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52화 (352/522)

# 352

서열 정리 (1)

5년.

인간계에 반년의 시간이 흐른 동안 마계에서 흘러간 세월의 햇수였다.

그러니 마계는 인간계보다 시간이 스무 배는 빠르게 흐르는 셈.

헨리는 지난 5년간 가니스엘이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뤄 냈을지 조금 기대가 되었다.

이동 중에 헨리가 물었다.

“가가.”

-예!

군기가 바짝 든 가가가 길 안내를 하며 힘차게 대답했다.

“현재 가니스엘의 서열이 몇 위쯤이지?”

-4위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4위?”

-넵!

“4위라…….”

4위.

여섯 개의 날개를 뜯기고 힘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에서 마계 서열 4위까지 올라섰다는 건 사실 엄청난 기량이었다.

하지만 헨리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헨리는 늘 인생의 정점에 섰던 인물.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준점을 자신과 비슷하게 두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생각했다.

‘설렁설렁 했나?’

가니스엘은 전혀 설렁설렁 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헨리에게 큰 감명을 받은 가니스엘은 헨리와 헤어진 후로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왔다.

죽을 위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헨리가 준 호출지를 찢고 싶었지만 다시 만날 날에 더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죽을 위기가 와도 호출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현재 가니스엘의 성장 속도는 마계의 모든 마족들 중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저깁니다.

이동 끝에 가가가 여느 방향을 가리켰다.

달라진 풍경은 없었다.

마계란 원래 그런 곳이니까.

그러나 가가가 가리킨 방향에서 헨리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맞게 왔네.’

가가가 가리킨 방향으로부터 제법 묵직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껴지는 기운이 하나가 아니었다.

심지어 두 기운은 맹렬하게 격돌 중에 있었다.

‘결투 중인가?’

헨리는 가가와 함께 맹렬하게 부딪히고 있는 기운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걸음 끝에 허공에서 격렬하게 치고받고 싸우는 두 존재를 볼 수 있었다.

결투 광경을 본 가가가 덜덜 떨며 말했다.

-저, 저자는 마계 서열 3위의 카이린!

“카이린? 저놈이 서열 3위야?”

-그렇습니다! 카이린은 떠오르는 신흥 강자로 잔인한 것으로만 따지면 서열권에 속한 모든 마족들 중 단연 최고에 속하는 무시무시한 놈입니다!

“그래?”

가가의 호들갑스러운 설명에 헨리는 흥미를 가지고 카이린이라는 놈을 살펴보았다.

전신이 시커먼 것이 카이린은 꼭 그림자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림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확실한 인영을 띠고 있다는 것.

거기에 허공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그림자와는 달리 공중전에 특화된 날개까지 가지고 있었다.

카이린은 명암을 구분할 수 없는 시커먼 몸체에서 끊임없이 암기를 뽑아내 휘둘렀다.

그리고 그런 카이린과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은 5년 전에 보았던 가니스엘이었다.

헨리는 잠시 숨을 죽이고 두 마족의 혈투를 구경했다.

헨리가 보기에 카이린이란 놈은 확실히 화려한 기교를 바탕으로 날카롭게 급소만을 노렸다.

흡사 짐승의 감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헨리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과거, 저보다 더 뛰어난 암살자들을 인간계에서 보아 왔으니까.

반면에 가니스엘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기교가 화려한 카이린의 공격을 여유 있게 흘려내며 급소 공격까지 되받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간 싸움을 지켜보던 끝에 헨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못 본 새에 악취미가 생겼군.’

안목이 조금만 있다면 두 마족의 싸움은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조롱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조롱의 대상은 카이린이었다.

헨리는 더 이상의 구경은 시간 낭비라고 판단해 조용히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런 다음 열심히 결투를 펼치고 있는 카이린을 향해 소리쳤다.

“빵!”

피슝!

입 밖으로 뱉어진 건 장난스러운 어투였다.

그러나 장난스러운 어투와는 달리 손끝에서 발사된 건 무시무시한 속도로 뿜어지는 한 줄기의 빛이었다.

“카아악!”

뿜어진 빛이 카이린의 오른쪽 팔뚝을 관통했다.

