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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43화 (143/248)
  • 143. 윌리엄, 잡히다

    전투를 벌이면서 계속 느껴온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무기는 내게 너무 가벼웠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수수깡으로 만든 무기를 휘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소위 말하는 손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전투 망치나 대형 도끼 같은 종류의 무기가 좀 낫기는 했는데 그것들 조차도 내가 깨어났던 초기에 사용하며 느꼈던 묵직한 느낌을 더는 주지 못했다.

    그런 내게 영감을 준 것이 아르보그 공작의 비밀 실험실에서 만났던 거인의 무기였다.

    압도적인 힘으로 내려치던 그 철로 된 봉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온 무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간혹 써왔던 철봉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인이 사용하던 무기를 본떠서 내 나름대로의 전용무기를 만들었다.

    구조는 단순하지 않았다.

    먼저 2미터 정도가 되는 철로 된 봉을 기본으로 했는데 나사를 돌리는 방식으로 둘로 나누기도 하고 다시 결합해서 쓸 수도 있도록 했다.

    그리고 철봉의 한쪽 끝에는 찌르는 창날을 붙이고, 다른 쪽에는 베는 칼날을 붙였다.

    결국 어딘지 모르게 할버드를 닮은 기형 철창을 만든 것이다.

    위력은 마음에 들었다.

    대장장이가 칼마르의 이인자를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써서 운석철을 섞은 철을 사용했고, 단련하는데에도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하더니 색깔부터가 일반 철과 달리 검은색으로 윤기가 흘렀다.

    전체가 철로 되어 있어서 무게도 묵직하니 휘두르는 맛도 나고, 파괴력도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베는 칼날을 붙인 모양새가 언월도를 닮은 쪽은 휘두를 때 호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실제로 사람을 토막내기 시작하면 느낌이 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그리고 그 느낌이 어떨지는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쪽이나 저쪽이나 서로의 모습을 발견했으니까.

    몰려 다니는 사람의 숫자가 몇 십 명만 되어도 숨어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7백명에 달하는 용병들이 몰려오는데 적들이 눈치 채지 못하기를 바란다면 현실 감각이 없는 거다.

    과연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프리의 상단에서 나온 기사들은 우리를 발견하고 무기를 꺼내들었다.

    거인을 방불케 하는 자들이 무기를 꺼내면서 계속 다가오니 제법 압박감이 느껴졌다.

    용병들도 만만하지 않은 적을 보고 긴장하는 것이 등 뒤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자들을 어디까지 상대할 수 있을까?

    내가 칼마르의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은 것은 항구에서의 전투 때부터였다.

    지원을 위해 몰려오던 해적 겸 선원들을 혼자서 쓸어버리면서 내 명성이 업계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알려졌다.

    지나놓고 생각해 보면 조금 부끄러운 일이기는 했다.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없던 때라서 과할 정도로 힘을 주고 적을 상대해 버렸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대단하다는 인상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실력이 떨어지는 자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얻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한단계 더 발전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달까.

    그렇다면 이 자들을 상대로는 어떨까?

    나보다 실력이 보잘것없는 자들을 상대할 때조차 얻는 것이 있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강한 자들을 상대로는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갈증이 느껴졌다.

    마치 몇 단계는 한꺼번에 레벨업을 할 수 있는 단계를 앞두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둘로 나누어져 있던 기형 철창을 잇대어 돌리기 시작했다.

    나사의 흠을 따라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 뻑뻑했다.

    둘로 나누어져 있던 기형 철창이 하나로 합쳐져서 완성되기까지는 심호흡 크게 한 번 할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완성된 기형 철창을 양손으로 잡고 적을 향해 겨눴다.

    “백작 각하. 윌리엄 백작 각하. 설마 아니겠지요? 안 됩니다. 절대로!”

    “노렌. 지휘를 부탁하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경험했던 노렌은, 완성된 기형 철창을 앞으로 겨누는 나를 보는 순간 기겁을 하고 나를 말렸다.

    그의 입장에서는 여기 있는 용병 부대가 전멸하는 것보다 내가 부상을 입는 것이 더 큰일이니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다.

    “뭐 하나! 당장 돌격해! 백작 각하가 혼자 가게 해서는 안 돼! 돌격하라고!”

    노렌은 앞으로 달려가는 나를 보자 지체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노렌의 명령에 따라 용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면 공격의 선봉에 내가 서게 된 모양새다.

    마음에 들었다.

    나는 적을 향해 달려갔다.

    *

    수십 명이 모여 있는 진형을 향해 한 명이 돌격해 온다는 것은 자살 비슷한 짓이다.

    게다가 그 수십 명의 대부분이 기사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반응이 늦었던 것이.

    윌리엄은 기형 철창을 앞으로 크게 휘두르며 거인 기사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윌리엄의 일격을 받아낸 자는 가장 앞에 나와 있던 거인 기사였다.

    그는 자기 키에 육박하는 거대한 검을 양손으로 잡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거대한 검은 그의 실력을 따라주지 못했다.

    분명 윌리엄의 일격을 제대로 받아냈지만 거대한 검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나갔다.

    기형 철창에 붙은 언월도의 칼날 역시 살짝 깨졌다.

    두 무기가 충돌한 바로 그 자리만 아주 약간 깨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좋은 질기고 좋은 철로 만든 날이 부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 차이 덕분에 윌리엄의 일격은 거인 기사의 머리를 제대로 가격했다.

    과연 운석철을 섞어서 만든 무기답게 예리하고 단단했다.

