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0화
“음.”
“정말 이렇게 선정하실 겁니까?”
몇 시간 전, 협회의 어느 회의실.
협회장을 비롯한 협회의 고위 간부들이 모여 있다.
이들이 논의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신재하 헌터를 테스트하기 위한 게이트를 선정하는 것.
그리고 오랜 토론 끝에 선정된 다섯 개의 게이트.
그것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악의 게이트들이었다.
협회장이 말했다.
“응, 반드시 이것들이어야만 해.”
“이건 테스트가 아니라 거의 죽음으로 내모는 수준이 아닙니까?”
“맞아.”
“예?”
“죽으라고 보내는 거야.”
“그게 무슨…….”
간부의 반문에 협회장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국내 최초의 육각형 플레이어야. 게다가 모든 능력치가 S급인데다 이명진 헌터의 말로는 또 다른 힘이 느껴진다고 했지. 이게 뭘 뜻하는 것 같나?”
협회장의 물음에 간부들이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글……쎄요?”
“SS급 헌터?”
“전대미문의 괴물?”
천편일률적인 대답들.
그 대답에 협회장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탯 수치가 말도 안 되는 건 둘째 치고 사람 자체가 변했어. 랜덤 게이트가 미지의 영역이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차 각성 한번 했다고 사람 자체가 변했단 말이야.”
혹시 몰라 뒷조사를 해 보았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이 본 재하의 행동이나 말투는, 왠지 모르게 그 나잇대의 사람이 아닌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감히 그런 생각이 들더군. 어쩌면 신재하 헌터는 게이트 역사를 뒤집어 놓을 이레귤러적인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이레귤러…….”
“이레귤러요…….”
그 말에 간부들이 침음성을 삼킨다.
협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헌터를 우리가. 아니, 더 나아가 우리 정부를 비롯한 그 어느 기관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 하지만…….”
말을 잇던 협회장이 테이블에 깔린 최악의 게이트 사진들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이용은 할 수 있겠지. 최소한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해서만큼은. 그렇기에 이곳들로 보내야 해. 만약 그가 정말로 이것들을 해결한다면 좋을 일이고.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다루지 못하는 칼은 시한폭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확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가 역사를 뒤흔들어 줄 영웅일지, 아니면 그저 그런 흔하디흔한 S급 강자들 중 한 명일지 말이다.
*“이렇게 총 다섯 개네요.”
재하는 내친 김에 태블릿 패드까지 사와서 헨리에게 배정된 게이트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 중에서 두 개만 클리어 하면 되는 건가?”
“예, 두 개만 클리어 해도 스승님의 힘을 인정해 주겠다고 합니다.”
“테스트치곤 간단하군.”
“간단이라…….”
단순히 개수만 놓고 보면 그렇다.
허나 그 알맹이는 전혀 아니었다.
‘격리 게이트 2개와 대장급 미격리 게이트만 보냈는데 이걸 보고 간단이라니…….’
실소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후자인 지역별 대장급 게이트의 경우엔 어찌됐든 클리어한 전적이라도 남아 있지.
전자에 해당하는 봉인된 게이트는 한국에서도 두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미해결 게이트였기 때문.
랭크는 당연히 SS급.
게이트에 기재된 등급은 S급이었지만 여지껏 클리어한 사람이 없어 등급이 한 단계가 상승한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에선 이러한 미해결 게이트들……
즉, 격리로 봉인한 게이트들을 SS급 게이트라 불렀다.
헨리가 물었다.
“제자야.”
“예, 스승님.”
“근데 그 열쇠라는 건 게이트의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빨리 만들어지는 것이냐?”
“이론상으로는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덕분에 고민할 시간을 아꼈다.
재하의 말을 들은 헨리가 봉인된 게이트들을 가리켰다.
“그럼 더 볼 것도 없이 저것들 두 개로 하마.”
헨리가 가리킨 것.
당연히 SS급의 봉인된 게이트들이었다.
헨리의 말에 재하가 턱을 어루만졌다.
“음.”
“왜 그러느냐?”
“그냥 궁금해져서요.”
“무엇이 말이냐?”
“제가 알기로 열쇠를 만들기 위한 최소 조건들 중 하나가 최소한 게이트 다섯 개는 클리어 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다섯 개? 그런 규칙도 있었느냐?”
“세간에 알려진 규칙이긴 해요.”
“그럼 시스템이 아닌 사람들이 정한 것들이란 말이군.”
“그렇죠. 그래서 궁금해진 거예요. 처음부터 이렇게 높은 등급의 게이트만 클리어 하면 어떻게 될지요.”
“그것도 그렇군.”
“근데요, 스승님.”
“왜 그러느냐?”
“그…… 아닙니다, 아무것도.”
재하는 순간 물어보려던 걸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괜한 질문이야.’
재하가 물어보려던 것.
다름 아닌 권력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도 그럴 게 헨리가 정말로 이것들을 클리어 하고 나면 헨리는 정말로 지구 최강의 헌터로 등극하게 되기 때문.
‘그렇게 되면 모두가 스승님을…… 아니, 나를 두려워하게 되겠지.’
헨리는 정말로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을까?
정말로 자신이 사는 세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걸까?
더불어 거짓으로 쌓아 올린 명성이라 해도 자신이 그 모든 것들을 누려도 되는 걸까?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허나 이런 건 모두 헨리가 정말로 봉인된 게이트들을 클리어 하고 났을 때의 이야기.
물론 헨리의 힘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허나……
‘여기 적힌 것들은 내가 있던 A급 게이트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곳들인데…….’
재하가 골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자, 그것을 본 헨리가 말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나.”
