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2)
강현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낭인족처럼 변한 건 칼무스 공작의 스킬이었기 때문인가?’
그건 이해가 갔다.
한데 왜 늑대 인간 형태가 아니라 낭인족으로 변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왜 어려졌다는 말인가?
‘혹시?’
그때 강현수의 머릿속에 몇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난 인간이야. 그러니 야수화가 된 게 이 정도 수준일 수도 있어.’
애초에 반은 짐승이고 반은 인간인 수인족의 경우 야수화 스킬을 사용하면 인간을 베이스로 한 온전한 야수의 형상으로 변한다.
반면 강현수는 순수한 인간.
그러니 야수화가 되어도 반인반수 수준에서 멈추는 것도 이해가 갔다.
‘문제는 어려졌다는 건데?’
그건 수인족의 수명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수인족의 평균 수명은 인간의 두 배.’
23살인 강현수는 인간 기준으로는 성인이지만.
‘수인족 기준으로는 청소년에 불과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이해가 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왜 야수화 스킬을 썼는데 수인족이 된 거야?’
나이가 어려졌다는 건 수인족의 외형만 닮은 정도가 아니라.
‘육체 수명도 수인족에 맞춰졌다는 말이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원래 수인족이라는 종 자체가 인간인데 야수화 스킬이 패시브로 적용되어 탄생한 종족인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수인족은 플레이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있던 종족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강현수 자신이 수인족이 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뭐,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지.’
사실 늑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보다 수인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활동하기 편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점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였다.
‘어차피 스킬을 해제하면 다시 본래 모습을 돌아갈 수 있으니까.’
잘하면 두 개의 신분으로 활용할 수 있을 듯했다.
그 점은 강현수의 입장에서 상당히 큰 장점이 된다.
‘이 상태에서 다시 야수화 스킬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는 한데.’
아무리 레플리카 스킬이라도 중복으로 동일한 스킬을 복사할 수는 없었기에 그저 호기심으로 남겨 둬야 했다.
‘일단 전투부터 도와주자.’
강현수는 이번 전투에 인간형 소환수들을 모두 투입할 생각이었다.
숫자는 고작 17기에 불과했지만.
‘모두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를 베이스로 만든 녀석들이지.’
거기다 대대장과 중대장으로 임명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휘관의 축복까지 내린 녀석들이니만큼.
‘소환수라는 페널티를 어느 정도는 극복한 상태.’
이 정도 전력이라면.
마룡 카라스를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작해 볼까.’
강현수가 도왕을 부카쿠 백작의 앞에 소환시켰다.
챙!
“네놈은 누구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부카쿠 백작의 호위들이 도왕의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호위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도왕이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행히 내 경고를 허투루 듣지 않았나 보군. 잘했다.”
도왕의 입에서 튀어나온 하대에 호위들이 화들짝 놀랐다.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여기는 부카쿠 백작 각하가 계신 곳이다!”
“당장 물러나지 못할까!”
호위들이 방방 뛰다 못해 도왕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만.”
그때 부카쿠 백작이 호위들을 제지했다.
“고맙소. 당신의 경고가 없었다면 바란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었을 거요. 한데 여기는 무슨 일이오?”
“무란 왕국을 돕기 위해서 왔다.”
“오! 고맙소!”
마룡이 이끄는 용종 몬스터 군단의 침공을 막아 내야 하는 부카쿠 백작의 입장에서.
자신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평가되는 이의 지원은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전투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그저 우리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만 주지시키면 된다.”
“그럼 이걸 받으시오.”
부카쿠 백작이 바란 영지군의 대대 지휘관의 인장을 건넸다.
사실 적이 용종 몬스터로 고정된 상태이기에 없어도 그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피아 식별과 대대 지휘관의 인장은 중요했다.
왜?
‘괜히 용병이라고 생각해 막 대하는 것은 막아야지.’
또 저 정도 직위는 주어야 아군과 충돌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다.
“한데 우리라는 게 무슨?”
부카쿠 백작의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락!
허공에서 16명의 플레이어가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가 보도록 하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왕을 선두로 한 소환수들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부카쿠 백작 각하, 저들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꽈아아앙!
부카쿠 백작의 호위들이 도왕을 비롯한 소환수들의 정체를 물어보려는 순간,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왔다.
부카쿠 백작을 비롯한 호위들의 시선이 성벽 아래를 향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폭음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도왕을 비롯한 소환수들이 오러를 전신에 두르고 공격 스킬을 난사하며 성문을 부수려고 몰려드는 상위 용종들을.
말 그대로 쓸어버렸다.
‘역시.’
그 모습을 본 부카쿠 백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보통 조직이 아니야.’
네임드 플레이어가 최소 셋 이상.
나머지도 편차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모두 랭커나 최상위 플레이어 정도는 되어 보였다.
‘웬만한 거대 길드의 정예 수준이다.’
사실 저 정도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저들이 다가 아닐 것 같단 말이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
저들 조직의 전력이 더 엄청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적대감이 들지는 않았다.
‘저들은 마왕군과 적대하는 조직이 확실해.’
그렇지 않다면 자신과 무란 왕국을 돕기 위해 조직의 극비에 속하는 정보를 줄 필요가 없었다.
‘도대체 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거지?’
만약 무란 왕국에 투신한다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 줄 용의가 있었다.
‘국가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군끼리의 이권 다툼에 전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을 것일 수도 있었다.
‘어둠 속에 숨어 기사도를 행하는 자들이라.’
부카쿠 백작의 머릿속에 저들의 조직을 칭할 명칭 하나가 떠올랐다.
‘다크 나이트.’