    거인 기사의 투구는 단숨에 쪼개지고 그 안의 머리 역시 비슷한 꼴이 되었다.

    즉사였다.

    거인 기사는 선 채로 뒤로 넘어갔다.

    제대로 막았는데도 품질이 떨어지는 무기 때문에 죽은 것이 억울하다는 듯 쓰러져서도 두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2인 혹은 3인 단위로 뭉쳐서 다가오던 거인 기사들은 바로 코앞에서 홀로 날뛰는 적을 봐야 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별로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윌리엄은 거인 기사 하나를 쓰러뜨리자마자 기형 철창을 한바퀴 돌려 회전력으로 힘을 보탠 후 왼쪽에 있는 거인 기사를 향해 비스듬하게 휘둘렀다.

    왼쪽의 거인 기사는 강하게 휘둘러오는 칼날을 정직하게 막기보다는 자신의 칼로 비스듬하게 흘리면서 오히려 윌리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주먹을 윌리엄의 얼굴을 향해 내질렀다.

    건틀릿을 끼고 있는 손은 그 자체로 치명적인 흉기나 다름없다.

    어떤 기사들은 건틀릿으로 때리나 둔기로 치나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그런 위험도 실제로 맞아야 위험한 법이다 .

    맞지 않는다면 위험은 없는 것이다.

    윌리엄은 머리를 살짝 기울이는 것만으로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가볍게 피해 버렸다.

    거인답게 팔의 길이는 길었지만 그것이 정확함이나 빠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팔의 길이가 길면 또 얼마나 길겠나.

    윌리엄과 거인 기사의 팔 길이 차이가 막 몇 미터씩 나고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만약 거인 기사가 윌리엄의 얼굴을 때릴 수 있다면 윌리엄도 거인 기사의 얼굴을 때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거인 기사는 필사의 주먹이 빗나간 순간부터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로 뒤로 물러서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윌리엄은 주먹질 같은 애매한 결과보다는 단숨에 적을 죽일 수 있는 확실한 한 방을 원했다.

    반바퀴가 휙하고 돌아간 윌리엄의 기형 철창에 달린 날카로운 창끝이 거인 기사의 얼굴을 노리고 찔러들어갔다.

    거인 기사는 다급하게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지만 그 정도로는 기형 철창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얼굴을 노렸던 기형 철창의 창촉은 마지막 순간에 궤적을 바꿔 목덜미를 꿰뚫었다.

    다시 한번 즉사였다.

    한걸음에 하나, 다시 한걸음에 하나였다.

    순식간에 거인 기사 2명이 쓰러졌다.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진 사건에 거인 기사들은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거인 기사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적을 상대하고자 만들어진 자들이었다.

    그래서 압도적인 적을 상대로 쓸려나가는 상황을 상정하여 훈련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투입된 전투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적은 만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적을 쓸어버리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거인 기사들은 자신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적과 마주친 것이다.

    거인 기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윌리엄은 두 명의 거인 기사를 연달아 처치하고 난 후 곧장 다음 목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던 거인 기사였다.

    이 자 역시 지금까지처럼 단숨에 접근해서 후려칠 생각이었다.

    윌리엄이 개인적으로 만든 기형 철창은 예리함 뿐 아니라 그 자체의 충격량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무기였다.

    아무리 거인 기사라도 해도 한 대라도 맞으면 위험했다.

    즉사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뼈는 단숨에 부러져 나갈 것이라고 기대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윌리엄은 오른쪽의 적에게 뛰어들기 전에 적들의 기세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약간 여유있고, 심지어 일부는 풀어져 있었던 분위기가 바싹 조인 현처럼 팽팽해졌다.

    살기가, 그리고 투기가 느껴졌다.

    윌리엄이 숨을 들이키며 본능적으로 힘을 그러모을 때 거인 기사들이 짝을 지어 달려들었다.

    2명, 3명씩 짝을 지어 한꺼번에 달려든 거인 기사들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레슬링의 테클을 하듯 윌리엄을 향해 몸을 던져왔다.

    어떻게 보면 이상한 장면이었다.

    윌리엄보다 1.5배는 큰 덩치들이 윌리엄을 향해 몸을 던지며 어떻게든 윌리엄을 잡아보려고 손을 뻗는 것이다.

    물론 윌리엄은 그들의 뜻대로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윌리엄은 그의 다리를 잡겠다고 몸을 던진 거인 기사의 뒷덜미에 창촉을 꽂으며 창대를 의지해 몸을 공중에 띄웠다.

    그렇게 허공에 뜬 상태에서 기형 철창을 크게 휘둘러서 정면으로 달려오는 거인 기사의 팔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을 이용해 다시 한 번 더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윌리엄을 잡겠다고 달려든 거인 기사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윌리엄의 전투 신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 몸을 띄운 장소에서 몇 미터는 떨어진 곳에 착지했지만 상황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거인 기사와 가까운 곳으로 착지해서 대번에 몰려온 거인 기사들과 대치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윌리엄은 왜 거인 기사들이 갑자기 미쳐 날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원인을 파악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그들로부터 잡히지 않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수십 명이 손길을 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인족이 윌리엄을 잡기 위해 내미는 손 몇 개를 잘라버린 것이 한계였다.

    결국 누군가가 윌리엄의 다리를 잡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

    일단 윌리엄이 멈추자 다른 누군가는 윌리엄의 팔을 잡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윌리엄의 기형 철창을 잡고 늘어졌다.

    이렇게 적들이 윌리엄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늘어지는 사이 누군가가 단검으로 윌리엄을 찔러버리면 끝장이다.

    과연 윌리엄은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단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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