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95화 (295/522)

# 295

에피타이저 (1)

찰박.

아서스는 피로 가득한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전신 깊이 스며드는 충만한 기운에 취해 갔다.

“아아……!”

아서스는 짙은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아서스에게 스며들고 있는 기운은 다름 아닌 ‘믿음’.

즉, 농도 짙은 ‘신앙심’이었다.

‘정말 최고야, 신의 힘이란 건.’

야누스의 대리자가 된 아서스는 어느 순간부터 정말로 신을 꿈꾸고 있었다.

물론 평범한 신의 대리자라면 절대로 불가능할 일이겠지만 아서스는 특별한 대리자였다.

제아무리 신의 사랑을 받는다고 한들, 신의 대리자가 신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신력의 수치는 신자를 구성하고 있는 전체 힘의 49%를 절대로 넘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을 구성하는 기운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오러나 마력 같은 경우엔 어디까지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기운의 범주에 속하지만 신력은 달랐기 때문이다.

신력은 말 그대로 신의 은총을 받아 신으로부터 내려 받은 힘.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구성하는 기운들 중 그 기운의 절반이 신력이 차지한다면, 그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말인즉슨 인간을 구성하는 가운의 절반인 50% 이상이 신력이 되면 그때부턴 인간이 아닌 ‘반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49%라는 수치는 말 그대로 인간과 신을 구분 짓는 마지노선이자 경계선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아서스는 야누스로부터 49.9%에 달하는 권한을 넘겨받았다.

이것은 인류를 통틀어 최초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신력을 가진 대부분의 신자들은 체내를 구성하는 힘의 비율에 대한 비밀 따위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서스조차도 야누스가 말해주기 전까지 이러한 사실들을 전혀 몰랐으니까.

‘그 교황조차도 4할을 넘지 못했단 말이지?’

야누스의 말에 의하면, 아이린의 은총을 받은 로스 보르기아 교황조차도 체내를 구성하는 신력의 비율은 4할을 넘기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그가 운 좋게 4할에 가까운 신력을 넘겨받는다고 한들, 애초에 야누스와 아이리네의 신력은 격돌할 수 없는 힘이었기에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단지 아서스는 인류의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자신이 최초로 해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49.9%라는 반신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면서, 아서스는 자신을 신격화하고 자신의 신도들을 두어 신앙심을 흡수할 수 있는 오직 ‘신만이 누릴 수 있는 권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찰박.

아서스는 피가 가득 찬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가볍게 손짓하자 곧 전신에서 얼룩을 이루며 흘러내리던 핏물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과일 향에 가까운 향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또한 신의 권능들 중에 하나였다.

아서스가 말했다.

“드라칸.”

“예, 아서스 님.”

“내일이지?”

“그렇습니다.”

“참 기대가 돼.”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헨리 그 녀석 말이야. 분명히 한 달 동안 어떻게든 나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준비했을 텐데……. 과연 어떤 준비를 했을지 너무 기대가 돼.”

한 달이라는 시간.

아서스가 사도를 시켜 눈에 거슬리는 놈들을 모두 몰살시키지 않고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준 이유는 단순했다.

맛있는 식사는 충분히 기다려야 더 맛있어지는 법이니까.

이를 테면 아서스는 뜸을 들인 것이다.

갓 지은 밥이 맛있는 것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좀 더 뜸을 들인 밥은 더더욱 맛있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리고 아서스에게 헨리란 어쩌면 그가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유희일지도 몰랐다.

왜냐면 아서스가 생각하기에, 헨리는 현재 유라시아 대륙을 통틀어 가장 강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헨리를 죽이고 나면, 더 이상 자신을 즐겁게 해 줄 사람이 없다.

그렇게 되면 이후의 일은 불 보듯 뻔하게, 너무나도 쉽게 진행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아쉽겠지.’

그러니 아서스로선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르기에, 최대한 화려하고 맛있는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보고해 봐.”

“예, 아서스 님.”

아서스의 물음에 드라칸은 짧은 목례 후 허공에 마력으로 만든 대륙 지도를 펼쳐 보였다.

