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광고판
-카발길드가 마왕의 하수인들로 이루어진 길드였다.
-대규모 산 제물을 바쳐 마족을 강림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중화길드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며 가까스로 마족의 강림을 막았다.
이 소문이 퍼지자 라메파질 왕국이 발칵 뒤집혔다.
라메파질 왕국은 서둘러 조사대를 꾸렸다.
그것도 모자라 종주국인 로크토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이트어 왕국에서도 조사대를 파견했다.
조사대는 마기의 흔적을 추적하며 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라메파질 왕국을 대표하는 길드였던 카발길드가 마왕의 하수인들로 이루어진 길드였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전장에 남아 있는 강력한 마기의 흔적.
대도시 다이온에 있었던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미라처럼 말라붙으며 죽어 가던 모습.
증거가 너무 많아서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왕의 하수인들이 모두 소탕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도 컸다.
거대 길드이던 중화길드의 규모가 중소 길드 수준으로 쪼그라드는 피해를 입은 것이다.
-우리 중화길드는 이곳에 온 사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지만, 결국 마왕의 하수인들을 모두 척살했습니다.
-길드 마스터 도왕 경위강 님은 본인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악한 마왕의 하수인 제이미를 제거했습니다.
-우리 중화길드는 앞으로도 도왕 경위강 님의 뜻에 따라 아틀란티스 차원의 수호를 위해 마왕군과 싸워 나갈 것입니다.
-우리 중화길드는 멸망하는 그날까지 플레이어의 사명을 잊지 않겠습니다.
-모든 플레이어가 사명을 모두 마치고 고향으로 귀환하는 그날을 위해.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은 목이 터져라 울부짖으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
이 언론 플레이는 제대로 먹혔다.
누구에게?
바로 각국의 군주들에게.
로크토 제국을 비롯한 각국의 군주들에게 타 차원에서 온 플레이어는 마왕군과 싸우기 위한 지원병이다.
처음에는 잘 키워서 마왕군과의 전투에 소모시킬 소모품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머릿수가 늘고 레벨이 올라가자 슬슬 국가가 통제하기 힘든 수준까지 세력이 커져 버렸다.
더군다나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상한 사상까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위험분자였다.
거기다 현재의 거대 길드들은 마왕군과의 싸움보다는 아틀란티스 차원 내에서의 기득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균형을 유지하며 통제에 성공했지만.
플레이어들의 세력이 커지면 상황이 어찌 바뀔지 몰랐다.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자칫 플레이어들이 반발해 내전이 벌어지면?
사이좋게 공멸이다.
마왕군만 좋은 일 시켜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타 차원의 플레이어들이 만든 카발길드가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건 각국의 군주들이 합법적으로 타 차원 플레이어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거대 길드들을 통제하고 간섭할 수 있는 명분을 손에 쥔 거나 마찬가지였다.
왕국군이 처단한 게 아니라 같은 타 차원의 플레이어들이 만든 중화길드가 막대한 희생을 통해 처단한 게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의 발언을 듣자 그 아쉬움이 사라졌다.
사명.
아틀란티스 차원의 수호.
마왕군과의 싸움.
고향으로의 귀환.
멸마창 진구평의 발언은 각국의 군주들이 플레이어들에게 바라는 이상향을 모두 담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사명은 아틀란티스 차원의 수호와 마왕군과의 전쟁이다.
그러니 아틀란티스 차원 내부의 이권 다툼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다.
왜?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귀환할 존재니까.
모든 거대 길드들이 중화길드처럼 대의명분을 내세운다면 더 바랄 게 없을 지경이었다.
그 결과.
각국의 군주들은 중화길드를 제대로 띄워 주기로 작정했다.
중화길드는 현재 전력의 태반이 날아간 상태.
길드 마스터와 핵심 길드원의 대부분이 사망했다.
대원정에서 뒤늦게 복귀한 이들이 생존하기는 했지만.
그 세력을 다 합쳐 봐야 겨우 중소 길드 수준의 규모였다.
거기다 마왕의 하수인들과의 전쟁 중 길드 하우스가 도적의 습격을 받아 아이템이고 스킬북이고 골드고 다 털린 상태.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로크토 제국이었다.
통 크게 SSS랭크 창 한 자루와 S~D랭크의 각종 아이템, 스킬북 1백 개, 거기다 1억 골드의 포상금을 중화길드에 하사했다.
그뿐 아니라 전사한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 도왕 경위강에게 명예 백작 작위를 수여하고 생존한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에게는 명예 남작 작위를 수여했다.
자국 길드를 띄울 심산인 마이트어 왕국도 통 큰 포상을 했다.
SS랭크 검 한 자루와 S~D랭크의 각종 아이템과 스킬북 50개. 그리고 5천만 골드의 포상금을 하사한 것이다.
또 전사한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 도왕 경위강에게 명예 공작 작위를. 그리고 생존한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에게는 명예 백작 작위를 수여했다.
로크토 제국에 비해 좀 약하기는 하지만.
수많은 제후국을 거느린 부유한 로크토 제국과 그 로크토 제국을 종주국을 모시는 수많은 나라 중 하나인 마이트어 왕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무리를 한 것이다.
여기에 라메파질 왕국은 마이트어 왕국보다 훨씬 크게 무리를 했다.
마왕의 하수인이었던 카발길드가 라메파질 왕국의 대표 길드였다.
그런 만큼 자칫 잘못 엮이면 라메파질 왕국 역시 마왕의 하수인으로 몰릴 위험이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라메파질 왕국은 자국의 근심을 제거해 줬다는 이유로 SS랭크 아이템 세 개와 S~D랭크의 각종 아이템과 스킬북 2백 개, 그것도 모자라 무려 2억 골드의 포상금을 내놨다.
