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66화 (66/365)

수확

‘저런 병신.’

강현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뭔가 숨겨 둔 한 수가 있겠거니 하고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건 그냥 자폭 스위치를 누른 거잖아.’

산 제물을 바쳐 계약한 마족의 힘을 빌려 오는 것.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일단 마기가 풀풀 날리니 마족의 하수인이라는 사실을 절대 감출 수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단순히 힘만 빌려 올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공짜는 없다.

그게 세상의 진리다.

그건 마족과의 계약도 마찬가지였다.

산 제물이라는 대가를 지불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타인의 생명.

강자가 약자를 희생시켜 강해질 수 있다?

그건 어찌 보면 공짜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

당연히 계약의 주체인 당사자도 무언가를 손해 봐야 했다.

그건 손해가 바로.

‘계약한 마족에게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거지.’

산 제물을 바치고 계약한 마족의 힘을 빌려 오면?

자연스럽게 계약한 마족과 정신이 뒤섞이게 된다.

마족과 계약한 플레이어의 정신력이 마족의 정신을 제압할 수 있으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강해지는 걸 포기하고 마족과의 계약으로 편하게 강해지는 길을 선택한 놈들이 그 정도 정신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이 단점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당사자가 마족에게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말 그대로 육체와 정신을 모두 빼앗긴 꼴이 되는 것이다.

‘알고 한 짓이든 모르고 한 짓이든 최악의 선택을 했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발현된 결과인 것 같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선택이 너라는 존재 자체를 말살시킨 거다.’

기적적으로 도왕 경위강과 강현수의 손아귀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더 이상 자유의지를 지닌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저 마족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

* * *

“아아아악!”

“커억!”

전장에 있던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몸이 미라처럼 바싹 말라비틀어졌다.

그리고 결국에는 먼지로 변해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콰콰콰콰콰콰!

그와 동시에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기?”

도왕 경위강은 갑자기 다 죽어 가던 놈이 강력한 마기를 내뿜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죽어 나가는 카발길드원들 그리고 강해진 카발길드의 길드 마스터 화염의 기사 제이미.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바로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것.

“이 인류의 배신자 놈!”

도왕 경위강은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설마 카발길드라는 거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마왕의 하수인일 거라고는 상상조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이 사실을 마이트어 왕국과 라메파질 왕국에 알려라!”

도왕 경위강이 살아남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그걸 내가 내버려 둘 것 같으냐!”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노성을 터트리며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

피처럼 붉은 오러가 살아남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향해 날아갔다.

도왕 경위강이 막으려 했지만.

콰아앙!

그저 힘없이 튕겨 날 뿐.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살아남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거칠 것이 없었다.

왜?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생명력을 모두 빼앗겨 죽었으니까.

주변에 살아 있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제이미의 적이었다.

“네 이놈!”

도왕 경위강이 노성을 터트리며 화염의 기사 제이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핏빛 오러와 칙칙한 회색빛 구름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도왕 경위강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검과 도를 휘둘렀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진동할 정도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도왕 경위강이 밀리네. 그러게 왜 정면 승부를 해서.’

소환수의 시선을 통해 전장을 지켜보던 강현수는 도왕 경위강의 대응에 혀를 찼다.

마왕의 하수인들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인류의 배신자가 존재한다는 정도지.

약점이 뭔지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왜?

지금은 마왕의 하수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가 아니라 힘을 키우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략 20년 정도 지나야 마왕의 하수인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그때는 마왕의 하수인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이 잘 알려져 있었다.

‘그중 첫 번째가 폭주하는 적을 정면에서 상대하지 말라는 거지.’

산 제물을 바치고 일시적으로 강해진 마왕의 하수인은 정말 강력하다.

산 제물의 숫자와 강함에 따라 전달받는 힘과 지속 시간이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은 지속 시간이 있다는 거지.’

그럼 굳이 정면으로 상대할 필요가 없다.

‘최대한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시간만 끌면 끝이지.’

그럼 마왕의 하수인은 알아서 자멸해 버리고 만다.

‘아직은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지.’

그래서 피해가 컸다.

‘이번 기회에 알려지면 되겠네.’

강현수가 직접 알릴 건 아니고 중화길드의 생존자에게 적당히 정보를 흘리면 될 것 같았다.

‘저놈 정도면 적당하겠네.’

강현수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는 멸마창 진구평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멸마창 진구평은 팔 하나가 덜렁거리고 복부와 다리에 커다란 관통상을 입기는 했지만.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공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사실 살아남았으면 당연히 지원을 요청하러 움직여야 했다.

마왕의 하수인이 등장한 이상 마이트어 왕국과 라메파질 왕국에서 정규군을 보낼 것이 자명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멸마창 진구평은 인류 전체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선택했다.

대도시 다이온이나 루자베누로 가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도왕 경위강의 접전으로 초토화된 숲에서 몸을 움직이면?

무조건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눈에 뜨일 수밖에 없다.

그럼 당연히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손에 죽을 확률이 올라간다.

그렇기에 멸마창 진구평은 바위 뒤에 숨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기 보신이 최우선인 놈이네.’

혹시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눈에 들면 죽을 수도 있으니 저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리라.

‘저런 놈이 멸마창이라는 칭호를 받다니.’

마를 멸하는 창이라는 칭호가 붙은 게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뭐, 나한테는 나쁜 일이 아니지.’

지원군이 오는 것보다 오지 않는 게 강현수에게는 이득이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겠네.’

대충 강현수가 사건 현장에 도착할 즘이면.

결판이 날 것 같았다.

* * *

꽈아아앙! 꽈아아앙!

도왕 경위강의 몸이 힘없이 뒤로 밀려 났다.

패배는 이미 확정적이었다.

