 사냥 자체가 힘듭니다.”
괜히 낮은 장비로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보면 다른 몹이 더 달라붙어서 그냥 눕는단다.
“적어도 한 방 정도는 자리 잡고 버틸 정도는 돼야 사냥이 되거든요.”
메마른 바깥 필드와 다르게 꽤 복잡한 미로 형식의 축축한 진갈색의 흙벽 동굴이 쭉 이어져 있다. 입구를 제외하고는 어둡기 때문에 챠밍이 라이트 마법을 시전 하니 주변이 환해진다.
상당히 밝은데?
“일단 어두워서 라이트랑 파이어 애로우, 바인드를 넣었어요. 자리 잡으면 라이트는 빼고 다른 마법으로 넣을게요.”
챠밍의 주변으로 밝은 빛을 내는 새가 파닥거리면서 날아다니고 있다. 어두운 시야가 그 덕분에 대부분 밝혀진다.
“이쁘다.”
이쁜소녀가 손을 뻗어 밝게 빛나는 새를 잡아보려고 하는데 투명해서 잡히지는 않고 슥 지나간다.
“못 잡네요…….”
살짝 아쉬운 투로 말하더니 바로 포기해 버린다.
“라이트 마법이 있어서 살았네요. 없었으면 지금 누구든 등불을 들고 다녔어야 할 걸요?”
방패전사가 살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마법사는 진짜 어디를 가나 제 몫을 하네.
라이트 마법이 없다면 누군가 계속 등불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이건 굉장히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만약 등불마저 없다면 던전 사냥은 일찍 접어야 한다.
“확실히 사람이 없군요.”
“네, 여기 들어와서 사냥하기엔 조건이 안 좋긴 하죠.”
나와 방패전사가 앞장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사냥터가 없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아예 보이지도 않네요.”
“뭐, 만약 들어왔다가도 강화가 안 된 무기나 방어구들로는 물약만 잔뜩 버리고 다시 나갔겠죠.”
우리가 걸어가면서 지도가 점점 완성된다. 일단 길을 잃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지도가 없다면 거의 미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의 미로다.
입구 쪽은 몹이 보이지 않는데 조금만 걸어 갈림길을 한 번 꺾어 들어가니 바로 보인다.
워 울프.
이족 보행의 크고 근육으로 팽팽한 뒷다리에 회색 빛깔의 갈기를 가진 1m 80㎝ 정도 되어 보이는 늑대인간. 쭉 찢어진 입가에 날카로운 이가 삐죽하게 뻗어 나와 있다.
물리면 정말 아프겠는데?
“밖에 울프들하고는 전혀 다르네요.”
챠밍이 지팡이를 두 손으로 꾸욱 쥐면서 긴장된 목소리로 말한다.
“걔들은 강아지 같았는데…….”
이쁜소녀가 이어서 한마디. 난 전혀 강아지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집에서 큰 개라도 키우나? 시베리안 허스키, 알래스칸 말라뮤트 같은 애들.
필드에도 늑대인간을 보긴 했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워 울프에 비하면 소년과 어른 정도의 간격이 느껴진다. 일단 근육질부터 달라 보이거든. 거기에 제대로 된 갑옷까지 입고 있다.
“그냥 봐도 세 보이네요.”
최하 18렙 이상.
가까이 가니 우리를 발견한 워 울프가 입에 거품을 물고 덤벼든다. 확실히 선공 몹은 아닌데 어느 정도 가까이 가면 덤벼든다. 역시 초심자 지역은 끝났다는 거네. 필드가 애들 놀이터라면 여긴 진짜 사냥터다.
방패전사가 바로 앞을 막아선다. 방패로 빠르게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굵직한 손톱을 막아내고 버텨 서려는데 방패전사의 발이 들썩 떠올랐다가 다시 바닥에 착지한다.
“뭔 힘이!”
겨우 한 번 받아내는데 이를 악무는 방패전사의 짜증 내는 목소리가 동굴에 퍼진다. 힘과 체력에 스탯을 많이 분배한 방패전사가 저런 식이면 곤란한데?
연이은 워 울프의 공격에 방패전사의 HP가 확 깎인다. 안 되겠네. 곧장 검을 세워서 끼어 들어간다.
내가 참전하니 방패전사를 발로 차서 슬쩍 뒤로 빠졌다가 바로 내게 짖겨 들어온다. 판단이 빠른데? 알고리즘이 숲오크들과는 꽤 차이가 난다. 숲오크는 늘 맞으면서 때리는 수준이었는데.
이 녀석 심지어 민첩도 높은 것 같다. 달려드는 속도, 팔을 내려치는 간격이 짧고 빠르다.