전사한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 도왕 경위강에겐 무려 명예 대공 작위를 수여했다.
생존한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에게도 명예 후작 작위를 수여했다.
실로 엄청난 파격이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라메파질 왕국의 기둥뿌리 하나는 뽑았다고 봐야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틀란티스 전역에서 하사품이 날아들었다.
로크토 제국의 제후국 군주들은 사실상 모두 하사품을 보냈고.
로크토 제국의 제후국이 아닌 나라들도 적절한 수준에서 하사품을 보냈다.
중화길드를 제대로 띄워 주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 * *
‘일종의 광고판이지.’
마왕군과 싸울 때 절대 물러서지 마라.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더라도 그 몇 배의 보상을 해 주겠다.
살아남으면?
남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명예를 주겠다.
모두가 중화길드를 본받아라.
플레이어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얌전히 고향으로 귀환해라.
‘회귀 전보다 더 후하네.’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와 비슷한 일이 회귀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대가가 비교적 약소했다.
피해 규모가 중화길드만큼 크지도 않았고 길드 단독으로 마왕군의 발호를 막아 낸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언론 플레이도 하지 않았지.’
멸마창 진구평이 시키는 대로 입을 잘 털어 준 덕분에 중화길드는 각국 군주들이 원하는 타 차원 플레이어들이 만든 길드의 롤 모델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는 이 정도로 큰 포상이 없겠지.’
중화길드에 과할 정도의 하사품을 내린 것은 일종의 시범 케이스였다.
좋지 않은 일에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가중처벌을 받는다.
반대로 좋은 일에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이렇게 두둑한 포상을 받지.’
강현수가 산더미처럼 쌓인 아이템과 스킬북을 바라봤다.
아직 로크토 제국, 마이트어 왕국, 라메파질 왕국.
삼국의 하사품만 도착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로 미소가 나올 정도로 푸짐했다.
“S랭크 이상이 더 들어올 일은 없겠지?”
“예, 주인님. 타국은 생색 내기 수준으로 A랭크 이하의 아이템과 스킬북만 들어올 것 같습니다.”
강현수의 물음에 멸마창 진구평이 공손히 대답했다.
“질은 떨어져도 양은 많겠지.”
“그럴 것 같습니다.”
국왕의 이름으로 보내는 하사품인 만큼 어느 정도 체면치레를 할 정도의 수량을 보내기는 할 것이다.
“워낙 수량이 많으니 어느 정도 사라져도 티가 나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이 모두가 주인님의 은덕으로 얻은 것이니, 주인님이 거두어 가 주십시오.”
“그래도 선물을 보내 준 각국 군주들과 길드원들 눈치는 봐야지. 안 그러면 네가 횡령죄로 실각할 수도 있잖아.”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멸마창 진구평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럼 적당히 쓸어 가야겠네.”
강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탐식의 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사아아악!
탐식의 검이 산더미처럼 쌓인 아이템들을 먹어 치웠다.
가장 먼저 먹어 치운 것은 대중적이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옵션이 떨어지는 아이템들이었다.
강현수는 랭크가 낮은 순서대로 차근차근 아이템을 먹어 치웠다.
산더미처럼 쌓인 아이템의 산이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그 결과.
[탐식의 검이 S랭크에서 SS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탐식의 검 랭크가 S에서 SS로 성장했다.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를 털어서 나온 아이템을 이미 먹어 치운 적이 있는 만큼 금방 성장했다.
‘더 이상은 무리다.’
탐식의 검이 SS랭크가 된 이상 웬만큼 처먹어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이다.
입맛도 고급이라 이제는 A랭크 이하는 아예 먹지도 않았다.
“주인님, 어찌 멈추십니까? 아직 상위 랭크 아이템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더 쓰셔도 이 종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달리 쓸 일이 있다.”
사아아악!
그 말과 함께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착용해라.”
강현수의 말에 소환수들이 아이템을 집어 들어 착용하기 시작했다.
‘소환수는 굳이 아이템이 필요 없지.’
마력으로 만든 육체와 마찬가지로 마력으로 사용할 무기와 갑옷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지.’
소환수가 아이템을 착용해도 옵션 효과를 받는다.
그런 만큼 아이템을 착용하면?
소환수도 더 강해진다.
‘단순히 내 무력만 강해질 필요는 없어.’
소환수는 성장할 수 없다.
지휘관의 축복이나 지휘관 임명을 통해 스텟과 지성을 올릴 수는 있지만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아이템을 두르면 더 강해지겠지.’
템빨은 가능했다.
‘어차피 아이템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소환수들이 착용한 아이템은 강현수가 언제든지 회수해 탐식의 검에게 먹이로 던져 줄 수 있다.
그런 만큼 아까워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방어 스킬을 익혀 볼까?”
강현수가 방어 스킬북의 옵션을 구분해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정한 후 흡수하기 시작했다.
[수호의 반지가 B랭크에서 A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금방 첫 번째 메시지가 떠올랐고.
[수호의 반지가 A랭크에서 S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잠시 후 두 번째 메시지가.
[수호의 반지가 S랭크에서 SS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세 번째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제 그것만 실험해 보면 되겠네.’
강현수가 멸마창 진구평에게 시선을 돌렸다.
로크토 제국의 황제가 하사한 SSS랭크 아이템.
마창 펜리르의 이빨을 쥐고 있던 멸마창 진구평이 강현수의 탐욕스러운 시선에 몸을 움찔 떨었다.
“그 창 이리 내놔 봐.”
강현수의 말에.
지금까지 충실한 종의 표정을 짓고 있던 멸마창 진구평의 얼굴에서.
핏기가 쫙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