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75화 (375/522)
  • # 375

    리버스 (3)

    90분.

    2급 구역을 제패하고 베놈의 심장을 섭취한 뒤 죽은 마물들의 심장을 모두 먹어치우는데 걸린 시간.

    헨리는 이 모든 과정을 정확히 90분 만에 해냈다.

    헨리가 마지막 심장을 입 안에 욱여넣으며 생각했다.

    ‘토할 것 같네.’

    혹시 몰라 혓바닥을 마비시켜 두었다.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게 아니라 후각도 일정 부분을 차지하니, 혹시 몰라 후각까지 마비시켰다.

    하지만 미각과 후각을 마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면에서 다가오는 역함과 정서적인 역겨움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헨리는 그 모든 것들을 정신력으로 억제했다.

    지독한 90분이었다.

    헨리는 심장을 뽑아 먹은 마물과 마족들을 차례대로 불태워 없앴다.

    혹여나 이미 먹은 시체를 다시 헤집는 일이 없게끔 말이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블랙 티어가 깔끔하고 효율적인 대신에 극악의 고통을 선사했다면, 마족의 심장들은 역한 맛과는 달리 고통이 적다는 것이었다.

    우물우물.

    좀 전에 삼킨 심장이 가슴에서 화염이 되어 폭발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정도 고통쯤은 블랙 티어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꿀꺽.

    헨리는 마침내 좀 전에 욱여넣었던 마지막 심장까지 삼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입을 열면 위장에 쌓인 심장 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만약 후각을 마비시키지 않았다면 금방이라도 게워 냈을 것이다.

    심장 포식을 끝낸 헨리는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필요 이상으로 집어넣은 심장 탓에 배가 빵빵해져 허리 펴기가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몸 곳곳이 마족의 피투성이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 더러움은 클린 한 번이면 다 해결됐으니까.

    중요한 건 집어삼킨 심장들이 가진 마력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허리를 펴고 집중을 시작하자 빵빵해진 배가 불편하다는 사실도 금세 잊게 됐다.

    마력 흡수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20분 정도.

    환생한 직후 미라클 블루를 온전히 흡수하는 데 반나절이 걸린 걸 생각하면 엄청난 속도였다.

    헨리는 먹은 심장으로부터 뽑아낸 마력을 이번엔 자신의 하트와 결합시키기 시작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다.

    헨리는 심장으로부터 뽑아낸 마력을 최대한 섬세하게 마나 하트로 투여했다.

    그렇게 다시 30분이 흘렀다.

    그때였다.

    ‘설마?’

    뽑아낸 마력을 마나 하트에 투여하길 반 시간째, 일곱 번째 서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8번째 서클이 생길 거라는 징조이기도 했다.

    눈을 감은 헨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빨리 8서클에 도달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투여할 마력도 좀 더 남은 상태였다.

    헨리는 입가에 미소를 띈 채 계속해서 마력을 투여했고 마침내 8서클의 경지를 이룩할 수 있었다.

    마력 투여를 마친 헨리가 천천히 눈을 떴다.

    “클린.”

    후웅!

    바람이 불며 새하얀 빛무리가 헨리를 한차례 휘감더니 다시 사라졌다.

    그러자 피딱지로 범벅되었던 헨리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정돈되었다.

    정돈을 마친 헨리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생각보다 빠른데?”

    이번 산보의 목적은 순전히 베놈의 심장이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베놈을 해치웠고 마족의 심장들을 통해 8서클까지 만들어 냈다.

    이만하면 기대 이상의 수확이다.

    헨리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욕심이 생겼다.

    ‘이거 잘하면 다음 계획까지 한 방에 해결할 수 있겠는데?’

    헨리는 다시 한번 더 시간을 확인했다.

    애초에 4시간 정도 시간을 잡고 나온 산보다.

    그런데 시간이 남았으니 좀 서두르면 다음 계획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번 해 봐?’

    못할 것도 없다.

    만약 시간이 부족하다 판단되면 그대로 내빼면 되니까.

