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러 (2)
“주무세요. 대충 불침번 교대 시간도 된 것 같은데.”
“네.”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가 짧은 대답과 함께 동굴로 들어갔다.
‘꽤 피곤하겠지.’
불침번을 서느라 잠도 자지 못했는데 격렬한 전투까지 겪었다.
거기다 첫 살인까지 경험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꽤 피곤할 것이다.
‘먹어 치워라.’
강현수가 탐식의 검에 마력을 집중했다.
스르르륵!
탐식의 검이 죽은 플레이어들이 남긴 아이템들을 먹어 치웠다.
[탐식의 검이 E랭크에서 D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탐식의 검이 성장했다.
‘좋아.’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쏠쏠하네.’
저놈들이 습격해 준 덕분에 꽤 많은 업적과 경험치 그리고 스킬을 얻었다.
그것도 모자라 탐식의 검 랭크까지 상승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강현수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분대 구성.’
일인분대의 직업 전용 스킬 분대 구성을 사용했다.
사아아악!
강현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플레이어들이 죽었던 장소를 휘감았다.
우득! 우득!
그와 동시에 형체가 없던 마력이 유형화된 형상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력으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진 병사 열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택 하나가 소모되었습니다.]
[모든 스텟이 영구적으로 소모되었습니다.]
[새로운 분대를 구성하셨습니다.]
[기존의 분대가 소멸합니다.]
‘이제야 몬스터가 아닌 플레이어를 분대원으로 만들었네.’
강현수는 쿨타임이 돌 때마다 계속해서 분대 구성 스킬을 사용했다.
그때마다 영구적으로 모든 스텟이 소멸했지만.
그 결과.
[분대 구성이 F랭크에서 E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튜토리얼에서의 직업 스킬 랭크 성장 A랭크가 주어집니다.]
직업 스킬인 분대 구성의 랭크가 상승했다.
‘초기 레벨 업을 통한 스텟은 어차피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지금은 레벨 업을 통해 획득한 스텟보다 분대 구성 스킬의 랭크를 올리는 게 더 중요했다.
어차피 강현수에게는 수많은 업적을 통해 획득한 스텟이 있었다.
레벨 업을 통해 얻은 스텟이 영구적으로 소멸해도.
강현수는 여전히 세 번째 튜토리얼의 최강자였다.
‘일인분대의 직업 스킬 중 내가 성장시킬 수 있는 스킬은 분대 구성뿐이야.’
분대장과 분대 소환 그리고 분대 역소환은 직업인 일인분대와 랭크가 고정되어 있다.
그 말인즉.
‘스택 한 개의 쿨타임이 24시간이나 되는 분대 구성 스킬을 꾸준히 사용해야만 직업 랭크가 오른다는 거지.’
문제는 분대 구성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레벨 업을 통해 얻은 스텟을 영구적으로 소모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기적인 직업인 만큼 페널티가 꽤 크단 말이야.’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강현수에게는 고유 스킬인 레플리카가 있었다.
레플리카만 있으면.
‘일인분대의 페널티 따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강현수가 상태창을 열었다.
새롭게 생긴 업적 덕분에 많은 칭호가 생겼다.
거기다 공짜로 스킬도 얻었다.
‘PK이 보상은 역시 빵빵하네.’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같은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게 더 많은 보상을 준다.
거기다 사체도 잔존 마력으로 변해 흩어지기에 증거 인멸도 수월하다.
‘그래서 아틀란티스 차원에는 미친놈들이 많았지.’
광기에 먹힌 자들.
그들은 몬스터 사냥보다 인간 사냥을 더 즐겼다.
‘그놈들만 없었어도.’
인류는 더 수월하게 마왕군의 공격을 막아 냈을 것이다.
‘이번에는 말끔하게 뿌리를 뽑아 주마.’
회귀 전 강현수도 놈들에게 꽤 많은 빚을 졌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이자까지 두둑하게 쳐서 말끔하게 갚아 줄 생각이었다.
* * *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강현수와 송하나는 외곽부터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경험치와 업적을 쌓아 갔다.
그렇게 보름쯤 흘렀을 무렵.
[레플리카가 F랭크에서 E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튜토리얼에서의 고유 스킬 랭크 성장 A랭크가 주어집니다.]
오랜 시간 F랭크를 유지하던 레플리카 스킬이 E랭크가 되었다.
