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63화 (63/165)

‘…뭐지?’

나는 의아함을 품으며 진서원과 휴대폰을 번갈아 보았다.

“…하아…하아….”

묘하게 야릇한 표정으로 몸을 움찔거리는 그녀.

그리고 갑자기 물결치듯 움직이기 시작한 휴대폰 화면 속 그래프.

“갑자기 왜 그러….”

영문을 몰라, 멍하니 눈을 굴리던 그 순간.

‘……어?’

머리 한구석에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휴대폰과 ‘새로운 장난감’이 연결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너무나 불길한 예감이.

‘서, 설마…. 아, 아니겠지…?’

나는 진서원이 그 정도로 미쳤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 화면 속 분홍색 점을 다시 옮겨보았다.

스윽─

그러자.

“읏…!”

진서원이 화들짝 놀라며 제 입을 콱 틀어막더니, 드물게 당황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진짜구나.’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나는 재빨리 휴대폰 화면의 분홍색 점을 중앙으로 되돌렸다.

스윽─

그러자 진서원이 크게 심호흡을 내쉬며 틀어막고 있던 손을 슬쩍 내리더니, 묘하게 만족스러운 느낌의 표정으로 의자에 폭삭 파묻혀 버렸다..

“…후우으….”

나른하게 젖은 눈동자와 헤프게 벌어진 앙증맞은 입술.

내 쪽을 은근히 응시하며 허벅지를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행동만 보면, 그냥 영락없는 변태였다.

‘아…. 우리 팀의 미래가….’

서원이가 남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동안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생활을 살아왔을 테니, 당연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막 이성에 눈을 뜬 사춘기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것도 내 앞에서.

심지어 내게 직접 ‘리모컨’을 쥐여줄 거라곤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미치겠다….’

마냥 동생 같았던 진서원의 일탈에 큰 충격을 받았던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자연스레 말을 돌려보았다.

“이걸로 사진 찍어줘? 이건 끄면 되지?”

그러자 진서원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대답을 대신해왔고,

나는 카메라 앱을 켜는 척, 그녀가 사용하고 있던 앱 이름을 몰래 확인해보았다.

[ Love Sense♥ ]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노골적인 이름이었다.

*

“그러니까…. 여기서…. 어, 그렇지. 샵 쓰고, 카페….”

“…이렇게요?”

“맞아.”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론 진서원도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다.

만약 한 번이라도 더 이상한 낌새를 보였다면, 외출이고 나발이고 다급히 성교육부터 하려고 했는데….

그새 만족을 해버린 건지, 내내 한결 상쾌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보냈어요.”

“잠시만….”

진서원은 최근 20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들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주로 SNS에 올리기 좋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아직 흥미 단계일 뿐인 건지, 그저 새로운 걸 경험하는 것에 즐거워하는 느낌이었다.

“됐다. 이제 뜨지?”

“…네.”

진서원이 개설한 SNS의 첫 번째 구독자는 나.

간혹 필요한 때도 있어서 만들어두기만 하고 거의 관리하지 않는 계정이긴 했지만, 어쨌든 내 개인 계정이 맞긴 하다.

“…프로듀서는, 사진 안 올려요?”

“나?”

“…같이 올려요.”

진서원은 웬일로 내게 SNS에 사진을 올리라고 말해왔다.

댓글이라도 달아보고 싶은 걸까?

“그럴까?”

나는 별생각 없이 맞은편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진서원의 사진을 찍어, 오랜만에 계정을 갱신했다.

[ #일중 ]

어차피 팔로워도 몇몇 지인뿐이니, 아마 대충 올려도 괜찮으리라.

“음…. 난 올렸어.”

“…저도요.”

진서원은 내 다리가 살짝 드러났던 간식 사진을 배경으로 글을 올렸다.

[ 누가 샀는지 몰라도 엄청 맛있어 보인다 ]

└ 잘 먹었습니다

내가 '좋아요'와 함께 댓글을 달아주자, 곧바로 기특한 답글을 달기도 했는데,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 같아서 꽤 귀여워 보였다.

‘그런 짓만 안 했으면, 더 귀여웠을 텐데….’

“이제 그냥 쓰면 돼. 아. 다른 애들하고도 자주 찍어서 올리는 거 잊지 말고.”

“…네.”

그렇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위치 공유와 DM을 막아두는 둥 자잘한 세팅을 마친 뒤.

우리는 진서원의 SNS를 채우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 진서원! 서울시청 맞죠!”

“…네.”

“우와…! 저 엄청 팬이에요! 사인 좀 해주세요!”

도중에 들렀던 작은 디저트 카페에선 우연히 진서원을 알아본 팬을 만나 사인을 해주기도 했고,

“인경 씨한텐 이게 더 어울릴 거 같은데. 어때?”

