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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레벨 플레이어-8화 (8/365)

머더러

“저, 현수 씨?”

“네.”

“굳이 딱 잘라서 거절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송하나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굳이 합칠 필요도 없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치는 것도 딱히 나쁜 선택은 아니잖아요.”

“힘을 합친다고요? 우리에게 그럴 필요가 있나요?”

강현수의 물음에 송하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건가요?”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아요. 현수 씨도 두 번째 튜토리얼에서도 세 사람을 도와줬잖아요.”

‘아직 지구 물이 떨 빠졌네.’

강현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현대인으로서의 기억조차 희미한 강현수로서는 아직 현대인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송하나의 모습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들을 믿을 수 있어요?”

“네?”

“내 등 뒤를, 내 잠자리를 맡길 수 있을 만큼 믿을 수 있냐고요?”

강현수의 말을 들은 송하나의 머릿속에 두 번째 튜토리얼이 떠올랐다.

두 번째 튜토리얼의 인원은 총 다섯.

하지만 그때도 세 번째 튜토리얼과 마찬가지로 강현수, 송하나 단 두 사람만 불침번을 섰다.

사냥도 단둘만 함께 나섰다.

‘내 등 뒤를, 내 잠자리를 맡길 수 있는 사람. 그들을 믿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어찌 믿겠는가?

‘하지만 현수 씨는 날 믿어 줬어.’

만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자신을 믿고 잠을 청했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 등 뒤를 내어 줬다.

그리고 그건 송하나도 마찬가지였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믿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생각을 정리한 송하나가 강현수의 물음에 답했다.

“그렇죠? 저도 그래요.”

강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기.”

“네?”

“그런데 저는 어떻게 믿으셨어요?”

송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믿음이 가더라고요.”

강현수의 대답을 들은 송하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나 씨는요?”

“저도 그랬어요.”

강현수와 송하나가 신뢰가 가득 담긴 눈동자로 서로를 마주 보다 멋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시금 사냥을 이어 나갔다.

‘역시 지구 물이 아직 덜 빠진 거 맞네.’

그냥이라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믿다니 말이다.

강현수는 아틀란티스 차원에 온 후 단 한순간도 깊은 잠에 든 적이 없었다.

항상 선잠을 자며 주위를 경계했다.

사냥을 할 때 송하나에게 자신의 등 뒤를 내줄 수 있었던 이유도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송하나가 무슨 짓을 하든 곧바로 제압 가능하리라는 확신이 말이다.

송하나는 회귀 전 암살자들의 황제라고 불렸던 이로 의심되는 플레이어다.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믿을 수 있으려나?’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강현수는 믿었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은 뼈아픈 경험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날이 저물었다.

강현수와 송하나가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의 크기도 적당했고 바로 옆에 개울도 흐르고 있었다.

강현수와 송하나는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먼저 잠이 든 쪽은 강현수였다.

송하나는 불침번을 서며 개울물을 마시려고 접근하는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저벅저벅.

그때 수풀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릉.

검을 뽑아 든 송하나가 전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수풀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그것도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이야, 여기서 또 뵙네요.”

선두에 선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송하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낮에 만났던 플레이어들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죠?”

송하나가 경계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날이 어두워져서 잘 곳을 찾고 있었죠. 물소리를 듣고 왔는데, 선객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선객이 있는 걸 아셨으면 다른 곳에 가 보시죠.”

“하하하, 너무 까칠하시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다른 곳으로 가 보죠.”

상대가 순순히 물러나는 것같이 보이자 송하나가 경계심을 풀었다.

슈욱!

그때 세 발의 화살이 일제히 송하나를 향해 날아왔다.

“실드!”

화들짝 놀란 송하나가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퍼엉!

방어 스킬은 훌륭하게 세 발의 화살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홉 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고 달려들었다.

“현수 씨!”

송하나가 다급하게 강현수를 깨웠다.

강현수가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사실 강현수는 저들이 접근하는 순간부터 잠에서 깨어 있었다.

그저 송하나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기 위해 자는 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파강! 파강!

쇠 부딪치는 소음이 터져 나오며 2 대 9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 자식들, 꽤 강하네.’

이 시기에 플레이어들이 가지고 있을 강함이 아니었다.

아이템의 질도 좋았고 양도 많았다.

어디 그뿐일까?

레벨도 높고 스킬의 종류도 상당히 많았다.

송하나는 여러 명이 덤벼들자 손이 어려워졌다.

좌악!

“크윽!”

송하나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방어구가 갈라지고 하나둘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겨났다.

‘머더러들인가?’

서걱!

강현수의 검이 적들 중 하나의 목을 말끔하게 베어 냈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튜토리얼에서의 살인자 C랭크가 주어집니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튜토리얼에서의 살인자 사냥꾼 B랭크가 주어집니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튜토리얼에서의 정당한 복수 A랭크가 주어집니다.]

플레이어 하나의 목을 베었을 뿐인데 세 개의 업적을 얻었다.

성과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킬북 쇄도 – E랭크]

죽은 플레이어가 익히고 있던 스킬 중 하나가 스킬북 형태로 드랍되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 업도 했다.

