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2)
소환수로 부활한 도왕 경위강이 맹렬한 기세로 화염의 기사 제이미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강현수에게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
‘역시 약하네.’
강현수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무려 도왕 경위강을 베이스로 만든 소환수.
당연히 강하기는 강했다.
하지만 강현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를 압도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겨우 그 정도일 뿐.
진짜 도왕 경위강이었다면?
‘벌써 승부가 났겠지.’
그러나 소환수로 부활한 도왕 경위강은 아직 화염의 기사 제이미를 쓰러트리지 못했다.
‘지휘관의 축복을 주고 지휘관 임명까지 하면 좀 낫겠지.’
강현수가 도왕에게 지휘관의 축복 스킬을 시전하고 지휘관 임명을 통해 중대장으로 임명했다.
꽈아아아앙!
도왕의 전투력이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강현수는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여전히 생전에 비해서는 그 전투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성을 올리면 좀 나으려나?’
마음 같아서는 더 높은 직위를 주고 싶었다.
왜? 그러면 지성이 조금 더 올라가니까.
그러나 중대장이 강현수가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위였다.
‘어쩔 수 없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인대대의 랭크를 상승시켜야 했다.
‘이 녀석들도 투입시킬까?’
강현수가 새롭게 만들어진 일곱 기의 소환수들을 바라봤다.
강현수는 대대 구성 스킬을 사용해 도왕 외에도 이 자리에서 죽은 네임드 플레이어들과 랭커들을 모두 부활시켰다.
도왕, 일살권, 마도기사.
중화 1호, 2호와 카발 5호, 6호, 7호.
총 여덟 기의 소환수가 만들어졌다.
소환수의 숫자를 더 늘릴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보충할 수 있다.
또 스텟을 아껴야 하기도 했다.
그동안 열심히 모아 놓았음에도 스텟의 여유가 별로 없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도 소환수로 만들어야 하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어느 정도 스텟을 남겨 놓아야 했다.
‘빨리 마무리 짓자.’
소란이 일어나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도왕의 테스트를 위해 단독 투입시키기는 했지만.
‘테스트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가라.’
강현수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일살권과 마도기사가 달려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화염의 기사 제이미였다.
여기에 두 기의 소환수가 더 가세하자.
순식간에 승부가 갈렸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팔과 다리가 힘없이 잘려 나갔다.
“일살권과 마이클까지? 도대체 어떻게?”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죽는 순간까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죽은 도왕 경위강이 되살아났다.
그게 끝이 아니라 죽은 일살권과 카발길드의 부길드 마스터였던 마도기사 마이클도 되살아났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강현수를 향해 외쳤다.
“글쎄? 내가 그걸 너한테 알려 줄 필요가 있을까? 그냥 곱게 죽어. 그 후에는 내가 잘 써먹어 줄 테니까.”
“뭐? 서, 설마.”
서걱!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마도기사의 검이 그대로 목을 베어 버렸다.
“대대 구성.”
강현수가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화염의 기사 제이미를 바탕으로 만든 소환수가 탄생했다.
그 순간.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9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플레이어를 쓰러트린 자 SSS랭크가 주어집니다.]
[일인대대 - C랭크가 일인연대 - B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라?’
SSS랭크 업적이 뜨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강현수의 직업인 일인대대가 일인연대로 성장한 건 예상외였다.
‘이렇게 빨리?’
강현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인중대에서 일인대대로 랭크 업을 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그 말은 대대 구성 스킬이나 지휘관의 축복 같은 스킬을 얼마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직업 랭크가 올랐으니 무조건 좋은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뭔지 파악해야 했다.
‘역시 그거밖에 없지.’
강현수가 생각한 원인은 소환수의 질이었다.
‘일인중대에서 일인대대로 직업 랭크가 상승할 때의 소환수는 대부분이 몬스터였어.’
플레이어라고 해도 그 수준이 낮았다.
하지만 일인대대에서는?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를 대량으로 소환수로 만들었다.
‘베이스가 되는 소환수가 가진 힘의 크기가 직업 랭크를 올리는 열쇠다.’
강현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스킬 랭크와 직업 랭크는 랭크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성장시키기가 어렵다.
