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09화 (409/522)

2부. 9화

“감사합니다, 스승님!”

“항상 존경하거라.”

“예, 스승님!”

협회에서 신재하라는 이름 세 글자가 가진 힘은 어마무시했다.

허나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점은 아직 테스트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에도 협회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

재하는 자신의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스승의 말을 실감했다.

‘이게 힘이구나.’

덕분에 가슴에 학구열이 지펴졌다.

‘그전에 책부터 사 드리고.’

재하가 외투를 입으며 말했다.

“그럼 일단 책부터 사러 가 보실까요?”

“한국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안내해 보거라.”

“가장 큰 서점이요?”

스승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재하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 스승님!”

*두 사람은 이번에도 외모를 바꾸어 외출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파주에 위치한 지식의 숲.

이곳은 어비스가 나타난 이후 정부가 인류의 지식을 씨앗처럼 보관하겠다는 의미에서 만든 곳이었다.

‘이게 되네.’

재하는 혹시나 해서 헨리에게 지식의 숲의 사진을 보여 주고 이동 마법의 사용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혹시나 해서 제안한 게 진짜로 될 줄 몰랐다.

‘텔레포트 때문에 전국일주는 안 해도 되겠군.’

덕분에 시간을 절약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지식의 숲에 들어갔고 헨리는 천장까지 가득히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며 지식의 숲의 규모에 감탄했다.

‘그 옛날, 제국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군.’

가득히 쌓여 있는 책들을 보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

하지만 제국 도서관과는 달리 한국의 도서관은 특이하게도 책 냄새가 꽤나 좋았다.

“책 냄새가 좋구나.”

“책방 냄새는 묘하게 사람을 당기게 하는 그런 맛이 있죠.”

“이만한 양의 책들을 훼손 없이 보관하라면 보통 일이 아닐 텐데.”

“마법은 없지만 과학으로 습도를 조절해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학이란 건 들을 때마다 참 신기하구나.”

“저도 그렇습니다. 그럼 천천히 한번 둘러보시겠어요? 전 근처에서 스승님이 주신 책을 읽고 있겠습니다.”

“여기 있는 책들은 자유로이 봐도 되는 것이냐?”

“아, 그걸 말씀 안 드렸군요. 비닐에 쌓인 책만 제외하면 뭐든지 보실 수 있습니다. 근데 웬만하면 다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여기 창업주가 그런 거에 좀 관대하거든요.”

“좋은 곳이군.”

재하는 도서관 열람실처럼 마련된 자리에 앉아 헨리가 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헨리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흠.”

헨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낯선 이차원의 도서관은 탐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마법사에게 있어 신세계와도 같았다.

특히 갈래별로 코너가 나뉘어져 있는 게 특히나 흥미로웠는데 헨리는 걸음을 옮기던 중 웬 벽보 앞에서 멈춰 섰다.

벽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다.

++

<지식의 숲을 지키는 숲지기들에게>

1.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2. 책을 한 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3. 책을 이것저것 빼 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4.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5.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하여 절대 망신 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가 좋은 말로 타이를 것.

++

“숲지기들에게라…….”

벽보에 적힌 것.

그것은 지식의 숲을 만든 창업주가 직원들에게 남기는 영업지침으로, 세간에선 꽤나 유명한 영업지침이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멋진 사람이군.’

아마도 귀족이겠지.

헨리는 낯선 이국땅에서 느껴지는 품격에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책 구경을 시작했다.

*헨리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백과사전이 잔뜩 있는 곳으로 향했다.

헨리가 백과사전에 간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펼쳐진 다양한 백과사전 속의 그림들이 헨리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

놀라웠다.

한낱 서적 따위 안에 이토록 정밀한 그림을 박아놓다니.

심지어 책은 몹시 두꺼웠고 표지는 고급스러웠으며 그 안을 이루고 있는 종이들은 몹시 양질의 것이었다.

헨리는 수많은 백과사전들 중 우선적으로 ‘지구동물대백과’를 펼쳐 탐독하기 시작했다.

“흠.”

촥─

“흐음.”

촥─ 촥─

“흐으음.”

촥촥촥─!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헨리의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몹시 빠르다.

대충 넘기는 게 아니었다.

헨리는 기본적으로 독서를 할 때 속독을 했는데, 집중력이 높으면 높아질수록 그 속도가 빨라졌다.

허나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게 비치진 않았다.

‘흥미롭군. 그리고 재밌어.’

몇 권 정도의 대백과를 에피타이저처럼 탐독한 헨리가 흡족한 표정으로 책을 덮었다.

재밌었다.

당연했다.

가우스의 책들은 대부분이 사전처럼 글자가 빡빡한 것에 비해 요즘 백과사전들은 글자 수도 적고 핵심만 담겨 있으며 양질의 사진들이 잔뜩 담겨져 있었으니까.

‘다음은 뭘 볼까?’

얼굴에 흥미로움으로 가득 찬 헨리가 다음 책을 읽기 위해 책장을 둘러보던 참이었다.

‘음?’

그때였다.

헨리의 귓가에 요동치는 심장 박동이 들리기 시작한 건.

누굴까?

기감 자체가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헨리이기에 생물의 심장 박동 소리야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조용하기 그지없는 서점.

모두가 평안하게 책을 읽고 있기에 그의 심장 박동 소리만 유난히 도드라지게 들렸던 것이다.

헨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에는 웬 남자가 책을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보는 척 가지고 온 에코백에 책을 담고 있었다.

