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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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거래 (2)

강현수가 무너진 성문 앞에 착지했다.

크아아아앙!

그 순간 거대한 황금빛 드레이크 한 마리가 성난 포효를 내지르며 강현수를 향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로 가득한 커다란 입이 강현수를 한입에 삼켜 버릴 기세로 날아들었다.

휘익!

강현수가 검을 휘두르자.

서걱!

입을 쩍 벌리고 있던 황금빛 드레이크의 육신에 정수리를 기점으로 붉은 실선이 생기더니.

쿠웅!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한 번 해보자.’

콰콰콰콰콰!

전신이 핏빛 오러에 휩싸인 강현수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온갖 종류의 용종 몬스터들이 몰려들었지만.

캬아아앙!

키우욱!

모두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단 한 마리의 용종 몬스터도 강현수를 넘어서 성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홀로 용종 몬스터 군단의 진군을 막아서고 있는 강현수의 모습에 모두가 경악했다.

‘이 정도는 해야지.’

탐식의 검이 공격력과 공격 속도를 올려 주고 그것도 모자라 체력까지 회복시켜 준다.

수호의 반지가 온갖 방어 스킬을 발동시켜 강현수의 몸을 보호했고.

마력의 심장과 뱀피릭 오러가 무한대에 가까운 마력을 공급해 줬다.

어디 그뿐인가?

야성의 감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어오는 적의 공격을 인지하게 해 주고, 불멸의 성화는 상처가 생기기 무섭게 치료한다.

스텟도 빵빵했다.

강현수는 얼마 전

가 되었다.

다시 500레벨을 찍기는 했지만.

용종 몬스터들을 소환수로 만드느라 새롭게 올린 레벨의 스텟의 상당수를 소모했다.

그 탓에 레벨 업을 통해 올린 강현수의 스텟은 대략 200레벨대 플레이어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간 올린 업적, 누적된 스텟, 기존 스텟을 증폭시켜 주는 연대장 스킬과 야수화 덕분에.

순수 스텟 자체는 랭커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강현수가 정신없이 용종 몬스터들을 베어 넘겼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후략……

500레벨을 찍은 상태임에도 레벨이 미친 듯이 상승했고.

강현수는 미분배 스텟이 생기는 족족 힘과 민첩에 쏟아부었다.

스텟이 실시간으로 증가하자.

용종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고 있던 강현수의 힘이 더 강해졌고 속도가 더 빨라졌다.

강현수가 부서진 성문을 대신하자.

용종 몬스터들은 다른 성문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강현수를 뚫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곳을 노린 것이다.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이 모두 마룡 카라스를 상대하고 있기에 성문을 부수려는 상위 용종들을 막기 힘든 상태.

강현수 역시 몸은 하나였기에 다른 성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때 송하나와 투황이 나섰다.

송하나는 원거리 공격 스킬을 통한 포격으로 용종 몬스터들을 쓸어버렸고, 접근하는 놈들은 검으로 베어 버렸다.

투황은 모든 몬스터를 몸으로 직접 상대했다.

황금빛 오러에 휩싸인 투황의 두 주먹은 상중하를 가리지 않고 접근하는 모든 용종 몬스터들을 실시간으로 분쇄시켰다.

강현수, 송하나, 투황에 의해 성문이 가로막히자.

용종 몬스터들은 허무하게 죽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전방에서는 성벽 위의 플레이어들이 맹공을 펼치고 있었고.

후방에서는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용종 몬스터의 숫자가 실시간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워낙 숫자가 많기에 그러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성벽을 넘어서는 녀석들이 나왔다.

‘기본 병력의 숫자와 질 차이가 너무 심해.’

이러다가는 대도시 바란의 성벽이 용종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꽈아아아앙!

그 순간 커다란 픅발과 함께 성벽 위에 몰려들었던 용종 몬스터들이 일거에 쓸려 나갔다.

‘칼무스 공작?’

마룡 카라스와 싸우고 있던 칼무스 공작을 비롯한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이 대거 전장에 투입되었다.

‘마룡 카라스는?’

강현수가 전방을 주시했다.

그런 강현수의 눈에 어느새 꽁무니를 빼고 도망쳐 용종 몬스터 군단 속으로 파고드는 마룡 카라스의 모습이 보였다.

‘소환 해제.’

강현수가 마룡 카라스를 상대했던 인간형 소환수들과 용종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던 용종 소환수들을 소환 해제 했다.

인간형 소환수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었고.

용종 소환수들의 경우.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마룡 카라스의 손에 모두 소멸할 게 뻔했으니.

더 이상 소환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마룡 카라스는 갑자기 소환수들이 사라지자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크아아아아앙!

분노를 토해 내던 마룡 카라스가 커다란 포효를 터트렸다.

그 순간 물밀듯이 밀려들던 용종 몬스터 군단이 뒤로 물러났다.

