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99화 (399/522)

# 399

외전 (8)

헨리가 심적으로 은퇴를 하고 몇 년이 지났다.

헨리는 여전히 마탑의 탑주로 남아 있으면서 최소한의 업무만 맡아 처리했다.

그동안 실버는 소년티를 완전히 벗고 건실한 청년이 되었으며 로난과 하인 또한 약관의 나이를 지나 제법 어른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하울은…….

“스승님, 저 왔습니다.”

“그래. 하울이냐?”

파도가 규칙적으로 부서지며 오직 창창한 햇볕만이 내리쬐는 곳.

마탑의 숨은 연구실에 하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울은 어느덧 늠름한 소년이 되었다.

키도 제법 자라서 이제 조금만 더 크면 헨리의 키를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아직 못다 자란 키와는 별개로 하울은 이제 겨우 열여섯의 나이로 무려 탑의 수석 마법사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비약적인 발전 속도였다.

그 덕분에 하울은 탑 내 최연소 수석 마법사가 되었으며 동시에 샤하트라의 자랑이 되었다.

그러나 하울은 보조 마법사 한 명을 둘 수 있는 조건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조수를 두지 않았다.

되레 누군가의 조수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헨리였다.

물론 헨리 또한 이를 딱히 거부하진 않았다.

사실 헨리의 연구를 도울 ‘정식 조수’라 함은 최소 6서클 급의 아크 메이지 정도는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헨리가 행하는 연구를 발끝에서나마 쫓으며 헨리를 전력으로 보조해 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헨리는 하울을 거부하지 않았다.

헨리가 하울을 거부하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모리스 차일드라는 사실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탑 내 최고의 재능을 가진 어린 마법사를 그냥 방치해 두지 않기 위함이었다.

‘스스로의 성장은 마도사일 때부터 시작해도 괜찮으니까.’

하울은 헨리의 심부름으로 결재 서류를 연구실로 가지고 온 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게루우우우!

구강 전체를 이용해 울음소리를 내는 생물체.

그런 생물체가 헨리의 연구실의 하늘 높이 비상했다.

“우와…….”

마치 조각낸 유리를 하나하나 이어 붙여 동방 설화에 등장하는 용을 만들어 놓은 듯한 외형이었다.

아름다웠다.

하울은 저 이름도 모르는 아름다운 생물체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마 저 생물체 또한 헨리의 작품이리라.

하울은 서류 뭉치를 끌어안고 한동안 그것을 구경했다.

그런데 한참을 구경하던 중 무언가 이상함을 발견했다.

‘그림자가 없어?’

녀석은 척 보기에도 거대해 보였다.

비록 몸이 반투명하긴 했지만 유리라고 해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데 눈앞의 생명체는 분명히 자신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

의아함에 하울이 물었다.

“스승님, 저 아인 왜 그림자가 없습니까?”

“누구? 쟤?”

“그렇습니다.”

“내가 그림자를 없앴으니까.”

“예? 그림자를 없애다니요?”

“그냥 오래 전부터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어. 그림자가 없는 존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어서 말이야. 그리고 얼마 전에 성공했지. 저 녀석은 엄밀히 말하자면 연금체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그림자를 없앨 수 있었던 거야.”

“아아, 연금체였군요.”

“뭐, 지금이야 예쁜 쓰레기지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꽤나 훌륭한 암살자가 될 게다. 생각보다 그림자 때문에 들켜서 죽는 살수들이 많거든.”

“저 아인 이름이 뭔가요?”

“이름? 딱히 생각 안 해 봤는데 뭣하면 네가 대신 붙여 주지 그러냐?”

“제, 제가요?”

“뭘 그리 부담스러워 하느냐? 고작해야 이름이다. 중요한 건 탄생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지, 이름 따윈 누가 붙여 줘도 좋단다.”

헨리는 대수롭잖다는 듯이 대꾸했다.

이미 시선을 하울이 오기 전까지 집중하고 있던 어느 주문서에 처박아 둔 채로 말이다.

“와……!”

이에 하울은 다시금 감탄했다.

헨리의 저런 무심한 면까지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는 진심이었다.

실제로 생물의 그림자를 마법적 가공을 거쳐 없앤다는 것 자체가 몹시 어렵고 난해한 작업이었다.

등급으로 따지자면 8서클급에 해당하는 난이도.

하지만 헨리는 보란 듯이 해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야 할 만큼의 정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결국엔 하나의 지식으로 정립까지 해 냈다.

그러나 헨리에겐 그것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을지언정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정도의 정성이 들어가게 되면 헨리는 항상 혹시 모를 기대를 하게 되었으니까.

‘혹시 이게?’

