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8화
꿀꺽-
방에 마른침 삼키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빌런.
이 세상 모든 플레이어가 헌터가 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감옥 안의 죄수가 플레이어로 각성할 수도 있는 거고, 게이트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국가적 범죄자였던 자들이 갑자기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보통, 그런 성향을 가진 이들은 굉장히 높은 확률로 헌터가 아닌 빌런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빌런들은, 놀랍게도 검거율이 굉장히 떨어졌다.
왜냐면 그들은 이제 평범한 범죄자 따위가 아닌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범죄자였으니까.
그때, 협회장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한재호가 말했다.
“검증이 필요합니다.”
“검증?”
“수치가 너무 비정상적입니다. 그가 정말로 투신보다 더 뛰어난 헌터가 맞다면 적어도 실전 테스트를 통해 향후 거취를 정해야 합니다.”
“그러다 심기라도 건드리게 되면?”
심기.
다른 간부의 의견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가 빌런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절차는 절차니까요.”
“음.”
맞는 말이었다.
그가 아무리 강력한 헌터라 할지라도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해야 하니까.
“한 팀장 말이 맞아. 시대가 아무리 약육강식, 강자존의 시대가 됐다고는 하나 그래도 많은 국민들이 법의 수호 아래 살고 있으니까. 좋아, 실전 테스트 진행시켜.”
“심사위원은 누구로 할까요?”
“신재하의 등급이 등급이니 만큼 그자를 부르는 수밖에.”
“그자라면…….”
그때였다.
──쾅!!
잠금 장치가 걸려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린 건.
문을 열고 나타난 이.
다름 아닌 헨리였다.
“시, 신재하 헌터?”
헨리의 돌발 행동에 협회장은 물론 방 안에 있던 사람 모두가 얼어붙었다.
현재 그들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신재하는 그들에게 있어 역대급 괴물 헌터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헌터가 갑자기 난폭하게 행동한다?
당연히 얼어붙을 수밖에.
문을 열고 나타난 헨리가 싸늘하게 말했다.
“테스트라는 게 이런 식으로 사람을 쥐새끼처럼 구경하는 건가?”
“어, 어떻게 그걸…….”
취조용으로 설치된 특수한 거울이나 CCTV 등……
사람의 시선처럼 느껴지는 것들은 모두 다 헨리의 기감에 포착된다.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헨리가 재차 물었다.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신재하 헌터!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우린 신재하 헌터를 그런 취급하기 위해 이렇게 모여 있던 게 아닙니다!”
“그럼?”
“그냥 절차상 여기 모여 있던 것뿐입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신재하 헌터.”
“오해라…….”
사실 헨리는 화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러는 건 순전히 보여 주기식 쇼였다.
왜냐하면 헨리는 벽 너머로 그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들이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 사실을 십분 이용하기 위해서.
헨리가 시선을 옮겨 협회장에게 물었다.
“당신이 협회장인가?”
“그렇습니다.”
협회장은 생각보다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헨리가 저벅저벅 걸어와 빈 의자를 끌어 책상 앞에 앉았다.
그 광경에 협회장도 헨리를 따라 헨리의 건너편에 앉았다.
대화 테이블이 마련되자 그제서야 헨리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다들 검사 결과를 믿지 못하는 눈치로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보다 자세한 검증이 필요한가?”
“워낙에 능력치가 뛰어나시다 보니 사실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좋아, 응해 주지. 하지만 방식은 내가 정하겠다.”
“…예?”
“말 그대로다. 듣자 하니 심사위원을 초빙해 테스트 하려던 모양인데 어차피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진실이라면 굳이 사람을 통해 할 필요는 없잖아?”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듣고 있었던 건가?
헨리의 말이 이어졌다.
“내 목적은 어비스에 입탑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열쇠가 필요하겠지. 하지만 난 아직 열쇠가 없어. 그러니 제안하지. 내 능력을 테스트 하고 싶다면 게이트를 통해 확인해라. 그럼 모든 게 해결되잖아?”
맞는 말이긴 했다.
결국 헌터가 존재하는 이유는 어비스가 생성해 내는 게이트를 막기 위함이었으니까.
헨리의 말에 간부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았고 협회장은 고심했다.
허나 고민이 길지는 않았다.
이 상황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없어 보였으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테스트 할 게이트는 저희가 정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럼 이제 면허를 갱신시켜 주는 건가?”
“면허는 테스트와 상관없이 지금 바로 갱신시켜 드리겠습니다. 새 면허를 받아 가실 필요 없이 쓰고 계신 면허를 그대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연락은?”
그 말에 한재호가 잽싸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제 직통 연락처입니다. 항상 대기하고 있을 테니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음.”
헨리는 한재호의 명함을 잠시 보더니 협회장에게 말했다.
“당신이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 아닌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 것도 줘.”
“……한 팀장.”
“예, 협회장님.”
헨리의 요구에 한재호는 다시 잽싸게 움직여 협회장의 명함을 받아 헨리에게 주었다.
헨리가 두 사람의 명함을 품에 넣으며 물었다.
“그럼 게이트 선정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지?”
“오늘 내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되도록 빨리 부탁하지.”
이 정도면 훌륭했다.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룬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려던 차였다.
“아참.”
“예?”
모두의 신경이 다시 곤두선다.
허나 헨리는 아랑곳 않고 한재호의 명함을 보며 말했다.
“이름이 한재호라고?”
