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45화 (145/248)

145. 마스터 요한 퇴진

*

나와 함께 움직였던 용병 부대의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50여 명의 사상자가 났고, 그 중 사망자는 30명 남짓이었다.

사망자의 비율이 좀 높기는 했지만, 정예 기사를 상대로 전투를 치른 것을 감안해 보면 정말 잘 싸운 것이다.

비록 내가 뱅트손의 덩치 큰 기사들 중 2/3에 달하는 자들을 죽이거나 쓰러뜨린 후라고 해도, 용병들이 나머지 기사들을 큰 피해 없이 전멸시킨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공적이었다.

하물며 그들이 상대한 자들은 일반적인 기사가 아니라 칼마르 시를 제압하기 위해 파견한 특별한 기사였다는 것도 감안해야 했다.

어쩌면 그들은 그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패들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용병들은 그런 자들을 상대로 이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번 전투를 통해 용병에 대해 가지는 내 생각이 많이 변화했음을 느꼈다.

시민이 군인이 되고, 공동체를 지키는 군사적 전통 아래에서 군경험을 쌓았던 나로서는 용병이 계약에 따라서 공동체를 지킨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감정적인 거부감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숙련된 용병이 적극적으로 명령에 복종하고, 영지군 못지 않게 용감히 싸우는 것을 보면서 내 감정도 생각도 전과 달라졌다.

내가 깨어난 이 곳은 충성조차도 계약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세계다.

용병들은 계약이 존재하는 한 칼마르의 지배자에게 충성을 바치고 명령에 따를 것이다.

결국 나는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숙련된 용병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은 연이어 전투를 치르며 자연스럽게 내 손에 집중된 용병 부대의 명령권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원래라면 전투가 끝나는대로 소속과 임무에 따라 용병 부대를 원상복귀 시켜야 했지만, 이제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나는 내 손에 들어온 용병부대의 명령권을 다시 이곳저곳으로 나누어서 넘기는 바보짓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들 눈치를 보며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선수를 치기로 결심했다.

결정을 내렸으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일단 나는 사재를 털어서 전투에 참전한 용병들에게 포상금을 뿌리고, 특별히 주목할 만한 공적이 있는 자들에게는 내 이름으로 기사의 직위를 부여해 주었다.

관행적으로 경으로 불리던 용병대장들 중 일부는 진짜 경이 되었다.

그리고 계약 기간의 연장을 시의회에 요구했다.

기존에 맺었던 계약에 더해서 3년을 더 연장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시의회의 반응은 일단 반대였다.

물론, 시의회의 의장이 반역자로 체포된 지금 내 명령에 토를 달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럴만큼 강단있는 의원도 없었다.

단지,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멜러 시장이 담당자이니만큼 대표로 반대 의견을 내고 모두가 그 의견에 무언의 찬성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낸 것이다.

“장기 계약은 위험이 너무 커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백작 각하.”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은 장기 계약을 했는데 아무 일도 없으면 손해라는 뜻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칼마르 주변을 보고도 앞으로 아무 일이 없으리라는 예상을 하는 겁니까? 설마 그럴 리는 없지 않습니까? 뱅트손과 스케티와의 전투가 어떤 식으로든지 마무리되면 다음 목표는 남쪽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예산이 부족합니다. 추가 예산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계획에 없는 특별세를 갑자기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영지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자칫 소요라도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특별세를 걷으면 영지민들보다는 백작령의 유력자들에게 부담이 집중된다.

멜러는 그 부담을 지기 싫다고 영지민들을 방패로 내세우는 중이었다.

“세금을 걷겠다는데 좋아할 사람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백작님.”

그의 말에 동의하는 내가 의외였던지 멜러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의아하다는 눈빛이었다.

“영지민에 대한 추가 징세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겠습니다. 영지민이 불만을 갖는 일은 리네아 백작님도 원하시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약속을 해주신다면 저희 역시 계약 기간의 연장에 동의하겠습니다.”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는 추가 징세를 하는 대신 다른 자금을 끌어들여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백작님처럼 이렇게 시의회에 미리 의논을 해주신다면 얼마든지 협조해 드릴 수 있습니다.”

“미리 의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백작님. 하지만 리네아 백작님의 주변 사람들은 그걸 모르더군요.”

뼈가 있는 대답이었다.

시의회와 백작의 가신집단 사이에 있는 갈등의 편린을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어쨌든 그것은 용병들에게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계약이 연장되었다는 소식이다.

이것으로 나는 용병 부대의 대장에서 신참까지 모두 내 지지자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돈과 작위로 지지를 사들인 것이지만 내가 그들 앞에서 보인 실력 또한 지지의 이유 중 하나는 된다고 생각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이 금언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온 배경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금언은 통일 국가가 멸망하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에서 온갖 사건이 벌어지던 난세의 혼란기에 나왔다.

믿을 것은 오직 무력 뿐인 난세가 아니라면 쉽게 공감받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러나 난세의 대혼란기라면 진리라고 할 만한 발언이다.

적어도 금언으로는 받아들여질만한 발언인 것이다.