이미 일인중대에서 일인대대로 랭크 업을 시키며 그 어려움을 절감했던 차였다.
그런데 그런 강현수의 눈앞에 손쉬운 해결책이 등장한 것이다.
‘카발길드와 중화길드를 일찍 충돌시키기 잘했어.’
예정대로 힘을 키운 후 시도했다면?
직업 랭크를 올리는 손쉬운 방법을 뒤늦게 알게 될 뻔했다.
한 가지 의문도 해결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3천 기나 되는 소환수를 보유했나 했는데.’
회귀 전 일인군단이라 불렸던 그에게는 레플리카 스킬이 없었다.
특별한 고유 스킬 덕을 좀 보기는 했지만.
당연히 강현수처럼
로 돌아가 스텟을 무한 생산하는 꼼수를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럼 아무리 효율이 좋아도 결국 스텟 손실을 보면서 랭크를 올려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3천 기나 되는 소환수를 보유했나 했는데.
‘스텟을 사용하지 않고 모아 놓다가 최대한 강한 플레이어를 선별해 소환수로 만든 거야.’
도왕 경위강 같은 강자가 죽은 후 분대 구성 스킬을 사용했다면?
‘1단계가 아니라 2~3단계 랭크업을 했을 수도 있어.’
강현수가
로 돌아가는 것과 비교하면 성장 속도도 떨어지고 효율도 엄청나게 낮은 방법이지만.
‘그로서는 그게 최선이었겠지.’
강현수로서도 손쉬운 직업 랭크 업 방법을 하나를 알아낸 것이니 큰 이득이었다.
‘사실 손쉽다고 하기도 뭐하지만.’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가 이렇게 대량으로 죽어 나가는 일 자체가 벌어지기 힘들다.
‘이건 내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전쟁이지만.’
그건 강현수가 중화길드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과 카발길드의 숨겨진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강현수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해도 당사자인 거대 길드가 회피했을 것이다.
거대 길드들은 가진 것이 많다.
가진 게 많은 이들은?
웬만하면 전쟁 같은 위험한 도박을 하지 않으려 한다.
‘전리품도 두둑이 얻었네.’
도왕, 일살권, 마도기사, 화염의 기사가 사용하던 아이템의 가치는 돈으로 그 값어치를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거기다 이 전장에서 죽어 간 이들의 것이었던 아이템과 스킬북을 제이미가 챙기기 좋게 한곳에 모아 두기까지 했다.
‘또 중화길드와 카발길드 창고도 말끔하게 털었고.’
현재 소환수들이 전리품을 바리바리 싸 들고 복귀하고 있었다.
‘이제 뒷정리를 해야겠네.’
저벅저벅.
강현수가 이 난리 통에도 운 좋게 멀쩡한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나와.”
“…….”
반응이 없었다.
“안 나오면 죽인다.”
“나, 나가겠습니다.”
적절한 협박을 곁들이자 멸마창 진구평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쯧쯧, 많이 상했네.”
강현수가 멸마창 진구평에게 치료 스킬인 불멸의 성화를 시전해 주었다.
아직 스킬 랭크가 낮아 치료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반죽음 상태이던 멸마창 진구평에게는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멸마창 진구평이 팔다리가 덜렁거리는 상태에서 감사 인사를 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말을 마친 멸마창 진구평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현재 멸마창 진구평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도왕 경위강이 등장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마기를 내뿜더니 엄청나게 강해졌다.
절대 죽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도왕 경위강이 힘없이 밀리더니.
그대로 죽어 버렸다.
멸마창 진구평은 살고 싶은 마음에 랭크도 낮은 은신 스킬을 펼친 상태에서 최대한 숨죽였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무렵.
‘저놈이 나타났지.’
그러더니 죽은 도왕 경위강을 비롯한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을 마력으로 이루어진 괴물로 부활시켰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도 죽었어.’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부활해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저자의 명령을 따르는 괴물이 되었다.
멸마창 진구평은 두려웠다.
차라리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플레이어였다면?
오히려 안심했으리라.
하지만 멸마창 진구평은 별 볼 일 없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무려 멸마창이라는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
‘나도 죽이는 건 아니겠지?’
저자의 손에 죽으면?
