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501화 (501/522)

# 외전. 4화

“누군가 했더니, 너구나?”

뱀의 신전 지하.

보통의 플레이어라면 절대로 들어오지 못할 곳을 누군가 제집 드나들듯 가볍게 입장했다.

헨리였다.

헨리의 방문에, 메두사가 인간 폼으로 폴리모프하며 말했다.

“어서와! 그나저나 이젠 어비스의 주인이라지? 축하해. 보통 플레이어는 아니란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메두사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인 양 말했고 헨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공지 사항으로 알렸을 텐데 못 들은 건가?”

“공지 사항? 시간 역행 말하는 거야?”

“그렇다.”

“들었지.”

“그런데 왜 시간 역행을 거부한 거지?”

“그거 꼭 해야 되는 건 아니라며?”

말 그대로였다.

헨리는 어비스의 새 주인으로서 가장 먼저 시간 역행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연히 모든 플레이어들의 의사를 반영하고자 했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뜻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관리자들이 밤낮으로 일하는 것이었고.

메두사를 만나러 온 건 그 과정에서 발생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메두사는 거인들만큼이나 신전 지하에 기거한 자로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역행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메두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두 사람 사이에 티 테이블이 만들어졌고 메두사가 그곳에 앉으며 와인을 소환했다.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너도 참 보기보다 단순하다.”

“안부도 물을 겸 해서 온 걸로 하지.”

“예나 지금이나 무뚝뚝한 건 여전하네. 아무튼, 그럼 난 궁금증을 해결해 주면 되는 건가?”

“말해 줄 수 있다면. 억지로 들을 생각은 없다.”

“에이, 그런 게 뭐 그리 대단한 비밀이라고. 근데 이야기가 좀 길어. 그래도 괜찮아?”

그 말에 헨리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다.”

“좋아. 그럼 말해 줄게. 근데 생각해 보니 이 이야긴 아무한테도 한 적이 없네? 뭐, 상관없지. 그럼 영광스럽게 들으라구. 옛날에 말이야. 내가 어비스로 오기 이전에…….”

*아주 먼 옛날.

아이기스란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공주가 살았다.

그녀의 외모는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몸이 약한 사람은 그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올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기스는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며 크면 클수록 그 아름다움이 더 해져 마침내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미의 여신으로 찬미할 정도가 되었다.

“공주님, 오늘도 정말 아름다우세요!”

“아아, 여신님.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미의 여신이십니다!”

“사랑해요, 아이기스 공주님!”

아이기스에겐 매일이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면 오늘 하루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기대가 될 정도로.

그러던 어느 날 밤, 공주의 침실에 웬 노파가 찾아왔다.

노파는 마녀였다.

갑작스러운 마녀의 등장에 아이기스는 근위병들을 부르려고 하였으나 마녀는 자신의 힘으로 근위병들을 모두 잠재워 버린 후 공주에게 경고했다.

“아이기스 공주, 당신은 정말로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모르겠지만 아름답다고는 생각해요.”

“공주, 내게 거짓말을 하는군요. 난 마녀예요. 당신의 거짓 따윈 얼마든지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러니 내게 거짓말할 생각일랑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갑자기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가요? 제가 당신에게 무슨 해를 끼쳤다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난 그저 당신의 위선을 싫어하는 것뿐이니. 그러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아이기스 공주. 당신은 정말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죄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아이기스는 마녀의 겁박이 두려워 차마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내 스스로가 아름답다고 생각은 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에 마녀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좋아요.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어 주도록 하죠. 그 대신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하게 해선 안 됩니다.”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난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공주. 만약 내 경고를 무시하면 당신은 반드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거에요.”

그 말을 끝으로 마녀는 모습을 감추었다.

열린 창문.

밤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그 사이로 달빛이 쏟아진다.

마녀는 달빛 속으로 사라졌다.

“아아…… 왜…… 왜 내게 이런 일이…….”

공주는 흐느끼며 두려워했다.

대체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한참을 흐느끼던 아이기스는 눈물을 닦고 주먹을 쥐었다.

아무리 마녀가 경고했다고 했을지언정 이대로 가만히 앉아 체념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싸워야 해, 이게 내게 주어진 시련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극복해 내야만 해!’

그리고 그날 밤, 아이기스는 왕국의 대신들을 소집했고 긴급회의를 열었다.

국왕과 왕비, 그리고 그녀의 형제들까지 불평 한마디 없이 모두 다 참석했다.

회의가 시작됐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나 결국엔 한 가지 의견으로 좁혀졌다.

바로 마녀를 죽이는 것.

“마녀를 죽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마녀는 예로부터 박해받아 왔던 몹쓸 족속들입니다! 분명 공주님의 미모에 눈이 멀어 이런 일을 꾸민 것이 분명합니다!”

