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63화 (63/248)

63. 암살 대신 할 수 있는 것.

이곳 칼마르 시에서 평범한 서민의 주택이라는 것은 작은 마당이 딸린 방 2~3개짜리 집을 말한다.

마당 옆에는 창고와 부엌이 붙어 있다.

당연하겠지만 방음도 단열도 신경을 안 쓴 흙벽돌집이다.

그리고 암살단이 지금 은신처로 쓰고 있는 곳이 그런 곳이었다. .

나는 암살단의 은신처에 조용히 들어갔다.

마당에 설치해 놓은 경보용 트랩을 피해서 건물 벽에 붙으니 안에서 떠드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형제여. 그대가 탈출해왔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이것이 함정일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것은 그대도 알 거요."

"자기들끼리 권력 다툼을 하느라고 나를 이용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추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장로님."

"혹시 다른 형제들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첫날에는 고문하는 소리를 들려 주며 저를 협박했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있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붕에 올라가서 확인해 보니 영주성 방향으로 멀리서 불빛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주변은 고요합니다. 장로님."

"음······"

"오면서 계속 확인했습니다. 맹세코 저를 추적해오는 자는 없었습니다."

"형제여. 나는 형제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오. 저들을 의심하는 것이지. 이곳의 귀족들은 한 때 아니카 자매조차 잡았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소. 반면에 우리에게 이곳은 낯선 땅이지.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오."

세 명이 안에 있다.

붉은 점도 셋이었다.

그러면 아니카 자매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안에 있는데 미니맵이 못 잡아내는 것인가?

아니면 여기에 없는 걸까?

"형제들이여. 아무래도 이곳을 떠야 겠소. 지금 당장. 느낌이 너무 안 좋은 것이 나는 불안하기만 하오."

"아니카 자매에게 연락을 하려면 약속된 시간이어야 합니다. 장로님."

"약속 장소에 음어를 남기고 떠나는 것으로 합시다. 그런데 아니카 자매의 부상은 여전하오?"

"예.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습니다. 무리하면 상처가 터질 겁니다."

"곤란하군. 음어를 남기는 곳에 은화도 숨겨놓는 것으로 하지. 이미 가지고 있는 돈이 있겠지만 그래도 홀로 돌아오려면 부족한 것보다는 풍족한 것이 더 나을 테니까."

좀 더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지금 들이쳐야 하나?

"나무를 더 넣어서 화로의 불을 키워주게.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은 다 태워버려야겠네."

그건 안되지!

나는 장로의 말을 듣자마자 하늘을 향해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작은 화살에 달린 불꽃은 밤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

증거를 불에 태우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겸사겸사 신호를 본 기사와 병사들이 몰려올 때까지 시간도 끌어야 하고.

그래서 나는 문을 부수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내부는 좁았다.

문을 부수고 목표까지는 두 걸음.

검을 휘두를 공간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른손에 단검을 쥐었다.

안에는 3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인상, 평범한 옷차림.

몇 번을 만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사람을 암살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들.

마치 독사와도 같은 자들이다.

그리고 그 위험성은 독사와 비교할 수도 없다.

과연 내가 단 두 걸음으로 그들에게 접근하는 동안,

그들 중 둘은 벽을 등지고 물러서면서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작은 쇠뇌가 하나.

바로 코 앞에서 내게 겨누어진 작은 쇠뇌는 이마에 총구를 갖다 댄 권총 못지 않게 위험한 무기였다.

젊은 남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나를 향해 쇠뇌살을 쏘았다.

코 앞에서 날아온 쇠뇌살을 보고 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쇠뇌가 나를 노리고 움직일 때,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보고 미리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다.

그리고 [체력 : MAX] 의 인간답게 날아오는 쇠뇌살을 보고 피하는 것을 해냈다.

어쩌면 총탄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반사신경이었다.

몸통을 틀자마자 쇠뇌살이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옷이 살짝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젊은 남자는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왼손을 뻗어서 젊은 남자의 쇠뇌를 잡고 당겼다.

쇠뇌를 잡고 버틸 려던 젊은 남자는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내게 끌려왔다.

나는 그대로 그의 양 어깨를 단검으로 찔러대며 무릎의 옆을 발로 내리찍었다.

뒤늦게 쇠뇌를 놓고 뒤로 몸을 빼려던 젊은 남자는 어깨에 박히는 단검과 무릎이 옆으로 꺽어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기절을 해 버렸다.

그리고 단검도 하나.

한 호흡도 되지 않는 순간에 쇠뇌를 들었던 젊은 남자를 무력화 시켰지만, 이 좁은 방안에는 아직 적이 2명 더 있었다.

장로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내 등을 노리고 단검을 찔러왔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마치 머리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뒤에서 공격해 오는 중년 남자의 단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뒤로 몸을 돌리며 단검을 쥔 쪽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내 단검을 중년 남자가 잡기 쉽게 좀 느리게 가슴으로 찔러갔다.

중년 남자 역시 단검을 쥔 쪽의 손목을 잡았다.

우리 둘은 서로 마주보고 서서 한 손으로는 단검을 쥔 상대의 손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단검을 쥔 채 적을 찌르려는 자세로 힘을 쓰기 시작했다.

중년 남자는 내게 손목을 잡힌 채로 단검을 찌르려고 용을 썼지만 나는 그의 손목을 쥔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대한 바위 사이에 끼이기라도 한 것 처럼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어떻게 든 해보려고 하던 그는 자신의 가슴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단검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내가 쥐고 있던 중년 남자의 손목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도 달라졌다.