망자가 돼서도 편히 쉬지 못한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괴물로 부활해 평생 저자의 종노릇을 해야 했다.
“그래, 은혜는 꼭 갚아야지. 근데 다 봤지?”
강현수의 물음에 멸마창 진구평의 눈동자가 초조하게 흔들렸다.
당연히 다 봤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죽이지 않을까?
‘아니, 못 봤다고 말해도 어차피 죽일 생각이면 죽이겠지.’
멸마창 진구평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부상을 치료해 줬어. 그건 당장 죽이지는 않겠다는 소리야? 그럼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린다. 괜히 잔머리 굴리지 마.”
“알겠습니다!”
멸마창 진구평이 군기가 단단히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살고 싶지?”
“네, 살고 싶습니다!”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할래?”
“예, 살려만 주신다면 시키는 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락해.”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멸마창 진구평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떻게 하지?’
“죽을래?”
강현수의 물음에 멸마창 진구평이 재빨리 예를 선택했다.
[소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5% 증가합니다.]
‘이럴 수가.’
멸마창 진구평의 눈이 번뜩였다.
레벨이 오름에 따라 스텟을 올리기가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의 메시지를 수락한 것만으로 모든 스텟이 무려 5%나 올랐다.
5%.
저레벨들에게는 별것 아니겠지만.
멸마창 진구평처럼 거의 최고 레벨 플레이어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차이였다.
‘단순히 나에게 힘을 주려는 목적은 아니겠지.’
그거보다는 분명 제약을 거는 거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나에 대한 정보를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강현수의 말에 멸마창 진구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라.”
강현수의 한마디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멸마창 진구평의 몸이 사라졌다가 강현수의 발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게 무슨!’
“넌 언제든지 내가 부르면 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너도 죽지.”
역시 제약이 있었다.
“또 난 원할 때 언제든지, 널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수 있다.”
강현수의 말에 떨어지기 무섭게 도왕, 일살권, 마도기사, 화염의 기사가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부활시킬 수 있지.”
사아아아악!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졌던 도왕, 일살권, 마도기사, 화염의 기사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히 연대 소환과 연대 역소환 스킬을 사용한 것뿐이지만.
멸마창 진구평의 눈에는 정말 소멸했다가 다시금 되살아난 것처럼 보였다.
“원한다면 직접 경험하게 해 줄 수도 있다.”
강현수가 웃으며 말했지만.
“아닙니다! 무조건 믿습니다!”
멸마창 진구평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거절했다.
자신을 죽였다가 다시 살리겠다니?
그런 경험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저런 괴물이 될 수도 있잖아.’
그건 절대 사양이었다.
도왕, 일살권, 마도기사, 화염의 기사는 부활하긴 했으나 살아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겉모습도 달랐고 이지도 없어 보였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꼭두각시 인형에 지나지 않아.’
멸마창 진구평은 절대 살아 있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믿어야 할 거다. 믿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 인형으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멸마창 진구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믿지 않으면 죽는다니?
“서, 설마 주인님의 말씀을 의심하면 죽는다는 뜻입니까?”
멸마창 진구평은 강현수를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생존 본능 하나는 엄청나게 빠른 녀석이었다.
“죽지는 않는다. 그저 이 녀석들과 같은 존재가 될 뿐이지.”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용할 용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살려 두기는 했지만.
자신의 뜻을 거스르거나 엉뚱한 짓을 저지르면?
당장 죽여 버리고 온전한 소환수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히익!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멸마창 진구평은 강현수의 말을 오해했다.
강현수의 지시를 거스르면 점점 이지가 사라지고 결국에는 도왕 경위강과 같은 존재로 변한다고 알아들은 것이다.
‘코가 꿰어도 단단히 꿰였어.’
아니, 이건 코가 꿰인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과 인간으로의 존재의의 자체가 저당 잡힌 꼴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를 지닌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강현수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멸마창 진구평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너에게 내릴 지시가 있다. 내 명령만 잘 따른다면 지금까지 누리던 삶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거다.”
“주인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너에게 내리는 첫 번째 지시는…….”
강현수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멸마창 진구평이 귀를 쫑긋 세우며 경청했다.
자칫 주인의 말을 한마디라도 흘려듣는 불경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충실한 종의 처절한 발악이자 노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