그런 다음 수많은 양의 붉은 점과 푸른 점들을 띄워 보였다.

“푸른 점이 우리지?”

“그렇습니다.”

“이야……! 우리 사도 녀석들, 열심히 일해 주었구나?”

“아닙니다. 위대하신 아서스 님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일쯤은 고생도 아닙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라고 만든 놈들인데.”

“물론입니다.”

“쩝, 전에는 나한테 대드는 맛도 좀 있더니 이젠 완전히 순종하게 됐구나, 너.”

“일전에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래, 뭐……. 그건 그것대로 좋은 자세지. 그나저나 대륙의 절반이라? 아니지, 이 정도면 대륙의 6할을 장악했구나.”

아서스는 시선을 돌려 지도를 응시했다.

지도에 표시된 붉은 점과 푸른 점들.

그것은 자신의 신도들과 이단들에 대한 표시였다.

아서스의 신도들.

식욕과 믿음을 제외한 모든 감정들을 절개당하고 오로지 아서스의 신력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을 뜻했다.

아서스와 사도들은 그러한 신도들을 일컬어 ‘맹신자’라고 불렀다.

마치 좀비와 같은 행색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언데드 같은 좀비가 아닌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신앙이란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아서스는 그들을 죽일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서스는 드라칸의 보고를 들으며 생각했다.

‘참 유능한 녀석이야, 잘도 그런 아이디어를 내는 걸 보면.’

물론 정신을 절개하여 보통 사람을 맹신자로 만드는 건 드라칸의 아이디어였다.

정신의 절개.

그것 또한 숱한 인체 실험 끝에 손에 넣은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산물을, 아서스는 자신이 가진 권능을 이용해 사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신앙의 포교’를 목적으로 온 대륙을 누비게 된 사도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바와 같이 엄청난 영업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덕분에 맹신자가 되지 않은 인류는 이제 고작해야 4할 정도.

그중에서도 헨리가 기반을 두고 있는 무슈와 같은 영역에 기거하고 있는 인류는 고작해야 2할밖에 되지 않았다.

“말씀하신 대로 헨리의 영역에서 가까운 인간들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잘했어. 그나저나 생각보다 둔하네, 저 녀석. 아니지, 주변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건가? 부디 나에 대한 준비 때문에 그럴 겨를이 없었다는 게 이유라면 좋을 텐데.”

“아서스 님, 그럼 내일은 일전에 말씀하신 대로 일을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마음이 바뀌었어. 내가 직접 헨리를 만나러 간다.”

“직접 말씀이십니까?”

“응, 내가 근질거려서 안 되겠어. 그리고 한 달이나 기다렸는데, 내가 직접 격려해 줘야 헨리 그놈도 의욕이 샘솟지 않겠어?”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좋아, 그럼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나저나 그놈은 좀 어때?”

“그놈이라면 아인종(亞人種)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그놈.”

“말씀하신대로 사육을 시도해 보려고 하였으나 폭주를 억제시키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후후,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놈이라 그런지 한 성질머리 하네. 먹이는 계속해서 주고 있지?”

“예, 강화된 키메라들을 위주로 주고 있습니다.”

“겁먹지 말고 계속해서 성장시켜. 그놈의 쓰임새가 무엇이 됐든 녀석은 반드시 좋은 패가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인종.

그것은 샬롯 고원에서 죽은 수많은 키메라들 사이에서 태어난, 최후의 키메라를 뜻했다.

녀석은 지난 몇 주 동안 산맥에서 내려온 샤하트라 산맥의 마물들뿐만 아니라 인간들과 맹신자들까지, 무엇 하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엄청난 힘이었다.

그리고 가진 힘만큼이나 녀석의 성장 속도는 눈이 부실 정도로 경이로웠다.

녀석은 그야말로 포식자였다.

그러나 녀석은 일대의 거대 포식자로 군림할 수 있었지만 아서스의 힘이 되는 맹신자들까지 잡아먹는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다.