‘우두머리라는 놈이 가장 먼저 도망쳤구나.’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후에 용종 몬스터를 후퇴시킨 것이다.

‘아쉽네.’

무란의 수호성 칼무스 공작이 스스로의 목숨마저 버려 가며 죽이려고 했지만.

결국 죽이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사실 쫓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오히려 마룡 카라스가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까지 싸웠다면?

패배하는 쪽은 아군이었을 확률이 더 높았다.

이렇게 무란 왕국과 용종 몬스터 군단의 첫 번째 전투가 끝났다.

* * *

‘어쨌든 회귀 전보다는 낫네.’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칼무스 공작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마룡 카라스의 숨통을 끊지는 못했지만.

다른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회귀 전 무란 왕국은 마룡 카라스와 용종 몬스터 군단의 침공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불과 하루 만에 대도시 바란을 비롯한 무란 왕국의 국토 1/5이 불타올랐다.

갑작스러운 기습이었기에 제대로 된 방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다 독충 군단의 습격으로 중하위권 플레이어들이 전력 외 판정을 받은 상태.

더군다나 중하위권 플레이어들이 몬스터들을 사냥하지 못한 탓에 개체 수가 증가한 중하위 레벨의 몬스터들이 용종 군단에 합류해 날뛰었다.

아군의 전력이 크게 소모되고 적군의 전력은 크게 증가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벌어진 전쟁이었으니.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대도시 바란이 함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용종 몬스터 군단의 1차 침공을 막아 냈다.

‘공간 이동 게이트를 통해 지원군이 도착하기만 하면 무난히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어.’

한 가지 의문인 점은.

‘도대체 왜 아직도 지원이 도착하지 않은 거지?’

공간 이동 게이트로 대규모 병력이 이동하기는 힘들다.

또 각국은 타국으로 향하는 공간 이동 게이트를 오픈하지 않았기에 국경은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같은 소규모 병력은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

국경 지대를 돌파하는 것도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이라면?

1시간 내에 주파가 가능하다.

전투가 시작되고 반나절 가까운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슬슬 로크토 제국을 비롯한 제후국들의 지원이 도착할 때가 되었다.

한데 아직 잠잠했다.

“자네가 부서진 성문을 막은 자인가? 칼무스 공작 각하께서 찾으시네.”

귀족으로 보이는 수인족의 말에 강현수가 순순히 그 뒤를 따랐다.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칼무스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

늑대 인간의 형태에서 평범한 수인족의 모습으로 돌아온 칼무스 공작은.

‘참 잘생겼네.’

푸른빛이 도는 백발과 백미를 가진.

‘연예인 뺨따귀를 후려치겠어.’

엄청난 미중년이었다.

“그대 덕분에 바란이 함락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네. 어린 낭인족 소년이 참 대단하군. 우리 낭인족의 홍복이야.”

칼무스 공작은 야수화를 사용하고 있는 강현수를 동족인 낭인족으로 착각했다.

‘낭인족인 칼무스 공작이 나를 낭인족으로 볼 정도면.’

그냥 낭인족인 척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직 전장에 나오기에는 어린 소년인데, 내가 다 미안하군.”

‘나 성인인데.’

야수화 스킬의 부작용으로 어려진 게 문제였다.

“마왕군과 싸우는 데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현수의 대답에 칼무스 공작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훌륭하군. 정말 고맙고 미안하네.”

‘고마워하지도 말고 미안해하지도 마.’

수명이 이틀 하고도 반나절밖에 남지 않은 칼무스 공작에게 공치사를 듣자니 양심이 콕콕 쑤셔 왔다.

“그런데 자네 무란 왕국어를 쓰지 않고 공용어를 쓰는 이유는 뭔가? 혹시 무란 왕국어를 모르나?”

현재 강현수는 야수화를 펼친 채로 한국어를 쓰면 아무래도 이상해 보일 거라 생각해 아틀란티스 차원의 공용어를 쓰고 있었는데.

아무리 자동 통역 스킬이 패시브로 발현된다고 해도.

같은 나라 사람끼리는 공용어보다 모국어를 쓰는 게 여러모로 나았기에 의아하게 생각한 공작이 물어보는 것이다.

“예, 모릅니다. 저는 로크토 제국 출신입니다.”

사실 지구 출신이라 모르는 거다.

그나마 회귀 전 30년 넘게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굴러먹었기에 공용어라도 익히고 있는 거였다.

“음, 그런가. 그래도 모국어는 익혀 두는 게 좋았을 텐데.”

칼무스 공작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틀란티스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수인족의 뿌리는 무란 왕국이다.

하지만 당연히 예외도 존재했는데, 타국으로 이주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수인족도 있었다.

칼무스 공작은 강현수가 그런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지.