혹시 이것이 아홉 번째 서클을 만들어 줄 열쇠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말이다.

하지만 그림자를 없애는 새로운 지식까지 창조해 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력이 늘지도 않았고, 육체가 새로 재구성되지도 않았다.

하물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도 없었다.

그저 호기심이 해소된 게 전부였다.

허탈했다.

그래서 헨리는 계기와 과정은 중요시하게 됐지만 완성된 결과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림자를 없앨 수 있는 지식은 헨리에게 그 어떤 변화도 가져다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진 않았다.

어차피 9서클이란 것, 그렇게 쉽게 만들어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헨리의 무미건조한 시선이 현재 연구 중인 주문서의 술식을 훑었다.

어쩌면 이번 연구야말로 자신에게 큰 깨달음을 주어 아홉 번째 서클을 만들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정을 모르는 하울에겐 그저, 헨리의 모든 행동들이 멋있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헨리의 고독한 연구는 계속 됐다.

* * *

몇 년이 지났다.

헨리는 여전히 제국의 공식적인 탑주로 남아 있었다.

아직까진 정정했으니까.

그리고 연구를 진행시킬 체력 또한 여전히 충분했다.

영약식은 물론이고 꾸준한 운동과 적절한 수면까지, 최대한 오랫동안 연구를 진행기 위해 온갖 건강관리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동안 하울은 ‘최연소 아크 메이지’라는 마탑내 역대급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울은 여전히 헨리의 조수직을 고수했다.

탑에서 잡다한 업무를 보고 후학 양성에 힘을 쏟는 것보다 헨리 옆에 붙어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으니까.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젠 모든 마법사들이 하울을 부러워했다.

드라칸은 여전히 의탑주직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헨리가 했던 말마따나 슬슬 의탑주에서 차기 탑주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학 양성에도 제법 많은 힘을 쏟아부으며 적절한 후계자 또한 찾아내 곁에 두고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

또한 드라칸의 평판은 이제 더 이상 치기 어린 마법사가 아닌 또 한 명의 대마법사로 모두에게 존경받고 있었다.

제국민들 모두가 드라칸을 의술의 아버지라고 칭송했다.

그동안 의탑이 제국을 위해 일궈 낸 업적들이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칸은 결코 자신의 업적에 취해 자만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씩 헨리를 보기 위해 헨리의 비밀 연구실을 찾아갈 때마다 헨리가 이룩해 낸 위대한 업적들을 보며 저절로 주제 파악이란 걸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아니, 그에게 괴물이란 표현은 적절치 못했다.

그는 이제 대마법사를 넘어 살아 있는 마법의 신이 되었다.

의술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드라칸 로티크도, 최연소 아크 메이지라고 불리는 하울 모리스도…….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지의 계단을 헨리 혼자서 묵묵히 밟아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칸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어느 날, 헨리를 찾아온 드라칸이 하울에게 물었다.

“하울 군.”

“예, 의탑주님.”

“혹시 대마법사님께선…… 이미 9서클의 경지를 이루셨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 사실을 함구하고 계시나?”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한번 생각해 봐. 아니, 그분께서 이루신 위대한 업적들을 한번 보라고. 비록 그분이 원치 않으셔서 아직 세상에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장장이가 검을 찍어 내듯 만들어 내는 새로운 지식 모두가 우리에겐 기적이자 혁명 그 자체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감히 추측해 보는 것일세. 그분께선 이미 아홉 번째 원을 그리셨지만 모종의 이유로 우리에게 비밀로 하고 계시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추측을 말일세.”

드라칸은 제법 진지하게 물었다.

이에 하울이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의탑주 앞이라 나름대로 예를 차린 것이다.

그 행동을 보고 드라칸이 물었다.

“왜 웃는 건가?”

“아아, 죄송합니다. 그냥 뭐랄까 사람 생각이란 게 결국 다 같을 수밖에 없구나 싶어서요.”

“생각이 같다니?”

“저 또한 의탑주님과 같은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선 이미 제 생각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알고 계셨다고?”

“예. 그분이 만드신 마법 중에는 일정 영역 안에 들어오면 생각의 일부를 강제로 보여 줄 수밖에 없는 마법도 있거든요.”

“그, 그래서? 그래서 대마법사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

“그냥 깔끔하게 가진 서클들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았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여덟 개의 고리들을 말이죠. 근데 솔직히 저도 좀 의아하긴 했습니다. 이미 저 정도의 깨달음이라면 충분히 서클이 증진되고도 남으셨을 텐데……. 대마법사님의 마법적 무의식은 얼마나 더 큰 깨달음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하울과 드라칸은 그렇게 한동안 더 의미 없는 잡담들을 나누었다.