‘내가 이렇게 무력하게 패배한 적이 언제였지?’

도왕 경위강은 강한 허탈감을 느꼈다.

‘고작 마왕의 하수인 하나 감당해 내지 못하다니.’

강철 같은 육체 곳곳에 상처가 생겼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지만.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보다 새로운 상처가 생기는 속도가 더 빨랐다.

패배를 직감하고 몸을 피해 훗날을 도모하려고 했지만.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이딴 놈에게 죽게 되다니.’

검술 숙련도, 전투 경험, 스킬 랭크.

그 무엇도 자신을 앞서는 게 없었다.

하지만 강화된 신체 능력과 압도적인 파괴력을 뽐내는 마기 앞에서.

자신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네놈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마.”

“뭐?”

“내가 모시는 분과 계약을 해라. 그럼 네 목숨을 살려 주마.”

“이런 미친놈.”

도왕 경위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감히 자신에게 마왕의 하수인이 되라는 제안을 하다니.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지 않나? 이건 내가 네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네놈처럼 인류를 배신했다는 불명예를 쓰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겠다.”

도왕 경위강은 자존심과 명예욕이 강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으면 죽었지.

마왕에게 굴복해 그 하수인이 되는 굴욕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불명예라니? 우리가 승리하면 오히려 명예가 될 것이다.”

“우리? 마족의 꼭두각시 주제에 말은 잘하는군. 설사 승리해 봐야 결국 마족들의 노예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삶은 사양한다.”

“쯧쯧쯧.”

도왕 경위강의 거절에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혀까지 차며 아쉬워했다.

사실 도왕에게 계약을 제안한 것은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의지가 아니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도왕 경위강을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런 뜻을 꺾고 계약을 제안한 것은 마족 백작의 지시였다.

“안타깝구나.”

마족 백작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저 정도 강자와 계약을 한다면 지금까지 입은 손해를 단숨에 만회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죽어라.”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맹공을 퍼부었다.

수많은 제물을 바쳤지만.

슬슬 한계였다.

사실 마족 백작은 화염의 기사 제이미에게 더 많은 힘을 더 오랜 시간 전달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가이아 시스템의 방호를 뚫고 힘을 전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수많은 강자들을 산 제물로 바쳤기에 이 정도 효율이 나온 것이었다.

콰직!

도왕 경위강의 심장에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검이 틀어박혔다.

“커억!”

도왕 경위강의 시체가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후 잔존 마력으로 화해 먼지처럼 사라졌다.

“하아! 하아!”

도왕 경위강을 쓰러트린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일단 챙기자.’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사방에 떨어진 아이템과 스킬북을 챙겼다.

오랜 시간을 바쳤던 카발길드는 이미 끝장이 났다.

하지만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길드는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열심히 아이템과 스킬북을 챙기던 와중에.

“아아아!”

전신에 깃들었던 마기가 물밀듯이 빠져나갔다.

수많은 수하들의 생명을 대가로 바치고 얻은 힘이 벌써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아쉽군.’

전신에 충만한 마기와 넘치는 힘.

인간을 초월한 감각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넘치는 자신감.

그 모두를 다시 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마족화만 안전하게 끝내면 그 힘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어. 인간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강인한 마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아쉬움을 억누르며 모든 아이템과 스킬북을 갈무리했다.

이제는 떠날 때였다.

그때.

슈우우욱!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왕국군인가?’

아니면 일반 플레이어 파티일 수도 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마력과 마기가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그런 만큼 누가 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상관없다. 어차피 증거는 없어.’

마기를 느끼고 왔다면?

중화길드를 마족과 계약한 주범으로 몰아붙이면 그만이다.

탁!

플레이어 하나가 화염의 기사 제이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작 하나?’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어이가 없었다.

‘미친놈인가?’

강력한 마력과 마기의 충돌을 느꼈음에도 홀로 이곳에 오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 결국 살아남았구나.”

상대의 말에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건방진 놈.”

자신이 누군지 알면서도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마왕의 하수인인 네놈은 오늘 여기서 죽는다.”

“뭐?”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말에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 있는 건 저놈 하나뿐이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그래.”

“누가 나를 죽인다는 거지? 설마 네놈인가?”

“맞아.”

“하하하하하!”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광소를 터트렸다.

모든 것을 잃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친놈이 나타나 자신을 죽이겠다고 한다.

“도왕 경위강도 내 손에 죽었다. 그런 나를 어떻게 죽일 생각이지?”

“도왕 경위강을 죽인 건 네 힘이 아니라, 마족의 힘이잖아.”

“그래서? 지금의 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전신에서 짙은 살기가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제이미.

화염의 기사라는 칭호를 받은 네임드 플레이어.

비록 마족 백작에게 전달받던 힘은 끊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강자였다.

“미친놈. 죽여 주마.”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정체불명의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대대 구성.”

정체불명의 플레이어가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순간.

사아아악!

마력으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나타나.

파강!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검을 막아 냈다.

“이게 무슨?”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적잖이 당황했다.

전력을 다해 휘두른 자신의 검을 막다니?

그건 상대의 실력이 자신과 동급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파지지직!

그때 마력으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뇌전과 함께 칙칙한 회색빛 구름을 피워 올렸다.

“도, 도왕 경위강? 그놈은 죽었는데?”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자, 2라운드를 시작해야지.”

정체불명의 플레이어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칠흑빛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화염의 기사 제이미에게 달려들었다.

꽈앙! 꽈앙! 꽈앙!

칙칙한 회색빛 구름과 붉은빛 오러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번에는 누가 이기려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플레이어의 중얼거림이.

“마족 도움 따위는 없는 정당한 대결이니 공정한 결과가 나오겠지?”

마치 사형선고처럼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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