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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44화 (144/248)

144. 토벌 성공

거인 기사가 사용하는 단검은 보통의 단검보다 컸다.

거의 두 배는 됨직한 크기였다.

그러나 거인 기사의 손에 들리니 그냥 평범한 단검으로 보인다.

윌리엄은 자신의 얼굴을 찔러오는 커다란 단검을 본 순간 직감했다.

못 피한다.

그리고 설사 천운으로 저 단검을 피한다고 해도 그다음에 이어질 공격까지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어떤 공격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거인 기사들을 이렇게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서야 공격을 피하기는커녕 단순히 움직이는 것조차 간단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윌리엄이 계획한 전투가 아니었다.

윌리엄은 거인 기사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그들 사이를 헤집으며 치고 빠질 생각이었다.

실제로 처음 부딪친 두 명의 거인기사를 죽일 때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윌리엄이 두 명의 거인 기사를 죽인 이후로 상황이 변했다.

적은 만만하지 않았다.

*

나를 향해 달려드는 거인 기사들은 둘 또는 세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무기로 나를 공격하려고 하기보다는 손으로 잡거나 끌어안으려고 했다.

나는 기형 철창을 휘둘러서 달려드는 거인 기사들의 손과 팔을 연이어 날려버리며 움직였지만 결국은 생명을 도외시하고 몸을 던지는 거인 기사들의 저돌적인 태클에 말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숫자로 밀렸으니 뒤로 물러서서 용병들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형 철창을 잡고 매달리는 거인 기사의 붉은 눈을 봤을 때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상적인 기사의 눈이 아니었다.

폭력의 욕구에 사로잡혀 있는 야생동물이 그곳에 있었다.

지금 당장은 고삐에 묶여서 명령에 따르고 있지만, 언제라도 미쳐 날뛸 수 있는 맹수의 눈이었다.

반면에 얼굴은 무표정한 것이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얼굴에서 목 아래로 이어지는 흉터와 상처는 단순히 부상의 흔적으로 보기에는 이상했다.

마치 이리저리 찢어졌던 천을 어설프게 짜집기를 하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놈들은 뭐지?

거인족이 아니었나?

거인족이 아니라면 정체가 뭐지?

설마 저 흉터가 몸 전체에 걸쳐서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내 경험과 본능이 함께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향해 찔러오는 단검을 발견한 순간 깨달았다.

이것은 덫이었다.

규격 외의 아주 강한 적을 잡아내기 위해 거인 기사라는 수단으로 만든 덫.

일단 여기에 걸리면 덫을 부수기 전까지는 빠져나올 수 없다.

아니면 덫에 걸린 채 채 집중 공격을 당해서 죽던가.

거인족을 기사로 끌어들인 것인지 아니면 거인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기사로는 상대할 수 없는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정상이 아닌 자들을 만들어 낸 것은 틀림없다.

자신의 생명조차 돌보지 않고 명령에 따라 적에게 무조건 돌격하는 세뇌된 자들을 말이다.

기형 철창에 매달린 거인 기사의 얼굴이 바로 위에 있었다.

내 다리를 끌어안은 채 거친 숨을 내쉬는 거인 기사의 팔도, 내 팔을 끌어당기고 있는 거인 기사의 손아귀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억울함과 당혹감이 섞인 감정으로 나를 향해 찔러오는 단검을 노려보았다.

내가 무슨 용이라도 되냐?

내가 그 존재라도 되냐?

이놈들은 내게 왜 이리 과하게 덤비는 거야?

내 심장이 격렬하게 뛰며 내 감정에 반응했다.

내 격앙된 감정이 분노로 변했다.

마음가는 대로라면 지금 당장 저자들을 다 때려죽이고 싶다는 감정이 분노와 함께 나를 지배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세상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찔러오는 단검이 불과 한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천천히 내게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얼굴을 노리던 단검이 살짝 궤도를 낮추어 내 목을 노리는 것까지 판별할 수 있었다.

거인 기사의 움직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인 기사의 꿈틀대는 근육 하나하나까지 살펴볼 수 있을 정도였다.

세상이 갑자기 느려졌을 리가 없으니 내가 갑자기 빨라진 것이겠지?

그렇다면 나는 세상보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

손을 뻗어서 단검의 옆면을 쳤다.

단검이 총알에라도 맞은 것처럼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허공에 떠서 빙글빙글 느릿하게 도는 단검의 파편이 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기분이 좋은 편안함.

마치 빛의 기둥 안에서 무엇인가를 흡수할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내보낸다는 느낌이라는 것?

······아무래도 서둘러야겠다.

이대로라면 언제 이 현상이 사라질지 모른다.

나는 내 다리에 매달린 자를 떼어내기 위해 한 쪽 다리를 높게 들었다.

그리고 강하게 아래로 내리찍었다.

그렇게 하기까지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약간의 움직임은 있었다.

깨어진 단검의 파편이 두 바퀴 허공에서 돌아가는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짧은 시간은 누군가가 고통을 호소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팔이 부러지면서 팔뼈가 내부에서 산산조각이 난 거인 기사라고 하더라도 놀란 얼굴을 하는 정도가 다였다.