“…좋아요.”

진서원이 처음 번 돈으로 윤인경의 선물을 사는 둥, 꽤 알찬 시간을 보냈다.

“배도 부른데, 좀만 걷자.”

“…네.”

그렇게 저녁을 먹는 사이, 어느덧 맑았던 하늘도 캄캄해지고.

어둑어둑한 밤하늘 사이로 반짝거리는 길거리를 나란히 거닐던 그때.

“…저기….”

“응?”

진서원이 드물게 머뭇거리며 슬쩍 말을 건네왔다.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렇게 다녔는데도, 아직 가고 싶은 장소가 남아있던 모양이다.

어차피 마지막이고, 시간도 좀 있겠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어딘데?”

“…모테….”

그 순간.

우웅─ 우웅─

기가 막힌 타이밍에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 미안. 잠시만….”

나는 양해를 구하곤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어 상대를 확인해보았는데….

[ ㄱ아린이  ]

임아린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

나는 진서원에게 다시 한번 양해를 구하며 전화를 받았고,

“여보세요?”

[ 어디야? ]

스피커 너머로 흘러나온 싸늘한 목소리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어…. 아직 서원이랑 있지.”

“……?”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자,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는 그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를 담아 슬쩍 웃어 보인 나는, 휴대폰을 반대로 옮기며 임아린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목소리가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

그러자.

[ ……. ]

숨이 막힐듯한 짧은 침묵이 이어졌고.

[ 아냐. 그냥, 들어갔나 해서. ]

뒤늦게 대답이 돌아왔는데….

묘하게 말투가 딱딱하고 차가운 게,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뭔가 있구나.’

임아린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며 그녀를 조심스레 달래보았다.

“곧 갈 거야. 끝나면 바로 연락할게.”

[ …응. ]

그녀는 짧은 대답과 함께 전화를 뚝─ 끊어버렸고,

그녀가 평소엔 절대 말없이 전화를 끊지 않는다는 걸 떠올리며, 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뭐지…?’

그렇게 휴대폰을 품에 넣은 뒤.

“미안. 끊기가 좀 그런 전화라….”

“…가야 해요?”

“아냐, 조금 더 있어도 돼.”

일단 선약이었던 진서원의 일정부터 맞추려고 했다.

“…그냥, 나중에 가요.”

“응? 아냐, 진짜 괜찮아.”

“…전 다음에 가도 돼요.”

그런데 그녀가 내 사정을 봐준 듯, 다음을 기약해왔고,

“고마워, 서원아. 내가 꼭 보답할게…!”

나는 진서원을 집까지 바래다준 뒤, 곧장 임아린의 집으로 향했다.

*

띵동─ 띵동─

“왜 안 받는 거야….”

임아린은 전화도, 인터폰도 받아주지 않았다.

인터폰에 불이 들어오는 걸 보면 분명 집안에 있는 건 확실한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강제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나….’

삑─ 삑─ 삑─ 삑─ 삐리릭─

이전에 받았던 비밀번호를 이용하여 현관으로 들어서자, 마치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진 집안이 나를 반겨주었다.

무드등은 물론이고, 집안에 모든 전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게, 명백히 이상해 보였다.

“아린아. 나 왔어! 아린아?”

나는 임아린을 부르며 천천히 집안을 거닐었다.

‘화장실에 있나?’

그런데 그때.

우당탕……

드레스룸 쪽에서 무언가 인기척이 들려왔다.

임아린인 것 같았다.

“…아린아? 안에 있어?”

곧장 드레스룸으로 향한 나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며 그녀를 불러보았다.

“무슨 일이야? 나 들어가도 돼?”

그러자.

“아, 안 돼…!”

안쪽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린아? 무슨 일이야? 나, 들어간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들어가겠다는 말과 함께 방문을 열어버렸다.

벌컥─!

그리고 그 순간.

“!”

엉망이 돼버린 방 한가운데, 풀썩 주저앉아있는 그녀와 마주하고 말았다.

부스스하게 흐트러진 은색 머리카락.

도대체 몇 벌을 꺼낸 건지, 잔뜩 널려있는 외출복들.

정작 그녀는 속살이 모두 보일 정도로 헐벗은 상태였고,

입술에 칠해진 립스틱까지 잔뜩 번져있는 게,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아, 아린아! 대체 무슨 일이야!”

화들짝 놀란 나는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 안 돼!!!”

그러자 갑자기 빽 소리를 지르더니, 옷가지에 자신의 얼굴을 폭 숨겨버렸다.

“보, 보지 마!”

임아린은 마치 내게 모습을 보이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몸을 벌벌 떨어대며 불안해했다.

“아린아….”

어딘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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