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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72화 (472/522)

2부. 72화

불길 속에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고 헨리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그를 보았다.

“잘 타는구만.”

“대장님!”

“대장니임!!”

불타오르는 자신들의 대장을 보며 혁명군 대원들이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쯤 염기 스탯이 오르는 속도가 줄었다.

헨리의 불이 레반의 에테르 바람을 꽤나 많이 잡아먹은 모양.

그래도 수장이라고 조무래기들과는 좀 달랐다.

거기다 더 재밌는 사실은 레반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

“끄으으으!”

레반을 중심으로 강풍이 몰아친다.

어떻게든 지옥불을 전소시키려 발악하는 것일 테지.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제아무리 중층의 삼강 중 하나인 혁명군의 수장이라 할지라도 헨리는 중층 이상의 존재에게 후원받는 몸이었으니까.

헨리는 간헐적으로 뜨는 염기 상승 알림을 보며 클레버에게 말했다.

“아이의 잘못은 부모가 지고 단체의 잘못은 우두머리가 져야 한다. 어떻게. 마음이 좀 풀리느냐?”

“예, 이렇게나 신경 써 주시니 응어리진 마음이 눈 녹듯 녹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 말에 헨리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던 레반의 몸에서 불길이 사라졌고 까맣게 그슬린 레반만이 보였다.

“본보기 삼는 의미에서 죽이지는 않겠다. 그러니 너희가 이 아이에게 무얼 잘못했는지 생각하고 반성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헨리는 클레버를 데리고 사라졌고 자리에 남은 대원들은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저디스원을 떠난 헨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거인들을 만나러 갔다.

이동하던 중 클레버가 물었다.

“주인님, 물론 주인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긴 하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이냐?”

“중층의 거인들은 아무도 만나지 않는 굉장히 폐쇄적인 집단입니다. 그들이 사는 곳이야 중층에서도 워낙에 유명해 위치가 노출되어 있다지만 방문한다고 해도 바로 만나 줄지는 저로서도 미지수입니다.”

걱정도 팔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저러는 거겠지.

헨리가 말했다.

“클레버.”

“예, 주인님.”

“아까 전에 내가 보여 준 기억 속에서 대체 뭘 본 거냐.”

“예?”

“거기서 내가 거인들과 어떻게 지냈느냐?”

“아…… 죄송합니다. 전, 그저…….”

“그래. 걱정하는 마음에, 노파심에 그런 거겠지. 하지만 그리 하지 않아도 된다. 늘 나를 믿어라. 나는 너의 주인이고 헨리 모리스이며 가우스를 보우하는 천신이다.”

“……예, 주인님!”

헨리의 말에 클레버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말들이 참 든든히 느껴졌기에.

그쯤 중층에서 거인들이 모여 산다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끝이 안 보일 만큼 기다란 나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숲이었는데 숲의 입구에는 인디언들이 영역 표시를 하듯 숲 어귀에 놓인 거대한 바위에 넬바프라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그래서 의아했다.

넬바프는 아주 오래 전 어비스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거인들이 살던 세상의 이름이었으니까.

‘우습군.’

넬바프를 지키던 브리타니아를 등진 자들이 무슨 자격으로 넬바프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걸까?

무슨 사연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헨리는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이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요새 거인들의 희생이 있어서였으니까.

헨리는 명패 같은 바위를 지나 숲 안으로 들어갔다. 클레버도 눈치를 보던 끝에 급히 헨리 뒤에 따라붙었다.

숲 안에 들어서자 클레버가 숲의 절경에 감탄했다.

“멋진 곳이네요. 나무도 푸르고.”

“저걸 보고도?”

“저거요?”

헨리가 한쪽을 턱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그곳을 본 클레버의 안색이 파랗게 물들었다.

“저거 설마…… 다 머리뼈일까요?”

“그런 것 같네.”

두 사람의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에는 생명체의 머리뼈로 보이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탑이 있었다.

흉물스러움을 넘어 공포심까지 들게 하는 구조물. 이런 구조물을 설치한 이유야 뻔했다.

‘혹시 모를 침입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일 테지.’

그렇게 얼마간 더 걸어 들어갔을 때였다.

쿵! 쿵! 쿵!

거대한 굉음 소리.

그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졌고 엄청난 크기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것은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몹시 빠르게 달려왔는데, 산처럼 다가오는 그것의 정체는 머리에 뿔이 달리 코끼리였다.

“엘리혼이네요.”

“아는 놈이냐?”

“성깔이 포악하기로 유명한 중층의 마수들 중 하나입니다.”

“그래?”

그런데 엘리혼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삼사 미터에 달할 것 같은 엘리혼은 두 사람을 향해 달려오는 게 아니라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몸 곳곳에 피가 나고 상처들도 가득했다.

그 순간.

콰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쿠구궁!

엘리혼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생을 마감하였다.

“잡았다!”

“내가 쏜 화살로 죽였어!”

“내가 죽인 거지! 어떻게 네가 죽인 거냐!”

“어? 근데 잠깐만, 저기 좀 봐.”

“응?”

낯선 목소리.

그것은 엘리혼 뒤편에서 난 소리였는데 한두 명이 아니었다.

헨리와 클레버는 자리에 가만히 있었고 그러는 동안 목소리의 주인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놀랍게도 그들은 소년들이었다.

‘소년?’

고작 소년들이 엘리혼을 사냥했다고?

헨리가 속으로 의문을 표할 때쯤, 아이들이 각자 쥔 무기를 들고서 헨리 앞으로 다가왔다.

“처음 보는 외견인데?”

“복장이 이상해.”