하지만 매번 같은 주제로 잡담을 나누었지만 이 주제는 도무지 질리지가 않았다.

헨리가 그려 낼 아홉 번째 서클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젠 마탑 전체가 염원해 마지않는 숭고한 바람이었으니까.

하울이 말했다.

“근데 뭐,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긴 한데, 아마 몇 년 뒤면 이젠 정말로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완전히 말인가?”

“예, 스승님께선 어느 순간부터 업무량을 자꾸만 줄이시더니 이젠 그조차도 보기 싫다고 하셨거든요.”

“……그렇군.”

헨리의 완전한 은퇴.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는 헨리를 생각하면 반가운 소식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안타까운 소식이기도 했다.

원래의 헨리는 제국의 번영을 위해서 제국 운영의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모두 신경을 써야 직성이 풀리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젠 최종 결정 같은 아주 작은 업무조차 보기 싫다고 하니 혹여 연구에 미친 나머지 실성하기라도 해 버리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드라칸이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했다.

‘아냐,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드라칸은 헨리를 믿기로 했다.

그는 드라칸이 아는 대륙 최고의 마법사이자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멋진 ‘어른’이었으니까.

* * *

그렇게 다시 몇 년이 지났다.

헨리가 연구실에 마련한 침대에 몸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허탈한 중얼거림.

헨리의 연구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했다.

그래서 허탈한 것이다.

헨리의 연구실에는 항상 헨리가 호기심으로 시작해 기록해 놓은 온갖 메모들이 장신구처럼 허공에 수놓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999개에 달하는 메모들이 말이다.

그런데 방금 막 999개의 연구들 중 마지막 연구를 완성하고 그것에 대한 지식을 정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아홉 번째 원을 그리지 못했다.

허무했다.

머리가 아팠고 화가 났으며 동시에 탈력감이 몰려 왔다.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이 전신을 주물렀다.

그러나 아무리 거세게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도 속에 몸을 집어넣어도 한 가지 의문점만큼은 도무지 지워지지가 않았다.

‘대체 왜?’

대체 왜…… 머리가 트일 만한 깨달음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그동안 999가지나 되는 새로운 지식들을 정립해 내면서 진짜 깨달음이라 여길 만한 지식들이 몇 가지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단순한 깨달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감탄사나 내뱉을 수 있는 그런 깨달음.

그래서 헨리는 그런 감탄사가 나오면 가볍게 감탄사를 내뱉고 다시 지식 정립에 힘을 썼다.

그리고 그런 결과가 모여 현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헨리는 결국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실패뿐인 성공이었다.

“어떻게…… 대체 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심정은 그랬다.

하지만 지난 세월 전부를 오롯이 연구에만 매달리느라 눈물샘이 말라 버린 것만 같았다.

헨리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솔직히 연구를 진행하려 한다면 더 할 수는 있었다.

그동안 정립한 지식들을 섞어 더 나은 지식으로 개량해 내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가공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가 새로운 결과를 가져다 줄 것 같진 않아서였다.

게다가 그러한 연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쉬워, 쉬울 것 같다고!”

헨리의 연구는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난관에 부딪히지 않고, 성공에 성공을 거듭해 대성공을 이루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새로운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이 몹시 쉽게 느껴졌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지식을 합치거나 개량하는 부질없는 행위 따윈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순간, 헨리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동안 머릿속에 지우고자 금서처럼 여겼던, 머릿속 깊이 꽁꽁 싸매고 봉해 두었던 어떤 지식의 존재를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헨리는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아냐! 그 지식에 손을 댔다간 난 또……!”

그 지식.

그것은 처음 연구실에 발을 들인 날, 헨리가 직접 손으로 목록에서 찢어 없앴던 차원의 힘에 대한 지식이었다.

헨리는 예전에 그 지식의 도움으로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9서클의 경지를 이뤄 냈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 만큼은 그 지식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억지로 머릿속에 지식을 봉해 두었다.

자신이 미뤄둔 연구들 중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연구는 끝났다.

그럼에도 헨리는 8서클에 답보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다시 차원의 힘에 대한 지식이 떠오르고 만 것이다.

지식에 대한 기억은 정확했다.

헨리의 기억력은 대륙에서 가장 뛰어났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래 전에 전수받았던 지식마저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단지 두려워서 제대로 꺼내 보지 않았을 뿐.

헨리는 그 지식의 정립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젠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만 같았다.

갈등됐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의 뚜껑을 손으로 짚은 기분이었다.

그 고민이 무려 반나절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도움을 받아 보자. 내가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조금만 말이야……!”

아주 약간의 자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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