“마녀를 찾아 죽입시다!”

사람들은 진심이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공주 아이기스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을 만큼.

그에 왕과 왕비도 크게 감동하여 왕국 전역에 마녀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감히 우리 공주님을 해하려 하다니.”

“누가 뭐라 해도 우리 공주님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분이야.”

“미의 여신 그 자체나 마찬가지지.”

“마녀를 죽이자!”

각지에선 스스로 마녀를 죽이고 용사가 되겠다는 남자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비극은 시작되었다.

“너, 솔직히 말해. 네년이 마녀지?”

“마녀라뇨?! 저, 전 아니에요!”

“거짓말! 저번에 네년이 네 친구들과 공주님에 대한 욕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그건!”

“죽어라, 저주받을 마녀여!”

마녀에 대한 수배령이 내려짐과 동시에 각지에서 마녀 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아녀자들이 죽임을 당하기 시작한 것.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용사라 지칭하는 남자들은 적게는 한두 개부터 많게는 수십여 개의 아녀자 머리를 자루에 담아 왕궁으로 찾아왔다.

그것은 선의로 포장된 끔찍한 비극이었고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몇몇 대신들이 목소리를 모아 수배령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감히 마녀를 두둔해?”

“네놈도 마녀의 종이로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수배령을 철회하자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냐!”

“늙은 마귀여! 불 속에 들어가 네놈의 결백함을 증명해라!”

공주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 눈이 먼 다른 용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왕국 전역에는 시체의 산이 쌓이고 피의 강이 흘렀다.

웃음소리로 가득 했던 나라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곡소리로 가득했으며 나라에는 더 이상 활기가 사라졌다.

모두가 마녀로 몰릴까 두려워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러한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져 아무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왕국이 활기를 잃었습니다.”

“식량이 생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산과 길이 관리되지 않아 몬스터와 들짐승들이 판을 치고 도적떼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시체를 제대로 치우지 않아 강이 오염되고 역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모든 게 공주 때문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었다간 곧장 마녀로 몰려 개죽을 당하고 말 터이니.

그러나 진실은 영원히 묻힐 수 없고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다.

악화되어 가는 왕국의 운명에 결국 참지 못한 초야의 기인이 나타나 목소리를 드높였다.

“이 모든 건 공주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공주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마녀 같은 건 만나 보지도 않았으면서 거짓부렁을 고한 것일 수도 있다!”

기인은 강했다.

장정 수십 명이 덤벼들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그들을 모두 제압해 버릴 정도로.

그리고 세상은 힘을 가진 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니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세상을 구원할 현자라고 불렀다.

현자는 왕국으로 진격했다.

진격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점점 더 그 세를 키워 나갔고 마침내 왕국에 현자의 군대가 도착했을 땐 왕국군 조차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커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칼날은 공주에게로 드리워졌다.

“공주를 내놔라! 그렇지 않으면 왕족 모두의 목을 베겠다!”

그들의 겁박에 왕과 왕비, 그리고 공주의 형제들과 대신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공주를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지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공주가 그들 앞에 서게 됐다.

그런데 막상 공주를 본 현자와 그의 군대들은 공주의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공주를 직접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분이 진짜 공주라고?”

“정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잖아…?”

“맙소사…….”

마치 신을 알현케 하는 미모.

그것이 공주의 외모였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은 우습게도 그녀를 이 일의 원인으로 지목했던 현자까지 매료시키고 말았다.

공주의 아름다움에 홀린 현자는 한참을 넋 나간 사람처럼 공주를 바라보더니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도저히……

그는 도저히 공주를 죽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을 연상케 하는 저 아름다운 외모를 자신의 더러운 검으로 베었다간 신의 저주를 받을 것 같았기에……

그렇기에 현자는 공주와 검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공주는 내가 처리하겠다.”

“현자님께서요?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설마 공주님을 죽이시려는 건…….”

“내가 책임지고 공주와 함께 이 나라를 떠나겠다. 그러면 이 나라에서도 불행이 사라질 테니.”

“예에?!”

그것이 현자가 내린 결단이었다.

그는 도저히 공주의 죽음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몇몇 사람들은 현자 대신 자신이 공주를 데리고 왕국을 떠나겠다고 주장했으나 현자의 검 앞에 모두가 무릎 꿇고 말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현자를 욕하고 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현자에게 덤빌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왕과 왕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현자가 공주를 데리고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게 전부였다.

그리고 아이기스 공주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녀를 만났다는 결백함을 증명하고 이 나라에 닥친 저주를 벗겨 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어쩌면 저 현자가 자신을 저주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줄 진짜 용사일지도 몰랐기에.

그리고 그날.

두 사람은 모두에게 약속한대로 왕국을 떠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