관통한 빛은 오른쪽 팔뚝을 기점으로 몸 가슴께를 지나 반대편 팔뚝으로 뿜어져 나왔다.

카이린의 입에서 한 움큼의 핏물이 토해져 나왔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카이린.

곧 거대한 충돌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다.

그리고 가니스엘은 그제야 헨리의 존재감을 알아채고 헨리의 이름을 불렀다.

“헨리!”

처음엔 화가 났다.

어느 놈이 신성한 결투를 방해하는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존재가 헨리라는 것을 알자마자 가니스엘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헨리를 반겨 주었다.

두 존재는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우선 악수부터 나누었다.

“난 반년만이지만 넌 5년만인가?”

“그렇다. 마계의 시간축은 인간계의 시간축과 다르니까.”

“소식은 들었어. 5년 만에 서열 4위가 됐다지? 아니다, 좀 전에 3위를 쓰러뜨렸으니 이제 네가 3위인가?”

“그렇다. 물론 네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내가 쓰러뜨릴 순 있었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수고를 덜었다.”

가니스엘의 성장 속도는 분명히 헨리의 기준에선 느린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헨리는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도리어 가니스엘을 칭찬했다.

가니스엘은 다른 마족들과는 달리 헨리와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차기 마왕이 될 인재였으니까.

가니스엘이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마계에 온 건가?”

“마신한테 볼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지. 그래서 말인데, 마신과는 볼일이 끝났고 이제 너랑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 말이야.”

“나랑 말인가?”

“응, 너랑 말이야. 그건 그렇고…… 가니스엘, 아직 천계에 대한 증오가 남아 있어?”

“물론이다. 천계에 대한 복수는 나를 지금까지 살아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니까.”

“그래? 여전히 대쪽 같은 마음을 가졌네. 그래서 말인데, 너한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어떤 제안이 됐든 간에 그대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

호의적인 태도.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릴 것만 같았다.

헨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그럼 본론을 이야기할게. 지금 내가 천계의 천신한테 볼일이 있어서 천계에 가 볼 참이거든. 근데 일이 잘 풀리면 모르겠는데, 일이 잘 안 될 경우엔 직접 천계를 뒤흔들어서라도 원하는 바를 이룰 생각이라서 말이야. 근데 내가 천계를 뒤흔들어 버리면 그건 너의 복수를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럴 수도 있겠군.”

“그래서 말인데, 만약 내가 천계를 뒤흔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그땐 나와 함께 천계를 공격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러 왔어.”

“함께라…….”

헨리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가니스엘은 잠깐 동안 고민하더니 이내 곧 가볍게 대답했다.

“좋다. 그렇게 하겠다. 하지만 그전에 나도 부탁이 있다.”

“무슨 부탁?”

“앞으로 내가 마왕이 되기까지 이제 2번의 결투가 남은 상황이다. 혹시 급한 문제가 아니라면 내가 마왕이 될 때까지만 좀 기다려 줄 수 있겠는가?”

“음…… 굳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물론 그대와 함께라면 필요 없을 수도 있겠지만 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내 손으로 직접 천계를 부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직접 마계의 정점이라 불리는 마왕이 되어 군단을 이끌고 천계에 처들어가고 싶다.”

“아아, 맞아. 저번에도 그런 이유로 이른 복수를 거절했었지, 참.”

“그렇다.”

“음, 내가 그렇게 시간이 많지가 않은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어떻게 말인가?”

가니스엘의 부탁에 헨리는 서로간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적당한 대안을 제안했다.

그리고 헨리의 제안을 들은 가니스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헨리의 제안에 응했다.

“그 정도라면 나도 좋다!”

“좋아, 그럼 곧장 움직여 보자고.”

두 사람의 타협점이 맞아떨어졌다.

* * *

현 마계 서열 2위 기가탄.

순혈 마족들 중에서도 파괴력으로 유명한 적색거인족의 후손으로 가진 재능만큼은 적색거인족 역사상 최고라고 불리는 마족이었다.

기가탄은 그러한 재능을 바탕으로 마계 서열 2위로 군림할 수 있었고, 호시탐탐 마왕 후보를 죽이고 자신이 새로운 마왕 후보가 되길 원했다.

그리고 오늘.