결국 중년 남자는 쥐고 있던 단검을 떨어뜨렸다.

동시에 나는 손목을 놓으며 주먹으로 중년 남자의 턱을 갈겼다.

깔끔하게 들어간 훅이었다.

중년 남자는 내 손을 잡은 채 앞으로 늘어졌다.

여기까지 세 호흡 정도.

그럼 모두 합쳐서 네 호흡이다.

그것이 두 명의 암살자를 기절시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무너진 자 하나.

암살자들의 은신처를 찾기 위해 내가 풀어준 암살자는 벌벌 떨고 있었다.

그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저항하지도 않은 채 처음 볼 때의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두 명의 암살자를 제압할 때까지 그가 한 것은 멍청하게 나를 보는 것 뿐이었다.

고문당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마음이 나를 다시 보는 순간 아예 망가져 버린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암살자라고 해서 다 냉혹하고 뱀같은 자들은 아닌 모양이다.

내가 약간의 연민을 품고 그를 보고 있을 때 부서진 문으로 기사와 병사들이 밀려들어왔다.

그들은 3명의 암살자를 모두 잡아 묶어서 이송한 후, 암살자들의 은신처를 샅샅이 뒤졌다.

대낮처럼 불을 밝힌 채, 집을 아예 다 분해해 버릴 것처럼 달려든 병사들은 벽을 깨고, 마루 바닥까지 뜯어내면서 그들이 남긴 흔적을 뒤졌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니맵에 의지하여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아니카 자매라고 불린 여자를 찾지는 못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지만 역시 상태창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암살자들에게서 아니카 자매라고 불린 여자였다.

그녀는 사로잡혔던 형제 하나가 은신처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고, 자신의 형제들이 모두 꽁꽁 묶인 채 들것에 실려서 끌려가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

원래 실력이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다리에 부상을 입은 후로는 짐덩어리나 다름 없었다.

이렇게 존재감을 죽이고 조용히 숨어 있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형제들의 은신처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이 보인다.

검은 옷과 두건으로 자신을 숨긴 남자.

그러나 아니카는 그가 누구인지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마차의 그 남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독을 마신 자였다.

그 남자는 병사들에게 몇 마디의 지시를 내린 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서야 그녀는 지붕 위에서 천천히 몸을 뉘었다.

그리고 존재감을 더욱 죽였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완벽하게 사라졌다.

*

암살자들의 은신처에서 발견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금 약간, 다량의 무기, 몇 장의 문서가 다였다.

그리고  그 몇 장의 문서조차 암호로 되어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사로잡은 암살자들을 신문했지만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말도 하지 않아서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사실상 포기 상태였다.

그러나 내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

그것을 발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단서는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었다.

암살자들이 은신처를 어떻게 마련했는지 조사하다보니까 글렌 공작의 상단까지 닿은 것이다.

처음에는 암살자들이 은신처의 거주자들을 살해하고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었나 의심했는데 그게 아니라 상단 소유의 관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상단이 글렌 공작의 직영 상단 중 하나임을 알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한 때 이름을 떨쳤던 암살단이라고 해도 지금은 음지에 숨어 있는 비밀 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대놓고 외부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것이 무리인 것이다. 게다가 원래 칼마르 백작령이 활동 무대인 자들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들을 도와주어야 제대로 활동할 수 있으니 의뢰주가 지원을 맡는 것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암살단은 프로였지만 지원을 맡은 자들은 상단에 속한 자들.

그냥 지시를 받고 지원을 할 뿐 암살단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 할 가능성이 컸다.

그 결국 이런 식으로 꼬리를 남겨서 우리가 확신을 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글렌 공작에 대한 암살을 내가 이야기하자 리네아 여백작은 반대에 손을 들었다.

"윌리엄 경. 안 된다. 글렌 공작에 대한 암살은 동의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대로 방치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다. 암살의 상대가 영주 본인이어서는 안된다. 협박, 매수, 납치, 책략 뭐든지 다 가능하지만 암살을 수단으로 한다면 전쟁선포와 다르지 않다. 둘 중의 하나가 죽을 때까지 수단방법을 안 가릴텐데 나는 글렌 공작을 상대로 해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설령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칼마르의 중립 따위는 완전히 날아가고 말겠지."

동의한다.

칼마르는 중립을 명분으로 5년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남았지.

그런 말을 들으니 칼마르의 중립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나도 내키지 않았다.

내 작은 남작령도 칼마르의 중립이 있어야 안전할테니까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이걸 어쩐다.

"게다가 그대가 직접 암살에 나선 다니! 그런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 그대에게 너무 위험하다."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암살 시도나 막아내면서 앉아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글렌 공작이 그대를 암살 대상으로 삼았다가 실패했으니 그대 역시 글렌 공작에게 정치적인 공격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글렌 공작 역시 그 정도는 각오하고 벌인 일이다."

"어떻게 정치적인 공격을 한다는 겁니까?"

"최근에 비스뷔라는 항구도시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듣는 항구 도시입니다만."

"자유도시이기는 한데 실제로는 글렌 공작이 암중으로 장악한 곳이다. 그곳을 이용하는 것이다."

리네아 여백작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비스뷔라는 곳, 아무래도 여백작에게 거슬리는 곳이었던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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