무란 왕국에 대한 애국심이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공작 각하, 북문과 남문을 수비한 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부카쿠 백작이 송하나와 투황을 데리고 왔다.

“오오오, 그대들이 북문과 남문을 수호해 준 용사들이군. 그대들의 용맹과 투지에 경의를 표하네.”

칼무스 공작이 송하나와 투황을 칭찬했다.

‘투황에 대한 편견이 없어 보이네.’

투황은 토인족.

낭인족인 칼무스 공작의 입장에서는 편견을 가지고 있을 법도 한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셋이서 한 파티라지? 우리 무란 왕국의 미래가 참 밝군. 이렇게 어린 수인족들이 벌써부터 큰 활약을 해 주다니.”

오히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인간인 송하나보다는 같은 수인족에게 더 정이 가는 건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았다.

“내 그대들에게 큰 상을 내리겠네.”

칼무스 공작의 말에 강현수의 눈이 반짝였다.

‘상?’

칼무스 공작은 무란 왕국의 최고위 귀족이다.

거기에 더해 무란의 수호성이라는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그런 칼무스 공작이 상을 준다고 하니?

‘기대가 될 수밖에 없잖아.’

상을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준다면 받는 게 인지상정이지.’

선물을 거절하는 건 매너가 아니었다.

“내 그대들에게 남작의 작위와 영지를 하사하겠네.”

잔뜩 기대에 차 있던 강현수의 표정이.

‘이런 망할.’

엉망진창으로 구겨졌다.

‘아이템이나 스킬북을 줄 것이지.’

귀족의 작위와 영지.

아틀란티스 차원의 현지인이라면 기쁘게 받겠지만.

어차피 지구로 귀환할 예정인 강현수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선물이었다.

아니, 오히려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활동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무란 왕국에 있지만.

그저 잠시 머무를 뿐.

강현수는 다른 나라에서 활동할 일이 더 많았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는 법이지.’

무란 왕국의 귀족이 되면 그에 합당한 권리를 얻지만 반대로 그에 합당한 의무도 져야 한다.

‘이 능구렁이 같은 놈.’

귀족의 작위와 영지는 분명히 상이 맞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면?

무조건 무란 왕국에 눌러앉아야 했다.

이건 상임과 동시에 강현수를 무란 왕국에 묶어 놓기 위한 덫이었다.

‘반납해야겠어.’

방금 전까지 선물을 거절하는 건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도움은커녕 해만 될 선물이라면?

거절하는 게 옳았다.

“너무 과분한 상이라 받을 수 없습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강현수의 말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거두어 주십시오.”

송하나와 투황도 칼무스 공작의 상을 거절했다.

‘투황도 거절할 줄은 몰랐네.’

송하나야 강현수와 같은 입장이지만.

투황은 다르지 않은가?

“으흠, 그런가. 그럼 뭘 줘야 하지?”

칼무스 공작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근처에 있던 다른 귀족들은 표정이 굳어졌다.

감히 칼무스 공작이 직접 주는 상을 거절하다니?

거기다 평범한 상도 아닌 평민에게 귀족의 작위를 주는 엄청나게 큰 상이었다.

한데 그걸 칼무스 공작의 면전에서 거절했다.

이 얼마나 무례한 짓이란 말인가?

‘곤란한 일이군.’

칼무스 공작 역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다.

타 차원의 플레이어인 송하나는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낭인족으로 보이는 강현수와 토인족인 투황이 거절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로크토 제국 자유민 신분이기는 해도 수인족이라면 분명 그 뿌리는 무란 왕국일 터인데. 타국에서 자라서 그런지 무란 왕국에 대한 애국심이 별로 없군.’

칼무스 공작은 이미 셋의 신상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다.

그 덕에 강현수와 송하나가 로크토 제국의 자유민 신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강현수에게 타국 출신이냐고 물어본 건 단순한 확인 절차였을 뿐이다.

투황이 무란 왕국인 신분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저 둘과 어울리다 보면 결국은 로크토 제국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뛰어난 인재들을 로크토 제국에 빼앗기게 생겼다.

‘이들이 있어야 무란 왕국의 미래가 밝을 것인데.’

칼무스 공작은 무란 왕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수명은 고작 이틀이 조금 넘게 남았을 뿐.

그럼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이들이 나와야 했다.

칼무스 공작은 강현수와 투황이 훗날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운 공에 비해 과한 상을 내리고 무란 왕국에 묶어 버릴 생각이었는데.

그대로 거절해 버렸다.

‘그래도 작은 인연은 이어 놔야 한다.’

저 어린 나이에 랭커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녔다.

시간이 흐른다면?

완벽한 자신의 대체제가 되어 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어설픈 무란의 수호성이 아닌 진짜 무란의 수호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어떻게든 인연을 이어 놓는 게 좋았다.

권황과 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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