“아, 아닙니다.”
“아니긴 무슨…… 근데 말이다, 제자야.”
“예?”
말을 잇던 헨리가 검지를 들어 재하의 이마를 톡 누르며 말했다.
“노파심에 해 두는 말이지만 네게 어떠한 상황이 오든 간에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거라.”
“…예, 스승님.”
“알아들었으면 아까 말한 게이트들의 사진이나 보여다오.”
왠지 모르게 꿀밤 한 대를 맞은 기분.
헨리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항상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 든다.
재하가 첫 번째 게이트의 사진을 보여 주며 물었다.
“근데 지금 가시게요?”
“그럼?”
“게이트에 입장하는 법은 아세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입구까지는 동행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봉인된 게이트면 분명 게이트를 지키는 요원들이 있을 텐데요?”
“쯧쯧, 아직도 멀었구나.”
“예?”
“그런 건 다 의미 없는 것들이란다.”
충고를 마친 헨리가 순식간에 눈앞에 서 사라졌다.
*늦은 밤, 강원도 횡성.
아직 자정이 되진 않았지만 달빛은 휘영청 찬란했다.
“흐아암.”
횡성군에 설치된 상황통제실.
그곳은 오래 전, 어느 농가에 생성된 미해결 게이트, 현재는 ‘SS1’이라 불리는 곳을 위해 만들어진 감시 시설이 있다.
이곳에는 오직 플레이어들로만 이루어진 병력이 주둔해 있으며 24시간 감시 교대로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상황통제실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바로 ‘어.’
그 말에 졸고 있던 실장을 비롯한 모든 요원들이 화들짝 잠에서 깼다.
“뭐야?”
“야, 내가 함부로 어? 하지 말라고 했지.”
“몬스터 나왔으면 그냥 몬스터 나왔다고 하면 되잖아.”
주위에서 불평들이 쏟아진다.
그에 요원이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몬스터가 아닙니다.”
“뭐?”
“몬스터가 아니라니?”
“사람입니다. 그것도 1급 구역에….”
“……뭐?”
그에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모니터에 비춰진 이.
헨리였다.
*헨리는 횡성군에 위치한 어느 농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인 모양이군.’
농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한때는 한우의 고장이라 불렸던 곳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전대미문의 게이트에 의해 이제는 영원히 격리 조치가 된 구역이었으니까.
헨리가 도착한 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 구역에 해당하는 1급 격리 구역이었는데 이곳에는 사람이 아닌 CCTV와 적외선 감지기들로만 감시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헨리가 등장함으로써 당연히 상황 통제실에는 난리가 났다.
“야! 왜 사람이 나타나?”
“저거 사람 맞아?”
“미친 거 아냐? 빨리 가서 잡아!”
허나 그런 사정은 모른 채 헨리는 농가 중앙에 떡하니 개설된 게이트 포탈을 천천히 감상했다.
“이게 게이트 포탈이란 거군.”
도움이 될까 싶어 지구의 게이트에 대한 서적을 몇 개 읽었다.
그래서 붉게 빛나고 있는 포탈이 어떤 종류인지 헨리는 알고 있었다.
‘붉게 빛나는 건 1회성 게이트로 클리어 하면 사라지고. 검은색은 영원히 생성되어 있다지?’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1회성 게이트.
허나 1회성이라고 무시해선 안 된다.
검은색보다 붉은색이 몇 배는 더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궁금하군.’
그렇기에 궁금했다.
얼마나 대단한 놈이 들어 있을지.
헨리는 과거, 마물의 숲에 진격하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포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자리에 헨리의 뒤를 쫓아온 통제실 요원들이 나타났다.
*“뭐?”
“지금 말인가?”
늦은 밤.
협회는 난리가 났다.
늦저녁쯤에 재하에게 테스트용 게이트 목록을 전달했는데 그걸 전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도전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뭐? SS1?”
심지어 SS1이란다.
SS1이 무엇인가.
국내에 단 두 개밖에 없는 SS급 격리 게이트들 중 하나가 아닌가?
그곳은 여지껏 그 어떤 헌터도 클리어 하지 못했고 더불어 그 어떤 헌터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격리가 된 곳이다.
발을 들이는 순간 반드시 죽게 되는 공간은 재해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요원들의 보고에 협회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대단한 배짱이군. 설마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그런 게 아니라면 왜 상대적으로 안전한 블랙 게이트가 아닌 격리 조치된 레드 게이트부터 들어간 걸까?
뭐가 됐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장 흉포하다고 알려진 SS1 게이트가 클리어 되는 순간, SS2라든지 여타 다른 블랙 게이트 같은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
“후…….”
협회장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거실로 나왔다.
그런 다음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열장에서 즐겨 마시는 위스키 한 병을 꺼냈다.
쪼르륵-
언더락 잔에 얼음 몇 개를 넣고 위스키를 붓는다.
40도가 넘는 독한 위스키였지만 조금씩 음미하며 먹다 보면 오크 향기에 취해 어느샌가 떨리는 가슴은 진정되고 잠까지 오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는 녀석이었다.
협회장은 잔을 들고 창가로 가 위스키를 음미했다.
그때였다.
우우웅-
핸드폰 진동.
한 팀장의 전화였다.
협회장은 입에 잔을 가져다 댄 채 나머지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수신하자 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한재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혀, 협회장님!”
“왜 그런가?”
“끄, 끝나 버렸습니다. 아, 아니 끝내 버렸다구요!”
“끝내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신재하 말입니다! 신재하가 좀 전에 SS1을 클리어 했습니다!”
“푸후훕! ……뭐?”
협회장의 입가에 위스키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