‘성공했어.’
강현수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사실 레플리카 스킬의 랭크를 손쉽게 올릴 방법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업적은 튜토리얼에서만 얻을 수 있지.’
튜토리얼이 끝난 후 랭크를 올려 봐야 아무런 보상이 없다.
반면 튜토리얼에서 랭크를 올리면 업적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직업 랭크만 오르면 끝이야.’
직업 스킬인 분대 구성의 랭크가 상승하며 업적을 받았다.
이제는 F랭크 직업인 일인분대를 E랭크 직업인 일인소대로 성장시킬 차례였다.
그럼 또 하나의 업적을 받을 수가 있다.
‘랭크가 낮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득이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강현수가 D랭크인 마법사를 선택했다면?
튜토리얼에서 랭크를 상승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송하나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직업인 마검사가 시작부터 E랭크인 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송하나의 재능이라면?
세 번째 튜토리얼이 끝나기 전에 직업인 마검사의 랭크를 D로 성장시킬 가능성이 충분했다.
* * *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사이 강현수는 세 번째 튜토리얼에서 얻을 수 있는 업적들을 하나둘 클리어해 나갔다.
아쉬운 점은 시작의 방에 있었던 수호의 반지나 두 번째 튜토리얼에서 얻었던 탐식의 검과 같은 아이템에 대한 정보가 더 이상 없다는 점이었다.
‘세 번째 튜토리얼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장비도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모든 최상위 랭커가 수호신 이철민이나 검신 이광호처럼 자신이 어떤 경로로 아이템을 얻었는지 떠벌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
튜토리얼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틀란티스 차원에 도착하기만 하면.
‘싹 다 쓸어 주지.’
강현수가 알고 있는 정보를 총동원해 아이템과 업적을 독식할 것이다.
‘해가 떨어지네.’
이제는 쉴 시간이었다.
“이제 슬슬 쉴 곳을 찾아보죠.”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두 사람은 숙소로 쓸 만한 장소를 찾아 움직였다.
물이 가까이에 있고 몬스터의 침입을 방비할 수 있는 장소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사냥하던 도중에 한둘 정도는 발견했는데 말이야.’
오늘은 단 한 곳도 찾아내지 못했다.
‘정 없으면 나무 위에서 자도 괜찮을 거고.’
바닥에 누워서 자는 게 편하기는 하지만 나무 위라고 해서 못 자는 건 아니었다.
강현수와 송하나는 물줄기를 따라다니며 머무를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과 마주쳤다.
“어?”
“적이다!”
챙!
플레이어들은 강현수와 송하나를 보자마자 무기를 겨눴다.
“우린 싸울 생각 없어.”
강현수가 한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리더로 보이는 상대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강현수와 송하나를 주시하며 물었다.
‘귀찮네.’
강현수가 싸울 생각이었다면?
지금쯤 저들은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럴 생각이면 벌써 공격했겠지. 그냥 서로 제 갈 길 가자고.”
강현수가 귀찮음이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헤어진 다음에 동료를 끌고 올 생각이겠지? 무기를 버려!”
상대가 강현수의 목에 무기를 겨누며 위협적인 어조로 외쳤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움직여 강현수와 송하나를 포위했다.
‘이놈들은 도대체 뭔 일을 겪었기에 이러는 거야?’
PK를 밥 먹듯이 하는 머더러 집단이었다면 수적 우세를 바탕을 공격했을 것이다.
한데 그냥 위협을 하며 무기를 버리라고 한다.
‘거기다 손도 덜덜 떨고 있고.’
신속하게 포위한 것에 비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저들 중 대다수는 살인은커녕 플레이어와의 전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햇병아리들일 것이다.
‘하긴 이게 평균이기는 하지.’
PK를 하면 많은 경험치와 아이템 그리고 스킬북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 정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곧바로 PK를 벌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데 그걸 넘어서 사람이 같은 사람을 경험치와 아이템 덩어리로 본다?
‘지구에서부터 살인마였거나 튜토리얼 과정에서 인성이 뒤틀린 게 아닌 이상에는 불가능하지.’
“어서 무기를 버리지 못해!”
무리의 리더가 목소리를 높였다.
‘죽일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은 죽인다.
그게 강현수가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살아온 방식이었다.
하지만…….