나는 지금이 난세이고 혼란기라고 생각한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칼마르에 있는 무력 중 1/3을 넘어 절반 가까이 장악한 나는 권력자가 된 것일까?

진짜 권력자.

반대하는 자를 그의 자리에서 끌어낼 수도, 외부로 추방할 수도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권력자 말이다.

다른 사람이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도 내 권력을 인정하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영지군을 방문하는 것으로 말이다.

마스터 요한은 갑자기 영지군의 병영을 방문한 나를 병영 입구까지 나와서 반겨 주었다.

병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시설도, 무장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자세히 따지자면 달라진 것도 있기는 했다.

대기하고 있는 영지군의 숫자가 좀 더 늘고, 마스터 요한과 함께 있는 기사들의 안색이 어둡고 조금은 기가 죽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모습이랄까?

나는 마스터 요한과의 독대를 요청했고, 내 요청은 금방 받아들여졌다.

마스터 요한은 내게 아무런 거부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조금 심한 요구를 했다.

“마스터 요한. 리네아의 보호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도 빽빽하게 경호 기사를 세워 놓았지만,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하루종일 붙어 있고 싶습니다만, 그게 안되니 부탁드릴 수 있는 분은 미스터 요한 뿐입니다.”

이거, 영지군에서 손떼라는 소리다.

숙청해야 할 사람이라면 ‘너 나가’라고 선언하고 탈탈 털어버리겠지만, 마스터 요한은 같이 가야 할 사람이지 숙청해야 할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요구 사항은 강했지만 어조는 어르고 부탁하는 어조였다.

마스터 요한도 칼마르의 권력 중심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서 내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금방 이해했다.

그리고 누가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지도 금방 집어냈다.

“시의회 의원들의 불만이 심한가보지?”

“예. 반란을 하겠다고 나서는 놈이 나왔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만 볼 정도더군요. 이대로 내버려두면 다음에는 한 손 거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자들은 원래부터 그랬어. 선대 백작님이 계실 때에는 눈치만 보던 것들이 리네아 백작님께는 이를 드러내더군. 나도 좀 골라냈고, 자네도 좀 골라냈는데도 이 모양이군.”

마스터 요한의 입장도 이해가 갔지만 나는 그에게도 강하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대개의 경우 문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면 마스터 요한께도 책임이 있습니다. 리네아를 너무 과하게 보호했습니다.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린 백작의 눈과 귀를 막고 전횡하는 측근으로 보였을 겁니다. 그것도 외지에서 온 신분을 알 수 없는 자가 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선대 백작님을 형님으로 모셨어. 리네아 백작님도 나를 숙부처럼 대한다고! 내가 이곳에 뿌리를 내린 세월이 얼마인데 외지인 취급인가?”

“외지인 취급을 면하려면 3대는 지나야 한다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내 말에 마스터 요한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안다.

그가 아직도 외지인 취급을 당하며 경계를 사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칼마르 백작가의 인정이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왔고, 실제로 얼마전까지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대 백작이 죽고, 리네아 여백작까지 의식을 잃어버리니 그의 신변을 보증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의회의 불만을 계속 무시하는 것도 곤란했다.

무엇보다 이런 시기에 칼마르의 역량이 계속 쪼개져서 서로 견제하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했다.

마스터 요한은 한 걸음 물러서기로 했다.

직책을 벗어난다고 해서 그의 영향력까지 사라질 정도는 아니었기에 별로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의 제자인 기사들이 영지군 곳곳에 박혀있는 이상 영지군으로 쓸데 없는 짓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에게 영지군을 부탁할 건가?”

“엘리아슨이 어떻습니까?”

“뭐, 그 정도라면.”

“그리고 리네아의 경호는 반드시 맡아 주셔야 합니다. 지금 믿고 맡길 사람이 없습니다. 충성심이 아니라 실력면에서까지 믿을 수 있는 분은 마스터 요한 뿐 입니다.”

“그 점은 걱정말게. 내, 곧장 영주성으로 돌아가지.”

마스터 요한은 생각보다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도박이 성공했다.

의식을 잃고 잠자듯이 누워있는 리네아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리네아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신변을 지키며 새로운 암살 시도를 막을 것인지,

아니면 리네아의 신변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영지의 반란을 정리할지를.

그리고 나는 영지의 반란을 제압하는 쪽을 선택했다.

내 입장에서 이것은 도박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려지지 않은 암살자가 아직 영주성에 남아 있는 것이라면 내 선택으로 리네아는 죽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있을 지도 모를 암살자를 막기 위해 반란을 방치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네아는 칼마르의 백작이다.

칼마르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걸 사람이다.

그런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반란을 방치한다고?

그녀가 그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그것도 외부 세력과 연결된 반란을?

게다가 나 역시 반란을 방치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반란자들이 외부와 연합해서 세력을 키우면 백작성도 위험하다.

리네아의 안위를 생각하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리고 설사 마스터 요한이 반란자들을 제압하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리네아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엉망이 된 영지를 보게 되는 것도 싫었다.

다행히 도박은 성공했다.

리네아는 아직 안전하고, 반란 세력은 정리했다

이제는 암살 미수에 대해 시선을 돌릴 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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