부카쿠 백작은 무란 왕실에 올릴 보고서에 다크 나이트라는 명칭을 쓰기로 결정했다.
언제까지고 정체불명의 조직이라고 쓰고 부를 수는 없었으니 어차피 적당한 조직명을 붙여서 그들을 불러야 했다.
다크 나이트.
그들 조직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 줄 수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저 정도가 전부인가?’
휘하 용종 몬스터들을 인간들의 도시로 진격시켰다.
적지 않은 수가 죽어 나갔지만.
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곳에는 나를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없다.’
조금 강한 인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는 감히 자신들을 막을 수가 없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그놈들이 왜 안 보이는 거지?’
자신이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순간 공격을 가하고 도망친 놈들.
수하인 용종 몬스터의 수를 절반 가까이 줄인 놈들.
최상위 용종인 드라칸과 드래고니안 들을 포함해 상위 용종들을 자신의 권속에서 제외시켜 자신을 공격하게 만든 놈들.
-크르르르!
마룡 카라스의 입에서 낮은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원래대로라면 조금 더 느긋하게 전쟁을 진행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여유가 없었다.
‘더 이상 권속들의 숫자가 줄어들면 곤란하다. 그놈들이 등장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자신을 공격하고 수하들을 죽이고 권속을 빼앗은 놈들.
용종 몬스터 수하들이 더 줄어들면.
그놈들이 등장했을 때 방패가 되어 줄 수 없다.
성문을 박살 내기 위해 브레스를 사용하며 소모된 마력은.
‘모두 회복되었다.’
현재 마룡 카라스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마룡 카라스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인간들의 도시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 * *
“마룡이 움직인다!”
“마룡이 이곳으로 날아온다!”
지금까지 용종 몬스터만 보내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만히 있던 마룡이 움직이자 대도시 바란은 난리가 났다.
“으흠.”
홀로 부서진 성문을 대체하고 있던 무란의 수호성 칼무스 공작이 접근하는 마룡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룡이 뿜어내는 측정 불가의 마력이 더욱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 무란의 수호성이라고 불리는 자신이라고 해도 저 마룡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막지 않으면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거기다 이곳에 있는 것은 칼무스 공작 혼자가 아니었다.
왕실에서 자신과 함께 보낸 근위 기사단.
대도시 바란에 모인 모든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그들이 모두와 힘을 합친다면?
저 마룡을 쓰러트릴 수도 있다.
아니, 대도시 바란의 생존에서 더 크게 나아가 무란 왕국과 아틀란티스 차원 모든 나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저 마룡을 쓰러트려야 했다.
“근위 기사단 집합!”
칼무스 공작의 외침과 동시에 곳곳에 흩어져 전투를 치르고 있던 근위 기사단이 모여들었다.
“공작 각하!”
그런 칼무스 공작을 향해 부카쿠 백작이 대도시 바란의 네임드 플레이어들과 랭커들을 모두 소집해 다가왔다.
부카쿠 백작 역시 저 마룡을 잡지 않으면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전부 모인 것인가?”
“예! 공작 각하!”
칼무스 공작의 물음에 부카쿠 백작이 힘차게 대답했다.
“알겠네. 한데 저들은 누군가?”
칼무스 공작이 집합하지 않고 상위 용종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는 도왕과 소환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자들은…….”
부카쿠 백작이 칼무스 공작에게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호, 저들이 바로 그들이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정말 보통이 아니군.”
칼무스 공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들이 본실력을 모두 드러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깔끔한 동작으로 상위 용종 몬스터의 숨통을 끊는 모습만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저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지금은 고사리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 아닌가?”
“예, 공작 각하.”
부카쿠 백작이 사람을 보내 도왕과 소환수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으흠.’
칼무스 공작은 접근하는 도왕과 소환수들을 바라보며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아. 마치 인형 같은 느낌이군.’
몸을 꽁꽁 감싸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 정도로 인공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운밥 찬밥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대들이 다크 나이트인가?”
“다크 나이트?”
“부카쿠 백작이 임시로 그대들의 조직에 붙인 호칭이다. 내가 보기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군. 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조직의 이름을 밝히도록, 그럼 그 이름을 불러 줄 테니.”
“그럴 필요 없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라.”
도왕의 입을 빌린 강현수의 대답에 칼무스 공작의 근처에 모여 있던 근위 기사들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감히 무란의 수호성이자 살아 있는 전설인 칼무스 공작에게 저런 무례한 언사를 하다니?
“예의를…….”
“그만.”
근위 기사 하나가 그 점을 지적하려 할 때 칼무스 공작이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지금은 말투같이 사소한 점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고 분열을 일으킬 때가 아니었다.
“그럼 앞으로 다크 나이트라고 부르지. 다크 나이트, 지금은 저 마룡을 상대하는 데 전력을 다해 주게.”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이 바로 저 마룡을 쓰러트리기 위함이다.”
강현수의 대답에 칼무스 공작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슬슬 출발해야겠군.”
마룡이 어느새 대도시 바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받게.”
칼무스 공작이 깃털 17개를 내밀었다.
비행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S랭크 비행 아이템이었다.
“그럼 먼저 가지.”
타앙!
칼무스 공작이 바닥을 박차며 하늘로 솟아올랐고.
그 뒤를 이어 근위 기사들이 날아올랐다.
“칼무스 공작 각하를 따르자!”
부카쿠 백작의 외침과 함께.
부카쿠 백작을 포함해 그가 소집한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뜻밖의 선물을 받았네.’
도왕을 통해 칼무스 공작과 대화를 나눴던 강현수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라.
소환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