‘도둑이군.’

그는 도둑이었다.

하려는 행동이나 표정만 봐도 그가 손님인지 도둑인지 정도는 구분이 가능했다.

특히 그의 요동치는 심장 박동 소리가 그가 도둑임을 더더욱이 증명했다.

헨리는 책을 고르는 척 그를 주시했다.

남자도 책을 고르는 척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몇 권 정도 더 가방 안에 책을 넣은 후 그제서야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숲지기들은 모르는 모양이군.’

그 어떤 숲지기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CCTV라면 사방에 깔려 있었고 직원들의 수도 꽤 많았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남자는 계산대를 지나 금방 서점을 벗어났다.

그것을 본 헨리가 혀를 차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점을 벗어난 남자가 자신이 책을 훔친 장소로 다시 되돌아 온 것이다.

“……?”

주변의 바뀐 풍경에 남자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심장 박동은 아까보다 더 크고 빨라졌다.

허나 이내 곧 고개를 털며 다시 서점 밖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본 헨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서 또 그 남자를 서점 안으로 옮겨 놓았다.

“……!”

남자는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남자의 심장박동은 더 크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으며 이젠 식은땀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곧 떨리는 손으로 가방 속의 책들을 꺼내 다시 책장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도둑질을 할 때처럼 종종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흠.”

남자가 사라진 뒤, 헨리는 남자가 놓고 간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재하에게 영성을 보내 남자가 놓고 간 책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을 무렵, 재하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한재호였다.

- 테스트로 사용될 게이트들이 선정되었습니다.

게이트 선정이 완료됐다는 말에 재하는 헨리를 찾았다.

- 스승님,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테스트로 쓰일 게이트 선정이 끝났다구요.

- 알겠다. 근데 여기 있는 책들을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 양이 많으신가요?

- 많다.

- 종이에 적어서 직원한테 갖다 주면 알아서 새 책을 내어 드릴 겁니다. 돈을 추가로 지불하면 집까지 배송해 주기도 하구요.

- 직접 담아 가면 된다.

- 알겠습니다. 책 사는 것 좀 도와드릴까요?

- 그래.

고작해야 몇 시간이었지만 헨리는 그동안 꽤 많은 책들을 보았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서서 본 책들보다 구매하기 위해 골라 온 책들의 수가 더 많다는 것.

헨리가 고른 책 목록을 본 재하가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많이 사시게요? 이거 다 보실 수 있으시겠어요?”

“반절 정도는 여기서 본 것들이다.”

“예? 그런데 왜 사세요?”

“왜 사다니? 당연히 사야 하는 것 아니더냐?”

“이미 보셨다면서요? 그럼 굳이 사실 필요 없어요.”

“쯧쯧, 마음이 못됐구나.”

“예?”

“작가는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텐데 제대로 값도 치르지 않고 내용물만 취한다면 작가가 얼마나 슬퍼하겠느냐?”

“그것도 그렇긴 한데…….”

“우리는 빈자가 아니다. 책 살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레 온정을 바란다면 그것만큼 추한 것이 없단다.”

“…예, 스승님.”

“명심하거라, 제자야. 격이란 것은 타인에게 보여 주기 위해 갖추는 것이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해 갖추는 것이란 걸.”

헨리의 말에 재하는 얼굴을 붉혔다.

생각해 보면 이곳은 서점이지 도서관이 아니었고 여기서 책을 자유로이 읽게 해 주는 건 지식의 숲을 만든 창업주의 배려였지 숲 자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그래. 지금이라도 알면 됐다.”

두 사람은 이윽고 작성한 북 리스트를 가지고 계산대에 가 구매를 시작했다.

“양이 많으시네요. 집으로 배송해 드릴까요? 구매액이 10만 원을 넘으셔서 집까지 무료로 배송해 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재하는 센스 있게 둘러댔다.

어차피 헨리에겐 아공간 있었으니까.

직원의 배려로 빌린 쇼핑 카트에 구매한 책들을 담던 중이었다.

재하가 책 한 권을 집어 들며 물었다.

“경찰학개론? 이건 왜 구매하세요?”

경찰학개론뿐만이 아니었다.

몇 권 정도의 책들이 모두 경찰 공무원과 관련된 수험서였는데 수험서 비스무리한 건 구매 목록들 중 이것들뿐이었다.

“비밀이다.”

“예?”

“책이나 담거라.”

뭘까?

아까 전에도 갑자기 공무원 수험서에 대해 질문하시더니.

근데 뭐가 대수랴.

헨리가 무슨 책을 사든, 어차피 헨리가 벌어다 준 돈인데.

재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쇼핑 카트에 책을 담기 시작했다.

*고시원으로 돌아온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엎드렸다.

그리곤 묵은 숨을 토해 냈다.

“하…….”

이상한 경험이었다.

마치 타임 루프에 갇힌 것처럼 아무리 서점을 벗어나도 자꾸만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 왔다.

책을 훔치려던 자신에게 벌이라도 내려진 걸까?

그런 생각에 홀로 덜덜 떨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

그 소리에 남자는 흠칫 놀랐지만 이내 곧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방문 앞에는 놀랍게도 자신이 훔치려던 책들이 비닐도 뜯지 않은 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놀란 남자는 순간 얼어붙었으나 이내 곧 놓인 책들 위에 쪽지 한 장이 붙어 있음을 알게 됐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다.

-부디 좋은 경찰이 되기를.

숲의 주민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