PK.

플레이어끼리의 전투는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그만큼 큰 보상을 준다.

‘설마 벌써부터 머더러 집단이 형성될 줄은 몰랐는데.’

머더러 집단이 활성화되는 시점은 보통 세 번째 튜토리얼이 절반 정도 진행된 후인 경우가 많았다.

‘뭐,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

서걱! 서걱!

강현수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덤벼들었던 플레이어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때마다 강현수는 스킬북과 꽤 많은 경험치를 얻었다.

‘이런 건 바로바로 익혀야지.’

강현수는 적들이 드랍한 스킬들을 곧바로 습득했다.

적들은 플레이어 간의 전투가 꽤 익숙해 보였다.

하지만 회귀 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몬스터 및 플레이어 들과 전투를 벌인 강현수의 경험치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

‘쇄도, 가속.’

강현수는 검을 휘두르며 새롭게 얻은 스킬을 적절히 사용했다.

그러자 적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뭐야? 왜 이렇게 강해!”

“철진이가 죽었어!”

강현수와 송하나를 습격한 플레이어들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여태껏 이런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투는 항상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전리품을 얻었다.

한데 이번에는 달랐다.

“일단 저년부터 죽여!”

머더러 무리의 리더가 지시를 내리고 강현수에게 달려들었다.

챙챙!

강현수는 차분히 적들의 숨통을 끊었다.

그러면서도 송하나를 주시했다.

송하나는 아직까지 단 한 명의 적도 죽이지 못했다.

적들의 공세가 맹렬한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살인을 꺼리는 심성 탓이 더 컸다.

‘아직인가?’

강현수가 아쉬운 표정을 지을 무렵!

푸악!

송하나에게 덤벼들던 적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방어 스킬만을 사용하던 송하나가 살상력이 강한 공격 스킬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법 스킬 저항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무했던 적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서걱!

강현수의 검에 적들의 리더가 목숨을 잃었다.

“히익!”

공포에 질린 적 중 하나가 도주했다.

강현수는 도주하며 등을 보인 적을 가장 먼저 죽였다.

아홉 명이던 적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두 명으로 줄어들었다.

“하, 항복! 항복할게! 제발 살려 줘!”

“나도 항복할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살아남은 적 두 명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아홉 명이서 덤벼도 이기지 못한 적들을 단 두 명이서 상대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요?”

강현수가 송하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송하나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사아아악!

송하나는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잔존 마력이 자신의 몸으로 흡수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넋이 나갔네.’

첫 살인일 것이다.

강현수도 회귀 전 첫 살인을 했을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너무 오래 빠지는 건 좋지 않지.’

이럴 때는 최대한 빨리 정신을 차리게 해 줘야 했다.

“하나 씨?”

강현수가 송하나를 부르며 손으로 어깨를 두드렸다.

“네? 네.”

“저 둘이 항복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강현수가 다시금 송하나에게 물었다.

“어, 그게.”

송하나가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항복한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자의가 아니었습니다. 저놈이 억지로 시켜서 한 짓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는데, 아무런 힘도 없는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두 사람이 눈물과 콧물을 줄줄 쏟으며 송하나를 향해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어떤 결정을 내릴까?’

강현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송하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본적인 사고방식 자체가 아틀란티스 차원의 삶에 맞춰진 강현수에게는 죽이는 게 정답이었다.

괜히 후환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송하나는 달랐다.

“현수 씨는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죽여야겠죠. 괜히 후환을 남길 필요는 없으니까요.”

강현수의 담담한 대답에 송하나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살려 주십시요! 전 정말 억울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시켜서 억지로 싸운 것뿐입니다!”

두 사람이 더 간절한 표정으로 송하나에게 매달렸다.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 줄 사람이 송하나밖에 없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휘익!

그때 송하나가 검을 휘둘렀다.

좌악!

붉은 핏줄기와 함께 두 사람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허어!”

강현수는 적잖이 놀랐다.

설마 송하나가 두 사람의 목을 베어 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살려 주고 싶으신 거 아니었나요?”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송하나에게 물었다.

“그렇기는 했어요.”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해서요.”

“거짓말이요?”

“네.”

“어떻게 확신하시죠? 정말 협박당해서 우리를 공격한 걸 수도 있잖아요.”

“저 두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세가 팽팽해졌을 때 우리 편을 들었겠죠. 하지만 저 두 사람은 항복하기 직전까지 저와 현수 씨를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했어요.”

송하나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랬군요. 그게 전부인가요?”

“아니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요. 저 두 사람은 우리한테는 위협이 되지 않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아니에요. 사람을 죽여 경험치와 아이템을 챙기는 자들을 살려 줘 봤자 무고한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에요.”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송하나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금 말을 이어 갔다.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합격이네.’

훌륭했다.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강현수가 듣기에 그 말은 죽은 두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송하나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정신 무장이 제대로 된 것이다.

송하나가 살황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한 명의 훌륭한 플레이어네.’

수하로 삼기에 모자라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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