“뭐지? 마을에서 이런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치곤 경계심이 없다. 그 모습이 불편했는지 클레버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흠흠, 애들아. 혹시 미안한데 이 숲 속에 사는 거인들에 대해 아니? 우린 넬바프를 찾으러 왔거든.”

“넬바프?”

“우리 마을요?”

“오, 너희 마을 이름이 넬바프니? 근데…….”

뭔가 이상했다.

아이들이 사는 마을의 이름이 넬바프라면 이 아이들은 분명 거인이어야 하는데?

하지만 눈앞의 아이들은 거인은커녕 보통 사람들 정도의 키를 가졌다.

그렇기에 클레버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내가 알기로 넬바프는 거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들었는데…… 혹시 거인 말고도 다른 종족들도 있니?”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린 거인들을 찾고 있거든. 근데 너흰 우리가 아는 거인들보단 좀 작아서 말이야.”

최대한 조심스레 설명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조차도 기분이 나빴는지 버럭 화를 냈다.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우린 거인이에요!”

“우리가 거인이 아니라면 대체 뭔데요?”

“너희가 거인이라고?”

“그래요! 그러는 아저씨는 뭔데요! 뭔데 우리한테 거인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당황스러웠다.

거인들은 유년기에 사람만큼 작나?

당황한 클레버가 급히 사태를 수습했다.

“미, 미안하구나 애들아. 아저씨가 거인을 처음 봐서 말이지. 그럼 혹시 어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 좀 해 줄래? 아저씨들이 어른들한테 볼일이 좀 있거든.”

“어른들한테요?”

“음, 그건 좀 곤란한데.”

“어른들이 낯선 사람 함부로 마을로 데리고 오지 말랬어요.”

“그, 그러니?”

“네.”

그런 것치곤 경계심이 너무 없는데?

그때, 잠자코 기다리던 헨리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일순 마력이 뿜어지더니 염동 마법으로 애들 셋 중 두 명을 산 채로 포획해 공중에 띄웠다.

“어, 어?”

“으아아! 이게 뭐야!”

“내려줘요!”

염동 마법에 몸이 두둥실 떠오르자 붙잡힌 아이 둘이 버둥거리며 풀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헨리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붙잡지 않은 남은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 정확히는 뻗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잡히지 않은 아이가 버둥거리며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클레버가 입을 반쯤 벌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이리 했어야 하는 건데.”

“됐으니 잘 따라가거라.”

“예.”

아이들을 잡은 이유.

해칠 생각은 없다.

그냥 위협을 느낀 사람들의 귀소본능을 이용하려 한 것뿐.

작전은 먹혔다.

클레버는 아이를 따라갔고 헨리는 클레버를 따라갔다.

“이제 보니 외부의 것들이었구나!”

“어른들이 조심하라는 놈들이었어!”

“이런 젠장!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시끄럽다.

붙잡힌 두 명이 허공에서 쉴 새 없이 조잘대서 마법으로 소리를 제거한 후 계속해서 따라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숲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진짜 넬바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망친 아이는 이미 마을에 도착해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모인 어른들의 수가 상당했다.

그런데……

‘왜 다 작지?’

작았다.

요새에서 봤던 거인들이 아닌 흔한 플레이어들만큼이나.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저들이 진짜 거인인지.

헨리는 클레버와 함께 납치한 아이 둘을 데리고 그들 앞에 섰다.

“외부인!”

헨리의 등장에 거인들…… 아니, 넬바프의 주민들이 지니고 있던 무기들을 꺼내 들어 두 사람을 겨누었다.

그중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 하나가 대표로 말했다.

“플레이어가 이곳엔 어인 일이지? 분명 넬바프와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을 텐데……!”

‘불가침조약?’

그 말에 헨리가 클레버를 보았으나 클레버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난 중층에 입층한 지 얼마 안 된 플레이어라 그런 건 잘 모른다. 그보다, 넬바프의 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헛소리! 납치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우리 애들을 풀어 줘라!”

그렇군.

그러고 보니 애들이 있었지.

하지만 자신들을 감싼 흉흉한 기세를 보고 있자니 곱게 풀어 줄 이유가 없었다.

헨리가 말했다.

“아이들을 무사히 돌려받고 싶다면 너희들의 수장을 불러와라.”

“…큭! 비열한 놈!”

욕을 먹긴 했으나 어차피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협박하거나, 아님 아이들을 돌려주고 덤벼드는 주민들을 제압한 후 무력으로 수장과 독대하거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자가 나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를 든 주민들 사이로 성난 얼굴의 백발 노인네가 나타났다.

“내 이름은 게덤이다. 이곳 넬바프의 촌장이지. 이제 내가 왔으니 아이들을 풀어 줘라.”

“풀어주면 당신과 독대할 수 있나?”

“이놈! 자꾸 말이 길어지는구나!”

“원하는 건 당신과의 독대가 전부다. 그것만 약속해 주면 풀어 주지.”

“쯧, 비열한 놈 같으니. 오냐, 약속하마.”

“브리타니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나?”

“…….”

브리타니아.

거인들이 신처럼 생각하는 존재.

그 이름이 나오자 게덤의 눈이 도끼눈이 됐다.

“…맹세하지, 그분의 이름을 걸고.”

“좋아.”

거인들은 명예와 긍지를 아는 자들이니 한 입으로 두말하진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돌려주자 정말로 공격해 오지 않았다.

이윽고 촌장과 독대할 자리가 마련되었고 헨리는 대화를 하기에 앞서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게덤에게 건넸다.

그러자 그것을 건네받은 게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이건……!”

“알아본다니 다행이군. 내 이름은 헨리다. 라훔의 친구이자 그들이 보낸 사절단이기도 하지.”

헨리가 노인에게 건넨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오직 브리타니아의 무덤을 지키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브리타니아의 명예로운 휘장들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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