    결심을 마친 헨리는 다시 은신 마법을 시전했다.

    2급 구역은 이미 헨리가 한바탕 난리를 피운 덕에 쑥대밭이 되었다.

    흔적을 지울 필요는 없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니만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색할 게 없었으니까.

    헨리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1급 구역에 당도했다.

    그리고 1급 구역에 진입하는 순간, 헨리는 2급 구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찐득한 독성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1급 구역에 들어선 헨리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과거에 죽였던 마왕이 되돌린 시간과 함께 부활했지만 그럼에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주신에게 부탁한 것이니까.

    헨리는 8서클에 달하는 은신 마법으로 모습을 숨기고 1급 구역 내부를 천천히 거닐었다.

    일전에 보았던 텅텅 빈 1급 구역과는 차원이 다른 풍경이었다.

    모든 것들이 과거에 보았던 그대로다.

    ‘맞아, 이런 놈들도 있었지.’

    당장이라도 모든 것들을 도륙할 것 같은 데스나이트 부대라든가, 수인들의 왕, 네크로멘서 군단이나 언데드 군단들은 그야 그 누구도 헨리의 기척을 읽어내진 못했다.

    현재의 헨리는 혼자서도 마왕을 가벼이 상대할 수 있는 8서클의 경지에 다다랐으니까.

    하지만 남은 100분의 시간 동안 헨리가 할 일은 이 많은 마왕군을 죽이는 것도, 홀로 마왕을 죽이는 것도 아니었다.

    남은 시간 동안 헨리가 할 일은 바로, 헨리가 온 줄도 모고 세상모르고 방심하고 있을 마왕의 ‘무언가’를 없애는 것이었다.

    무언가.

    헨리는 그것을 ‘마왕의 증오’라고 불렀다.

    물론 이 이름이 붙은 것은 죽어 가는 마왕이 골든 잭슨에게 끔찍한 저주를 내린 후의 일이었다.

    헨리는 주신이 시간을 되돌려준다고 했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언제 어느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려야 후회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헨리가 자신의 일행들과 함께 마왕을 토벌하던 때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골든 잭슨이 마왕의 저주로 일찍 죽지만 않았다면 어린 2실버 잭슨이 일찍 왕위를 물려받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왕의 저주를 막아 주지 못해 골든을 일찍 죽게 한 것이 헨리에겐 인생의 큰 후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젠 그 후회를 처음부터 바로 잡을 수 있게 됐다.

    덧붙여 헨리는 친구가 얻게 될 명예 또한 뺏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홀로 마왕이 있는 곳까지 침투해 골든 잭슨에게 내릴 저주인 ‘마왕의 증오’를 없애려는 것이다.

    사실 마왕의 증오는 마왕이 죽기 전에 저주를 발동시키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물건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 그 위험성을 알고 잘못을 바로 잡을 수가 있으니 사전에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다.

    헨리는 잠에 빠져 있는 마왕을 올려다보았다.

    헨리가 동료들과 함께 힘을 모아 쓰러뜨렸던 이 마왕의 이름은, ‘베가루스’.

    헨리가 본 마족, 마물들 중 가장 끔찍하고 흉측하게 생겼으며 성격 또한 포악해 잡는데 애를 먹었던 녀석이기도 했다.

    베가루스는 헨리가 온 줄도 모른 채 잠에 빠져 있었다.

    헨리는 그런 베가루스를 잠시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베가루스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놈의 그 하잘것없는 발악만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런 비극들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헨리는 시선을 옮겨 마왕의 뒤편에 위치한 ‘마계의 틈’을 보았다.

    역시 시간을 되돌렸으니 마계의 틈 또한 다시 열린 모양이었다.

    ‘쯧, 저건 생각도 못 했는데.’

    말 그대로였다.

    베가루스가 가진 마왕의 증오 파괴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마계의 틈까지 원래대로 복구되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베가루스도 죽이고 마계의 틈도 닫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헨리는 알고 있다.