아직 통증조차 느끼기 전이었던 모양이다.

기형 철창을 회전시키자 채찍을 끊어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기형 철창을 잡고 있던 거인 기사의 손가락이 부러져 나갔다.

잠깐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손가락이 부러지며 철창을 놓친 거인 기사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며 팔을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의 속도가 전보다 빨라졌다.

시간이 얼마 없겠다.

나는 그대로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걸으면서 달려들던 거인 기사의 무리 사이에서 벗어났다.

마치 느리게 움직이는 인형들 사이를 걷는 느낌이었다.

나는 기형 철창을 휘두르며 내가 가는 길에 있는 거인 기사들을 베어냈다.

그들은 한 명씩 띄엄띄엄 있는 것이 아니라 몇 명씩 한데 모여서 이동 중이었기에 철창을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한꺼번에 여러 명의 목을 자를 수 있었다.

베고 자르고 찔렀다.

슥슥 잘리는 육체의 연약함은 갑옷으로 막으려 해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심지어 갑옷조차 같이 잘려나가서, 땅바닥에 나뒹구는 완갑의 안에는 아직 피를 흘리는 팔이 들어있기도 했다.

거인 기사들의 무리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형 철창의 위력 아래에서 죽어간 거인 기사는 20명이 넘었다.

그 와중에도 조금씩 내 세계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거인 기사들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내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냥 서서 당했던 처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조금은 움직이다가 당한다는 것은 큰 진전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저항 하지 못하는 자를 베는 것은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적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에서 분노가 사그러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느리기만 했던 세상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웅웅거리던 주변의 소음도 정상적인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를 감싸고 있던 빛의 기둥 역시 점점 엷어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격렬하게 고동치던 심장의 맥동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

용병 대장 노렌은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윌리엄 백작은 아무래도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적진을 향해 가장 앞에서 돌격해 들어가는 윌리엄을 본 순간 노렌은 대기하던 용병부대에게 모조리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잘못하다가는 윌리엄 백작을 잃을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감이 내린 명령이었다.

그러나 윌리엄 백작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순식간에 거인 기사들에게 뛰어들어서 둘이나 쓰러뜨렸다.

그리고 수십 명의 거인 기사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노렌은 윌리엄 백작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공포에 질렸다.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거인 기사들이 연달아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목이 날아가고 팔이 잘리는 모습은 좀 떨어져 있는 노렌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윌리엄 백작 혼자서 근 20여 명에 달하는 거인 기사들을 쓰러뜨린 것이다.

뭔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심지어 윌리엄 백작의 주변에 흐릿하기는 했지만 빛으로 된 기둥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거인 기사를 보고 주눅이 들었던 용병군은 윌리엄의 모습에 두려움을 떨치고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말을 타고 있던 두 명의 기사만 다시 고프리의 상단으로 탈출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용병군의 공격에 휩쓸려 갔다.

거인 기사들을 상대하는 용병들은 활과 쇠뇌를 이용해 거인 기사들을 사냥했고, 피치 못하게 가까이 붙게 되면 창으로 견제하는 사이에 그물을 던지고 활과 쇠뇌를 쏘아서 처리했다.

만약 거인 기사의 숫자가 충분했다면, 하다못해 20명만 넘었어도 이런 전법은 별 효과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은 이가 불과 10여 명에 불과한 거인 기사들은 원거리 무기로 공격해 들어오는 7배에 달하는 용병군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잃은 후였다.

노렌은 그대로 용병군을 이끌고 고프리의 상단까지 들이쳤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인 고프리는 도망친 후였다.

옌센이 내보낸 연락선은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안처트의 전투함에 나포되었다.

양 측의 전력에서 너무 차이가 나서 연락선이 전투 없이 곧장 백기를 들어버린 것이다.

항복은 했지만 나름대로 자존심을 챙기려고 했던 선장과 전령은 반쯤 눈이 돌아간 안처트에 의해 알고 있는 것을 다 불어야 했다.

그들은 몇 차례나 바닷물을 마시며 머리 속에 있는 것을 다 끄집어 낸 후에야 포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안처트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추가적인 준비를 위해 귀항하기 보다는 이대로 적을 친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혹시 다른 경로로라도 정보가 들어간다면 낭패라는 생각에서였다.

뱅트손 공작이 준비해놓은 또 하나의 수단은 천인대였다.

천 명에 달하는 정예 병사들이 어촌 하나를 점거한 채 명령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의 대기 생활은 필연적으로 태만과 나태를 부르는 법이다.

뱅트손의 군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도둑잠을 자던 견시는 멀리서 다가오는 안처트의 전투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으로 예외없음을 증명했다.

그것으로 그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새벽 미명에 어촌에 들이닥친 안처트의 용병들은 뱅트손의 배에 불을 지르고, 잠에 빠져 있는 뱅트손의 군대를 도륙했다.

혼란에 빠진 뱅트손의 군대는 어떻게든 병사들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안처트의 용병군 숫자가 더 적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살아남은 대부분의 병사들은 항복을 했고, 소수만이 탈출을 선택했다.

그르고 탈출을 선택한 자들 중에서 뱅트손의 영역까지 돌아간 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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