오늘이 바로 그동안 갈고 닦은 힘을 바탕으로 마왕 후보에게 도전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마왕 후보에게 도전하기 위해 영역을 벗어나려던 찰나, 자신의 영역에 거대한 존재감이 두 개나 포착되었다.

‘이, 이렇게나 거대한 존재감이라니!’

느껴지는 두 존재감 중 하나는 그럭저럭 자신과 견줄 만했지만 나머지 하나는 그렇지 못 했다.

나머지 하나는 지금 자신이 도전하러 가려는 현 마왕 후보, 그레텔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기가탄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그리고 목표를 바꿔 자신에게로 접근 중인 두 존재감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두 존재감과는 금방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런데 두 존재감의 실체를 확인한 기가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

내뱉은 육성 그대로였다.

기가탄의 눈앞에는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아무리 봐도 인간처럼 보이는 남자가 마계 서열 4위로 불리는 가니스엘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주변엔 확실히 아무도 없었다.

곁에 도마뱀 마족 하나가 있긴 했지만 놈은 존재감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기에 가볍게 무시했다.

기가탄은 자신의 감각기관이 잘못됐나 싶어 일단은 눈앞의 가니스엘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네놈은 서열 4위의 가니스엘이 아니더냐?”

“아니, 좀 전에 카이린을 쓰러뜨리고 오는 길이니 이젠 4위가 아니다.”

“그렇군. 3위의 가니스엘. 날 찾아온 목적은 당연히 서열전을 치루기 위함이겠지?”

“눈치가 빨라서 좋군.”

“좋다. 그레텔을 씹어 먹으러 가기 전에 좋은 준비운동이 되겠어. 칼을 뽑아라, 가니스엘!”

헨리의 존재는 무시하기로 했다.

저런 인간이 이만한 존재감을 내뿜을 리는 없을 테니까.

기가탄이 용맹하게 소리치며 결투를 선포했다.

결투를 선언한 직후, 2미터 남짓했던 신장이 순식간에 십여 미터가 넘는 거구로 성장했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감탄했다.

“오! 신기한 놈일세.”

평소엔 신장을 줄였다가 필요할 때면 본모습을 꺼내 드는 적색거인족만의 특별한 혈족비술!

더불어 억제해 두었던 신체를 개방시키자 두 개였던 기가탄의 팔이 네 개가 되었다.

슬그렁!

기가탄의 손에 각기 다른 무기들이 쥐여졌다.

손에 쥔 무기 또한 기가탄의 덩치에 걸맞은 거대한 병기들이었다.

이에 가니스엘 또한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자신의 전력에 보탬이 됐던 마계의 신기들을 꺼내들었다.

“크허어어엉!”

전투가 시작되기 전, 기가탄은 거대한 하울링으로 가니스엘의 기선을 제압하고자 했다.

그러나 고막이 찢어질 듯한 하울링이 시작되자 소음을 참지 못한 헨리가 기가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

순간 기가탄의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피가 차게 식을 뿐만이 아니라 등골까지 오싹해졌다.

살기.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의 살기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가탄은 그 매서운 살기에 자기도 모르게 살기가 쏘아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이 착각했을 거라고 무시했던 인간이 있었다.

‘서, 설마 정말로 저 인간이?’

좀 전엔 확실히 헨리의 존재감을 부정했다.

그저 감각기관이 착각했을 뿐이라며.

그런데 지금 자신을 강타한 살기는 진짜였다.

‘말도 안 돼……!’

거인족들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성향이 짙고 용맹하기로 소문난 이들이 바로 적색거인족이다.

그중에서도 거인족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손꼽히는 기가탄의 본능이 기가탄에게 외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조심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기가탄은 자신의 본능이 자신에게 하는 경고를 절대로 무시하지 않는 마족이었다.

꿀꺽.

그러나 좀처럼 헨리의 살기는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뻗어진 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기가탄을 압박해 기가탄의 사기를 천천히 가라앉혔다.

마치 맹독에 중독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압박감이 절정에 달한 순간.

쿵!

기가탄은 가니스엘과 싸워보기도 전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무릎 꿇은 기가탄이 떨리는 목소리로 헨리에게 말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가니스엘의 마계 서열이 새롭게 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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