신력이 줄어든 것을 귀신같이 눈치챈 아서스는 금방 그 원흉을 제거하기 위해 사도들을 보냈다.

제아무리 스스로 성장을 이룬 아인종이라곤 하지만 다수의 사도들을 당해 낼 재간은 없었다.

결국 녀석은 생포됐다.

그리고 아서스와 드라칸 앞에 무릎 꿇려졌을 때, 아서스는 녀석을 ‘아인종’으로 분류했다.

물론 녀석의 외형은 조금도 인간을 닮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 또한 본디 출발선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서스는 녀석을 아인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아서스는 녀석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죽은 수천수만의 키메라 더미 사이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것도 모자라, 전우들의 시체들을 갉아먹고 스스로의 힘을 키운 것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서스는 녀석을 본격적으로 사육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야생에서도 그만한 성장을 이룬 녀석이, 과연 온실 속에서는 얼마나 방대한 성장을 이뤄낼지 몹시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한 달째가 되는 마지막 날의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 * *

하루가 지났다.

전 날 헨리는, 앞으로 벌어질 전투가 어쩌면 대륙의 흥망을 정할지도 모를 마지막 전투라고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는 대륙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새롭게 조직을 개편했다.

조직의 이름은 없었다.

헨리는 조직의 이름을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고 역사에 기록을 남길 때쯤이 되면 그때 정하자고 했다.

그래서 헨리는 이번에 개편된 조직의 이름을 단순히 ‘연합’이라고 불렀다.

헨리는 연합을 이끄는 총사령관이 됐다.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지난 한 달간 7서클의 경지에 오른 일곱 학파장들을 일컬어 헨리는 ‘7현자’라고 불렀다.

또한 전 아크 메이지들이 7현자가 됨으로써 새롭게 아크 메이지가 된 11명의 부학파장들 또한 정식으로 이번 연합에 배치되었다.

성녀는 교황이 죽은 후 차기 교황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교황의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 두고 신성국 세인트 홀의 최고 권위자로 등극했다.

그녀는 자신을 보좌하는 ‘십이사도’와 함께 최고 성전사들을 연합에 합류시켰다.

헤라리온과 비람은 샤하트라 왕국에 남은 모든 군사들을 소집해 새롭게 군대를 조직하였다.

두 사람을 제외한 아홉 명의 기사들은 정식으로 헨리의 친위대가 되었다.

이외에도 책사 마실라를 포함한 최상급 워록 후슬러와 불카누스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전력임에 의심이 없었다.

일반병들은 소집하지 않았다.

대신 사도들에게 피해를 입지 않은 검은 군대, 즉 초완족을 무슈로 불러들여 무슈를 지키게 했다.

이들에겐 무슈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무구들을 지급하였다.

물론 7현자와 아크 메이지들, 그리고 친위대가 가진 장비의 보강 또한 두말할 것 없이 최고 수준의 것들로 지급했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사실 연합은 자정이 되는 순간부터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서스가 통보한 것은 정확히 한 달이었지만, 그 한 달의 끝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대로 보초 근무를 서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준비는 이미 끝났다.

일곱 현자와 열한 명의 아크 메이지. 그리고 아홉 기사들을 비롯한 연합원들이 긴장된 눈빛으로 지평선 너머에 떠오르는 해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떠오르는 것은 태양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크아아아!”

“등, 등이!”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는 세 사람.

바할드와 맥도웰, 그리고 알렌이었다.

그들은 다른 연합원들과 마찬가지로 긴장된 눈빛으로 지평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세 사람은 몸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갑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고 있는 내의를 급하게 찢어 냈다.

찢어 낸 상의 사이로 등짝의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등짝의 상처.

그것은 아서스가 저들에게 새긴 치욕의 상처였다.

상처는 재점화되듯 고기 굽는 냄새를 퍼뜨렸다.

그리고 그 지독한 작열통과 함께, 살을 원료 삼아 피어오른 연기 끝에는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던 얼굴이 나타났다.

“아서스!”

증오해 마지않던 얼굴, 그것은 다름 아닌 아서스의 얼굴이었다.

0