새로 얻은 늑대의 검과 숲의 검으로 내려치는 워 울프의 손톱 공격을 빗겨 치고 안으로 파고들려는데 오히려 워 울프가 어깨 차징을 해온다.
빠르게 뒤로 빠지면서 앞으로 검들을 뻗어서 견제를 하니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다시 뒤로 빠진다.
힘은 당연히 우리보다 나아 보이고, 민첩은 빠르긴 한데 못 볼 수준은 아니다. 다만, 캐릭 스펙이 낮으니까 몸이 마음대로 못 움직여 주니, 이건 상당히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 스펙.
어차피 저놈이 얼마나 빠르던지 감각에 다 걸리니까 맞을 일은 없는 데 두 자루의 무기 중에 한쪽이 숲의 검이다 보니 대미지가 너무 안 나온다.
몇 번 숲의 검으로 유효타를 날렸는데 간지럽다는 듯이 반응도 안 하니까. 반대로 강화된 늑대의 검으로 찌르면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앞에서 공격을 죄다 피하면서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다시 방패전사가 달려들고 챠밍이 멀리서 매직 애로우 마법을 날렸다.
챠징 하고 쏘는 속도가 꽤 짧은 걸 보니 중간 정도의 차징으로 날리고 있나 본데 저러면 대미지가 많이 줄어든다.
“이 정도 아니면 못 맞출 것 같아요.”
챠밍이 눈대중으로 워 울프를 보고는 말한다.
“너무 늦으면 그냥 피해 버려요. 좀 더 정신없게 만들면 풀 차징도 가능할 것 같긴 한데.”
혹시 한 마리가 더 나타나면 맡기로 했는데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자 옆에서 대기 중이던 이쁜소녀가 챠밍에게 뭔가 눈짓을 보낸다. 그러니 챠밍이 고개를 끄덕이고.
뭐지?
챠밍이 매직 애로우를 날려 보내고 곧장 마법을 바꾼다. 챠밍의 손바닥에서 녹색의 빛과 처음 보는 녹색의 원형 마법진이 나타난다.
【 바인드! 】
이것도 차징 시간이 있는지 잠시 기다렸다가 워 울프를 가리키니 워 울프의 다리 아래서 넝쿨이 올라와서 칭칭 휘감아버린다.
그와 동시에 챠밍과 눈을 맞췄던 이쁜소녀가 쏜살같이 글레이브를 들고 날아가서 다리가 묶인 워 울프의 가슴에 글레이브를 찍어버렸다.
“크어어!”
지금까지 맞은 대미지는 다 우습게 넘기던 워 울프가 처음으로 비명을 지른다. 바로 이어지는 광란의 휘두름. 글레이브 날이 현란하게 빛을 반사하며 워 울프를 난도질했다. 대미지가 얼마나 잘 들어가면 저 워 울프가 경직까지 된다.
네임드가 좋긴 좋구나.
거기다 강화까지 충실하게 되어 있으니.
워 울프는 발목이 묶여서 못 움직이는데 리치가 긴 글레이브로 중거리에서 공격을 해버리니 워 울프가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져 버렸다.
굉장히 괜찮은 조합이다.
쓰러진 워 울프 앞에 글레이브를 늘어뜨리며 선 이쁜소녀가 뒤돌아보면서 살짝 흥분이 오른 모습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보인다.
***
재중이 형이 사냥하다 보니 문득 알게 된 사실을 말해준 적이 있다.
“사람 키가 작으면 작을수록 민첩 수치가 미묘하게 올라. 그리고 크면 클수록 힘 수치가 미묘하게 오르고.”
“별 걸 다 숨겨놨네요.”
“어, 첨엔 몰랐는데 애들 수치가 올라가니까 움직임이 다른 게 느껴지더라. 분명히 수치는 같은데 다르니까. 그리고 남성 쪽이 힘이 살짝 더 오르고 여성 쪽이 민첩이 좀 더 오르는 식이고.”
“그럼 남자의 키가 크면 힘에 꽤 탄력을 받겠네요?”
“그래. 반대로 여자의 키가 작으면 민첩이 무시 못 할 정도로 오를걸? 근데 이건 표시가 되지 않거든. 퍼센트인지 수치인지 확실하지도 않고.”
그걸 알아낸 인간이 더 대단해 보이네. 프로게이머를 딱지치기로 따낸 것이 아닌 건 확실하다. 나도 익숙해지면 저렇게 할 수 있으려나? 유혜선 팀장 말에 따르면 가능할 것 같긴 한데. 연습량의 차이일까?
이쁜소녀를 보면서 전에 재중이 형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민첩이라…… 여성에 키까지 치면 확실히 방패전사보다는 움직임의 속도가 월등히 나아 보인다.