    마계의 틈은 일개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신의 영역에 속하는 ‘차원의 힘’이 있어야지만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계획한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생각을 마친 헨리는 베가루스 옆에 마법진을 그렸다.

    이동 마법진이었다.

    일이 잘되든 잘못되든 시간이 다 되면 언제든지 몸을 빼내기 위함이었다.

    마법진을 가볍게 그려 낸 헨리는 이어서 오른손에 마력을 결집시키기 시작했다.

    마왕의 증오는 베가루스의 미간에 박힌 붉은 보석의 이름이다.

    처음엔 단순한 장신구 혹은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저것이 그토록 끔찍한 힘을 가진 것인 줄 알았다면 진즉에 저것부터 없애 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기회는 한 번 뿐이다.

    헨리는 일격에 마왕의 증오를 없앨 수 있도록 오른 손아귀에 최대 출력의 파괴 마법들을 응집시켰다.

    ‘됐어.’

    8서클 단위의 마법이 수십 개나 오른손에 압축되었다.

    그 엄청난 파괴력에, 마력이 압축된 오른손이 덜덜 떨렸다.

    ‘간다!’

    준비를 마친 헨리는 일순 주문을 외웠다.

    사용된 마법은 블링크.

    헨리의 시야가 닿은 곳까지 순간이동을 시켜주는 마법이다.

    헨리는 잠든 베가루스의 미간 앞으로 순식간에 블링크했다.

    그런 다음 압축된 마법구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베가루스의 미간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 그 순간, 빛이 번쩍였다.

    ‘지금!’

    마왕의 증오와 압축된 마법구가 맞부딪히며 광휘가 터져 나왔다.

    헨리는 다시 블링크를 시전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마법진으로 이동한 다음, 곧바로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슈슉!

    모든 것이 찰나에 벌어졌다.

    헨리는 성공적으로 자신의 막사에 도착했다.

    마법진에 설정해둔 좌표가 자신의 막사였으니까.

    ‘성공했겠지?’

    너무 긴장한 탓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 정도 파괴력이었으면 마왕의 증오는 반드시 부서졌을 테니까.

    헨리는 흐르는 땀을 클린으로 씻어 낸 후 자리에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그런데 그때였다.

    “대, 대마법사님! 잠시 밖에 좀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음? 왜?”

    다급한 병사의 외침.

    헨리를 깨워 주겠다던 그 병사였다.

    헨리는 병사의 다급한 외침에 병사를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에 나오고 보니 무슨 이유로 병사가 놀랐는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게 뭐야……?”

    막사 너머.

    그러니까 지평선 언저리쯤에 마물의 숲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휘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토벌군은 새벽부터 난리가 났다.

    혹 마왕이 무슨 수작이라도 부리는 게 아닌가 싶어 모두들 다급히 무장을 하고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그리고 선수필승이라는 전법에 맞춰 잠든 사제들까지 깨워 성법을 두른 후 2급 구역으로 서둘러 진격했다.

    그러나.

    “이, 이게 무슨……?”

    2급 구역의 마물들은 이미 헨리에 의해 절멸된 상태였다.

    모두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특히 선봉에 선 골든 잭슨의 표정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그 자체였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흔적을 미루어 보건데 좀 전에 누가 다녀간 듯싶었다.

    그런데 그게 누구인지 알 수가 없으니 그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다른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어리둥절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헨리만 난처한 표정을 숨기기에 바빴다.

    ‘……이게 아닌데?’

    날이 밝는 대로 간만에 재회한 옛 동료들을 보며 감회에 젖으려 했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토벌군은 의아함을 품은 채 계속해서 진격했다.

    2급 구역은 이미 쑥대밭이 되었으니 일단 여전히 광휘가 몰아치고 있는 1급 구역에 가 보자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1급 구역에 토벌군이 발을 들인 순간, 토벌군은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봉에 선 골든이 말했다.

    “……저거 마왕 아냐?”

    골든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그 물음의 끝에는, 몸체의 상반신이 날아가 하반신만 꿈틀대고 있는, 마왕 베가루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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