“예, 신재하 헌터님.”
“언제든 연락 달라고 했는데 혹시 내 대신 일처리도 해 주나?”
“일처리요? 일처리라면 어떤…….”
“집 앞에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이게 상식적으로 맞는 건가?”
“바, 바로 조치를 취해 드리겠습니다!”
“좋아.”
말을 마친 헨리는 다시금 만족스런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윽고 헨리가 떠난 후였다.
“허…….”
방 안에 있던 사람들……
예컨대 이명진 헌터를 비롯한 협회 사람 모두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맥이 풀린 이명진이 중얼였다.
“어쩌면 투신보다 더 미친놈일지도 모르겠다…….”
*볼일을 마친 헨리는 바로 집으로 복귀했다.
돌아온 집에는 고풍스런 디자인의 책상 앞에서 자신이 준 책을 읽고 있는 재하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그래.”
“어떻게 되셨어요?”
“잘 해결됐다.”
“끝이에요?”
“그럼?”
“귀찮으시겠지만 좀 자세히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귀찮구나.”
“그래도요.”
재하의 재촉에 헨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의자에 앉아 협회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재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진짜 그러셨다구요?”
“그래.”
“와…….”
세상에 문을 부수고 들어가 협박하다니.
세상에 그런 협상 방식은 듣도 보도 못 했다.
허나 헨리는 당당했다.
“재하야.”
“예, 스승님.”
“힘이란 게 이런 거다.”
“예?”
“호랑이는 토끼의 눈치를 보지 않듯, 강자가 되면 미물들의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긴 하죠…… 확실히 스승님은 상남자이신 것 같습니다.”
“상남자가 뭐냐?”
“그냥 뭐, 남자 중의 남자 같은 말입니다.”
“흠, 그래. 내가 옛날부터 좀 상남자 기질이 있긴 했지.”
“근데 얼마나 대단한 상태창을 보여 주셨길래 다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너도 볼래?”
“예.”
재하가 호기심을 내비치자 헨리는 이명진에게 보여 주었던 환상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이윽고 환상이 걷혔을 때였다.
“미친.”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 세상에 특성을 여섯 개나 가진 헌터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을 뿐더러 하물며 그 특성들의 등급이 전부 다 S급인 헌터는 여지껏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
더불어 모든 스탯 수치가 99라니.
재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왜 스탯 수치는 99로 맞추신 거예요?”
“그 투신이란 녀석의 스탯도 전부 두 자릿수길래 나도 그냥 두 자릿수로 맞춘 것뿐이다.”
“아…….”
“그보다 이것들을 받거라.”
“이게 뭐예요?”
헨리는 재하에게 한재호와 협회장에게서 받은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 협회장이라 쓰여진 자가 가장 높은 사람이라더구나. 연락은 한재호라 쓰여진 사람에게 하면 된다. 항상 대기하고 있겠다 했으니 편하게 연락하면 될 것이다.”
“…….”
명함을 받아 든 재하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이 양반, 대체 협회에 가서 뭔 짓거리를 하고 온 거야?
그때, 헨리가 창문 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협회가 일을 하는군.”
“예?”
“나가서 창문을 보거라.”
헨리의 턱짓에 재하는 대저택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창문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네요?”
“간 김에 저것들 좀 치워 달라고 했거든.”
“센스가 아주 탁월하십니다, 스승님.”
“그걸 이제야 알았단 말이냐?”
새삼 헨리가 말하는 힘의 권력이 무엇인지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제자야.”
“예, 스승님.”
“연락이 오기 전까지 지구의 책을 좀 보고 싶은데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느냐?”
“책이요?”
“한동안 지구에 머물러야 하니 지구에 대해 좀 알아두려고 한다.”
“아…… 음, 책이요…….”
책.
사실 책이 많은 곳이야 뻔했다.
지역 도서관에만 가도 공짜 책은 많았으니까.
하지만 과연 헨리가 도서관에 가서 조용히 사고 안 치고 도서관을 이용할지가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가장 안전한 방법은 새 책을 사서 집에서 읽는 건데……
‘잔고가 간당간당한데 어쩌지?’
문제는 재하의 통장 잔고가 간당간당하다는 것.
심지어 요즘 책값은 비싸도 너무 비쌌다.
재하가 안색을 굳히자 헨리가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아, 그게요…….”
재하는 잠시 갈등한 끝에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새 책을 사서 집에서 읽었으면 한다?”
“제 입장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편이 나으실 겁니다. 도서관의 책들은 상태가 안 좋은 것도 꽤 있고 좀 오래된 책들이 대부분이라 스승님께서 별로 만족 못 하실 수도 있어서요. 근데 새 책을 사 드리기엔 제가 지금 돈이 없네요.”
“기침과 가난은 숨길 수 없다더니, 이런데서 너의 가난이 드러나는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지. 하지만 네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착각이요?”
“넌 이제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게 무슨 말씀…… 아!”
헨리의 말뜻을 이해한 재하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꽃을 띄웠다.
“그렇죠. 이제 저는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죠.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제가 스승님이 원하시는 만큼 실컷 책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재하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건 곳은 다름 아닌 한재호였다.
- 예, 신재하 헌터님!
전화는 발신음이 세 번이 채 가기도 전에 수락됐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재호의 긴장된 목소리에 재하가 더더욱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돈이 필요합니다.”
- 돈이요?
“예, 생활비가 없습니다. 돈 좀 보내 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