둘이 같은 레벨에 한쪽은 힘, 체 위주고 한쪽은 힘, 민 위주라 완벽한 비교는 못 된다. 다만, 방패전사가 민첩 위주로 올렸다고 해도 아마 이쁜소녀보다는 움직임이 느릴 것은 확실하다.
레벨에 따른 스탯도 있고 보정도 받다 보니 움직임 자체가 굉장히 유연하다. 글레이브를 쓰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일 정도로.
챠밍의 마법 지원만 있으면 혼자서 한 마리는 거뜬할 것 같다.
문득 숲의 장검을 바라보았다.
이것만 늑대의 장검으로 바꾸기만 해도 좀 제대로 싸워볼 텐데 내 움직임이 아무리 좋아도 무기 스펙 자체가 너무 밀리니 답답할 정도다.
늑대의 장검에 비해 숲의 장검이 대미지가 반의반도 안 나오니 말 다 했지.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늑대의 장검을 하나 더 구해야 할 것 같다. 드랍 템에 늑대의 장검이 나오면 베스트고.
동굴 미로의 복도를 따라가다가 한 마리씩 돌아다니는 워 울프를 몇 마리 더 잡고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공간을 발견했다.
일단 진입 경로가 하나고 좁아서 일부러 근처로 찾아오지 않으면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구덩이. 그리고 그곳에 총 두 마리의 워 울프가 서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여기 어떨까요? 두 마리니까 젠 시간만 잘 맞추면 계속 사냥도 가능할 테니.”
“네, 전 좋아요.”
이쁜소녀에 이어 나와 챠밍도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괜찮은 장소다.
방패전사가 우리에게 신호를 주고 워 울프들에게 슬금슬금 다가가니 두 놈 중 한 녀석이 고개를 돌린다. 한 녀석만 데리고 나올 생각인가?
한 놈이 고개를 돌리니 다른 한 녀석도 따라 고개를 돌린다. 링크된 몹이네. 한쪽은 이미 방패 전사가 붙었고. 남은 한 마리를 향해 검을 쥐고 뛴다. 저 링크된 몹이 방패전사에게 달라붙으면 안 된다.
내가 접근하자 바로 자세를 낮추고 덤벼드는 워 울프의 날카롭고 긴 손톱을 피해 바로 장검으로 녀석의 목을 그었다. 필드였다면 보통은 여기서 경직이 되는데 던전 몹은 확실히 다른 모양이다.
한 번이 안 되면 계속하면 되겠지.
숲의 장검은 그냥 넣어버린 상태다. 딜이 너무 안 나오니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느낌까지 들어서 그냥 늑대의 장검 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빠르게 휘두르는 손톱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면서 늑대의 장검으로 목의 한 부분만 계속해서 그어주니까 그대로 경직이 오면서 두 팔을 축 늘어뜨렸다.
“이거 먼저 잡죠.”
내가 신호를 하자 챠밍과 이쁜소녀 모두 경직된 워 울프에게 글레이브와 매직애로우를 계속 쏟아부으니 금방 쓰러진다.
곧장 방패전사가 붙들고 있던 워 울프에 챠밍이 바인드를 걸고 이쁜소녀와 내가 합격을 하니 구슬픈 울음을 토해내면서 차가운 바닥에 쓰려졌다.
“좀 힘들긴 한데 할만은 하네요.”
방패전사가 방패를 탕탕 치더니 웃어 보인다. 혼자서도 제법 잘 버티네. 방패전사도 몇 번 상대해 보더니 요령을 익힌 모양이다. 전처럼 HP가 출렁출렁거리지도 않고 잘 막아낸다.
경험치도 보니 눈에 보이게 올라가는 수준이고 여기서 자리 잡고 젠 되는 녀석들만 처리하면 만족할 수준으로 경험치나 아이템을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주호 님 던전 몹도 경직을 걸어버리시네요. 믿고 들어오길 잘했습니다. 단독으로 저렇게 경직 걸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는지 모르겠네요.”
방패전사의 감탄에 그냥 어깨만 으쓱했다.
“검이 한쪽이 없어서 그것도 겨우 한 거예요. 확실히 경직이 안 걸리긴 안 걸리네요.”
“얼른 검부터 구해야겠네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한 자루의 늑대의 검이 너무나 가지고 싶다.
“보자…… 드랍 템이…….”
방패전사가 워 울프가 사라진 자리에 둥둥 떠다니는 아이템을 살피다가 멈칫한다.
“늑대의 혼?”
녹색 광택을 내는 모두 처음 보는 주먹 크기 만한 광석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