호랑이 앞에 선 토끼 같은 눈동자로 악을 쓰며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똥오줌도 못 가리는 햇병아리들은 어느 정도 배려를 해 줘야지.’
퍼억!
강현수의 주먹이 리더의 얼굴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컥!”
리더가 쌍코피를 쏟으며 그대로 허물어졌다.
“죽이지는 않으마.”
햇병아리들인 만큼 죽이지는 않을 생각이다.
죽이지는.
퍼억! 퍼억!
“악!”
“아파!”
강현수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에 가만히 있던 송하나도 검집을 들고 플레이어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퍼억!
“아아악!”
“살려 줘!”
한동안 매타작하는 소리와 구슬픈 비명 소리가 숲 가득 울려 퍼졌다.
“난 분명히 싸울 생각이 없다고 했지?”
강현수가 푸르딩딩한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그런데 왜 사람 말을 못 믿고 싸움을 걸어?”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만신창이가 된 플레이어들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강현수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살려 줄게. 하지만 또 이런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는 괜한 시빗거리는 만들지 마라.”
강현수는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때 플레이어들의 리더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외쳤다.
“그래서?”
“예?”
“너희들이 무슨 사정이 있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사정이 있으면 다짜고짜 무기 들이밀면서 협박해도 괜찮나?”
“그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사정이 뭐냐면…….”
“그만.”
강현수가 플레이어들의 리더가 주절주절 떠들려는 것은 막았다.
“내가 언제 너희들한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듣고 싶다고 했냐?”
“그, 그건 아니지만.”
“난 다짜고짜 무기 들이밀고 협박했던 놈들 사정을 들어 주고 공감한 뒤 도움까지 줄 정도로 속이 넓지 못하거든. 시간 없으니까 비켜.”
강현수는 무릎을 꿇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런 강현수의 행동에 송하나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다시금 굳건한 눈빛으로 변한 송하나가 강현수의 곁에 따라붙었다.
그때였다.
“겨우 여기까지밖에 못 도망갔어?”
전방에서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얼핏 보아도 20명이 넘어 보일 정도로 많았다.
“그건 조금 실망인데.”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이놈들은 또 뭐야?’
또 다른 플레이어 무리의 등장에 강현수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하루 종일 몬스터 사냥을 하느라 피로가 꽤 쌓인 상태였다.
거기다 배도 고팠다.
어서 쉴 만한 곳을 찾아 식사도 하고 푹 쉬고 싶은데 자꾸 길을 막는 놈들이 나타난다.
짜증이 확 하고 치밀어 올랐다.
“오호, 그사이 사냥감 숫자가 조금 늘었네? 왜? 머릿수를 늘리면 우리를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
“이 살인자 새끼들!”
“우리가 순순히 당할 거 같냐!”
챙!
강현수가 짜증이 났거나 말거나 두 무리의 플레이어들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며 욕설을 내뱉으며 대치했다.
‘저 녀석들, 머더러 놈들에게 쫓기고 있었던 건가?’
대화 내용을 들으니 대충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짜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죽여!”
“일단 도망쳐!”
대치가 끝나고 두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한쪽은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한쪽은 등을 보이며 도망쳤다.
“이놈은 뭐야?”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리더가 가장 선두에서 멀뚱히 서 있던 강현수의 머리를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파강!
그 순간 송하나가 나서서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리더의 창을 막아 냈다.
“이년은 또 뭐야?”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리더가 송하나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주변 정리나 해 볼까.’
강현수가 검을 뽑았다.
서걱!
강현수에게 덤벼들던 플레이어의 몸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서걱! 서걱!
강현수의 검이 화려하게 허공을 비산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적들을 도륙했다.
순식간에 셋이 목숨을 잃었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강현수와 송하나를 제거하고 도주하는 이들을 추격하려던 플레이어들이 화들짝 놀랐다.
타악!
적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강현수는 그대로 몸을 날려 검을 휘두르고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커억!”
“괴물!”
강현수의 일 검을 제대로 막아 내는 놈이 없었다.
검을 한번 휘두르고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적들의 숨통이 끊어졌다.
그러자 적들이 강현수를 피해 자신들의 리더와 싸우고 있던 송하나를 공격했다.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겠네.’
적들의 숫자가 늘어났음에도 송하나는 오히려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강현수는 마음 편하게 다른 플레이어들을 처리하는 데 집중했다.
강현수와 송하나의 활약에 총 23명에 달했던 적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